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만원 세대 - 절망의 시대에 쓰는 희망의 경제학 우석훈 한국경제대안 1
우석훈.박권일 지음 / 레디앙 / 2007년 8월
평점 :
품절


일요일이라 알라딘에서 책을 자뜩 주문 해 놓고 집에 오는 길에 서점에 들러 해리 포터 7편 3,4권이랑 촘스키의 글 모음 <사상의 향연>과 우석훈, 박권일의 <88만원 세대>를 샀다.  이 <88만원 세대>라는 책 제목이 여러 신문문들에서 인용되길래 어떤 내용인가, 무척 궁금한 터였다. 

저녁 먹고 나서 소파에 앉아 쉬지 않고 읽었더니 눈이 다 뻑뻑해졌다.  하지만 쉬지 않고 읽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세상을 살피는 일에 참 무지했다는 사실을 느낀 탓이고 또 다른 이유는 이 책의 제목에서 보여 주듯이 이 땅의 경제 현실을 너무나 적나라하게 분석해 놓아 책에서 손을 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전문가의 눈으로 보면 분석 방법이나 관점에 있어 동의하지 못 한다는 이견도 많겠지만 이 책이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는 이 시대의 현실과 문제점이 그냥 스쳐지나가듯 받아 드리기엔 정말 마음을 무겁게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신문에 써놓은 글이란 대개 지면상의 제약과 그 신문들이 지향하고 있는 성격 상, 책의 내용을 잘못 인용하기 십상인 듯 하다.  이 <88만원 세대>라는 책 제목도 그렇다.  대개 신문에서 이 책 제목을 인용할 땐 현재 청년 실업자들의 수가 많다는 것을 대표하는 정도에서 머문다.  하지만 이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은 그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  경제학 관련 서적이라야 슈마허가 쓴 <작은 것이 아름답다> 정도만 아는 터라 이 책이 담고 있는 전문적인 내용을 일일이 살펴보기엔 무리가 있지만 몇 가지 가슴에 와 닿은 내용이 있다.  

경제학과 물리학에서 그 둘 사이의 가잠 닮은 점은 평형 (equilibrium)의 중요성인 것 같다.  그 평형점은 대개 안정성 또는 불안전성과 관계가 있다.  물리학에서 가장 중요한 바탕을 이루고 있는 변분 원리의 기본이 되는 내용 또한 이 평형과 관련이 있다.  자연을 기술하는 고전적인 모든 방정식은 작용소를 최소화한다 라고 불리는 이 해밀톤 원리는 자연, 또는 우주가 가장 경제적으로 작동한다는 말과 같다.  지구가 지금과 같이 태양의 둘레를 도는 이유는 그게 가장 경제적이기 때문이다.  

자연이 가장 경제적이라는 말은 자연이 가장 정직하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자연은 절대로 그 룰을 어기지 않으니까 말이다.  반면에 인간들로 이루어져 있는 이 사회는 이기주의와 탐욕과 잘못된 결정, 즉 평형점에서 대단히 먼 결정들 때문에 screw up 되기 십상이다. 

이 <88만원 세대>라는 책에서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대한민국이라는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작금의 현실이 경제학에서 말하는 그 평형점에서 얼마나 먼가를 보여준다.  이 책은 현재 10대와 20대들이 겪고 있는 그 노동 착취의 현장, 그 불균형에 관한 책이다.  그리고 그 불균형이 안고 있는 그 폭발력의 위험을 경고하고 있다.  특히, 한 세대가 그 다음 세대를 어떻게 착취하고 있는가에 대한 현장 보고서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이 대한민국의 경제적 모순점 중 가장 큰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그 독과점의 횡포가 어떻게 후속 세대의 경제적 자립을 훼손시킬 수 있는지 보여준다.  

한번씩 신문들에서 중소기업들이 안고 있는 문제를 취재하고 기사화하기도 하지만 그 근본 문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에 놓여있는 그 착취 구조일 것이다.  그 착취 구조는 단지 두 회사의 관계의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뒤에는 세대와 세대간 대결이라는 더 큰 시대적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이 책은 말한다.  20대가 자영업을 시작하기에 지금, 특히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면서 얼마나 더 힘들어져 졌는가 하는 것을 말한다.  노무현 정권을 대표하는 단어, 그 혁신 (Innovation)이라는 단어가 실제 문제에 적용될 때는 <선택과 집중>이라는 표현으로 재해석된다.  이 선택과 집중이 듣기에는 경쟁력을 강화하는 듯 하지만 실제로 그 선택과 집중의 결정자는 정부이기 때문에 그 혁신이라는 단어에 맞춰지기 위해서 독재시대 때 보다 더한 획일화가 이루어질 수 밖에 없다는 분석은 올바른 분석이다.  비슷한 부작용이 대학을 향한 구조조정에서도 똑같이 나타나고 있다.  

