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년간 미국을 비롯한 서구는 상승하고 중국과 동양은 몰락했다. 그러던 세계가 갑자기 예상을 뛰어넘는 중국(과 동양)의 발전 앞에 충격에 휩싸였다. 중국이 기회냐 위협이냐를 놓고 담론만 무성하다.

중국의 변화는 미국이 주도한다

특히 미국의 입장이 다급하다. 세계 제국의 위상을 지속하려면, 미국은 중국의 대국화를 최대 과제로 삼고 경계할 수밖에 없다. 중국의 대국화가 미국에는 도전이다. 힘을 강조하는 자들은 중국의 국력과 군사력을 우려하는가 하면, 또 다른 이들은 중국의 발전이 세계 안정에 기여할 것이라고 기대하기도 한다.

중국은 과거 이데올로기를 앞세워 미국의 군사적 대항마로 자리 잡았던 소련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기회와 위험, 장점과 단점이 뒤얽힌 복잡한 상대다. 중국의 변화를 제대로 읽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느 나라든 전략적 이익을 지키고 확대하기 위해서는 중국을 자칫 잘못 해석하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된다는 위기의식이 있다.

지금 중국은 과거와는 전혀 다른 중국이다. 뿌리째 거대한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중국 접근 방식은 구태의연한 측면이 적지 않다. <왜 중국은 서구를 위협할 수 없나>(구계원 옮김, 에쎄 펴냄)의 저자 에드워드 스타인펠드를 포함한 중국을 연구하는 미국 학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 <왜 중국은 서구를 위협할 수 없나>(에드워드 스타인펠드 지음, 구계원 옮김, 에쎄 펴냄). ⓒ에쎄
그들은 대개 '미국이 주도하고 중국이 반응한다'라는 틀을 즐겨 사용한다. 그들은 '중국이 잘 관리되고 있나?'부터 '앞으로도 관리가 가능할까?'까지 미국이 주도하고 중국이 반응하는 식으로 접근한다. 본래 이런 '미국 주도설'은 지난 20세기 중반 하버드 대학의 중국사학자 존 킹 패어뱅크가 주장하였다.

패어뱅크는 20대 초반부터 중국과 영국을 꾸준히 오간 보기 드문 중국통이다. 그는 지난 100여 년 동안 중국에 대한 '미국 주도'가 작동해왔다고 보았다. (여기에 한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 권역 전체가 포함됨은 물론이다). 그의 주장에는 반론도 적지 않았으나, 제2차 세계 대전 이래 오바마 정부에 이르기까지 미국 정부, 학계는 이 가설에 의존한다.

<왜 중국은 서구를 위협할 수 없나> 역시 중국이 서구를 위협할 수 없는 이유를 나름대로 소상하게 밝혀, 계속해서 미국을 비롯한 서구 동맹이 중국 관리에 박차를 가할 수 있다는 '밝은 희망'을 피력하기 위해 쓴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소망은 과연 이뤄질 수 있을까? 중국은 예전의 그 나라가 아닌데.

톈안먼 시위대의 '여신'

이 책의 저자 스타인펠드는 MIT 정치학과 교수이자 MIT의 중국 프로그램 총책임자다. 스타인펠드는 톈안먼 사건이 터진 1989년 중국 대학에 1년간 교환 교수로 간 인연이 있다.

이 책의 첫머리는 톈안먼 사건의 비극으로 시작한다. 저자도 말하듯이, 톈안먼 사건은 중국이 손발을 걷어붙이고 체제와 경제를 바꾸는 전환점이 되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정치학 전공인 저자가 중국 체제를 거칠게 몰아붙이기만 할 뿐, 톈안먼 사건에 대한 정치적 접근은 훌쩍 건너뛰었다.

이 책의 성격으로 보나 문맥으로 보나, 저자의 전공으로 보나 거대한 전환점에 대한 시각을 밝혀야 했다. 건너뛸 일이 아니다.

여기서 이 부족한 첫머리를 대신하여 잠시 톈안먼 사건 당시 사정을 돌아보자. 최고 실력자 덩샤오핑은 톈안먼 광장의 학생들 시위를 보면서 깜짝 놀랐다. 시위 학생들이 미국의 상징인 '자유의 여신'을 빼닮은 '평화의 여신'을 앞세우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 '여신'이 미국에만 있으란 법은 없다!

성난 파도처럼 터져 나오는 비판 세력이 가진 당에 대한 분노와 새로운 시대를 향한 열망을 이 '여신'이 대변했다. 톈안먼 광장에 진입한 탱크 앞에서 조그마한 손 보따리를 든 한 젊은이는 나를 밟고 가라는 듯 마주 섰고, 이 화면은 전 세계의 심금을 울렸다. 죽음을 넘어선 젊은이들은 개혁 개방을 하려면 제대로 하라고 외쳤다.

덩샤오핑 자신이 성공시킨 미중수교 10년 만의 일이었다. '인민이 등을 돌리면 공산당도 하루아침 이슬'이라던 마오쩌둥의 말이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그러나 시위는 참혹하게 끝났다. 85세의 덩샤오핑에게도, 중국 공산당에게도 위기였다. 100여 년 동안 앓아온 망국의 고질적 혼란을 되풀이할 수도 있는 갈림길에 섰다.

그 와중에 당내에 새로운 기류가 잡혀나갔다. 시시비비를 떠나 이 사건으로 당이 분열하는 사태가 촉발되어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후에 나는 지인을 통하여 당 내부 수습이 신속하게 이루어진 배경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당 지도부가 '책임론을 둘러싸고 분열한다면 그것은 '제2의 문화혁명' 사태를 초래할 뿐이라는데 공감'한 것이었다.

문화혁명! 그들에게 그것보다 무서운 악몽은 없었다. 이 엄숙한 진실 앞에서 당 내부는 신속하게 정리되었다. 그들은 파멸을 피하는 길을 당의 단합에서 찾았다.

당의 단합과 함께 톈안먼에서 터져 나온 인민들의 경제적 열망도 과제였다. 결국 덩은 두 가지 전략을 정했다. 하나는 사회주의를 통하여 중국 공산당을 철통같이 지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시장 경제를 토대로 개혁 개방에 전속력으로 질주하는 것이었다. '중국식 사회주의 시장 경제'가 싹 트는 순간이었다.

내부 문제에 가닥이 잡히자 외부 문제는 좀 더 쉽게 풀렸다. 덩샤오핑은 톈안먼 사건을 빌미로 내려진 미국과 서방의 경제 제재를 뚫는 길을 모색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미국의 협력을 다시 끌어내야 했다. 덩샤오핑은 곧바로 미국을 향하여 유화적인 외교 작업에 들어갔다.

우선, 일본을 통해 미국을 설득하고, 미국의 '괴뢰'라던 이스라엘과 한국의 문을 두드렸다. 그동안 '주은래 4원칙'을 내세워 이들 국가와는 절대 접촉 불가를 견지해오던 중국 공산당의 대외 정책에 일대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중국은 이스라엘과 수교하고, 한국과 수교를 전제로 무역대표부 교환에 합의하였다(1990년 10월).

톈안먼 사건이 터진 지 2년 반이 지나 소련 체제가 마침내 붕괴되자(1991년 12월), 세계의 눈은 다시 중국으로 쏠렸다. 서방에서는 곧 바로 중국 공산당의 운명을 카운트다운하기 시작하였다. 베이징의 한국대표부도 가늠할 수 없는 거대한 변화의 파도 앞에 긴장하였다. 서방 언론은 다투어 중국 공산당의 곤경을 상상력을 동원하여 떠들어댔다.

