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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길었던 날
카테리나 사르디츠카 지음, 최지숙 옮김 / 그늘 / 2024년 6월
평점 :
여기 산속에 자리 잡은 한마을이 있다.
조상들은 태양의 신 다즈보그를 숭배하기 위해 동지 축제를 만들었다.
동짓날에 다즈보그가 저승에서 태어나, 봄에 성장하고, 하지에 전성기를 이루다 다시 동짓날이 되면 서서히 쇠약해지며 죽었다가 다시 부활한다고 믿었다.
다즈보그의 죽음과 탄생 사이, 이승의 영역이 보호 범주를 벗어나는 바로 그 마법 같은 밤에 이승과 저승 사이의 장벽이 사라져 위험한 존재들은 마음대로 죽음의 영역으로 건널 수 있었다.
그들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마을에서는 동짓날 해질 무렵부터 수호의 모닥불을 피웠고 이는 그들의 세계가 위험에 처하게 되는 12일 동안 밤낮으로 꺼트리지 말아야 했다.
그리고 다섯 살이 되면 마을의 모든 아이들은 문신을 새겼는데 그 문신이 모든 악으로부터 아이들을 지켜주고 보호해 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시대가 변하며 고대 신들에 대한 믿음이 시들해지고는 있었지만 여전히 마을 가정 대부분은 오래전부터 전해내려오는 전통과 관습을 유지해오고 있었다.
이 이야기는 그 마을에서 일어난, 열두 날 열두 밤에 대한 이야기다.
도라가 처음으로 입을 뗀다.
그녀의 부친은 숲을 지키는 일을 하기 때문에 도라의 집만 마음에서 떨어진, 숲 근처에 자리를 잡고 있다.
모친은 동생들을 낳다가 과다출혈로 돌아가셨고 어린 쌍둥이 동생들과 할아버지와 함께 다섯 식구가 산다.
도라에겐 큰 상처가 있다.
여섯 살 무렵, 유치원에서 낮잠 시간이 끝난 후 친구 넷을 잃었다.
그들은 아무런 흔적도 없이 증발하듯 모습을 감추었다.
아스트리드와 아스트리드의 동생 막스, 톰과 소냐.
그날 도라는 무언가를 보았다.
하지만 어른들은 어린 도라의 말을 믿지 않고 그녀를 미치광이 취급했다.
상상한 모습을 현실로 착각하는 거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는 하지 말라고.
도라는 점점 투명 인간처럼 변해갔고 어떻게든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조심히 행동했다.
아이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왜 나는 멀쩡히 남겨진 걸까?
여전히 아무도 답을 알 수 없는 의문만이 가슴속을 가득 채운 채 도라는 18살이 되어있다.
동지 축제를 시작한 그날, 한밤중에 누군가 집 문을 두드렸다.
두려움에 떨며 조심스레 문을 열자 눈앞에 벌거벗은 채 온통 진흙이 묻어 엉망인 사람 하나가 서 있다.
누구냐고 묻자 존재가 대답한다.
"도라, 나야... 아스트리드."
12년 전 실종되었던 친구가 눈앞에 서 있었다.
이후 톰과 소냐도 돌아왔지만 막스의 안부는 알 수가 없었다.
아스트리드와 톰은 기억 상실 상태였고, 소냐는 의식 불명 상태였으므로.
대체 아이들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책을 읽는 내내 살을 에는 매서운 바람이 느껴지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자려고 불을 끄고 누우면 어둠 속 어딘가에서 나를 지켜보는 눈들이 보이는 듯도 했다.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이 어려워 무서워하면서도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 열심히 페이지를 넘기게 되었다.
꽤 큰 사이즈에 약 440페이지에 육박하는 묵직한 책인 만큼 이야기는 다양한 요소들을 품고 있다.
폐쇄적인 마을, 예로부터 전해내려오는 전통, 판단이나 생각 없이 무지성으로 몰리고 흔들리는 사람들, 의심, 미움, 분노, 우정, 선과 악, 빛과 어둠.
이 작품 자체만으로도 흥미롭지만 책을 읽으며 떠오른 이미지들을 이어나가다 보니 잘 각색해서 영상물로 만나도 매력적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엔딩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겠다.
실제 이 책을 읽을 당신을 위해 선물로 남겨두기로.
모쪼록 아이들의 내일이 빛과 가까운 곳에 있기를 바랄 뿐이다.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점 하나는 10군데 정도 비문이 있었다.
열심히 집중해서 읽는데 말이 안 되는 문장이 튀어나오니 자꾸 집중이 깨져 아쉬웠다.
2쇄를 찍게 된다면 바로 잡히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