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의 시대
존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 들녘 / 200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철의 시대>는 은퇴한 늙고 병든 여교수의 눈을 통해 본 1986년부터 1989년까지의 남아프리카를 보여준다.  <철의 시대>가 위대한 작품이 될 수 있는 건 그 당시 아파르트헤이트로 인종차별 문제가 심각했던 남아프리카의 문제점을 지적하거나 해결책을 제시하거나 하는 데 있지 않고 병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사는 지식인이 그 시대 속에서 그 시대를 어떻게 인식하고 또 그 자신의 생각을 어떻게 바꿔 가는지 담담하게 보여주는 데 있을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남아프리카는 남아프리카에서 물리학 교수였던 테겐 (Tegen)을 통해서 들은 말이 전부다.  그 또한 흑인을 무척이나 싫어했다.  예절 없고, 거지 근성에, 폭력적이다"는 말.  자신도 차를 몰 때엔 항상 권총을 옆자리에 두고 다닌다는 말.  자신의 밑에서 일했던 흑인 포스트닥과 중국인 포스트닥의 비교도 했다.  사람들이란 늘 자신이 처한 환경 속에서 좌표의 중심을 자신에게 두기 마련이다.  실제로 다른 사람을 위해 투쟁한다지만 궁극적으로는 좌표의 원점은 자기 자신에게 있는 것이다.  <철의 시대>의 주인공 커렌도 마찬가지였다.  딸은 미국으로 이민을 가고 홀로 남아프리카에 남았는데 나이 들어 암에 걸려 딸에게 자신의 남은 생과 경험을 기록하는 서간문체의 소설이다.  딸에 대한 애정이 잔뜩 녹아나는 소설이기도 하지만 소설의 주안점은 주인공 커렌이 자신의 둘레에 있는 사람들의 삶에 본의든 본의 아니든 개입되면서 깨달아간다는 내용이다.  말하자면 좌표의 중심이 더 이상 자신에게 두는 게 아니라 아파르트헤이트의 중심에 놓여있는 흑인들로 옮겨가는 얘기다.  커렌은 자신의 집에서 가정부로 일하던 흑인 플로렌스의 아들 베키가 살해된 현장을 목격한다.  비오는 날, 불타버린 집에서 총에 맞은 채 발견된 베키의 시체.  그리고 베키의 친구인 존이 베키를 찾아 커렌의 집에 왔다가 경찰의 손에 죽는다.  이 일련의 사건을 통해 커렌은 그 시대에 대해 수치심을 느낀다.  그러나 주인공 커렌에게는 동정심이 있었다.  퍼케일에 대해 가졌던 동정심, 하지만 정작 위로받는 건 커렌이다.  퍼케일이라는 이름 모를 부랑자, 바다에서 조난당한 뒤 한손을 못 쓰는 부랑자에게서 말이다.  

수치심과 동정심.  아마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두 단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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