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에게
안준원 지음 / 현대문학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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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될 이야기를 만나고 온 걸까?
눈을 뜨고 꿈을 꾸는 기분.
백일몽이다, 이 작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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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떠난 해외여행에서 현지인들의 의식을 마주할 때까지도 나는 알지 못했다.
우리를 위해, 우리의 죄를 대신에 눈앞에서 죽어가는 염소를 견뎌내기만 하면 될 줄 알았다.
이후에 내 손으로 또 다른 염소를 죽여야 하는 순간이 오리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염소>

3년 전 홀연히 사라졌던 백희가 갑자기 눈앞에 나타났다.
중요한 이야기를 하기 전 예고처럼 '있잖아'라는 말로 포문을 여는 버릇은 그대로였다.
그러고는 엉뚱한 말을 내뱉는다.
자신이 될 여자를 만나고 왔다고.
<백희>

제인, 내게 너무도 소중한 제인에게.
지금 내 곁에 없는 너에게 끝도 없는 편지를 써왔지만 이번이 마지막 편지다.
<제인에게>

대학 졸업을 앞두고 극단의 오퍼레이터 오퍼를 받고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렇게 극단 사람들과 보낸 인생의 한 토막.
<은행나무는 그 자리에>

앞선 <은행나무는 그 자리에>에 나왔던 극단 배우 중 한 명이 화자인 이야기.
<환한 조명 아래 우리는>

항상 무언가를 바꾸려 노력하며 진정한 중고는 없다는, 통일이 되면 크게 한몫할 수 있고 아시아 하이웨이도 달릴 수 있다는 꿈을 꾸는 민수와 그런 그가 지긋지긋해진 주희의 이야기.
<포터>

자식들이 케어를 포기한 노인 인구를 모아둔 수용소에서 허 노인의 자살 사건이 발생했다.
나는 그 사건에 대한 정황을 조사하고 보고서를 작성한다.
<코트>

엄마와의 마지막 인사.
어릴 때 어두운 시골길을 걷다 반딧불을 처음 본 기억과 엄마의 노랫소리가 가득하다.
<반딧불이 사라지면>

안준원 작가의 첫 소설집 <<제인에게>>에는 8편의 단편이 담겨있다.
책을 다 읽고 표지를 들여다보니 이보다 더 이 소설집을 잘 담아낼 수 있는 디자인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역한 냄새가, 소음이 진동하는 현실의 장소에서 조금만 고개를 돌리니 꿈인지 현실인지 알 수 없는 어딘가에 가닿아있다.
이야기 속 인물들은 내가 아는 사람이었다가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낯선 이가 되어있다.

평소에도 문장을 읽는 순간 머릿속에서 시각화가 잘 이루어지는 편인데 이 소설은 특히나 더 그림이 잘 그려졌다.
영상에 더불어 소리도, 냄새도 생생하게 내 안에서 살아났다.
하지만 그 모든 감각은 나의 현실은 아니다.
그래서 묘하게 불편하기도 거북하기도 했다.
내 것이 아닌데 내 것인 것만 같은 감각이 정말 기이했다.

진짜 죄는 무엇인지, 과거는 무엇이고 미래는 무엇인지, 꿈은 무엇이고 삶은 무엇인지.
다양한 질문들이 돌덩이가 되어 꼬르륵 뱃속에 차곡차곡 쌓였다.

나는 꿈을 꾸고 있나?
손으로 팔을 만져본다.
뜨겁다.
체온이 느껴지지만 어쩐지 내 것이 아닌 느낌이다.

내가 될 이야기를 만나고 온 걸까?
눈을 뜨고 꿈을 꾸는 기분.
백일몽이다, 이 작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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