서방을 추종하는 한 국내 언론은 일면 톱 제목으로 "덩샤오핑, 이제 우린 어떻게 하나?"를 올렸다. 한중 수교 8개월을 앞두고 벌어진 일이다.

그러나 중국 내부에 대하여 서방 매스컴은 무지했다. 실제 중국 공산당 지도부는 서방의 소설 같은 보도처럼 애도하고 참담해 하지 않았다. 소련 국기가 모스크바 크렘린 광장에서 내려진 1991년 12월 25일, 베이징 자금성 옆 중난하이에 있는 중국 지도부와 고위 관료들은 사무실마다 손에 손을 잡고 환호하며 감격하였다.

중국에게 소련은 형식상 사회주의 동지 국가였으나, 실상은 처음부터 눈엣가시였다(이 점은 우리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서도 너무나 중요하다). 소련 체제가 무너지자 중국 공산당은 그동안 소련으로 인해 냉전 체제에서 겪은 온갖 부담과 설움을 털어내고 미국을 비롯한 서방과 직접 교류의 길이 확 터지게 된 것을 자축하였다.

덩샤오핑은 소련 붕괴 다음 달(1992년 1월), '사회주의 시장 경제'를 내걸고 미국에 손을 흔들었다. 그 다음은 이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중국이 '글로벌 생산 사슬 구조'라 해도 좋고, 국제 분업 구조라 해도 좋은 미지의 세계 시장을 향한 항해에 나서는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톈안먼 사건의 비극에서 시장 경제에 이르는 길은 반전을 거듭하는 극적 과정의 연속이었다. 이것이 오늘날 중국 변화의 실상이다. 이 책의 저자에게는 중국 지도부가 '살아남기에 급급한' 하청 업자로 보일지 모르지만, 그들에게는 싱가포르의 리콴유가 말하듯이 서구에 대한 '역사의 재역전'이라는 미래에 대한 원대한 비전이 있다.

저자는 톈안먼 사건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중국 지도부의 그런 의지를 읽어 내지 못하고 있다. 아니 외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책의 뿌리는 '중국 기업 현지 조사'

저자가 이 책을 집필한 배경에는 중국에서 실시한 기업 조사가 있다. 저자는 2001년 세계은행의 후원을 받아 베이징, 상하이, 청두, 광저우, 톈진 등 5개 대도시의 1500개(그 중 995개가 제조업체) 중국 기업에 대한 현지 조사를 공동으로 실시한 적이 있다고 밝히고 있다(170쪽). 여기서 조사 시점이 2001년이라는 점을 유념하자.

이 2001년이라는 시기는 미중 관계가 매우 좋을 때였다. 그 2년 전인 1999년 미국 상원에서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안(양허안)이 통과되었기 때문이었다. 미국은 중국의 WTO 가입 신청을 15년간 외면해왔다. 그러다 그들이 글로벌 경제의 최대 수혜를 누리기에 충분하다는 판단이 서자 합의를 주저할 이유가 갑자기 사라졌다.

협상의 도사들이 축제 판을 벌였다. 중국은 세계 서방 시장에 합류하는 것이 기뻤고, 미국은 거대한 중국 시장 진출 기대에 흐뭇해했다. 양국 지도부와 재계 거물들은 베이징과 워싱턴을 오가며 마오타이와 위스키를 건배하느라 바빴다. 중국의 WTO 가입은 2001년 11월 11일에 이루어졌다.

이처럼 좋은 미중 관계를 배경으로 저자는 미국의 손바닥에 있는 세계은행에서 지원을 받아서 중국 기업 조사를 실시한 것이다. (이 시기, 남북한은 미중 관계가 화기애애한 국제 환경을 민첩하게 최대한 활용하였다. 김대중 정부는 2000년 최초의 남북 정상 회담을 성사시켰다!)

다시 말하자면, 이 책의 뼈대가 만들어진 2001년은, 지난 10년간 초고속으로 질주해온 미중 경제 협력의 큰 판, 태평양을 넘는 양국 간 무역이 하루 10억 달러를 넘나드는 수준의 큰 판이 벌어지는 출발점이었다. 이 책의 전후 맥락을 보면, 저자는 이 2001년 조사에서 얻은 몇 가지 결론을 갖고 이 선전적이고 전문적인 저술을 기획하였다.

우선 조사 과정과 결과를 보면, 저자의 관점과 구상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된다. 조사에 참여한 기업들은 전자, IT, 자동차 등 첨단 기술 산업에 종사하는 기업들이었다. 조사의 결론으로 추출한 내용은 곧 바로 이 책의 핵심 줄거리이며 논리다. 조사 대상 기업들은 모두 이 책에서 말하는 글로벌 생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기업들이었다.

이들 기업들은 거의 모두 외국 기업들의 요구에 따라 부품을 생산, 조립하고, 외국 기업들이 요구하는 곳에, 요구하는 물량을 수출한다. 이들 기업들의 규모는 해외 기업들보다 규모가 영세하고, 이윤도 보잘 것 없다. 이들은 글로벌 생산 사슬에 포함되어 있으면서도 서구 기업들과는 달리 차별화된 고부가 상품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이들 기업들은 글로벌 생산 게임에서 서구 기업들이 만든 규칙에 따라 모듈화, 디지털화된 제품을 지시와 요구대로 찍어내고 있을 뿐이다. 값비싼 서구 장비는 사 들여온다.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칠 뿐, 연구 개발이나 수익금 비축은 상상하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저급 상품이 쏟아져 나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2001년의 조사임을 잊지 말자!)

외국인 직접 투자에 대해서는, 중국의 민간 기업들이 자사의 지분을 외국인에게 팔아 투자를 받아들이는 이유를 설명한다. 많은 기업들이 외국 자본 유치를 못한 국내 기업보다 상대적으로 나은 대우를 받기 위해 외국 자본을 유치한다는 것이다. 사실이다. 이 주장은 중국 국내 기업들이 1980년대부터 줄곧 제기해온 것이다.

문제점을 인식한 중국 정부도 이 문제를 시정하기 위해 외국인 투자 우대를 단계적으로 폐지하고 있다. 경제특구에서 외자 우대 조치를 전면 폐지한 것이 그 예다. (이와 대조적으로 최근 우리 한국은 경제특구 우대 조치를 착수하는 단계다. 이것은 과연 잘 하는 일인지 따져볼 일이다.)

문제는 저자의 중국 기업에 대한 인식이 2001년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중국 기업들이 서구의 하청을 받아 저부가 가치 생산으로 간신히 생존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 중국 기업은 다르다. 그들은 과거 우리처럼 단순 조립 가공 수출로 일단 종자돈을 모으고, 이를 토대로 비상 채비를 하고 있다.

그들의 목표는 생존을 넘어서 비상하는 것이다. 이점을 외면한 중국 분석은 공허하게 된다. 중국이 두렵지도 않은데 이렇게 지나가는 흔적을 찾아 두꺼운 책으로 중국을 깎아 내리려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저자는 중국의 변화에 대비하기보다는 과거 '중국 관리'의 향수에 젖어 낙관하는 경향이 강하다.

