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영희를 아는 이와 그와 무관한 이

그가 묻혔다. 하얀 뼛가루가 되어 흙으로 돌아갔다. 말년에 그의 육신을 짓눌렀던 질고와 병마는 자취를 감추었다.

남은 이들에게는 아쉬움의 크기가 한없다. 한때 이 시대의 사상적 지진을 가져온 저 도저한 의식의 냉철함과 물러서지 않는 용기, 그리고 따뜻한 인간애를 다시 접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그가 남긴 의식의 자산은 우리의 영혼과 육체에 스며들어 역사의 생명을 얻고 있다. 그 어떤 강하고 무서운 권력자라도 앗아갈 수 없는 보이지 않는 무형의 차원이 되어서 말이다.

그렇지 않은가? 리영희, 그는 이 땅에 더는 존재하지 않으나 영원히 존재한다. 그의 삶과 그의 생각, 그의 실천을 따르는 행렬은 끊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개인이 아니라 역사 그 자체였고, 이제 영원히 잠들었으나 또한 한순간도 잠들지 않고 깨어있는 시대의 파수꾼으로 남아 우리를 견고히 일으켜 세우고 있다.

김삼웅의 <리영희 평전>(책보세 펴냄)은 리영희가 어찌해서 사라질 수없는 존재인지 말해준다. 뿐만 아니라 고인이 된 리영희의 삶이 어찌해서 추도의 대상이 아니라 역사의 실천으로 환생시켜야 할 사건인지를 절절한 목소리로 증언한다.


▲ <리영희 평전 : 시대를 밝힌 '사상의 은사'>(김삼웅 지음, 책보세 펴냄). ⓒ책보세
"리영희"라는 이름은 이제 우리의 역사에서 "지식인" 그 자체가 되었다. 다시 말해 리영희 이후 우리는 지식인은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을 갖게 되었으며, 그 대답은 지식인을 자처하는 모든 이들에게 자기를 비추는 거울이 된 것이다. 그 거울 앞에 서는 이들 가운데 누군가는 그 거울을 깨버리고 싶을 것이며 누군가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깨버리고 싶을 것이다. 한 걸음 더 나가보자면, 그건 단지 거울 속의 자신을 보는 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리영희를 따를 것인가, 리영희와 결별할 것인지를 묻는 일이 된다.

그런 까닭에 김삼웅은 책의 앞머리에서 "도스토예프스키를 아는 자와 그와 무관한 자"로 인간을 분류하는 러시아의 사상가 베르자예프의 말을 인용한다. 그와 다를 바 없이 이 나라에서 현대사의 가파른 질곡을 넘어온 이들은 "리영희를 아는 이와 그와는 무관한 사람"으로 나뉜다는 것이다. 이로써 리영희는 정의와 양심의 역사를 가르는 경계선 그 자체가 되었으며 그와 한편이 되는가 아니면 그와 대치하는 적군이 되는가로 그 삶의 역사성은 판명되게 되었다.

김삼웅이 쓴 평전이기에…

우선 무엇보다도 <리영희 평전>이 김삼웅의 손에서 나왔다는 것은 매우 다행이자 소중한 일이다. 그는 언론인이자 역사학자이며 민족사의 흐름을 꿰뚫고 있는 기개 높은 지식인이다. 그의 저술 목록 몇 가지만 들어도 김삼웅과 리영희의 만남이 가지는 의미는 뚜렷하게 새겨진다. <단재 신채호 평전>, <백범 김구 평전>, <심산 김창숙 평전>, <녹두 전봉준 평전>, <안중근 평전>, <약산 김원봉 평전>, <장준하 평전>, <죽산 조봉암 평전>, <만해 한용운 평전> 그리고 <김대중 평전>에 이르기까지 그의 관심사가 어디에 집중되어 있는지 우리는 확인할 수 있다.

김삼웅은 독립기념관장을 지냈을 뿐만 아니라 <친일 인명 사전> 편찬위원회 자문위원, 제주 4·3 사건 희생자 진상 규명 및 희생자 명예 회복 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하면서 민족사의 정의로운 정통성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치열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바로 이러한 사실도 함께 떠올리면 그런 그의 시야에 포착된 리영희의 삶은 어떤 의미와 가치를 가지고 그려질 것인지 충분히 상상이 갈 것이다.

