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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기술과 세계화, 결정론과 운명론

로버트 라이시가 변했다. 그것도 아주 크게 변했다. 그의 새 책 <위기는 왜 반복되는가>(안진환·박슬라 옮김, 김영사 펴냄)를 보면서 나는 계속해서 입을 딱 벌려야 했다.

미국 클린턴 행정부의 노동부 장관으로 유명한 라이시는 그간 미국 사회를 분석한 여러 가지 책을 펴냈다. 미국에서의 중산층 몰락, 빈익빈 부익부 심화 그리고 전반적인 삶의 불안정화를 지적한 <국가의 일>(까치 펴냄), <부유한 노예>(김영사 펴냄), <슈퍼 자본주의>(김영사 펴냄) 등이 그 책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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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기는 왜 반복되는가>(로버트 라이시 지음,안진환·박슬라 옮김, 김영사 펴냄). ⓒ김영사
그렇지만 이들 책에서 라이시는 항상 그 사회·경제적 병폐의 근원적 원인을 기술 결정론 또는 세계화 운명론의 관점에서 설명했었다. 그는 날로 심각해지는 소득 불평등과 불안정한 삶의 원인을 정보 기술의 확산과 결합된 글로벌 아웃소싱에서 찾았다. 그에게 있어 월마트 자본주의와 주주 자본주의가 '난공불락'의 '슈퍼' 자본주의인 것은 그것이 우리 모두의 운명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라이시의 이전 저작들에는 소득 불평등과 삶의 불안정화를 우리가 '운명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식의 무기력과 패배주의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그래서 늘 용두사미(龍頭蛇尾)로 끝나곤 했다. 한편에서는 월마트 자본주의와 주주 자본주의를 날카롭게 비판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그 모든 것이 정보 기술과 세계화라는 불가항력적인 힘에 의해 발생한 까닭에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투로, 사소한 사회 개혁 조치만을 미국 진보의 대안으로 제시했었다.

1990년대 클린턴을 대통령으로 만든 미국 민주당은 라이시와 똑같은 생각을 가졌다. 한 때 그 자신이 노동부 장관으로 재직했던 클린턴 정부가 중산층 몰락과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수수방관했고, 그것을 저지할 적극적 구상을 내놓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현재 오바마의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정치 권력과 뉴딜 동맹, 신자유주의와 68세대

그렇지만 이번 책에서 라이시는 더 이상 결정론과 운명론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라이시는 레이건에서 부시에 이르는 공화당 정부가 취한 '자유 시장' 이념과 정책, 즉 공기업 민영화, 노동조합 파괴, 최저임금제 하락, 사회보장 축소, 노동 시장 보호 규제와 금융 시장 규제의 폐지 등과 같은 정치경제적 변화에서 중산층 몰락과 빈부 격차 심화의 근원적 원인을 찾는다. 또 2008년 서브프라임 금융 위기 역시 근원적으로는 이러한 변화에서 발생했다고 믿는다.

라이시의 새로운 관점은 과연 어떻게 1947년에서 1975년에 이르는 약 30년간의 '대번영'의 시기가 등장했는가에 대한 설명 방식에서도 분명하게 나타난다(제6장). 그는 루스벨트 시기에 시작되어 아이젠하워, 케네디, 존슨 그리고 닉슨 시기에 이르기까지 민주당과 공화당을 막론하고 지속된 '뉴딜 동맹' 즉 케인스 경제학과 결합된 개입주의 복지 국가야말로 대번영을 가능케 한 정치경제적 토대였음을, 미국 사회의 '기본 합의'였음을 지적한다.

이 시기에 미국 연방정부는 노동조합의 권리와 협상력을 크게 강화시켰고, 사회보장제도와 사회 안전망을 크게 강화시켰다. 이 시기에 공립대학(주립대학) 숫자와 정원이 늘고 등록금이 낮게 규제되어 대학 입학생이 크게 늘었다. 그리하여 두터운 중산층이 형성되었고 소득 불평등이 크게 완화되었으며 노동 생산성도 빨리 성장했다. 생산성 향상과 소득 증가는 고스란히 구매력 증가로 이어져 장기간에 걸친 경제적 성장과 번영으로 이어졌다.