이 책에서는 현 20대와 구분되는 앞선 세대를 유신 세대와 386세대로 나눈다.  그 나누는 것에 대해서도 경제학적으로 논의하기는 하지만 이 책의 큰 흐름과는 별 상관이 없기 때문에 비록 정치적인 분류에 들겠지만 40대 후반에서 50대 중반까지를 유신세대, 30대 말에서 40대 후반까지를 386세대로 분류한다.  이 두 세대를 다른 선진국의 68세대들과 비교한다.  그 비교는 나름대로 공부가 된다.  세상 일이라는 게 그렇게 날카롭게 카테고리화할 수 있느냐는 문제는 잠시 접어둔다 해도 많은 점을 시사한다.  특히, 68혁명을 극심하게 겪었던 독일과 프랑스의 예는 그 68운동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일본의 단카이 세대.  그리고 한국의 유신 세대와 386세대.  그 중에서도 가장 악질적인 세대가 이 386세대로 보인다.  프랑스의 68혁명을 주도했던 젊은이들 중에는 중고생도 다수 있었다.  그리고 그 68혁명의 중심 사상에는 모택동이나 마르크스의 책이 아니라 샤르트르의 <존재와 무>라는 어려운 철학책이 있었다.  그 운동의 결과가 프랑스 대학들의 국립화였다고 저자는 말한다.  반면에 한국의 386세대의 가장 큰 쟁점은 독재 타도와 북한과의 관계 개선, 더 나아가 민족끼리의 통일이었다.  노동자 문제도 중요한 화두가 되긴 했지만 정작 그 문제의 본질은 더 큰 시대 담론에 묻혀 버렸다고 볼 수 있다.  

그 거대 담론에서 내려와 한 개인의 삶으로 돌아와 보면 더 중요한 것은 한 개인이 경제적으로 자립해서 가정을 꾸리고 사회의 한 단위로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386 세대는 그 혁명의 단물은 다 빨아 먹었으면서 정작 그 후속 세대를 핍박하고 있는 세대이기도 하다는 것이 이 책의 분석결과이기도 하다.  저자도 조금 우려하는 바이지만 이 부분은 조금 성급한 일반화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러나,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요지는 386 세대의 사악함이 아니라 20대가 놓여있는 그 불안한 위치이다.  이 책의 1부에서는 기존의 문제점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2부에서는 그 문제를 좀 더 구체적으로 파고든다.  현제 이 땅을 횡행하고 있는 승자 독식 구조, 개미지옥의 현실, 10대 20대 알바들의 비참한 현실, 그 현실의 내면에 깔려 있는 그 독과점화의 문제들, 프랜차이징의 문제점들......  2부에서 그 문제점들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지만 그 해답대로 문제가 풀릴 것인가에 대해서는 그리 희망적이지 못 하다.  하지만 두 가지 근본 해결 방안에는 동의할 수 밖에 없다.  창조적 파괴와 협력 게임.  이 두 해답은 급격하게 평형점을 찾아갈 것이냐, 아님, 서서히 그 평형점에 접근할 것인가 하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문제는 현재의 경제 형태로는 위기가 올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현 노무현 정권이 바탕을 두고 있는 사상은 마르크스를 어설프게 이해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마르크스의 경제학이 노동과 자본에 대한 분명한 분석과 자본주의에 폐악을 정확하게 짚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대단한 학문이기는 하지만 그 바탕을 두고 있는 그 유물론 사상, 그 뒤에 있는 진화론에 대한 잘못된 이해 때문에 좌파라고 부르짖는 것과는 달리 신자유주의와 경쟁을 지나칠 정도로 강조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경쟁은 있어야 하지만 경쟁이라는 것에 필여적으로 함께 따라야 하는 것이 공정함이다.  이것이 존 롤즈가 정의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바로 공정함이라고 이야기했던 것과 통한다.  지금 20대가 그 공정함으로부터 완전히 고립되어 있다는 점에서 유신세대와 386세대는 반성하여야 한다.  가장 진보적인 사상에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 이 386세대들이 자식들의 교육에 목을 메는 이유는 이 땅이 얼마나 학벌과 승자독식의 구조에 찌들려 있는지 알기 때문이지만 그렇다고 10대를 인질 삼아 20대를 희생시킬 수는 없는 노릇 아닐까.  

삼성의 비자금 문제.  검찰에서 삼성을 수사하려 들 때마다 늘 터져 나오는 말이 우리나라의 경제 문제이다.  삼성이 우리나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니까 그 걱정을 무시하기엔 염려되는 면도 있지만 사회 정의 - 전두환 정권이 썼던 말이라 어감은 안 좋지만 -라는 관점에서 보면 그 삼성의 행태 때문에 앞으로 우리가 잃는 게 훨씬 더 클 수 있다는 것이다.  <88만원 세대>에서도 잠깐 나오는 말이지만 세계적인 기업이 아이들에게 모유를 무료로 제공해 주길 원했던 칠레의 아옌데 대통령이 사살당한 그 뒤에는 네슬레라는 회사가 연루되어 있다는 것이 공공연한 사실이라고 한다.  이 네슬레라는 회사, 독일 히틀러 정권에 빌붙었던 회사라는 사실은 독일에 있을 때부터 들어 알고 있다.  삼성 또한 마찬가지이다.  민주주의로 가는 길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투명함이다.  비자금이라는 단어, 영어로는 slush fund라고 부른다.  누구에게 뇌물로 주기 위해 조성된 돈이라는 뜻이다.  뇌물로 준다는 이유는 경쟁에 있어서 공정함을 버리겠다는 것이다.  그 점에서 삼성은 그 주주들에게나 그 상품을 사는 소비자들에게 이미 엄청난 죄를 짓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삼성이라는 한 회사가 많은 영역에서 독과점화하는 것은 이 땅의 경제를 위해서도 안 좋은 일이다.  미국이 가장 자본주의화된 나라라지만 그래도 그 나라에는 그 독과점 방지법이라는 게 서슬퍼렇게 살아있다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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