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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의 정원
쓰네카와 고타로 지음, 이규원 옮김 / 고요한숨 / 2020년 8월
평점 :
절판
뜻대로 되지 않는 사회생활과 행복하지 않은 결혼 생활에 우울한 스즈가미 세이치, 싫은 소리로 범벅된 출장을 마치고 회사로 돌아가는 도중 중요한 서류가 들어있는 가방까지 전차에 놓고 내린다. 대차게 꼬인 상황에 숨이 가빠오며 앞날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끼고 심각한 스트레스의 끝에 해탈하듯 모든 것을 내려놓는다.
‘다 귀찮아.’
어디론가 사라지고 싶다는 소망을 담아 무작정 걷는데 정말 여기는 어디인 것일까? 역에 내릴 때만 해도 시린 바람이 부는 1월이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연분홍 벚꽃이 하늘하늘 떨어지는 봄이 되어 있다. 지명도 모르고, 파출소도 없는 곳에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길을 묻지만 돌아오는 답은 “모른다.” 뿐. 길은 모르지만 잘 곳이 없는 세이치에게 친절하게 빈방을 내어주고, 임대료도 없이 집을 구할 수 있게 해주고, 돈벌 수 있는 수단까지 알려준다. 이래도 되나 싶은데, 다들 이래도 된다고 하는 희한한 마을. 화내는 법 없이 온화함만 흐르는 마을에 마물이 나타나지만 공동체의 이상향을 보여주듯 마을사람들이 합심하여 잡으며 일상을 이어간다. 이곳에서 아내를 만나 딸을 낳고 가정을 이룬 스즈가미 세이치에게 누군가 찾아온다. 현실 세계가 멸망의 위기에 처했으니 구해달라는데, 그 방법이 이 세계를 파괴하는 것이란다.
“이 세계는 현실이 아닙니다.”
“지구와 당신을 구하려고.”
“핵을 파괴하면 이 멋진 환상의 세계가 소멸됩니다. 이곳은 ‘미지의 존재’가 만들어 놓은 상념의 이계니까요.”
‘올 한 해 가장 재미있는 소설’ 이라는 평에 기대감을 갖고 읽었는데, 만족 만족 대만족이다. 우선 보는 것만으로도 생명체의 정신 상태에 영향을 주고, 잡아먹는 ‘푸니’라는 귀여운 생김새의 위험한 존재와 그로인해 생기는 직업이라든가 이야기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예상이 안돼서 한 장 한 장이 신선했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인류의 존속을 위협하는 ‘푸니’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가 싶었는데, 면역력이 강한 인간이 발견되어 푸니를 처리하고, 조정하고, 이윽고 푸니의 모체라 여겨지는 ‘미지의 존재’에 까지 도달하여 스즈가미 세이치를 만나는 순간까지 다양한 유형과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활약상을 눈앞에서 보는 듯 흥미진진하게 따라 읽었으며, 면역력 에피소드의 메인인 세이코가 마지막으로 ‘미지의 존재’를 올려다보는 장면에서 가슴이 웅장해짐을 느꼈다.
이렇게 미지의 존재가 멸망하길 바라는 인류의 사투를 보면 미지의 존재가 하염없이 나쁜 것이고, 하얗게 덮인 황망한 세상이 빨리 원래의 빛을 찾길 응원하게 되는데, 그러다가 스즈가미 세이치의 시선으로 세계를 보면 흔들리고야마는 모순적인 마음을 갖게 되는데, 이러한 책 속의 상황이 안타까우면서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스트레스 받고, 되는 것 하나 없는 차디찬 인생에 새로 생긴 분홍의 꽃길이 허상이라도 내가 현재 걷고 있고, 거기에 만족한다면 그것으로 족하지 않을까.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네가 걷는 그 꽃길을 부수겠다며 도끼를 휘두르면 나라도 눈에 쌍심지가 켜질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스트레스 받는 일이 많아져서인지 스즈가미 세이치에게 이입이 찐하게 되며, 이쪽에 편들었다. 저쪽에 편들었다하며 바쁘게 읽어갔다.
미지의 존재와 그로인해 파생된 신선한 직업들, 선거유세 하듯 마음을 울리는 인물들의 이야기에 홀딱 빠져 읽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스즈가미 세이치의 정원에서 마지막 결투가 펼쳐지고 있었다. 과연 세이치의 정원은 멸망을 맞이할 것인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