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란 무엇인가 까치글방 133
E.H. 카 지음, 김택현 옮김 / 까치 / 200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1. 몇 달 전에 잡았다가 바빠서 팽겨쳐둔 책인데 6월 들어 다시 읽기 시작했다. 정독하기로 작정하고 처음부터 차근히 읽어 나가며 노트에 정리하고 있다. 첫 장을 자세히 읽었는데 역사란 "과거와 현재가 서로 상호작용하는 것"이라는 말이 마음에 든다. 그냥 사실과 역사적 사실의 차이. 학문이라는 게 늘 그렇듯 단어의 정의가 중요하다.
수학에서 항상 정의에서 출발해서 작은 정리(Lemma)를 세우고 다시 정리(Theorem)를 유도하고 다시 그 정리에서 proposition을 유도하듯 타 학문도 수학만큼 정식화 되어있진 않아도 비슷한 과정을 거친다. 그러나 어떤 사람에게는 정리가 정의가 되고 혹은 그 역이 되듯 관점의 차이는 있기 마련이다. 자질구레한 것에 지나치게 매달려서도 안 되는 이유가 아마 여기에 있을 것이다.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에서는 역사철학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역사의 개념을 먼저 이해하여야지만 역사학을 올바로 연구할 수 있다는 말인데 그건 여느 학문도 마찬가지이다. 물리학에서 닮고 싶은 천재들의 삶을 살펴보면 한결같이 열정적으로 학문에 임한 사람들이다. 와인버그. 생존하고 있는 물리학자들 중에서 이 분의 학문하는 스타일을 참 배우고 싶다. 와인버그는 논문을 깔끔하게 쓰기도 하지만 이 분이 쓴 교과서를 보면 한 분야를 연구할 때 역사적으로 그 발전해 온 과정과 동기를 먼저 샅샅이 연구한다. 역사란 비단 역사학자에게만 중요한 게 아니라 기타 학문을 전공하고 있는 사람에게도 동일하게 중요하다. 그래야지만 안목을 갖고 연구할 수 있으니까. 결국 학문이란 과거에 이루어 놓은 업적을 현재의 눈으로 살피고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잡기도 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가끔 breakthrough가 필요하기도 하지만 과거에 이루어놓은 업적과 문제점 때문에 bias되어서 paradigm의 전환을 가져오는 것이 늦어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부지런히 과거를 살필 필요가 있는 법이다.

2.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여태 읽고 있다. 읽을만한 책이다. 그러나 읽다가 목에 가시가 걸린 듯한 느낌을 받았다. 칼 포퍼가 쓴 <열린 사회와 그 적들>과 <역사주의의 빈곤>이라는 책을 비판하고 있다. 인문학에서 비판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는 자연과학과 짐짓 다르게 보인다. 근원적으로 같을지 모르지만 표피 층위에서 보면 확실히 다르다. 보는 관점을 어디에 두어야 할 것인다. 결국 인문학에서 불변하는 가치들은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무언가 주장하려면 의도적으로 한쪽으로 치우쳐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카의 포퍼 비판은 논리적으로 합당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포퍼 자신이 과학철학을 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조금 좁은 틀 안에서 사회를 분석하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포퍼가 쓴 책에서도 건질 것들이 있다. 포퍼는 역사주의라는 틀 안에 플라톤, 헤겔, 마르크스를 가두어 두었지만 플라톤, 헤겔, 마르크스의 사상 속에 들어있는 독소 조항을 살펴 보는 것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 물론 역사가 카는 이 역사주의라는 말을 혐오하는 듯 하다.
어쩌면 긴 시간을 두고 플라톤과 헤겔, 마르크스를 섭렵하여야 할지도 모르겠다. 내 전공이 아니라 부담은 되지만 사람 살아가는 것을 좀 더 잘 알기 위해서 그런 지루한 과정을 밟아 나가는 것이 불가피하게 느껴진다. 아, 이 불가피하다는 말. 카가 비판했던 말이다. 역사에서의 불가피성, 결정론적 사고 말이다. 역사에서의 결정론, 그게 세계 정신이든 보이지 않는 손이든 신의 섭리든 그런 결정론이라는 것이 역사를 연구하는 데 있어서는 배제되어야 하는지 모른다. 그 반대로 우연의 역할 또한 배제되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연이라는 것, 마르크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또 다른 우연에 의해 상쇄된다고 하던데....... 그 부분을 읽으며 내 머릿 속에 든 생각은 random variable을 적분할 때 fluctuation이 크지 않다면 결국 가장 dominant한 놈은 classical path가 된다는 게 떠올랐다. 역사적인 사건이라는 것, 어쩌면 엄청난 큰 fluctuation 혹은 역사상 벌어지는 일들의 상호작용이 엄청나게 비선형적이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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