이 비용의 상당 부분은 상류층으로부터 징수한 세금으로 충당되었다. "누구도 급진파라 부르지 않을 법한 (공화당 소속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임기였던 1950년대의 (상류 부유층에 대한) 소득세 (최고) 세율은 91%였다"(85쪽). 이것은 당시의 스웨덴보다 더 높은 수치이다. 1964년 이 수치는 77%로 떨어졌다가 조금 올랐고, 닉슨이 대통령에 취임한 1969년에 다시 77%가 되었다.

상류 부유층에 대한 소득세 최고 세율이 급격하게 하락한 것은 1980년대로 미국 공화당의 레이건 및 부시 행정부는 그것을 30%대로 낮추었다. 사회 안전망과 노동조합, 최저임금제를 파괴하였고, 더구나 금융 시장 규제를 대폭 완화하여 상류 부유층 즉 금융자산가들에게 큰 투자 수익의 기회를 주었다. 그리하여 대번영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

대번영의 시대가 끝나고 뉴딜 동맹이 해체된 것은 결코 정보 기술 또는 세계화에 따른 어쩔 수 없는 결과가 아니었다. 미국 경제는 정보 기술 및 세계화의 덕택으로 1980년~90년대에도 계속 발전했다. 그렇지만 경제 성장의 열매는 대부분 상류 부유층으로 집중되었다. 이것은 미국과 마찬가지로 정보 기술이 발전하고 미국보다도 더 기업 및 금융 시장의 세계화 흐름에 노출되었던 스웨덴과 핀란드 등 북유럽 복지 국가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정보 기술도, 세계화도 빈부 격차 심화 및 중산층 몰락의 근원적 원인이 아니라면, 과연 무엇이 근원적 원인이란 말인가? 라이시는 그것은 결국 권력과 관련이 있다고 말한다(99쪽). 큰 정부를 배격하고 작은 정부와 큰 시장을 주장한 레이건과 마거릿 대처, 밀턴 프리드먼과 그린스펀의 '자유 시장' 경제 사상이 정치 권력을 장악한 것이 대번영 시대 종식의 근원적 원인이라고 답한다(101쪽).

클린턴 정부마저도 뉴딜 동맹 즉 케인스적 복지 국가의 복원에 크게 애쓰지 않았다. 클린턴 정부에서 노동부 장관을 지냈던 라이시는 이 책에서 자유시장 신봉자인 앨런 그린스펀과 유사한 인물들이 클린턴 정부 하에서 핵심 경제 정책을 이끌었음을 비판한다.

그리고 1950년대와 60년대 대번영의 시대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이른바 68세대)가 그 부모 세대가 체험한 거대한 자유 시장 실패(대공황)와 공동체적 고난(전쟁)의 뼈저린 경험을 잊은 채 개인주의 성향에 빠져든 점 역시 "각자가 스스로 살아나갈 길을 모색할 수밖에 없는 경제 사회"가 나타나게 되는 정치 권력 변화를 도와주었다고 비판한다(102쪽).

라이시의 이러한 지적은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사조가 등장하고 지배 권력이 되는 과정에서 68세대의 (포스트모던 철학과 결합된) 개인주의가 큰 도우미 역할을 하였다는, 최근에 국내에도 소개된 영국의 역사학자 토니 주트의 <더 나은 삶을 상상하라>(김일년 옮김, 플래닛 펴냄)의 통찰과도 일맥상통한다.

2008년 금융 위기와 경제 회복

2008년 여름 미국의 투자은행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하면서 본격화된 미국발 금융 위기는 전 세계 경제를 연쇄적인 충격파의 흐름 속에 빠뜨렸다. 특히 미국 경제는 1930년대 이래 최악의 금융 시장 패닉(panic)과 신용 경색, 파국적 시장 실패 상황을 지난 2008년 가을에 겪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역사상 가장 '자유 시장'(free market) 사상에 투철한 부시 행정부마저도, 즉 "툭하면 정부에 의존하려 드는 '도덕적 해이(moral hazard)' 문제를 일으킬 수 있으므로, 도움을 필요로 하는 가난한 저소득층을 정부가 도와줘서는 절대 안 된다"며 늘 정부 개입과 정부 지원을 강력히 반대해온 신자유주의자 부시마저도 세계 최대 투자 은행과 상업 은행, 보험회사를 지원하는 구제 금융 자금을 제공했다.

