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바 시편찬송 - Book of Praise in Korean
자유개혁교회 시편찬송 출간위원회 엮음 / 레포르만다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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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개혁교회의 찬송가가 100편 남짓 포함되어 있습니다. 목차를 잘 확인을 못하긴 했는데 제목만으로는 제네바시편가만 들어있을 것으로 오해할 수 있습니다. 제네바시편가는 가사 즉 곡조에 맞춰 시편 본문을 어떻게 번안하느냐가 관건인데 그렇게 발전되지는 않아서 참고용으로만 소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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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의 죽음- 스페인 최고의 소설가와 고생물학자의 죽음 탐구 여행
후안 호세 미야스.후안 루이스 아르수아가 지음, 남진희 옮김, 김준홍 감수 / 틈새책방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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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교회에서 사역하는 신학생들은 자신들의 경험과 통찰을 나누어 주었다. -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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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하며 기다리는 하나님나라
크리스토프 블룸하르트 지음, 전나무 옮김 / 대장간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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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하며 기다리는 하나님나라, 크리스토프 프리드리히 블룸하르트, 전나무 역, 대장간, 2018.

 

"그는 신학자는 아니다. 근대적인 의미의 설교자도 아니며 오히려 그보다 더 성경적인 예언자다."

"현재 알려진 설교자 가운데 가장 근접한 인물은 아마도 폴 워셔일 것이다. 그러나 블룸하르트는 그보다 백배는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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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구원보다 또는 들어가는 천국보다 하나님나라는 더 크다. 그것은 이미 존재하며, 그것은 이미 장악했기 때문이다. 이는 결코 완전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한 실존을 말한다. 하나님나라는 이미 들어와 있기 때문에 그것을 발견하는 순간 우리는 우리가 발을 딛고 있다고 여겼던 세상과 순식간에 충돌하기 시작한다. 그것은 미래에 들어갈 곳이기에 지체되어도 괜찮을, 당장 흰 옷을 빨고 기름을 준비하지 않아도 되는 곳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충돌에 반응하여 행동하지 않는다면 그는 본래 무관했던 존재다. 이 얼마나 떨리고 긴장되는 하나님나라인가!

 

일요일 마다 늘 그 자리에 서 있는 종교로서 기독교는, 조건이 갖추어지면, 즉 충분한 인력과 물자와 적절한 감동이 제공되면, 신자가 이 세상에 만족하며 아무런 거부감 없이 살게 해 준다. 솔직하게 말하자. 그것은 감각을 둔화시키는 일종의 마약과 같다. 블룸하르트가 경고한 '일요일 기독교'의 치명적인 면이 여기서 폭로된다. 그것은 행동하지도 기다리지도 않는 삶을 양산한다. 바라지도 인내하지도 않으며, 추구도 분투도 없다. 그러므로 종교는 죽은 것이라는 그의 고발은 백번 옳다. 오늘날 기독교는 사실이지 죽은 종교가 아닌가!

 

그렇다면, 생명은 어디에 있는가? 식어가는 심장, 늘어진 팔, 흐릿해진 눈동자 그리고 완전히 메말라버린 골짜기의 뼈들, 에스겔의 환상의 골짜기에서 그들을 과연 어떻게 살려낼 수 있다는 말인가? 예수 그리스도. 살아계신 하나님. 부활하신 왕. 이 생명을 부여받은 자의 인생에만 하나님은 살아계신다. 이것은 한편으론 저주다. 죽은 자에게는 세계도 하나님도 없다. 애초에 우리는 마른 뼈들이었을 뿐이다. 죽은 자들의 몽상 속에서 산다는 것은 그것 자체가 지옥이다. 그러나 하나님나라가 온다. 그것을 지금 가져오시는 하나님 그분이 성취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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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두에 소개했듯이 블룸하르트는 엄밀하게 신학자는 아닙니다. 그러나 그는 선지자의 반열에 서 있습니다. 아마 당신이 기독교인이라면 첫 세 설교만 읽어도 인정하실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그래도 블룸하르트의 신학적 입장을 좀더 확인하고 싶으신 분은 3장과 4장을 읽으시면 됩니다. 그 두 장에서 신론-종말론-구원론-기독론을 종합적으로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울러 제 개인적인 견해로 3장의 설교가 제목 "행동하며 기다리는 하나님나라"의 핵심을 잘 전달하고 있다고 여깁니다.

 

블룸하르트는 이기적이거나 아니면 피안적인 또는 심하게 표현하자면 심지어 이신론적인 종말론을 고발합니다. 그에게 종말의 완성은 현재진행형이기에, 종종 죽음이라는 끝없이 깊은 골짜기를 건너야만 맞닥뜨리는, 멀리 떨어진 하나님나라란 개념이 전혀 없습니다. 현재의 시간에 이어서 바로 다음 순간에, 그리고 지금 여기에 이어진 바로 저기 건너편에 이루어질 그런 하나님나라이기에, 끊임없이 하나님나라를 추구하고 기여하는 현실로 우리를 도전합니다.