한길사에서 나온 <대화>가 리영희와 임헌영 사이의 대화 기록을 리영희가 2년을 넘게 손질하고 또 손질하면서 그의 육성이 직접 배어나온 것에 가치를 둘 수 있다면, 김삼웅의 <리영희 평전>은 일반 독자들은 물론이고 그를 잘 알지 못하는 젊은 세대들을 위해서 특별히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리영희의 인생 역정과 그 철학의 좌표가 다양한 자료를 동원해서 쉽고 간결하게 잘 정리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김상웅은 리영희가 루쉰을 스승으로 삼아 쉽고 간결한 문체와 구체적인 증거 및 자료를 통해 진실을 입증해나가는 자세를 우선 주시한다. 김삼웅은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리영희가 거대한 우상 집단과의 진리를 위한 싸움에 동원한 무기는 논증이었다." 여기에는 거짓과 불의에 맞서는 용기는 필수다. 송건호의 증언은 이렇다. "언론인 리영희는 결코 가면도 쓰지 않고 거짓말도 안 한다. 그는 자기가 생각한 대로의 말을 숨김없이 발표하는 사람이다."

우리의 전위이자 후방인 리영희

리영희를 접해본 사람들마다 아는 일이지만 그는 에둘러 말하는 법이 없다. 누가 듣고 읽어도 잘못 알아듣거나 잘못 읽을 수 없는 분명한 방식을 선택한다. 그러니 권력은 그를 미워할 수밖에 없다. 환갑을 맞이한 리영희에게 고은은 다음과 같이 헌사를 바친다.

"사상의 은사/시대의 선구자/60년대 70년대 80년대 대표적 지성/아 이 한반도의 살아있는 정신/불/얼음/우리들의 전위와 후방"

여기서 마지막 절 "우리들의 전위와 후방이라는 표현이야말로 리영희의 역사적 역할을 정교하게 압축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그는 누구보다 앞장서서 최전선을 뚫어냈고, 그가 있기에 또한 우리는 든든했다. 그는 진실과 거짓의 싸움터에서 야전사령관이자 후방 지원 부대를 동시에 감당해주었기 때문이다. 김삼웅이 이 평전을 집필하는 시기는 이명박 정부의 악행이 더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면서 이 나라 민주주의의 위기가 누구의 눈에도 분명해진 상황이었다. 그래서 그는 리영희의 다음과 같은 말을 책 속에 수록한다. 이 발언은 2009년 7월 1일 조계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열린 인권실천시민연대 창립 10주년 기념 행사장 강연의 한 대목이다.

"지난 1년 반 동안 이명박 통치 시대는 비인간적, 물질주의적, 반인권적 파시즘 시대의 초기에 들어섰다. (…) 역사는 이뤄진 열매 위에 또 하나의 큰 열매가 열리는 식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정신을 늦추면 언제든지 역전되는 것이다. (…) 현재 이명박 정권의 물질밖에 모르는, 인간이 지향하고 숭배해야 할 가치를 오로지 돈에만 두는, 그리고 인간의 존재 가치가 말살되어가는 이런 정권을 지난 40년의 고생 끝에 받아들인 것은 우리 자신의 책임이다. 이는 우리의 실수이고 개개인의 판단 착오이고 역사의식의 잘못이었다. (…) 짧은 10년이지만 우리가 이룩했던 공민으로서의 권리를 되찾기 위한 필사적인 불퇴전의 노력이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지금의 그의 날이 선 육성이 쟁쟁하게 들리고 있는 것만 같다.

변방의 인생에서

평안북도 운산에서 1929년에 태어난 리영희의 삶은 한마디로 "변방의 인생"이었다. 인문계 학교에 진학하고 싶어 했던 그는 집안 사정으로 공립학교에 진학했고, 이후에는 공부하고 싶은 마음에 국비 장학생 지원이 있던 해양대학에 다닌다. 그러나 이 모든 젊은 날의 시간은 그에게 지적 충족감을 주지 못했으며 전쟁은 그에게 통역장교라는 역할을 맡김으로써 훗날 미국에 대한 정밀한 비판을 가하는 체험을 제공해준다. 변방의 시절이 그를 역사의 중심에 밀어 넣었던 것이다.

그가 군인 시절의 한 일화는 그가 평생을 살아가는데 좌우명처럼 박히는 충격을 준다. 지리산 빨치산 토벌 작전 이후 차려진 진주 기생집에서 2차를 약속한 기생이 사라지자 술김에 격분한 리영희는 그 기생을 찾아가 옆에 찬 권총을 하늘을 향해 발사한다. (그는 명사수로 이름이 높았다.)

리영희는, 총소리에 기겁한 '논개'가 허둥지둥 뛰어내려와 살려달라고 애원하리라 여겼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녀는 툇마루에서 자세 하나 흐트러뜨리지 않은 채 오연히 서서 그를 내려다 볼 뿐이었다. 그는 갑자기 두려워졌다. 그녀는 그를 똑바로 내려다보면서 한참 만에 비로소 입을 열었다.

