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읽은 김훈의 소설은 <칼의 노래>와 <내 젊은 날의 숲>, 이 두 책이다. 김훈의 문체는 독특하다. 까끔한 문장, 미니멀리즘을 떠올리게 하는 듯한 담백한 문장. 하지만 이런 김훈 작가의 문체는 한번씩 가는 뼈가 가득한 생선살을 조심스럽게 떠먹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 생선의 담백한 맛은 좋지만 뼈가 목에 걸릴까 전전긍긍해야 한다는 것, 그게 그리 유쾌한 경험은 아니다. 하지만 작가라면 누구든 자기만의 문체를 갖고 싶어한다는 점에서 이 점은 오히려 김훈 작가의 장점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김훈의 작품은 언제나 그의 체취가 물씬 묻어나온다. <내 젊은 날의 숲>이라는 작품은 잔잔한 이야기이다. 감정에 들떠 있거나 정제되지 않은 생소리는 그의 글에서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어쩌면 좀 메마르다고 할 정도로. 감정이라면 주인공의 어머니가 거는 새벽 전화에서만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아버지가 감옥에 갔다가 다른 감옥으로 이감되는 데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지만 이야기는 과거의 일과 현재 계속되는 이야기들을 조용히 설명해간다. 주인공과 김민수 중위 사이에 싹트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에서조차 <사랑>이라는 단어는 단 한 마디도 나오지 않는다. 저자는 이야기 전체에서 둘 사이에 사랑이 싹트기 시작하는구나, 라는 걸 느끼게 할 뿐. 정작 이 작품의 뼈를 이루고 있는 것은 수목원에 있는 뭇 꽃들과 나무들이다. 작가는 그저 지나치기 쉬운 꽃들과 나무들의 이름을 하나씩 부른다. 그러니까, 이 책은 소설의 형태를 띠지만 잊혀진 꽃들과 나무들의 이름을 다시 부르는 책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주인공 주변에 일어나는 일상의 사건들과 주인공이 맡고 있는 세밀화 작업, 그 작업에 필요한 숲의 묘사가 얼기설기 얽혀 있지만 이 소설의 초점은 수목원을 이루고 있는 나무와 꽃이다. 그래서 저자는 가수 하덕규가 불렀던 <숲>이라는 곡의 가사 마지막 부분에서 발췌해서 <내 젊은 날의 숲>이라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난 이 사실 때문에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소설 <노르웨이의 숲>이 떠올랐다. Norwegian woods는 원래 비틀즈가 부른 곡명이니까 노래에서 제목을 차용했다는 점에서는 두 소설이 닮은 데가 있다. 그 외 두 소설이 서로 닮은 점은 없지만 말이다). 이 책을 좀 더 잘 읽으려면 꽃말이나 나무의 이름을 잘 살펴보는 게 좋을 것이다. 전방 민통선에 있는 수목원의 사계절에 대한 묘사, 그리고 60년전 치열했던 고지전에서 죽어간 이름 모를 병사들의 유해 발굴. 나무의 죽음과 병사들의 죽음. 상치쌈이 먹고 싶다던 한 평범한 젊은 상등병의 죽음. 그리고 아버지의 죽음. 인간의 죽음과 나무의 죽음이 겹쳐지는 그 곳. 다시 한번 찬찬히 읽어볼만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