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 클래식 보물창고 41
허버트 조지 웰즈 지음, 황윤영 옮김 / 보물창고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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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한 번쯤은 과거로 돌아가 세상을 바꾸고 싶은 마음이 든다. 때로는 가보지 못한 미래의 판타지 세계를 동경하기도 한다. 인간의 이런 욕망을 채워주는 것이 시간여행이고, 타임슬립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영화나 만화나 드라마에서 이 시간여행이라는 소재를 끊임 없이 소비해 왔다. 그토록 많이 써먹었기 때문에 이제는 진부하게 느낄 만하지만, 이 시간여행 이야기는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인기 있다. 설령 이야기의 결말이 뻔하더라도 말이다. 

1895년, 허버트 조지 웰스가 20대 말에 쓴 소설 <타임머신>은 바로 이 시간여행의 원조 격인 소설이다. 훗날 저자 말대로 소설의 구조는 엉성할지 모르지만 도입부에서 시간여행자가 설명하는 4차원 시공간 이야기는 놀랍기만 하다. 1895년이면 아인슈타인의 기적의 해(Annus Mirabilis)인 1905년보다 정확하게 10년 전이다. <타임머신>에서 시간여행자가 이런 말을 한다.
“공간의 세 가지 차원 가운데 어느 한 차원과 시간 사이에는 차이점이 없어요.” 충격적인 말이다. 웰스가 1866년생이니까 그가 <타임머신>을 출판했을 때 나이가 스물아홉 살이다. 스물아홉 먹은 청년이 쓴 책에서, 그것도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이 나오기 십 년 전에 쓴 소설에서 이런 문장을 보다니 소름이 돋는다. 
하지만 정작 시간여행자가 시간여행에서 돌아와 모인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미래의 모습은 지나치게 작위적이다. 그가 간 미래는 802,701년이다. 그러니까 멀어도 아주 먼 미래를 간 것이다. 물론 이 정도로 멀리 가야지 좀 편하게 이야기를 꾸며낼 수 있었겠지만, 가도 좀 너무 멀리 갔다. 그러나 저자가 이 시간여행자를 이렇게 먼 미래로 보내야만 한 이유가 있다. 
산업혁명 후, 19세기말 영국이 겪고 있던 문제가 802,701년의 미래와 맞닿아 있다. 엘로이와 몰록. 시간여행자가 802,701년에 만나게 되는 지구에 남은 두 종족. 이름에서 풍기는 느낌은 스타크래프트의 프로토스와 저그이지만, 소설에서 엘로이 족은 몰록 족의 먹이감이나 다름 없다. 이 두 종족의 이름과 현실은 모순 그 자체다. 엘로이라는 말은 신을 가리키는 히브리어의 엘로힘을 떠올린다. 십자가에 못박힌 채 예수가 마지막으로 부르짖던 말, “하나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에 앞 두 단어가 바로 이 엘로힘이다. 반면에 몰록이라는 이름은 또 어떠한가? 구약성경 레위기에 나오는, 소의 형상을 한 이방인들의 신이다. 이방인들은 이 신에게 아이를 제물로 바쳤다. 알고 보면 지상에서 살고 있는 엘로이는 지하에 있는 몰록에게 잡아 먹힐 소나 같은 운명이었다. 
시간여행자는 이 두 종족의 뿌리를 19세기말 귀족과 노동자에 두고 있다. 그 당시 시대상을 아주 먼 미래에 빗대 비판하려는 저자의 시도가 별로 와 닿지 않은 이유는 시간여행자가 간 미래가 너무 멀었기 때문이다. 거기서 드러나는 건 19세기말과 20세기 초를 살았던 웰스의 비관주의다. 산업혁명의 결과는 인류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기 보다는 궁극적으로 멸망으로 가게 할 것이라는 지독한 염세주의 같은 것. 
몰록들이 가져간 타임머신을 가까스로 되찾아 시간여행자는 802,701년보다 훨씬 더 미래로 갔다. 거기서 그가 만난 건 지구의 종말이었다. 그리고 그는 원래 집으로 되돌아 온다. 
책 두께가 얇은 만큼 이야기도 단순하다. 하지만 이 책의 도입부는 다시 생각해도 충격적이다. 어떻게 웰스는 그런 말을 할 수 있었을까?


별 네 개를 준 이유는 번역이다. 조금은 더 매끄러웠다면 좋았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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