"젊은 장교님, 아무리 하찮은 기생이라도 그렇게 흐트러진 마음과 몸으로 만나는 일은 없습니다. 당신들은 진주 기생을 잘못보고 있어요. (…) 젊은 장교님, 잘 들어두세요. 아무리 미천하고 힘없는 사람이라도 총으로 굴복시키려 들지 마세요. 사람이란 마음이 감동하면 총소리를 내지 않고도 따라 갑니다. 당신도 차차 사람과 세상을 알게 될 겁니다. 돌아가세요. 언젠가 다시 만날 기회가 있을 겁니다."

리영희는 어떻게 반응했을까? 그는 이 기생 앞에서 전 존재가 산산이 무너져 내려 앉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그녀에게 진심으로 사죄하고 발을 돌려 싸리문을 젖히고 나왔다는 것이다. 총으로 굴복시키는 일이 본업인 군인이었던 리영희는 이후 총이 아니라 펜으로 세상의 양심을 찌르는 언론인이 된다.

그가 언론인이었을 때 놀라운 것은 나이 30대 초반에 <워싱턴 포스트>에 익명의 통신원으로 활약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훗날 자신의 영어 원고를 읽고는 자신의 당시 실력에 스스로 감탄하기까지 한다.

"그 당시 <워싱턴 포스트>에 보낸 글들을 지금 다시 읽어보면 스스로 감탄한다. 감각과 시각이 건전했을 뿐만 아니다. 영어로 생각하면서 영어로 작성해나간 문장이 놀라운 만큼 좋다."

잠시도 게으르지 않았던 지식인

이후 우리는 그가 베트남 전쟁의 진실을 비롯해서 권력의 거짓을 밝혀내는 일을 하면서 비판적 지식인의 소명을 다해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 언론인에서 교수가 되지만 그는 무수히 되풀이 되는 해직과 투옥, 가난과 건강의 위협 속에서도 현실에 대한 발언을 멈추지 않는다. <전환 시대의 논리>, <우상과 이성>,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8억 인과의 대화>, <역정>, <스핑크스의 코> 등 그의 글과 책은 끊임없이 화제를 낳았고 정치적 긴장과 지적 충격을 연달아 주었다.

영어와 일어는 물론이고 불어와 중국어에도 노력을 기울였는데, 그는 장 자크 루소의 <참회록>과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을 원서로 읽어낸 것을 뿌듯하게 여긴다. 잠시도 지적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은 "이성의 불꽃"이었던 것이다.

그런 한평생을 지낸 그도 세월과 늙음과 병마 앞에서 자신의 삶을 거두어야 할 때가 다가온다. "지금까지 살아온 역정에 후회는 없습니까?"라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내 개인으로서는 할 만큼 했다. 1인분이 아니라 2인분의 역할을 했다. 하지만 집사람과 가족에게 너무나 많은 마음의 고통을 안겨줬다." 그런 희생의 대가 위에서 우리는 진실에 눈을 뜨는 소중한 자산을 갖게 된 것이다.

거의 600쪽에 이르는 책을 자기도 모르게 단숨에 읽고 나면 우리는 한 시대의 거대한 사상의 은사가 살아온 역사를 나 자신의 역사로 되새기는 감격을 얻게 된다. 그의 삶을 잘 알고 있는 동시대인만이 아니라 뒤이어 오는 젊은 세대들에게도 이 감격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더군다나 독선과 폭력, 그리고 탐욕으로 무장한 이명박 정권이 우리의 현실을 쥐락펴락하고 있는 마당에 그의 삶을 성찰적으로 되짚어 읽는 것은 우리에게 뜨거운 역사의 에너지가 될 것이다.

리영희, 그는 살아서 우리의 스승이었고 죽어서 우리의 깃발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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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책이다. 두 문화의 충돌을 이토록 생생하게 다룬 책을 일찍이 보지 못했다. 문화 충돌이라니, 얼마나 추상적인 주제인가. 그런데 간질을 앓다가 식물인간이 된 한 소녀의 이야기를 통해 손에 잡힐 듯한 이야기로 빚어냈다.

글재주가 남다르리라는 것은 익히 예상하고 있었다. <서재 결혼 시키기>(정영목 옮김, 지호 펴냄)의 앤 패디먼이 지은이다. 그렇다고 그이가 이토록 뛰어난 논픽션을 써내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전문 용어가 넘쳐나고 특정 집단의 우월의식이 걸림돌이 될 분야를 능수능란하게 다루었다. 논픽션 작가를 꿈꾸거나, 탐사 보도에 관심 있는 기자라면 만사 제치고 읽어보아야 할 책이다. 물론, 이 책을 먼저 보아야 할 이는 의대생이거나 의사일 터. 정말, 이 책이야말로 의대의 필독서가 되어야 마땅하다.

