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사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오래 전에 사뒀다가 잠을 청하기 위해 잡았다가 그만 아침 일곱시까지 읽고 말았다.  <상실의 시대> 이후 두 번째 읽은 무라카미 하루키 책이다. 잠자리에서 가볍게 읽으려고 했는데, 이 책 내용이 그리 가볍지가 않다. 번역본 기준으로 334페이지, 그리고 제법 큰 폰트, 쉽게 쓴 번역, 거기에 더해 프로이트 심리학에 기댄 문학 평론, 시간만 있다면 앉은 자리에서 끝까지 읽을 수 있는 재미 있는 소설책이다. 더구나 <상실의 시대>에서처럼 중간중간 나오는 자극적인 성애 장면은 한번씩 침을 꼴깍 넘기며 읽게 하는 마력이 있는 책이 바로 이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이라는 책이다. 하지만, 이 책 내용을 단순히 한 남자의 성장기 때 겪었던 이야기나, 그 과거의 경험이 지금 현재의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인과론적인 소설이라고 부르기에는 이 책은 작가의 여러 생각을 겹겹이 담아놓았다. 마치, 패스트리 빵처럼 말이다. 주인공 '나'(하지메)의 삼십대 이야기가 주축을 이루는 이 책의 배경은 일본이 고도성장을 해가던 70년대, 80년대다. 그러니까 작가가 겪은 시대 배경과 일치한다고 할 수 있겠다. 장인의 도움으로 재즈바로 사업에 성공하고 4LDK를 가지고 있는, 중산층에서는 최상위의 삶을 누리고 있지만, 60년대말, 70년대초의 일본 운동권의 영향, 그 때문에 지금의 삶을 이룬 데 대해 약간의 자의식이 있긴 하지만 그리 심각한 수준은 아니다. 우리시대의 사십대말, 오심대초에 있는 사람들도 주인공 같은 자의식을 한조각 정도는 지니고 살 테니까, 이 자의식도 평균 수준을 넘어서는 그런 것은 아니다. 작가도 주인공이 자본주의를 대하는 팽팽한 긴장 따위를 소설에 다루려고 하진 않았던 것 같다.


이 책의 기본 층위는 시마모토, 이즈미, 유키고로 이어지는 세 여자와 주인공 사이의 사랑 이야기가 되겠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열두살 때 첫사랑, 아니 첫사랑이라고 부르기에도 뭐하지만 삼십대 중반이 되도록 한번도 '나'의 머릿속을 떠난 적이 없는 시마모토가 이야기 중심에 있다. 이 소설이 일종의 환상소설이 되는 이유도 바로 이 시마모토라는 존재 때문이고 이 책이 아주 '쿨'한 로맨스 소설이나 한 남자의 성장통을 다룬 소설이라고 분류할 수 있는 것도 이 시마모토라는 여자 때문이고, 이 책이 평론가 권택형 교수의 평론처럼 프로이트의 이론으로 분설할만큼 심리적인 소설일 수 있는 이유도 이 시마모토라는 존재다. 한발 더 나아가 이 소설이 삶과 죽음의 문제를 세 여자와의 사랑을 통해 보여 준다고도 볼 수 있는 것도 바로  이 시마모토다. 무라마키 하루키가 창조한 이 시마모토라는 여자가 대단한 이유다. 늘 미소 짓지만, 그 속을 알 수 없는 여인. 그 속을 알기 위해서는, 그 여자를 얻기 위해서는 그 여자의 전부이거나 또는 그 전부를 포기해야만 한다. 죽음이냐, 삶이냐, 선택하여야만 한다. 이토록 강렬한 여주인공을 쉽게 찾을 수 있을까. 언뜻 가벼워 보이는 이야기지만 그 뒤에 숨겨진 의미는   헤세의 <데미안>에 비추어도 그 무게가 가볍지 않다. 


이 책 제목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은 이 책의 모티브다. 이 책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14장에서 주인공 '나'는 아주 오랜만에 로빈네스트를 들른 시마모토와 자신의 별장에 가서 하룻밤을 보낸다. 이 때 나오는 이야기, 국경의 남쪽과 태양의 서쪽. 국경의 남쪽은 냇킹 콜이 부르는 노래,  시마모토 말마따나 뭔가 아주 아름답고 크고 부드러운 것, 하지메가 서른이 넘도록 찾아헤맨 마음 속의 빈 한조각, 시마모토만이 채워줄 수 있는 그 조각. 태양의 서쪽은 히스테리아 시베리아나로 정리할 수 있는 서쪽으로 끝없이 걸은 후, 탈신해서 죽는 것. 그리고 그 중간은 없다, 국경의 남쪽과 태양의 서쪽 사이 말이다. 그리고 결국 해답은 환상이 아니라 아마도 일상에 있을 것이라는 것. 이책의 결론이다. 해답은 아마도 유키코였나보다, 그게 자본주의와 뒤섞여 있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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