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될 이야기를 만나고 온 걸까?눈을 뜨고 꿈을 꾸는 기분.백일몽이다, 이 작품은.-아내와 떠난 해외여행에서 현지인들의 의식을 마주할 때까지도 나는 알지 못했다.우리를 위해, 우리의 죄를 대신에 눈앞에서 죽어가는 염소를 견뎌내기만 하면 될 줄 알았다.이후에 내 손으로 또 다른 염소를 죽여야 하는 순간이 오리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염소>3년 전 홀연히 사라졌던 백희가 갑자기 눈앞에 나타났다.중요한 이야기를 하기 전 예고처럼 '있잖아'라는 말로 포문을 여는 버릇은 그대로였다.그러고는 엉뚱한 말을 내뱉는다.자신이 될 여자를 만나고 왔다고.<백희>제인, 내게 너무도 소중한 제인에게.지금 내 곁에 없는 너에게 끝도 없는 편지를 써왔지만 이번이 마지막 편지다. <제인에게>대학 졸업을 앞두고 극단의 오퍼레이터 오퍼를 받고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그렇게 극단 사람들과 보낸 인생의 한 토막.<은행나무는 그 자리에>앞선 <은행나무는 그 자리에>에 나왔던 극단 배우 중 한 명이 화자인 이야기.<환한 조명 아래 우리는>항상 무언가를 바꾸려 노력하며 진정한 중고는 없다는, 통일이 되면 크게 한몫할 수 있고 아시아 하이웨이도 달릴 수 있다는 꿈을 꾸는 민수와 그런 그가 지긋지긋해진 주희의 이야기.<포터>자식들이 케어를 포기한 노인 인구를 모아둔 수용소에서 허 노인의 자살 사건이 발생했다.나는 그 사건에 대한 정황을 조사하고 보고서를 작성한다.<코트>엄마와의 마지막 인사.어릴 때 어두운 시골길을 걷다 반딧불을 처음 본 기억과 엄마의 노랫소리가 가득하다.<반딧불이 사라지면>안준원 작가의 첫 소설집 <<제인에게>>에는 8편의 단편이 담겨있다. 책을 다 읽고 표지를 들여다보니 이보다 더 이 소설집을 잘 담아낼 수 있는 디자인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역한 냄새가, 소음이 진동하는 현실의 장소에서 조금만 고개를 돌리니 꿈인지 현실인지 알 수 없는 어딘가에 가닿아있다.이야기 속 인물들은 내가 아는 사람이었다가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낯선 이가 되어있다.평소에도 문장을 읽는 순간 머릿속에서 시각화가 잘 이루어지는 편인데 이 소설은 특히나 더 그림이 잘 그려졌다.영상에 더불어 소리도, 냄새도 생생하게 내 안에서 살아났다.하지만 그 모든 감각은 나의 현실은 아니다.그래서 묘하게 불편하기도 거북하기도 했다.내 것이 아닌데 내 것인 것만 같은 감각이 정말 기이했다.진짜 죄는 무엇인지, 과거는 무엇이고 미래는 무엇인지, 꿈은 무엇이고 삶은 무엇인지.다양한 질문들이 돌덩이가 되어 꼬르륵 뱃속에 차곡차곡 쌓였다.나는 꿈을 꾸고 있나?손으로 팔을 만져본다.뜨겁다.체온이 느껴지지만 어쩐지 내 것이 아닌 느낌이다.내가 될 이야기를 만나고 온 걸까?눈을 뜨고 꿈을 꾸는 기분.백일몽이다, 이 작품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