'살아남기 위해 글로벌 생산 사슬에 뛰어들어'

다음은, 이 조사를 토대로 하여 만든 목차에 따라 내용을 살펴보자. 1, 2, 3장은 서론 격이다. 미국의 자존심과 강대한 역량을 강조하면서 중국 체제를 마음껏 비하하는 대목이 되풀이하여 이어진다. 무너진 전체주의에 대한 신랄한 조롱도 반복된다. 저자는 아마도 워싱턴 컨센서스를 신봉하는 솔직한 신자유주의자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 책의 핵심은 4, 5장에 있다. 요점은, 수출 가공업 위주로 움직이는 중국은 '세계의 공장'이라기보다는 '서구의 하청 공장'이라는 얘기다. 문장이 쉬우면서도, 전문적이고, 체계적이고, 상세하다. 중국 경제를 처음 접하는 독자들에게 참고가 되는 내용이 많다. 그러나 이런 주장이 중국 내에서 1990년대 이래 오랫동안 논란이 되어온 내용으로 구닥다리다.

또 이 책은 낙후한 중국 경제가 선진 서구 경제에 종속되어 나가는 과정과 그 결과로서 나타난 긴박한 현실, 그리고 '생존을 위해 쫓기듯 서두르며 정책을 급조해온' 중국 정부의 정책 의지를 비판한다. 세계 경제의 대변혁 속에 진행된 모듈화와 디지털화가 중국 기업들을 얼마나 손쉽게 국제 분업 구조, 또는 글로벌 생산 사슬에 얽매어 놓았는지, 그 안에서 중국기업들이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처참한 한계상황에서 버텨 나가고 있는지를 설파한다.

유감스러운 것은 이 중요한 자료와 거기서 얻은 결과가 낡은 것이라는 데 있다. 현지 조사 시점이 2001년이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중국을 지금부터 꼭 10년 전인 2001년에 실시한 방대한 자료를 근거로 한 결론에 저자의 중국 이미지가 못 박혀 있지 않나 우려되는 대목이다. 저자는 이점을 의식한 듯 군데군데 최근의 기업 움직임이나 정책 변화를 땜질하듯 자주 삽입하고 있으나, 초스피드로 변해나가는 중국의 큰 흐름을 따라 잡는 데는 역부족이다. 독자들이 10년의 간극을 유념하며 중국의 변화를 읽어 내기란 혼란스러운 일이다.

6, 7장은 4, 5장의 논리 구조를 연장하면서 중국의 첨단 기술(6장) 및 에너지(7장) 문제와 정책에 날카로운 비판의 칼을 들이댄다. 중국이 첨단 기술 개발을 위해 "서구 선진국들을 희생양으로 삼고 있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거나, 중국 지도부는 "혁신 역량이 과연 무엇인지는 서구인만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는다(301쪽).

7장에서는, 말 많았던 중국의 미국 에너지 기업 인수 문제를 다루었다. 중국 국유 석유·가스 기업 중의 하나인 중국해양석유총공사(CNOOC, 크눅)가 2005년 1월 130억 달러를 제시하며 미국 석유 기업인 유노칼(Unocal) 인수를 추진하자 미국의 정부, 의회, 언론이 일제히 들고 일어나 '중국이 미국의 에너지 자산을 노린다'고 반대하였다.

미국 내에서도 지나치다는 논란을 불러일으킨 사건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저자는 미국 편이다. 그러면서도 중국이 유노칼에 접근한 이유가 유노칼의 인도네시아 지역의 가스전 때문이었음을 밝히고 있다. 이 글은 이처럼 거칠게 표현된 정확한 사실도 적지 않다. 이제 결론이다.

8장에서 저자는 중국의 독재주의가 스스로 퇴화해가면서 중국 정치가 대만을 닮아갈 것이라고 말한다. 폄하를 위한 독백이다. 다시 묻자. 과연 그런가?

두 가지 감상을 덧붙이자. 첫째, 글로벌 생산 사슬을 전제로 한 이 책의 큰 흐름은 지금도 유효하다. 그러나 지나가고 있는 흐름이지 새로운 흐름은 아니다. 둘째, 미국의 입장에서 아직 중국은 위협적인 상대가 아니라 관리 대상이다. 지난 100여 년 동안 지속되어온 미국의 관리 대상에서 벗어나려는 중국의 다양한 움직임을 요즈음 매일 보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딱 여기까지다. 미국은 중국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미국의 내로라하는 중국 전문가의 중국 인식이 이 책의 수준인 데서 여실히 드러난다. 그렇다면, 한국은? 긴 말 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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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경향신문>이 사고(?)를 쳤다. 2월 18일치 1면 머리기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이명박 전 대통령'으로 표기한 것이다.

신문의 사과로 마무리됐지만, 일부 누리꾼은 염원이 오타에 반영된 것 아니냐며 웃음거리로 삼았다. 블로그에 "대통령 퇴진까지 앞으로 며칠" 따위의 장난스런 시계를 다는 등 그가 진짜 '전 대통령'이길 원하는 이들에겐 오늘, 2월 25일이 어떻게 다가올까. '벌써' 혹은 '아직', 대한민국 17대 대통령 취임 3주년이다.

"2008년 2월 25일에 문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세 돌을 맞았습니다."

같은 날 이곳도 3주년을 맞는다. 청와대에서 불과 5분 거리에 위치한, 책방을 겸한 문화·교육 공간 '길담서원'이다. 이야기를 듣기 위해 만난 이는 직함 대신 '서원지기소년'이라는 풋풋한 닉네임으로 통하는 박성준 성공회대학교 교수다.

평화 운동의 큰 지주이자 한명숙 전 총리의 남편으로도 알려져 있는 그와 생태·환경 서가 앞에서 마주 앉아 있으려니, 이곳과 현 정부의 생일이 같다는 사실이 왜 이리도 공교롭게 느껴질까. 우연 앞에 억지 부리고 싶진 않지만, 같은 질문을 던져본다. 길담서원 3주년 '벌써'입니까, '아직'입니까?


▲ 길담서원 내부. ⓒ프레시안(최형락)

결론부터 말하자면 둘 다다. 구체적인 계획 없이 "책을 사랑하는 시민들을 위한 커다란 빈 그릇 하나 두자"는 생각에 공간을 열어 둔 게 다라는데 이 사람 저 사람 알아서들 찾아와 인문학 교실, 음악회, 미술 전시를 열고 있으니 '벌써' 이렇게 컸나 싶다. 그러나 동시에 '아직'이다.

박 교수는 "의도적으로 '문을 열었다'라고 표현하지 않고 '문을 열기 시작했다'라고 표현했다"라며 이렇게 말했다.

"인간으로 치면, 세 돌 맞은 길담서원은 이제 겨우 걸음마를 뗀 아이와 같습니다. 겨우 3년을 해보고 '이제 됐다'라든가 '우리는 해냈다'라는 말을 하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다만 이제는 뭔가가 시작되고 있다는 말을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공간

길담서원은 서울시 종로구 통인동에 위치한 20평 남짓한 작은 공간이다. 박 교수의 아이 이름 '길'과 친한 후배 아이 이름 '담'을 따서 지었다는 이름의 울림처럼 공간도 곱고 멋스럽다. 책이 빽빽이 꽂힌 키 큰 서가가 벽을 둘러싸고, 안쪽엔 탁자 몇 개가 넉넉히 떨어져 있다. 커피 내려오는 향기가 퍼지는 사이 손님들은 조용조용 떠든다.

