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18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김병철 옮김 / 범우사 / 199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오늘날 우리가 문학작품을 접하게 되는 방식은 원본소설의 형태가 아닌, 영화화된 영상물인 경우가 매우 많다. 내게 있어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역시 마찬가지였다.

실제로 영화를 보지는 않았다. 내가 처음으로 헤밍웨이의 세계를 접하게 된 것은 티비의 한 영화프로그램에서였다. 몇 명의 영화평론가들이 나와서 헤밍웨이의 삶과 시대를 종합적으로 리뷰해주고 있었는데, 사실 그 내용은 우리가 인터넷에서 쉽게 찾아낼 수 있는 소재들와 별반 다를 바 없는 것들이었다.

매체를 보면 그의 작품세계는 로스트 제너레이션, 미국, 마초이즘, 운명.. 이 정도의 키워드로 압축설명된다. 앞서서 언급했던 영화평론가들 역시 마찬가지였고...
어쨌든 책을 읽은 후의 내 나름대로의 감상을 간단히 피력하자면,, 말머리에 달린 별 두개로 표현할 수 있겠다.


어떻게 보면 여지껏 읽어왔던 서양고전 중에서 가장 실망스러웠던 작품이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

세속적인 주제들이 주류를 점하는 영미소설 특유의 성향을 감안하더라도 본작에 대한 실망감은 결코 수그러들지 않는다.
왜 감동이 없는가? 더군다나 명색이 노벨상 수상작 아닌가(물론 노벨상의 공신력은 많이 떨어졌지만)?
의미심장하고 장엄한 느낌을 주는 제목특유의 어드밴티지에 힘입은 결과는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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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문학이 가져다주는 최소한의 감동- 이 작품에서는 '운명'이라는 주제인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주인공의 깊이있는 정신적 성찰을 통해 세련되게 나타난 것이 아니라, 매우 조잡하고 피상적인 방식으로 표현되었다.
시적이지 못하고 산문적이었다고 해야할까? 필요없는 문구들이 곳곳에 넘쳐났다. 600페이지에 육박하는 물량(?)덕택에 나는 열흘동안 작가의 고문에 시달려야 했다. 지루함이라는 고문...
2500페이지에 달하는 레미제라블도 별 따분함없이 쉽게쉽게 읽었는데..


소재만 놓고본다면 이 이상 더 좋을 수는 없다. 스페인 내란은 그 사건 자체만으로도 이미 세계사적인 이슈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이 담고 있는 스케일은 턱없이 협소하기만 했다. 물론 제한된 배경에서 전개되는 형식의 소설들은 무수히 많다. 문제는 그렇게 비추어 볼때 책의 분량이 지나치게 많다는 것이다.


간단히 에리히 레마르크의 [개선문]을 예로 들자면, 그 역시 전쟁의 상흔을 주제로 한 작품이나, 여러면에서 본작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비록 주인공은 두 명이지만, 레마르크는 주인공들 뿐만 아니라 다른 등장인물들에게도 분명한 개성을 부여함로써 당시 파리의 암울한 현실을 다채로운 모습으로 구체화해내었다. 뚜렷한 톤의 배경묘사 역시 소설에 완성도를 더했다.


그러나 헤밍웨이의 이 작품은...등장인물은 오히려 더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개성있는 내면을 표현해준 인물은 주인공인 로버트 조던뿐이다. 물론 필라르와 마리아의 과거회상 장면이 적지 않게 묘사되어있지만, 이상하게도 거기엔 독자를 몰입시키는 뭔가가 없는 것이다. 그들만의 내면 캐릭터가 분명하게 표현되지 않은 것이다.


덧붙여 말해서...마리아라는 인물설정 역시 몹시 짜증나는 대목이었다. 도대체 그런 무미건조한 색깔의 인물을 소설에 등장시킨 이유는 무엇인가? 비상식적일 정도로 수동적이기만 한 그런 캐릭터를 두고 과연 짜증안낼 독자가 몇이나 있을까? 남자인 내가봐도 이렇게 부정적인데, 하물며 페미니스트들은 오죽할까?
설마 이것이 평론가들이 그렇게 강조해대는 '마초이즘'의 예는 아니겠지.


마지막으로...헤밍웨이를 은유하는 말로써 불굴의 의지니 운명이니 하는 것들이 있다. 물론 맞다. 허나 내가보기엔 분명히 어딘가 모자라는, 불완전한 '운명'이다. 왜냐면 표현방식이 수박 겉핥기식이기 때문이다. '운명'만큼 엄숙하고 무거운 주제가 없는데,,,헤밍웨이의 '운명'을 보노라면 주인공의 깊은 내면세계가 드러나기는 커녕 필부들의 일상만이 두드러질 뿐이다.


헤밍웨이에 대한 찬양은..음악인으로 치면 거의 베토벤 수준이다. 그러나 베토벤의 음악과 정신세계를 존경하는 나로서는 정말이지 펄쩍 뛸일이다. 베토벤에 비하면 헤밍웨이는 이제 겨우 음대 4학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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