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아닌 것으로도 읽은 기분 읽어본다
요조 (Yozoh) 지음 / 난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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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매일의 ‘읽기’를 기록한 서평이다.

매일의 기록답게 담담하게 써 내려간다. 과하지 않은 점은 장점이다. 하지만 그 장점은 동시에 한계이기도 하다. 기록으로서는 충분하지만, 딱 거기까지만.

서평은 읽은 사람이 자신의 기록을 남기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읽는 사람을 책으로 이끄는 글이어야 한다. 한 권이든 두 권이든 상관없다. 독자가 책을 펼치게 하고, 더 나아가 구매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리뷰의 목적이다.

이 목적은 충실하게 만족시키고 있다.

요조는 말한다.

“창작의 고통이 아니라 성실의 고통에 괴로웠다.”

다시 이런 작업을 하겠느냐는 질문에는 “정말 진짜 죽어도 안 할 것이라는 마음으로 승낙할 것이다.“라고 답한다.

솔직한 고백이다. 괴롭지만 결국 다시 하게 되는 일. 매일의 ‘읽기’와 ‘쓰기’가 그렇다.

공감하는 대목도 많았다. 특히 책을 읽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가 오래 남았다.

내가 자주 가는 상수동의 커피발전소에서 『쇼코의 미소』(최은영, 문학동네, 2016)를 읽었다. 첫 번째 단편 「쇼코의 미소」를 읽고는 더 읽는 것을 멈추었다. 한 번에 끝까지 후루룩 읽고 싶은 책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 커피발전소에 갈 때마다 단편 하나를 천천히 읽고, 그 뒤에 나의 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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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은 읽는 장소와 함께 기억되기도 한다. 어떤 카페에 들어서면 그곳에서 읽었던 책이 떠오르고, 어떤 골목을 지나면 한 문장이 문득 생각난다. 책은 내용만 남기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까지 함께 기억 속에 묶어 둔다.

꼭 커피발전소가 아니어도 좋다. 자주 가는 카페 하나쯤 정해 두고 그곳에서는 단편 하나, 아니 시 한 편만이라도 읽어보자. 책을 많이 읽는 것보다 오래 읽는 일이 더 행복할 때도 있다.

하지만 끝내 동의하지 못한 부분도 있었다. 그중 하나가 고양이 중성화에 대한 이야기다.

옛날에 키우던 고양이에게 발정기가 와서 엄청나게 울어대며 괴 로워하던 것을 나도 괴롭게 지켜보다가 결국 병원에 중성화 수술을 하러 데려갔을 때 의사 앞에서 그랬다.

“아무래도 좀 잔인한 것 같아서 망설이다 왔는데 영 내키지가 않아요......”,
그러자 의사가 나한테 그랬다.

“주기적으로 섹스하고 싶어지는 애를 집안에 계속 가둬둘 거면 서 그게 더 잔인한 거 아닌가요? 애 발정기 올 때마다 집 앞에 풀어 줄거예요?”

나는 그 얘기를 듣고는 바로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했더랬다.

지금 키우는 두 마리 고양이 또와 라이도 진즉 중성화는 완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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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선택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반려동물을 키우기 위해 중성화를 한다. 결국 인간이 함께 살아가기 편하도록 내리는 결정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그것을 ‘동물을 위해서’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을까.

마지막에서 요조는 이렇게 말한다.

“인생의 모든 즐거움이 섹스에만 있는 것도 아니고, 섹스 말고 더 많은 즐거움을 차근차근 선사해 줄 테니까. 오래만 살아다오.”

따뜻한 마음은 충분히 전해진다. 다만 그 말보다 먼저 떠오른 것은 다른 한마디였다.

‘미안하다.’

인간의 선택으로 그들의 삶을 바꾸었다면, 적어도 그것이 우리를 위한 선택이었다는 사실만큼은 솔직하게 인정하는 편이 옳지 않을까.

—눈이 아닌 것으로도 읽은 기분, 요조, 난다, 2017

덧_
요조는 세상에는 나쁜 책, 좋은 책, 이상한 책, 세 종류가 있다고 했다. 나쁜 책은 읽으면 돈밖에 남지 않는 책, 좋은 책은 그런 책을 제외한 책, 이상한 책이 흥미로운데, 세상의 모든 시집이란다. 요조의 이번 책은 좋은 책과 이상한 책의 중간쯤이다. —요조의 인터뷰 中

덧_둘
나중에 알았다. 난다의 ‘읽어본다’ 시리즈 中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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