기자가 방문한 시간엔 책과 차를 파는 정도였지만 공간의 모습은 수시로 변한다. 이 동네 문화예술인·출판인, 교사·학부모들의 사랑방이자 '저자와의 만남'이 이뤄지는 장소도 된다. 정기 프로그램도 다채롭다. 올해 1월 기준으로 월요일 저녁엔 '끄세쥬'라는 프랑스 어문 모임, 화요일엔 어른들을 위한 철학 교실, 수·목요일엔 인문학 서적을 영어로 읽는 '콩글리시 서원', 토요일엔 청소년을 위한 인문학 교실로 책방이 분주해진다.

좀 더 안쪽으로 파고들면 작은 전시 공간도 있다. '한 뼘 미술관'이다. 때마침 전시 기획자 전승보 씨가 도착해 3주년 기념 대형 그림을 걸고 있었다. 입구에 가만히 놓인 피아노도 장식용이 아니다. 지난해 초 우연히 이곳에 들른 피아니스트 한 명이 건반을 만져본 뒤 서원에서 연주를 해보겠다고 제안했단다. 그해 2월부터 '책마음샘'이란 이름의 조촐한 음악회를 열게 되었다. 그렇게 함께 한 피아니스트 몇 명이, 이제는 서원을 벗어나 소외된 지역으로 가 콘서트를 열기도 한다.

"공간이 어떤 구조를 갖고 있는가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책과 서가로 꽉 찬 공간이면 운신하기 어렵지 않습니까. 우리가 앉아있는 테이블을 다 치우면, 약 5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객석이 만들어집니다. 그렇기에 여기서 연극, 음악회를 열 수도 있고, 강좌에서 영화 관람까지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 길담서원 내 '한 뼘 미술관'. ⓒ프레시안(최형락)

큰 그릇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들

이렇게 길담서원이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장소가 된 것은, 만들 때 구체적인 청사진이 없었기 때문이다. 박성준 교수는 3년 전 통인동에 둥지를 틀던 당시 "책과 공간이 있으면 자연히 사람들이 모여들 것"이라고 말했다. 태평해 보이는 대답이지만 이러한 태도야말로 '시민'에 대한 그의 평소 철학과도 맞아떨어진다.


▲ 길담서원 대표 박성준 성공회대학교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길담서원은 처음부터 열려 있었습니다. 길담서원은 이런 거라고 정의를 내리고 여러 가지 일들을 일사불란하게 추진해나가는 방식을 취한 것이 아니라, 빈 그릇을 하나 갖다놓았을 것뿐입니다. 그래서 마음먹고 시작했던 일들이 어떻게 지속되고 있는가하는 것보다 그동안 어떤 예기치 않았던 일들이 일어났는지, 또 앞으로 누가 합류해서 어떤 일을 벌일 것인지가 중요합니다. 열린 공간 속에서 무엇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것은 상당히 두근거리는 일입니다.

열려 있으므로 먼저 참여한 사람과 나중에 참여한 사람 간에도 차이가 없습니다. 바로 지금 이 순간 길담서원의 문을 열고 들어오는 새로운 사람이라 할지라도 길담서원의 주인으로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할 수 있습니다. 모임이 생기면 초창기에 먼저 시작한 사람들이 기득권이 되고 그래서 나중에 오는 사람들이 좀처럼 자유로이 발을 디딜 수 없게 만드는 경우를 왕왕 목격했습니다. 그러면 그 모임의 생명력과 역동성이 사라지더군요. 그래서 아주 작은 모임이긴 하지만 길담서원만은 그런 길을 답습하지 말자고 생각했습니다."

큰 그릇 속에서 벌어진 예기치 않은 '사건'들은 무수히 많다. 위에서 언급한 '책마음샘' 공연도, 화요일 저녁에 진행된다는 '어른들을 위한 철학 교실'도 그 중 하나다.

이 교실의 발단은 <문화방송>의 라디오 프로그램 '타박타박 세계사'였다. 하루는 제작진이 길담서원을 방송 진행 장소로 섭외했고, 이곳에서 진행자인 사회학자 남경태 씨와 서원 회원들의 만남이 이뤄졌다. 남 씨의 강의를 들은 회원들이 그에게 다시 특강을 제안했고, 작년 봄부터 올해 초까지 8번의 역사·철학 강좌로 이어졌다. 철학 강좌라는 커리큘럼이 따로 있었던 게 아니라는 얘기다.

"시민단체의 강좌라면 달랐겠지요. 먼저 기획하는 그룹이 있고, 그들이 커리큘럼을 시민들에게 통보하면 시민들이 수강 신청을 하는 식으로 진행되지요. 하지만 길담서원의 강좌는 우발적인 만남과 시민들의 자발성에 따라 굴러갑니다. 일단 누군가 자기가 하고 싶은 걸 꺼내 놓으면, 마치 작은 눈공을 굴리면 큰 눈공이 되듯 일이 진행됩니다.

시민단체 활동을 하면서 제가 안타깝게 생각했던 건, 시민들이 활동의 주인이 되지 못했다는 점이었습니다. 언제까지 시민들은 대상이 되고, 전문가나 활동가가 주인이 되어야 합니까.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는 데에 이런 패러다임이 제 역할을 할 수 있겠는가, 이젠 방법을 좀 바꿔야하지 않겠는가, 시민들도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가, 그런 질문들을 가져왔죠. 길담서원은 여러 활동을 통해 그에 대한 확신을 할 수 있게 된 것이고요."


ⓒ프레시안(최형락)

'책방'으로 살아남기

이렇게 의미 있는 실험들을 하고 있는 것은 좋지만, 그래도 '서점 주인'으로서 수험서나 자기 계발서 한 권 들여놓지 않고 괜찮을까. 경제적으로 자립 가능한지가 궁금했다. 우려와는 반대로 박 교수는 이러한 독특한 형태의 운영 방식을 취하고 있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책방만 고집했다면 아마 견디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책방과 모임 두 날개이기에 오히려 현상 유지가 가능하죠. 언젠가 유럽 사회에서도 이미 오프라인 책방들도 책방의 기능만으론 살아남기 어려워, 중요한 모임의 장소로 진화해가고 있다는 요지의 얘기를 들었습니다. 길담서원도 바로 그런 진화 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큰돈을 버는 것은 아니지만 다행히 휘청거리지 않고 달려왔습니다. 안정성이요? 시민단체건 조그만 사업체이건, 대개 3년을 해보면 될성부른지 아닌지를 알고, 5년을 해보면 그제야 기반이 생긴다고 합니다. 다행히 3년째인 지금 '싹수'가 보입니다."

그래도 결코 책방으로서의 기능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좋은 책을 고르고 한 핏줄 책끼리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도록 배치한 세심한 배려가 묻어난다. 입구 앞 가장 잘 보이는 앉은뱅이 서가에도 베스트셀러나 막 나온 신간이 아니라 1~2달 전에 출간돼 어느 정도 평가를 거친 책들을 두었다.


▲ 길담서원 서가. ⓒ프레시안(최형락)

'안목'을 칭찬하자 그는 몸을 낮춘다. "책을 고르는 것까지 길담서원에 참여하는 시민들의 안목이라고 한다면 과장일 것"이라며 되레 출판인들과 언론인들에 공을 돌린다.