당시 부시는 국민들에게 "이런 구제책을 실시하지 않으면 우리 경제는 끔찍한 대가와 희생을 치러야 할지도 모른다"며 양해를 구했다. 구제 금융이 실시되고 1년도 채 되지 않은 2009년 가을부터 미국의 월스트리트는 회복 기미를 보였다. 미국 최대 은행 여섯 곳이 성장세를 보였고, 은행 중역과 트레이더는 과거와 비슷하거나 과거보다 더 많은 보너스를 챙겼다.

그리고 2010년 초반부터 미국과 전 세계 주식 시장과 채권 시장은 활기를 되찾았고 뉴스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대불황은 끝났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월스트리트는 보너스 파티, 메인스트리트는 고난의 행군

자, 여기까지는 우리들도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 로버트 라이시는 바로 이 지점에서부터 의문을 제기한다. 왜냐하면, 월스트리트의 금융 자본과 금융 자산가 그리고 대기업들이 수익성과 활력을 회복하고 있다지만 대다수 미국인의 삶과 일상은 2008년 대불황 개시 이래 지금도 엄청난 상처와 혼란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흔히 경제 정책 입안자들은 금융계의 재무건전성이 실물경제 번영을 위한 필수조건이라고 생각한다. (…) 그러나 현대 경제에 대한 수많은 오해 중에서도 사회와 그 성원들의 안정과 번영을 위해 월스트리트(Wall Street)의 견실함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견해만큼이나 열성적인 지지를 받는 오해도 드물다". (71쪽)

금융 기업과 대기업의 수익성이 회복되고 경기가 조금 좋아진다고 해서 과연 경제 위기가 완전히 끝난 것인가? 위기 이전에도 그랬지만 위기 이후에도 미국의 (그리고 실은 한국과 전 세계에서도) 상류 부유층은 더 부유해지는데 반해 중산층과 가난한 저소득층은 더 가난해지고 있다.

라이시가 <위기는 왜 반복되는가>에서 집중하는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그는 지금처럼 심각하게 불평등한 부와 소득의 분배 구조가 유지되는 한 작금의 대불황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는 문제의식에서 이 책을 써내려간다고 서론에서 밝히고 있다.

대공황과 자유 시장

토인비는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말했다. 로버트 라이시는 "역사는 되풀이되지 않지만 간혹 서로 운율이 맞는 경우가 있다"는 마크 트웨인의 말을 인용하면서 독자들을 1930년대 대공황의 시대로 이끌어간다. 그리고 이 부분이야말로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롭고 진지한 부분이다.

라이시가 이 책의 첫 번째 장에서 우리에게 제시하는 인물은 매리너 에클스이다. 그는 1934년부터 1948년의 시기에 미국의 중앙은행(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으로 재임했던 인물이다. 즉 자본주의 역사상 최악의 대공황과 최악의 대전쟁의 시기에 미국 경제과 금융 시장의 구조 재편을 (당시의 민주당 대통령 루스벨트와 함께) 이끌었던 경제 지도자가 바로 에클스였다.

매우 흥미로운 점은 라이시가 에클스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풀어 놓는 대공황을 둘러싼 여러 논쟁들과 일화들이 최근 글로벌 금융 위기 이래 미국과 전 세계에서 진행되는 그것과 대단히 유사하다는 것이다. 더구나 우리가 1997년에 겪었던 외환 금융 위기 때의 그것과도 매우 유사하다.

먼저 라이시는 193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자유 시장'의 균형 회복력을 철석같이 믿는 월스트리트의 금융 자본가와 그리고 주류 고전파 경제학자들은 "시장은 곧 자동적으로 정화되어 균형을 되찾을 것이므로 정부의 유일한 임무는 연방 예산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라고 주장해왔음을 지적한다(31쪽).

오늘날 시카고학파의 로버트 루카스 같은 경제학자들도 이와 동일한 주장을 하면서 "오바마 정부는 2008년 이래의 대불황 사태에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한 정부 개입, 특히 복지 국가적 개입이야말로 오히려 대불황을 악화시킨다"고 비판한다. 1930년대에 고전파 경제학자들은 똑같이 '자유시장의 위대한 복원력'을 소리 높여 외쳤었다.