 

블룸하르트의 설교는, 주해 즉 석의나 해석이 드러나 있지 않습니다. 어느 정도 본문에 대한 통찰을 발견할 수는 있습니다만 블룸하르트 자신이 그것을 의도하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그 자신이 실제로 확보한 진리를 전하는 데만 관심이 있습니다. 정말이지 4장 끝에서 그가 '마라나타'를 외치는 장면을 보자면, 그는 실제로 구름 가운데서 희미한 환영으로 예수님을 목격한 것 마냥 참으로 실제적이며 실천적인 믿음을 가진 설교자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저는 여기서 그것이 나에게 없음이 얼마나 근본적인 믿음의 차이인가 깨달으며 회개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소개는 이쯤해도 될 것 같습니다. 블룸하르트는 이 책에서 그가 속한 현실 세계와 그리고 종교 특히 교회의 실태를 진단합니다. 꽤나 부정적입니다. 그러나 그와 전혀 이질적이며 차원이 다른 하나님나라를 충분히 꿈꾸게 해 줍니다. 하나님나라의 소망을 궁극적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조명하면서 급진적이셨던 그분 예수님을 따를 제자도로 우리를 부릅니다. 블룸하르트와 함께 꽤나 급진적이며 전복적일 수 있는 그러나 정말이지 현실적인 하나님나라를 함께 살아봅시다.

이어서 서두에 일부러 언급한 '폴 워셔'와 비교하시도록 몇 군데 인용하며 마칩니다.

 * 나는 자칭 기독교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이나 또는 참된 그리스도인들조차도 자신이 잘되기를 바라는 것처럼 모든 사람들이 잘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슬퍼질 때가 자주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물인 용서의 마음으로 가득 찬 사람이 이토록 없단 말입니까? 오히려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을 남보다 높은 데 올려놓고 구분 짓고 갈라놓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구원자를 기다린다고 하는 것은 우리의 죄뿐만이 아니라 온 세상의 죄가 용서되길 기다리는 것입니다. 요한일서2:2 
만약 용서하고자 하는 마음과 모든 사람을 위해 구원자가 오시기를 기다리는 마음이 우리 마음에서 솟구치지 않는다면 우리는 참다운 종이 아닙니다. 비록 사랑과 자비와 용서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 뜻을 행하는 데는 실패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삶을 온전히 지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것 때문에 우리는 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만약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로 충만하지 않다면, 세상을 애정 어린 선한 눈으로 바라보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들을 사랑으로 붙들어주지 않는다면, 하나님 또한 우리를 돌보아 주지 않으실 것이며 교회를 다니는 것과 상관없이 우리를 불신자로 여기실 것입니다. 마태복음6:14-15
하나님은 말이 아니라 실제 삶에 관심을 가지십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삶의 참 모습은 용서이며, 아무리 절망적으로 보일지라도 세상을 포기하지 않고 잘되길 바라는 것입니다. 참혹한 전쟁과 끔찍한 일이 벌어지더라도 하나님은 그것들보다 강하고 위대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뜻을 이루실 것입니다. 마침내 죄는 없어질 것이며, 정의와 진리와 하나님의 사랑이 세상에 가득할 것입니다.

(62-63)

*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는 그 때나 지금이나 하나님나라의 역사입니다. (39)

 

* 거룩한 것이 찾아올 때 주의하십시오. 그때 우리는 심판의 불을 통과하게 될 것입니다. (51)

 

*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죽는 순간에도 우리는 구원자의 오심을 보았습니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구원자가 오고 계시기에 많은 이들의 눈이 밝게 빛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65)

 

* 그리스도의 미래는 지금이어야 합니다. (67)

 

* 그러므로 당신의 삶뿐만이 아니라 죽음까지도 예수 그리스도의 미래의 한 부분이 되어야 합니다. (71)

 

*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오직 싸움만이 유일한 선택이며, 하나님께 무릎 꿇지 않는 모든 것에 대항해서 담대하게 하나님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 외에는 딴 길이 없습니다. 고후10:1-6 (79)

 

* 하나님나라에서 우리는 구걸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며 하나님에게서 무언가를 받기까지 그 문 앞을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80)

 

* 참된 지혜를 궁궐이나 강의실이 아니라 길거리에서 찾을 수 있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고전 1:18-25 (89)

 

* 주님이 오실 날을 진심으로 준비하는 유일한 길은 우리 삶에서 주님 편에 서서 주님을 위해 싸우는 것입니다. (95)

 

* 예수님이 말씀하실 때 관심은 늘 사회문제, 인류를 위한 문제였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일은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실현하는 것이었습니다. (100)

 

* 이처럼 나와 다른 사람을 분리시키는 종교는 가짜입니다. ... 예수님은 결코 자신을 우리 인간과 구별하지 않으셨습니다. (101)

 

* 여러분이 주님에게 순종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고 있다 하더라도 예수님은 정복자처럼 오셔서 당신을 가차 없이 심판하실 것입니다. 계3:1-3 (104)

 

(절반 7장까지 읽고 쓰는 리뷰입니다. 6장에서 본격적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한 나라를 계속해서 발견해 나가는 감격으로 읽어가는 중입니다. 이상입니다.)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seonmin.jeon.7/posts/10223731734113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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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선민 2022-01-11 0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8장이 개인적으로 인상적이라는 평이 있습니다. 참고하세요.
 
주님은 베다니를 사랑했지
프랭크 바이올라 지음, 이남하 옮김 / 대장간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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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예수님은 육신을 입고 우리 가운데 선생으로 계시지 않는다. 그렇기에 수많은 제자도의 시행착오가 넘쳐나고 있다. 과연 어느 길이 참 예수 제자의 길인가?! 예수님께서 가장 깊은 애정을 갖는 동시에 언제나 환대를 기대하며 방문할 때마다 미소지으신 작은 동네. 베다니를 드나드는 바로 그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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