"우리나라의 출판 생태계가 어려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출판인들이 엄청나게 큰 문화적 공헌을 하고 있다고 봅니다. 그분들이 사명을 갖고 때로는 수지타산이 안 맞을 것 같은 책들도 열심히 펴내 주었기 때문에,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했을 좋은 책들을 우리말로 많이 접할 수 있게 됐습니다.

제가 생선 장수라면 그분들은 어부입니다. 그들이 폭풍우가 몰아치는 날이건 어두운 밤이건 깊은 물에 그물을 던져 펄펄하게 살아 있는 좋은 생선을 잡아주기 때문에 생선장수인 제가 열심히 팔 수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프레시안>을 포함해서 좋은 신문과 잡지들이 책 소개 코너를 통해 끊임없이 좋은 책을 소개해주기 때문에, 그 도움으로 책 정보를 비교적 쉽게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모든 책을 일일이 다 읽어보고 좋은 책을 찾아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렇게 한쪽에 출판하시는 분들, 한쪽엔 출판된 책들 가려서 소개해주는 언론 매체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 책방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내가 만일 길담서원을 열지 않았더라면…'

3년 전 인터뷰에서 그는 "올해부터 '바깥사람'이 돼 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1968년 통혁당 사건으로 13년간 옥중 생활을 했다는 의미에서, 이후 한명숙 전 총리의 대외 활동을 도왔다는 의미에서 '안사람'에 가까웠다. 바깥으로 돌아보니 어땠을까. 3년간 사적으론 어떻게 변했을까를 물었다.


ⓒ프레시안(최형락)
"반가운 질문입니다. 세 돌맞이 잔치 때 그간 경험을 토대로 한마디를 하게 되어있는데요. 어젯밤에도 어떤 얘길 할까 궁리하다가 제가 대학교 1학년 시절 영어 교과서에서 본 한 문장이 떠올랐습니다. '내가 만일 다시 1학년이 된다면(If I were a freshman again)'. 마찬가지로 내가 길담서원을 열지 않았더라면, 그럼 난 어떻게 되어있을까.

'나는 길을 잃었었다'라고, 문을 열던 당시 인터뷰에서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실제로 전 개인적 삶으로서도 사회 속 시민으로서도 나는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 길을 잃어버린 것 같은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목마른 자가 스스로 샘을 파는' 심정으로 이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길담서원의 최대 수혜자, 그게 바로 저일 것입니다.

물론, '너만 있냐. 나도다!' 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을 겁니다. (웃음) 길담과 만난 것으로 인해 삶에 변화가 왔다는 분들이 많습니다. 괄목상대(刮目相對)라고 하지요. 다시 대할 때는 눈을 비비고 봐야 할 정도로, 이 만남을 통해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겁니다. 독서가 삶에 주는 변화가 그렇습니다."

동네에도 변화가 있을 것 같았다. 길담서원을 중심으로 책도 나누고 밥도 나누는 '동네 커뮤니티'가 형성되진 않았을까. 문을 열던 당시 행정 기관과 시민단체, 문화 시설이 많고 '인(仁)으로 통(通)한다'는 뜻으로도 해석되는 통인동의 인문 지리학적 특성을 강조하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는 "아직 이 공간이 지역민들과 함께 커뮤니티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보긴 어렵다"고 솔직히 털어놓는다.

"정직하게 말해 그런 점은 미흡합니다. 다만 이런 공간이 하나의 대안 모델로서 작용하고 있다는 확신은 있습니다. 누가 농담처럼 '길담서원은 전국구다'라고 말했는데, 실제로 이런 작은 문화 공간이 생기 있게 움직이는 것에 대해, 전국에서 상당히 따뜻한 눈으로 관심을 가져주고 있습니다. 자기 동네에도 이런 공간을 하나 만들고 싶다며 많은 분들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요즘 이 '전국구'끼리 뭉치고 있다. 성균관대학교 앞 '풀무질', 대학로의 '이음문고', 서울대학교 앞 '그날이 오면', 서대문 근처 '레드북스' 등 길담서원처럼 문화·교육 기능을 겸하는 서울 시내 책방들이 한 달에 한 번씩 모임을 갖고 경험과 노하우를 나눈다. 이번 달엔 길담서원에서 모임을 가졌고 박 교수는 무엇으로든 활용 가능한 공간 배치에 대해 조언했다고 한다.


ⓒ프레시안(최형락)

그간의 경험들을 책으로 남기고 싶은 욕심은 없을까. 박 교수는 "기록은 착실하게 해둬야겠지만, 3년 밖에 안됐는데 그런 것부터 생각하는 건 좋은 자세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내실이 있다면, 언젠가는 안으로부터 나오는 기운과 향기가 결국 세상을 향해 나갈 것"이라고 확신하면서.

때가 되면 파리의 전설적인 서점에 대한 회고록, <셰익스피어&컴퍼니>(실비아 비치 지음, 박중서 옮김, 뜨인돌 펴냄)와 같은 책이 나올지도 모른다. 그 날이 오려면 "적어도 10년"이란다. 지금은 응원하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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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시민용 변화 사용 설명서"라는 부제를 달고 나온 <월드 체인징>은 이미 많이 읽힌 <녹색 시민 구보 씨의 하루>(그물코 펴냄)나 <지구를 살리는 50가지 방법>(현암사 펴냄)과 맥을 같이 한다.

지구의 물질과 에너지 순환이 개인의 삶과 얼마나 긴밀히 엮여 있는가를 밝히고, 그만큼 각자의 행동이 아주 다른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것을 환기하는 것이다. 다만 그러한 이야기들의 확대판만은 아니다. 최첨단이라 할 만한 논의와 제안들을 집대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매우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결과를 의도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는 책과 저자들의 구성을 보면 이해가 간다. 책 제목으로 쓰인 '월드 체인징'은 2003년 알렉스 스테픈이 설립한 단체이자 웹사이트(☞바로 가기)로, 지속 가능성과 사회적 혁신에 관심을 갖는 두뇌 집단을 표방한다. 과학자, 언론인, 시민운동가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이들이 참여하여 지구와 인류가 직면한 온갖 문제들을 망라하여 분석과 대안을 내놓고, 온라인상의 의견 교환으로 이를 업그레이드해 나간다.


▲ <월드 체인징>(알렉스 스테픈 엮음, 김명남 외 옮김, 바다출판사 펴냄). ⓒ바다출판사
이 때문에 <월드 체인징>과 그 웹사이트는 지금도 진화하는 집단적 미래 대처 매뉴얼이다. 이 책은 변화의 영역들을 물질, 주거, 도시, 지역 사회, 비즈니스, 정치, 지구, 미래의 범주로 나누어 기발한 아이디어를 쏟아낸다. 각 소항목은 각기 다른 필자들이 나눠 쓴 반 쪽에서 몇 쪽 분량에 불과하지만 제법 깊이가 있고 쓸모도 있다.