"불황이 초래하는 물가 하락과 금리 하락은 필연적으로 사람들을 새로운 투자로 유인할 것이고, 그러한 활동은 경제에 상승 기조를 안겨줄 것이다. (…) 따라서 (대공황과 대불황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경제에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그 자신이 성공한 기업가이자 은행가였던 에클스는 (케인스와 마찬가지로) 경제가 심각하게 무력화된 대공황의 불확실한 상황에서 과연 어느 기업가가 선뜻 투자에 나설지 의심스러웠다.

검약(저축)과 소비, 죄와 벌

또한 대공황 당시 많은 경제계 지도자와 고전파 경제학자들은 불황을 검약과 근검이라는 (청교도적 자본주의 도덕률)을 위배하는 죄(sin)를 범한 데 대한 하느님(즉 '보이지 않는 손')의 처벌(punishment)이라고 생각했다. 즉 이들은 1930년대에 대공황이 발생한 이유가 1920년대에 미국의 기업과 소비자들이 게으른 낭비자가 되어 돈을 헤프게 썼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것은 한국 등 동아시아 나라들의 1997년 외환 금융 위기를 놓고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던 서구 언론의 시각과 일치한다. 그렇지만 에클스는 이러한 도덕론적 설명을 거부했다.

"1929년의 대붕괴 이후 후버 정부의 재무부 장관이자 동시에 백만장자 기업가였던 앤드류 멜론은 정부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임금과 물가가 하락하게 놔더라. 직원들을 해고하고 주가가 폭락하고 농장 관리인을 해고하고 부동산 값이 폭락하게 놔둬라. 그래야 경제 시스템의 잘못된 부분이 바로 잡힌다. 그래야 사람들이 전보다 더 열심히 일하고 더 도덕적 삶을 영위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에클스가 대립각을 세운 개소리이자 그로 하여금 권력자들이 의심스런 도덕률을 들먹이며 현상 유지를 정당화하려 애쓰고 있다고 결론 내리게 만든 헛소리였다." (58쪽)

더구나 대공황과 같은 엄청난 경제 위기를 검약과 근검의 결여라는 (그리고 한국 등 동아시아 금융 위기의 경우 '모럴 해저드'라는) 도덕적 요인으로 설명하는 의심스런 관점이 오늘날 오바마 정부의 핵심 경제 관료인 재무장관 티머시 가이트너의 발언에서도 유사하게 되풀이된다는 라이시 지적은 매우 날카롭다.

"2008년에 대형 은행들과 대형 보험 회사(AIG)가 구제 금융의 수혜를 받았다. 그러나 실물경제가 계속 악화되는 동안에 정책 입안자들은 엉뚱한 곳만 바라보았다. 정부 관리들은 2008년 금융 붕괴가 일어난 까닭은 (…) 국민들이 리스크가 과도하게 높은 대출을 이용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 재무장관 가이트너의 말대로 정부 관리들은 국민들이 그동안 지나치게 소비했다고 즉 저축은 너무 적게 하면서 과소비 행각을 벌였다고 생각했다. (…) 중국인은 저축을 많이 하고 소비를 적게 하는데 미국인은 그 반대라고 주장했다." (74쪽)

가이트너와 로렌스 서머즈 등 오바마 정부의 핵심 관료들은 국민들, 즉 저소득층과 중산층이 저축은 적게 하면서 은행 대출 받아 주택 구입하고 카드 대출 받아 승용차 구입하는 등 과소비 행각을 벌였다고 비난한 셈이다. 다시 말해서 오바마 정부는 자신의 집권에 가장 큰 도움을 준 미국 중산층과 저소득층의 비청교도적 생활윤리를 금융 위기의 주범으로 몰아간 셈이다. 오바마 정부는 대출 받아 주택과 승용차를 구입할 정도로 빈곤해진 미국 중산층과 저소득층의 낮은 소득 문제의 개선에 대해 큰 관심이 없다.

