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훼의 밤 제1부 - 갈대바다 저편 (하)
조성기 지음 / 홍성사 / 2002년 1월
평점 :
합본절판


야훼의 밤은 소설가이자 목사인 조성기씨가 쓴 4부작 소설이다. 1권은 <갈대바다 저편>이라는 부제로 되어 있다. 70년대를 살면서 고뇌와 번민에 찬 삶을 보냈던 한 젊은이의 이야기. 내 생각에는 조성기씨 자신의 이야기다. 자서전적 소설. 한 대학교 선교회(정확히는 UBF다)의 분열 과정을 지켜보며 방황하고 시대적 모순에 힘들어 하던 한 젊은이의 삶을 통해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은 "정의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불의"이다. 80년대를 보낸 386들이 신물 나게 들었던 단어, 정의 사회 구현. 이 땅에서 정의의 이름으로 자행된 수많은 불의들. 2권에서는 세상을 바꾸는 건 공동체가 아니라 "의식있는 개인들의 투쟁"이라는 말이 아마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인 듯 하다. 이 두 가지 메시지를 엮어보면 이 땅에 존재해 왔던 문제가 무엇이며 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무엇인지 작가 나름대로 결론을 내린다.
이 소설에서의 주인공은 유난히 눈물이 많다. 그만큼 감수성이 예민했던 한 젊은이가 넘기엔 70년대라는 고개가 그만큼 가파르기만 했던 것이다. 20대에 순수한 사랑을 하고 그 사랑이 깨어지고 순수한 기독교의 모습에 반하고 또한 그 모순된 모습에 좌절하고....... 그걸 반복하지만 결국 주인공은 신학교까지 가게 된다.
야훼의 밤 1권의 부제인 <갈대바다 저편>이라는 단어가 의미하는 바 또한 의미심장하다. 모세가 유대 민족을 이끌고 건넜다는 그 홍해의 원 의미가 갈대바다였다고 한다. 물론 홍해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여러 의미에 대한 신학적 설명 중 한 갈래일 것이다. 결국 해석의 문제일지 모르지만 그 단어가 지니고 있는 신학적 논의는 논외로 하는 게 이 책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홍해가 갈대바다였다고 해도 유대인에게 내려진 야훼 하나님의 은혜가 감소하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저자는 소설을 통해 그 신학적 논쟁을 하고 싶어하는 게 아니다. 부산에서 명문 중학교를 나오고 다시 경기고등학교에 입학한 후 서울대 법대를 나왔다는 사실은 이 땅에서 최고의 엘리트 코스를 밟아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랬던 저자가 왜 종교적인 고민에 휘말려 부모의 뜻에 철저히 반하는 삶을 살았을까. 그에겐 그게 건너야 했던 갈대바다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원래 이 책의 제목이 <자유의 종>이었다지? 1권에서는 자기가 몸 닮고 있던 선교회의 좋은 점을 부각시키고 싶었다고 한다. 자신의 삶 중에서도 아름다왔던 모습을 많이 담았다. 물론 저자 자신은 대학교 1학년 때 신춘문예에 당선될 정도로 문학에 대한 관심이 깊었지만 정작 1권에서는 그 내용이 나오지 않는다. 이 책에서 가장 마음 아픈 장면은 친했던 친구 영철이가 미쳐서 웨딩드레스를 입고 광화문 앞에서 분신 자살 하는 장면일 거다. 저자가 묘사하는 이 친구의 모습은 신비롭기까지 하다. 웨딩드레스의 메타포는 순수다. 순수하면 이 땅에서 살 수 없다. 광화문 앞에서 분신 자살을 하여야 하는 것이다. 정의라는 이름 아래 저질러진 수 많은 위선과 불의 앞에서 순수가 설 자리는 없는 것이다.
21세기의 이 땅이 정치적으로는 그 때보다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그 모순이 사라진 건 아니다. 위선이라는 건 아마 이 땅에서 아니 이 인간 세계에서 여전히 그 맹위를 떨칠 것이다. 그래서 순수한 사람은 이 땅을 정상적으로 살 수 없는 것이다. 웨딩 드레스를 입고 광화문 앞에서 분신자살을 해야만 했던 그 친구의 모습은 순수함이 지니고 있는 비극의 원형이다. 그 죽음을 지켜 봐야만 했던 주인공 또한 그 순수함 때문에 부모의 뜻을 거스려 법학을 포기해야만 했다. 세상은 손가락질 했을 것이다, 미친 놈이라고. 변호사가 되든 판사나 검사가 되든 하면 되지 웬 미친 짓이냐고 말이다. 그 손가락질, 지탄을 받아야 하는 게 순수의 운명인 것이다.
순수함. 비극이지, 뭐, 슬프게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