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을 생각한다
김용철 지음 / 사회평론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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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업이 물리라 책읽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3월 한달 틈틈이 읽은 책이 몇 권 있다. <책읽기>라는 것, 책 읽는 사람 입장에서는 저자들이 첫장부터 끝장까지 다 읽어 주길 바란다 해도 굳이 모든 장을 꼼꼼이 읽을 필요는 없지만 몇몇 책들은 독자의 성실한 책읽기를 요구한다. 3월에 읽은 책 중, 한숨이 푹푹 나오게 했던 책은 김용철 변호사가 쓴 <삼성을 생각한다>라는 책이다. 이 책은 신문사나 방송에서 책선전 한번 하지 않은, 아니, 책 선전하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했던 책임에도 판매부수가 10만권이 훌쩍 넘은 책이다.  

이 책의 내용은 말 그대로 삼성의 '주인'인 이건희 회장과 그 일가, 그리고 가신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대개 이런 류의 책은 호기심 때문에라도 많이 팔리는 책이다. 하지만 이 책은 책 제목처럼 삼성에 대해 많은 걸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예전에 얼마 전에 읽었던, 프랑스 사회학과 교수이자 유엔 산하에서 연구원으로 읽했던 저자(이름이 생각 나지 않는다)가 국제적인 제약회사들의 만행을 통렬하게 비판했던 책을 떠올리게 했다. 그러니까 이 극도로 부자인 자들의 만행은 한국이나 외국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것. 그 뿌리를 따라 올라가자면 세상이 민주화되었다고 해도 여전히 그 뿌리는 수백년 전 봉건사회와 맞닿아 있다는 것. 그렇다. 봉건제도는 20세기에 끝난 게 아니었다. 서양의 악덕기업이나 이땅의 악덕기업의 행태는 거의 완벽한 교집합이라는 걸 감안하더라도 이 이건희와 그 가신들의 이야기는 여러 점에서 고민하게 만든다. 적어도 외국 악덕 제약회사들은 게임의 룰을 어느 정도는 지키려고 들지만, 삼성의 '주인'이라고(이 말도 실은 많이 우습지만) 일컫는 이건희와 그 가신들은 그 기본적인 게임의 룰에서 한참 벗어났다는 점에서 많은 걸 생각하게 한다.
 
김용철 변호사가 쓴 <삼성을 생각한다>라는 책은 의외로 삼성의 행태를 담담하게 써내려간다(하지만 중간중간 느껴지는 저자의 감정의 편린은 어쩔 수 없이 드러나는데, 그 부분은 접어두고 읽어야 될 듯 싶다.). 이 책을 읽으면서 떠올리게 되는 또 하나의 데자뷰, 이탈리아 마피아다. 언젠가 옥터퍼스라는 시리즈 물로 텔레비전에 소개되었던 이야기 말이다. 마피아와 정치계, 법조계의 그 뒤엉켜 있는 이야기들. 그런 종류의 이야기를 이 <삼성을 생각한다>에서 볼 수 있었다. 소위 삼성 장학생이라고 부르는 자들 말이다. 수많은 검사들, 수많은 판사들, 수많은 국회위원들과 정치가들(이건 이명박 정권은 말할 것도 없고 노무현 정권이라고 해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 연줄 연줄은 감자줄기 같고 문어다리 같다. 

더 답답한 건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거대한 뿌리'의 실체를 알고나면 한 개인의 투쟁이 그 뿌리를 잘라낼 수 있을까, 회의가 들뿐이니까 말이다. 그래도 그 사실 앞에 무기력하게 서 있는다는 건 더 비참한 생각이 들게 한다. 그저 서 있다가는 냉소주의에 젖어 살게 될 뿐이니까 말이다. 해답은 없지만, 소극적 저항일지라도 뭔가를 해야 하는 것이다.  

저자에 대해 한 마디. 내 경우, 저자 김용철은 책으로만 만나는 편이 더 나을 듯 싶다. 언젠가 인터넷에서 잠시 그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는데, 강연에서 정제되지 않은 감정을 쏟아내는 그의 모습이 조금은 역겨웠다. 삼성을 욕하면서 삼성을 닮아가기 때문일까...... 김용철변호사의 강연보다는 그의 책이 훨씬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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