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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주의의 뿌리 - 서구 세계를 바꾼 사상 혁명
이사야 벌린 지음, 나현영 외 옮김 / 이제이북스 / 2005년 6월
평점 :
절판
이사야 벌린이 쓴 책 중에서 <고슴도치와 여우>는 읽어 보았고 <자유론>는 읽으려고 사 놓았고 <낭만주의의 뿌리>는 지금 읽고 있다. 서구 사상이든, 동양 사상이든, 큰 줄기는 늘 두 갈래로 나뉘는 것 같다. 어쩌면 인간들의 사상 체계라는 것이 원초적으로 변증법적이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르겠다. 늘 두 가지 상이한 사상은 평행선을 긋는 듯 하기도 하고 어떤 점에서는 서로 보합 관계인 듯 하기도 하고 또 한 면은 경쟁적으로 서로를 발전시키는 듯 하다.
낭만주의의 탄생은 계몽주의, 인간의 이성에 대한 끝없는 신뢰와 확신에 대한 반발과 도전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18세기, 19세기, 계몽주의가 유럽 대륙을 관류할 때 당시 유럽의 변방이던 독일에서 이성으로는 모든 것에 답할 수 없다는 반발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19세기 너머 20세기의 저 실존주의와 20세기말 포스트모더니즘까지 그 영향력을 면면히 이어오고 있다.
어쩌면 그리스 시대부터 현대 사조에 이르기까지 시대를 뚫고 살아남은 사조사상들은 계몽주의와 낭만주의라는 문법으로, 비록 지나치게 단순화된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해독 가능할 것 같기도 하다. 사고의 엄밀성과 기민함, 그 세밀도는 시대가 감에 따라 점점 더 발전해 가지만 그 안에 담고 있는 기본적인 사고틀은 이 둘의 경쟁과 협력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두 가지 사고는, 면밀하게 살펴 보면, 자연과학 내에도 내재되어 있다. 환원주의로 대표되는 전통적 물리학과 환원주의 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는 생물학적 관점 내지는 복잡계의 관점. 거기서 더 나아가 학문 간의 통섭을 주장하는 사상들. 그 둘 사이를 관통하는 것은 다름 아닌 오래된 계몽주의와 낭만주의 사이의 긴장감이다.
하지만 무엇이든 과하면 득이 되지 않는 법. 20세기를 피로 물들였던 파시즘 또한 이 낭만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 그렇다면 그 반대편에 서 있는 저 역사주의적, 사회공학적인 막시즘은 이성에 더 가까울까. 아니면 오히려 선지자적인 또는 메시아적 낭만주의에 더 가까울까. 사회를 보는 시선을 날카롭게 키우는 방법은 이들 사상의 흐름을 깊이 살펴 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