소비와 소득분배, 케인스와 에클스

가이트너의 관점은 오늘날 경제학 교과서의 관점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로버트 라이시는 가이트너의 관점을 거부한다. 폴 크루그먼의 최근 책과 칼럼에서와 마찬가지로 라이시는 오히려 소득이 상류 부유층에 집중되고 이들이 저축(검약)은 늘리고 소비는 별로 안 늘리는 것이야말로 2008년 대불황의 근원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라이시는 강력한 소득 재분배 정책을 요구한다. 오바마 정부가 현재의 대불황에서 벗어나려면 1930년대에 대통령 루스벨트가 에클스의 도움을 받아 실시한 뉴딜 동맹 정책, 즉 강력한 부자 증세와 사회 안전망 구축, 노동조합 권리 강화, 기업에 대한 최저임금제 강제, 대규모 공공 사업 등의 정책을 실시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2008년 위기 이후 일자리 상실과 주택 상실, 노후 보장 상실의 위기에 직면한 중산층과 저소득층에게 저축과 검약을 강조하면서 '허리띠를 졸라 매라'고 요구하는 것은 경제 위기 극복은커녕 경제 위기를 더욱 심화시킬 것이라고 지적한다(75쪽).

라이시는 에클스의 입을 빌려, 대공황 또는 대불황의 시기에 소비자와 기업들이 줄인 소비 및 투자 지출을 상쇄하려면 정부가 더 많이 소비하고 투자해야 한다고, 그리고 이를 위해서라면 적자 재정 편성과 국가 채무 증가도 무릅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실상 케인스가 <일반 이론>에서 주장한 것과 똑같은 내용이다(35쪽).

오바마 정부의 실패와 미국 정치의 대혼란

라이시가 보기에 오바마 앞에 놓인 가장 시급하고 근본적인 경제 과제는 부자 증세와 함께 중산층 및 저소득층의 소득 향상을 위한 동맹, 즉 뉴딜 동맹 체제를 재건하는 것이다. 폴 크루그먼이 <미래를 말한다>(현대경제연구원 펴냄)에서 주장한 것과 완전히 똑같다.

그렇지만 오바마가 중용한 가이트너와 서머즈, 폴 볼커 같은 이들은 그것보다는 "미국인들이 소득에 비해 너무 많이 소비한 것이 근본적인 문제"라고 말한다. 진짜 근본적인 문제는 대다수 미국인들의 소득이 상류 부유층에 비해 거의 늘어나지 않은 것인데도 말이다.

뉴딜 동맹 재건의 의지를 갖지 않은 민주당 오바마 행정부의 앞날은 뻔하다. 배신당한 유권자로부터 외면 받아 약화되는 것이다. 지난 중간 선거에서 패한 오바마는 벌써부터 부자 감세 철회 공약을 내던지고 공화당과 포괄적으로 협력하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한나라당과 포괄적 연정을 추진하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했던 모습을 연상시킨다.

이 책의 제2부는 이렇듯 미국 민주당이 미국 사회의 '기본 합의'(즉 누구나 중산층이 될 수 있다는 아메리칸 드림)를 외면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경우, 미국 정치가 어떻게 변할 것인가를 우려에 섞인 시선으로 분석한다. 라이시는 앞으로 9년 뒤인 2020년의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는 배타적 애국주의 및 고립주의와 복지 국가적 평등 지향성을 동시에 주창하는 정치 세력(일명 '독립당')이 집권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배타적 애국주의(즉 민족주의)와 배타적 복지 국가 지향성이 동시에 결합된 사상이 바로 민족사회주의 즉 나치즘(National Sozialismus)이다. 실제로 최근 날로 성장하는 미국의 '세금 반대 티파티(anti-tax tea party)' 운동은 몰락하는 백인 중산층의 분노, 특히 상류 부유층(특히 유태인 금융 자산가들)에 대한 분노와 반(反) 연방정부 사상, 그리고 인종주의 및 애국주의와 결합되었다. 나치즘의 모든 사상적 요소들이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 책의 제2부에서 라이시는 미국의 우울한 미래를 전망한다. 미국 중산층에게 희망은 없다. 그들의 자녀에게는 더욱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조만간 민주당과 공화당 양당 모두에 대한 미국 중산층의 불같은 분노와 반발로 나타날 것이다(152쪽).

"만약 여기서 (뉴딜 동맹 재건이라는) 대안을 내놓지 못한다면 결국 독립당이나 그와 비슷한 정당이 그 빈자리를 국수주의와 고립주의, 편견과 불신으로 채우게 될 것이다."(181쪽)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이것은 바로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의 사상과 정책을 나름대로 각각 열심히 추종하며 모방해온 한국의 민주당(혹은 국민참여당)과 한나라당에 관한 라이시의 경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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