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02년 6월
평점 :
절판


지독한 냉소는 부작용을 낳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박노자의 글은 그런 위험으로부터 어느정도는 거리를 두고 있다. 말 자체는 신사적으로 하면서도 그의 글에는 독기가 가득 차 있고, 또 그러면서도 동시에 누구나가 다 납득할만한 설득력을 갖추고 있다. 이성적인 분석과 판단은 읽는이로 하여금 필자에 대한 신용을 갖게 만든다.

크게는 노르웨이와 한국사회를 두 축으로 하여 보다 이상적인 국가와 사회체제를 모색하고 있다. 그 와중에서도 필자 특유의 해박한 지식이 엄청난 영역에서 빛을 발한다. 중심부와 주변부, 그리고 준주변부, 이른바 '종속이론'에 의거하여 국제사회의 헤게모니를 묘사하는 모습이 많이 보인다. 그리고 그 중 '준주변부'에 속하는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감춤없이 까발려 지식인 사회의 각성을 촉구하기도 한다.

비록 박노자가 대한민국 국적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방인이라 할 수 있는 사람에게서 한국사람보다 더 날카로운 분석을 배웠다는 점을 우리는 부끄럽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 물론 이방인의 눈이 오히려 객관적이고 종합하기 쉬운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기에는..박노자의 매스질이 턱없을 정도로 섬뜩하다.

마지막으로 박노자는 자신이 양심적 병역거부의 기수임을 노골적으로 만천하에 드러낸다. 아무리 그의 지식과 사고가 해박하다 하더라도 여기에 대해서는 비판의 소지가 많을 것 같다. 물론 이처럼 미묘한 문제에 대해서 용기있게,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자세자체는 훌륭하다. 그가 말하던 '인텔리겐차'의 면모를 잘 보여줬으니 말이다.(Rage Against The Machine에 대해 자세히 아는 사람은 잘 알겠지만 '인텔리겐차'는 몸을 굴리며 배운바를 직접 행하는 적극적인 자세의 지식인이고, 말 그대로 지식만 가진자를 우리는 다른말, Intellectual 이라고 한다.)

대한민국의 모든 예비역들, 솔직히 그들은 그동안 나라를 지켰던 시간보다 별달고 있는 몇몇 장성들의 들러리 역할을 해준 시간이 더 많았다. 우리 어머니 아버지의 피땀흘린 세금은 율곡사업등의 거대 '세탁사업자금'으로 사용되었고, 우리의 서울대 친구들은 그들 자식들의 과외선생으로 2년 2개월 군생활을 '성실히' 마감했으며, 겨울철 배고픈 그들을 위해 지급되었던 부식과 여러 보급품은 각종 단계를 거치며 관계자들의 수중으로 빨려들어갔다.

이것이 그간 우리들이 해 왔던 군생활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군대를 폭력의 화신으로만 모는데는 분명히 문제가 있다. 군대는 필요악이다. 반드시 필요하다. 유시민의 말대로 민족을 무시한 이른바 '보편적 역사해석'은 현재로선 배부른 짓이다. 아직도 많고많은 대한민국 국군들이 굶주리고 추위에 떨며 나라를 지키고 있다. 비폭력이라는 전 인류적인 사명감을 실행해야한다고? 그건 일단 우리 민족이 다 잘살게 되고 난 다음에 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국가라는 집단에 의해 구속되는 2년간의 기간. 이것이 개인의 인권유린이라면 뜬금없이 나라를 뜨면 된다. 허락 안해준다고? 그러면 불명예 제대라는 방법이 있다. 그렇게 양심을 외치는 병역거부자들. 그렇다면 양심을 불명예 제대라는 것과 바꿀 수 있을 정도의 용기는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박노자의 글. 문제점을 파헤치기만 하는데 너무 열을 올린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진정한 인텔리겐차라면 마무리의 견본만이라도 제시해주는, 마지막까지 책임감 있는 자세를 보여주는 것이 보기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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