예를 들어 위장 환경주의를 식별하는 법, 생물로부터 배울 수 있는 다양한 기술들과 자연에 부담을 덜 주는 갖가지 소재들, 가구부터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지속 가능한 세상을 디자인 하는 노력들을 알려준다. 이용 후 분해되는 휴대전화, 가방처럼 이동이 쉬운 조립식 주택, 미래의 단백질 공급원으로서 곤충 고기 등 이미 알려져 있거나 혹은 과학소설(SF)에 등장할 법한 아이디어들을 보면 경이롭기도 하지만, 저자들이 과도한 기술 만능주의에 빠져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월드 체인징>의 많은 제안들은 세상을 바꾸는 작은 기술에 주목한다는 미덕이 있다. 고도의 기술과 자본이 필요로 하지 않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적정 기술(appropriate technology)'은 특히 사회적 취약 집단의 삶을 크게 변화시킬 수 있다. 끈을 달아 땅에 굴려서 운반할 수 있는 원통형 플라스틱 물통인 'Q드럼'은 물을 50리터나 담으면서도 쉽게 집까지 물을 가져올 수 있어서 수많은 아프리카 여성과 아이들의 일상을 엄청나게 변화시켰다.

강수량이 적은 지대에서 장대와 고운 발을 조합하여 물방울을 모을 수 있게 만든 '안개 수집기'도 참으로 기특한 물건이다. 한국에도 많이 보급된 태양열 음식 조리기나 자전거 발전기도 적정 기술의 사례로, 이 물건들이 개발도상국 벽촌으로 가면 그 상대적 유용성은 더욱 배가된다. 두어 장의 태양광 전지판 덕분에 아이들이 밤에 책을 보고, 어른들은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개벽이 일어나는 것이다.

새로운 것은 아니되 상식을 거스르는 상식 만들기도 중요하다. 도시는 농업과 양립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현재 쿠바의 수도 아바나 면적의 41%가 농토이며 여기서 생산되는 채소의 양이 쿠바 전체 생산량의 51%를 차지한다(86쪽)는 사실은 도시 농업의 커다란 가능성을 입증하는 증거다. 전력망에 물려있지 않으면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하다는 상식에서 벗어난다면 지역 수준의 소규모 재생 가능 에너지 발전도 가능하다(231쪽).

<월드 체인징>에서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은 도시에 대한 일관된 관심이다. 이들에게 도시는 해결 불가능한 슬럼과 공해의 집산지만이 아니다. 오히려 도시는 인구와 시설의 집중으로 인해 현재의 위기를 풀어낼 수 있는 기회와 자원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밀도가 높을수록 이동과 자원 이용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고, '근접성에 따른 근접성'으로 인해 친환경적일 수 있다(293쪽). 녹지를 훼손하며 신도시를 확장하기보다 '도시 내부 우선 개발(infill housing)'을 하면 주변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이 훨씬 적다. 대도시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바꾸는 일은 작은 노력으로 가장 큰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월드 체인징>의 주된 접근 방법과 변화의 수단은 소비주의에 있다. 현명한 소비자가 되어 스스로 환경 부담을 낮추고 생산자에게 책임을 일깨우고 지속 가능한 방식의 생산과 유통을 유도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해법의 전부는 아니지만 누구나 할 수 있고 가장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방식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월드 체인징>은 영리하고 현실적이게도 '정치'의 공간을 백안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치를 활용하고 목소리를 모으는 도구들을 이야기하고, '소셜 네트워크' 활용과 직접 행동을 주문하며, 미용실이 지역 사회의 허브로서 할 수 있는 역할에 눈길을 돌린다. 굳이 나누자면 비폭력 행동주의 정도라 할 노선이지만, <월드 체인징>에게 그러한 구분이 꼭 중요한 것이 아닐 것 같다. 이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고정된 노선이 아니라 현실의 결과를 만드는 극도의 '실용주의'이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것은 "클릭티비즘은 좌파 운동을 망친다"(738쪽)는 주장이다. 마케팅에 근거한 온라인 캠페인이 정치력을 '확인율'이나 '조회율'과 같다고 생각하여 애먼 경쟁만 부추긴다는 것이다. 또한 "몇 가지 링크를 클릭하기만 해도 정치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으나, 어찌 보면 인터넷 검색으로도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허상을 심어준 온라인파와 정치 운동가의 관계는 맥도날드 제품과 토종 요리의 그것과 같다"는 대목은 곱씹어볼 여지가 있다.

<월드 체인징>의 사고는 예컨대 미국 대통령 오바마에게 영향을 준 <그린 칼라 이코노미>(페이퍼로드 펴냄)의 반 존스와 매우 닮아있다. 기후 변화의 위기 앞에서 기업과 소비자, 정부 모두가 일자리와 경제 성장을 함께 해결하는 윈-윈(win-win) 전략이 가능하며, 그러한 희망을 설파하는 것이야 말로 가장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 말이다.

<월드 체인징>은 이미 그러한 변화를 선택한 대기업과 혁신적인 중소기업들, 다양한 친환경 제품과 제조 방식을 소개하며 '비즈니스'의 기회를 강조한다. 물론 <월드 체인징>은 녹색 라벨을 붙여놓고 어떠한 자세한 설명도 없거나 문의 전화에 묵묵부답인 말뿐인 환경 기업들에 주의하라는 경고를 잊지 않고 있으며, 소비자와 정부의 노력 없이는 기업이 변화할 수 없으리라는 환기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책에서 어떤 '시장주의'의 불편함을 느끼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소비자와 개인의 노력이 과연 기업의 이윤 동기와 시장 경쟁에서 비롯하는 전반적인 반생태적 경향을 극복할 수 있을까? 아무 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의식적인 소비 행위가 낫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어떤 조건 혹은 제도적 장치가 갖추어지면 기업의 행동 방향을 결정적으로 바뀔 수 있는지에 대해 이 책은 대체로 모호하며, 시장에 의존하는 해법이 갖는 위험성에 대해서도 다소 둔감하다.

탄소 배출권 거래제를 포함하는 생태계 거래권(614쪽)에 대한 기대도 그렇다. 이 항목의 저자는 탄소 거래 시장의 단점으로 체계가 복잡하다는 점, 꾀바른 거래자들이 시장을 '농락'할지도 모른다는 점, 유인책이 효력을 잃는 시점이 올지도 모른다는 것 등이 있다고 지적하고 있지만, 그것들을 실제로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생태계 거래권 구상은 개인 탄소 거래 시장(657쪽) 제안으로까지 나아가는데, 저자는 그것이 실제 작동에 난점들이 있겠지만 지구 온난화를 물리치는 일에 갖가지 기발한 접근법들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소득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저자에게는 훌륭한 소득일지 몰라도, 기후 변화의 엄혹한 현장에서 이런 평가는 너무 한가롭고 위험한 것이다.

이 책의 시장주의 경향에 대한 지적이 고답적인 좌파의 성마른 비판인지 아닌지는 현실 속에서 '실용적'으로 검토할 일이다. 다만 <월드 체인징>의 미덕과 이 책의 제안들이 갖는 유용성 못지않게, <월드 체인징>이 존재하고 활동하는 맥락도 생각해 봄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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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주간지 <슈피겔> 영문판은 8일 영국 경찰의 줄리언 어산지 체포에 대해 그가 성추행이라는 명예롭지 못한 이유로 체포된 것은 어산지에겐 흠이겠지만 그를 잡아넣도록 배후에서 영향력을 미친 미국에게는 더 큰 타격이 됐다고 지적했다. "(위키리크스 공개로) 이미 손상된 미국의 명성이 어산지가 순교자가 됨으로써 더욱 심하게 손상됐다"는 것이다.

이 잡지는 독일 언론은 어산지의 체포가 가지는 의미에 대해 분분히 토론을 벌이고 있지만 단 한 가지는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고 말했다. 그 '한 가지'란 "(어산지의 체포로 인해) 미국의 평판은 더욱 나빠지고 있다"는 것이라고 이 잡지는 전했다.


▲ 한 독일 시민이 위키리크스 외교전문을 공개한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을 집어들고 있다. ⓒEPA=연합

이 잡지는 "어산지의 체포와 이를 기꺼워한 미국의 반응은 독일 주요 일간지들의 헤드라인을 장식했고, 이 신문들은 사설을 통해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인 미국에서 정보의 자유란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토론했다"고 다소 냉소적으로 말했다.

이 잡지는 어산지의 체포가 미국 등에 의한 압력이 거세지는 와중에 이뤄졌다는 점에 주목했다.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이 어산지의 체포를 "좋은 소식"이라며 반긴 것이나 사라 페일린 전 알래스카 주지사의 '어산지를 오사마 빈 라덴처럼 추적해 제거해야 한다' 발언 등 미국 정치인들이 막말을 쏟아낸 것을 언급하기도 했다.

이 잡지는 어산지의 체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독일 신문들의 주장을 그대로 소개하며 "어산지의 체포가 스웨덴의 사법 정의를 실현한 사례인지, 그를 침묵시키기 위한 손쉬운 방법을 택한 것인지" 토론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좌파적 시각의 <베를리너 자이퉁>은 이렇게 썼다.

"미국의 명성은 위키리크스가 주도한 외교문서 공개로 인해 손상받았다. 그러나 지금 미국 정부가 모든 수단을 동원해 위키리크스에 재갈을 물리려 하는 것은 그 나라의 명성을 더욱 심하게 손상시키고 있다. 미국 정부는 그런 시도를 함으로써 정보의 자유라는, 스스로의 건국 이념 중 하나를 배반했다. 이 나라가 이런 시도를 하는 것은 냉전 이후 처음으로 정보 통제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보수적 시각의 일간지 <디 벨트>는 이렇게 적었다.

"스웨덴 검찰은 오직 어산지에게 적용된 심각한 범죄 혐의에 대해서만 그를 심문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그의 지지자들은 강간 혐의가 위키리크스 프로젝트를 손상시키기 위해 조작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스웨덴 검찰이나 그를 고소한 여성들 모두는 미국의 지시를 받은 것이 틀림없다. 지금까지는 이를 입증할 증거가 전혀 없다. 어산지는 인터넷에서의 규칙이 실제 세계에서도 적용될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지만 그는 틀렸다. 그의 체포는 현실세계에서의 법의 지배는 가혹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직까지도 말이다."

<파이낸셜타임스> 독일판은 "어산지의 체포는 하나의 스캔들이며 불필요했다. 그에 대한 체포 작전은 순교자를 만들어냈고, 그는 스스로가 정말 강간 혐의로 체포된 것이 전부인지 많은 미국 정치인들이 미국의 공적 1호로 지목한 자신을 멈추게 하기 위함인지 묻고 있다"고 말했다. 이 신문은 또 이렇게 썼다.

"어산지가 비밀문서들을 공개함으로써 어떤 범죄를 저질렀는지,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것은 미국에 대한 공격이고 <뉴욕타임스>가 공개한 것은 그렇지 않은지는 아무도 설명할 수 없다. 이미 손상된 미국의 명성은 어산지가 순교자가 됨으로써 더욱 심하게 손상됐다. 미국 정부의 소망과는 반대로 위키리크스는 대표인 어산지 없이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조지 워싱턴, 토마스 제퍼슨도 어산지 옹호했을 것"

한편 미국의 진보적 웹사이트 <커먼드림스>는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강조한 언론 자유의 원칙을 들어 어산지에 대한 적개심을 감추지 않는 정치인들을 비판했다. 미국 일간지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의 칼럼니스트 로버트 쉬어는 이 사이트에 기고한 칼럼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언론의 십자군으로서 어산지의 가치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뉴욕타임스>와 세계 유수의 언론들이 그들 신문의 첫 페이지를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정보로 채우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헌법에서 보장한 언론 자유의 원칙이 무너지고 있다는 현상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다이앤 페인슈타인 상원 정보위원장이 어산지를 간첩죄로 기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쉬어는 "신문 없는 정부와 정부 없는 신문 중 하나를 고르라면 나는 망설이지 않고 후자를 택할 것"이라는 토마스 제퍼슨의 유명한 말을 인용하며 "페인슈타인 의원이 대표하고 있는 '정부'란 바로 이런 것"이라고 비꼬았다.

쉬어는 또 미국 정치인들이 국익과 애국심을 내세워 어산지를 비난하는 것에 대해 "애국심을 가장한 기만을 주의해야 한다"는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말을 인용해 비판했다. 그는 페인슈타인 같은 정치인들은 이라크와 9.11 테러가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미국 젊은이들이 죽거나 또는 죽이도록 그들을 파병한 반면 위키리크스는 이 추악한 전쟁의 진실을 밝혔다고 어산지를 추켜세웠다.

<슈피겔> 기사 원문보기
<커먼드림스> 칼럼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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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놈들은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

하워드 진이 엮은 <미국 민중사를 만든 목소리들>(황혜성 옮김, 이후 펴냄)의 한 구절을 읽다가 며칠 전에 가리봉동 후미진 주택가를 걷던 중에 마주친 낙서가 떠올랐다.

1848년, 엘리자베스 캐디 스탠턴을 비롯한 여성 운동가들은 뉴욕 세니커폴스에서 역사적인 여성 대회를 열었다. 미국 '독립선언서'를 고스란히 인용해 가며 작성한 선언문을 읽어 내려가다가 눈길이 잠시 멈추었다.

"남성은 여성에게 가장 저속하고 무식한 원주민과 외국인에게 부여된 권한마저도 허용하지 않았다." (200쪽)

세니커폴스와 가리봉동은 공간적, 시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지만, 억압 받는 소수자가 오히려 다른 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적대에 사로잡히기 쉽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가령 1930년대에 시카고의 육류 가공 공장에서 노동조합을 조직하는 운동에서 활약한 비키 스타는 당시 노동운동의 이면을 직접 경험했다.

"여자들은 노동조합에서 몹시 끔찍한 시간을 보냈다. 남자들이 노동조합에서도 그들의 편견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 평등을 믿고 여자가 권리를 가져야 한다고 믿는 형제 중에도 등사판 인쇄를 하거나 타이핑을 하지 않는 사람이 있었다."

그렇지만 정작 노동조합에서 유급 직원을 채용할 때는 으레 남자들 차지였다. 하지만 비키 스타 같은 사람들이 앞장서서 문제를 제기하고 행동에 나서면서 서서히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 <'미국 민중사'를 만든 목소리들>(앤서니 아노브 엮음, 황혜성 옮김, 이후 펴냄). ⓒ이후
<미국 민중사를 만든 목소리들>은 무엇보다도 변화에 관한 책이다. 아래에서 바라본 미국의 역사, 또는 그 이름도 케케묵은 민중사를, 그것도 200편에 달하는 각각의 사료를 지금 들춰보는 일은 그래도 뭔가 변화에 대한 희망을 놓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의 주인공들인 아메리카 원주민과 흑인 노예, 여성과 동성애자, 노동자와 사회주의자, 민권운동가와 반전운동가 등은 모두 원래는 평범한 장삼이사들이었다.

아이티의 아라와크 족이 콜럼버스의 잔인무도한 만행 때문에 저항을 하기 시작했듯이, 북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자기들의 땅을 강제로 빼앗고 이주시키는 백인들에게 맞서 무기를 들 수밖에 없었다. 노예 신분에서는 해방되었지만 땅 한 뙈기 없이 그 전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소작인으로 변신한 흑인들과 초창기 자본주의 공장의 위험하고 끔찍한 노동 조건 아래서 고단한 삶을 이어가던 노동자들은 어느 순간 자신의 처지를 깨달았다.

인간을 피부색으로 차별하는 것이 부당한 일임을 깨달은 흑인과 백인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런 깨달음이 닥치는 순간, 사람들의 삶은 송두리째 바뀐다. 사는 게 언제나 고되고 팍팍하고, 아무것도 변할 것 같지 않은 세상이었지만,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사람을 만나고 작은 변화를 이루기 시작하면서부터 모든 것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물론 투명하게 드러나는 법이 절대 없는 억압과 차별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고, 설사 그런 현실을 깨닫는다 할지라도 일상을 조이는 현실의 무게와 거대한 체제에 맞서서 행동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1964년에 흑인 투표권 등록 운동을 지원하고 인종 차별에 반대하는 갖가지 프로그램을 진행하기 위해 열린 미시시피 자유 여름 행사에 참여한 북부의 백인 대학생은 1학년답게 향수병에 시달렸다.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학생은 속내를 드러냈다.

"내가 만약 미시시피에 사는 니그로였다면 그렇게 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어. 나는 북부 백인이기 때문에 원한다면 이 일에 언제든 참여할 수 있고, 지겹거나 절망하거나 두려울 때면 또 언제든 집으로 도망갈 수 있어. 하지만 나는 이런 북부 백인의 태도와 입장이 싫어. 그리고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나 자신을 경멸해." (695쪽)

그렇지만 1930년대 뉴욕에서 실업자 운동을 벌인 여성의 말처럼 "이런 상황을 극복하려는 사람들의 투쟁에서 바로 생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587쪽) 혼자서는 전혀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지만 "함께하면서 우리는 우리의 힘을 느꼈고 웃을 수 있었다." 바로 이런 사람들이 한데 모여 세상을 바꾸었다.

"지금 미국식 생활 방식의 일부로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것들이, 우리가 이를 요구하기 시작한 1930년대에는 혁명적인 아이디어들이었다. 우리는 실직 수당을 원했고, 주택 구호를 원했고, 학교에서 따뜻한 음식을 제공해 줄 것을 요구했고, 도시 빈민가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숙소를 제공할 것을 요구했다." (583쪽)

예전에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것들이 권리가 되고, 만인이 마땅히 누려야 할 복지가 되었다. 이런 투쟁의 과정에서 사람들은 새롭게 거듭났다. 인간의 권리를 자각하고 착취의 비밀을 간파했으며 집단의 힘을 깨달은 사람들은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변화시켰고, 역사의 빛나는 순간들을 만들어냈다. 소수의 저항은 거대한 물결을 이루었고, 행동과 연대 속에서 새로운 삶과 역사가 만들어졌다.

"파업 후 자동차 공장 노동자들은 전혀 다른 사람이 됐다. 파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여자들은 노동운동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심지어 플린트 시에서도 볼 수 없었던 전혀 다른 여자가 됐다. 걸음걸이가 달라졌고, 머리를 높이 들었으며, 자신감이 넘쳤다." (599쪽)

이 책은 이렇게 자신과 세상을 바꾼 사람들이 남긴 기록들로 가득하다. 제대로 배우지도 못한 지질한 인생들이 어느 순간 유창한 연설가가 되고 시인이나 가수 못지않은 노래를 읊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그만큼 절절했기 때문이리라.

민권 운동과 반전 운동이 거대한 물결을 이뤄 분출한 1960년대 말 이래 미국 사회는 점점 보수화되었다. 노동 운동은 이미 체제에 포섭된 지 오래였고, 신자유주의가 전면에 대두함에 따라 기업 지배는 더욱 가속화되었다. 빈부 양극화가 워낙에 고착되고, 소수 이민자가 자동적으로 하층계급을 이루는 오늘날의 미국 사회에서 민중의 목소리를 듣기란 어지간히 어렵다.

현실은 그저 답답하기만 할 뿐이고, 맞서 싸워야 할 적의 모습은 여간해서는 보이지 않는다. 지금 우리의 현실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 경제는 성장을 거듭하지만 '88만 원 세대'와 4000원 인생으로 대표되는 대다수 사람들의 삶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그들의 모습조차 보이지 않고 잔뜩 귀 기울여 듣지 않는 이상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래도 희망을 놓을 수 없는 이유는 민중의 역사가 있고 무한한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단지 조그만 양심을 지키고, 작은 신념을 고수한 이들이다. 불과 몇 명의 행동이 수백만 명의 행진으로 이어져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었다. 세상이 온통 캄캄한 어둠속 같고 아무 희망도 보이지 않을 때 전혀 의외의 곳에서 사람들이 행동한 이야기가 이 책 곳곳에 담겨 있다. 민중의 역사를 기억하는 한 낙담은 금물이다. 얼마 전 이집트에서 일어난 민주혁명과 매서운 추위 속에서 꽉 막힌 학교 당국과 싸워 결국 승리를 일궈 낸 홍익대학교 청소 노동자들을 보라.

목재 회사가 1000년 묵은 미국 삼나무를 벌목하는 것을 막기 위해 738일 동안 나무 꼭대기에서 나무와 함께 산 줄리아 버터플라이 힐은 원래 운동 같은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힐이 나무와 숲에서 배운 교훈은 엮은이 중 한 명인 고(故) 하워드 진을 기리는 말인 동시에 미국 민중사에 바치는 헌사이다.

"더 나은 세계에 봉사하며 사는 삶은 사라지지 않는 전설이다. 이는 흔적이고 이 흔적은 매일, 매 순간 우리가 내리는 결정과 행동에 따라 긍정적일 수도 있고 부정적일 수도 있다. 내가 만난 사람들 중 가장 멋진 사람은 젊건 늙건 상관없이 선한 대의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내가 본 사람 중에서 누구보다 빛났고, 가장 아름답고 당당하고 감동적인 사람들이다.

그들은 가장 부자인 사람보다 힘이 세고, 어떤 모델보다 아름답다. 그들의 아름다움과 힘이 그들의 몸을 통해서 생명력 저 깊은 곳에서부터 울려 퍼지고 빛나기 때문이다. 나는 모델이나 남녀 배우, 또는 백만장자 앞에서는 절대로 무릎을 꿇지 않는다. 하지만 공통의 선을 위해서 일하거나 행동하는 사람에게는 절하고 싶다. 그것이 명예다. 돈이 명예가 아니다. 삶에서 진짜 가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명예다." (1039쪽)

책은 하워드 진이 <미국 민중사>를 집필하면서 참고한 중요한 사료를 <미국 민중사>의 각 장별로 묶고 간단한 배경 소개를 곁들인 구성이다. 일기에서부터 선언문, 신문 기사, 편지, 구술 회고, 탄원서, 시 등 다양한 사료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미국 민중사>(유강은 옮김, 이후 펴냄)를 먼저 읽는 게 낫겠지만, 이 책을 먼저 읽으면서 자기 나름대로 미국 민중사를 재구성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생생한 1차 자료를 읽으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는 재미가 쏠쏠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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