9년간의 전쟁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1982년 10월 24일, 태어난 지 고작 석 달 된 한 몽 족 소녀가 MCMC(머세드 커뮤니티 의료 센터) 응급실로 실려 왔다. 부모는 영어를 할 줄 몰랐다. 병원에 통역해줄 사람은 없었다. 아이가 왜 병원으로 왔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증상은 기침을 하고 호흡이 거칠다는 것이었다.

당직 의사는 차트에 이렇게 기록했다. 기관지 폐렴 또는 기관지염 초기. 불행의 시작이었다. 라오스에서 살던 몽 족인 리 부부의 열네 번째 아이인 리아는 심한 발작 증세를 보여 병원으로 갔다. 그러나 의사들은 이를 알 수 없었다. 1983년 3월 3일, 세 번째로 응급실에 실려 왔을 때는 발작이 멈추지 않은 상태였고, 영어를 좀 할 줄 아는 사촌이 같이 왔고, 가정의학 전공의가 있었다. 그렇다면 문제는 다 해결된 것일까?


▲ <리아의 나라 : 몽족 아이, 미국인 의사들 그리고 두 문화의 충돌>(앤 패디먼 지음, 이한중 옮김, 윌북 펴냄). ⓒ윌북
몽 족은 사람이 탈이 나면 가장 큰 원인이 혼을 잃어서라고 여겨왔다. 사람에게 혼이 몇 개 있느냐는 설왕설래했다. 그럼에도 "건강과 행복을 위해 꼭 있어야 할 생명의 혼을 잃기 쉽다는 점에 대해서는 모두 동의한다". 혼이 몸에서 떠나버리는 것은 "화나 슬픔, 두려움, 호기심, 방랑벽 때문"이다.

신생아는 혼을 잃을 가능성이 더 크다. 어찌 그러지 아니하겠는가. 그 혼은 아직 이승에 굳건히 뿌리내리지 못했으리라. 막 떠나온 세계와 살아있는 이들 사이에 애매하게 놓여 있으니 말이다. 아이가 슬프거나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면 혼은 떠나버린다. 심지어 "큰 소리가 나도 겁이 나서 떠나버릴 수 있다." 리 부부는 그렇게 믿었다. 리아의 언니인 여가 아파트 현관문을 세게 닫은 다음에 사단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낯설지만은 않은 생각이다.

그러나 서양 의학에서 이런 동양의 전통적 사유 방식은 이해할 수도 없고 받아들일 수도 없는 것이다. 그들에게 리아의 증상은, 최초 응급 상황에서 정확히 알았다면 치유 가능한, 간질병에 불과했다. 적절한 응급 조치와 지속적인 치료, 그리고 적절한 투약으로 증상을 완화하거나 치유할 수 있다.

의학 지식을 벗어난 것은 틀린 것이며, 치료를 불가능하게 한다고 여겼다. 전통적인 치유 방식이나 샤먼의 의례는 한낱 미신에 불과했다. 오히려 이런 조치들이 증상을 악화시킬 뿐이라고 여겼다. 이런 관점을 리 부부는 물론, 몽 족이 받아들일 리 없다. 난민 시절부터 서양 의학에 불신이 싹튼 바 있다. 불쾌하고 불안하고 불만으로 가득했다. 갈등의 불씨는 여기서 비롯한다.

앤 패디먼은 리아와 관련한 자료를 뒤적이고, 이를 바탕으로 치료에 참여했던 의사와 간호사를 심층 면접한다. 당연히 리 부부와 몽 족 사회도 조사한다. 의료 문제를 둘러싼 사건을 다루고 있는 만큼 어려운 내용으로 가득 차 있으리라 여기기 십상이다. 그러나 이런 선입견은 금세 깨진다. 조금 과장하자면 메디컬 드라마보다 쉽고 흥미롭다. 흡인력이 강해 책을 좀처럼 손에서 떼기 어렵다. 그러면서도 몽족 아이와 미국인 의사들 사이에 벌어진 첨예한 문화 충돌의 본질을 놓치지 않는다. 그 갈등이 최고조에 이른 대목은 '5장 지시대로 복용할 것'이다.

리 부부의 처지에서 보자면, 약을 지시대로 먹일 수 없었다. 약의 종류가 너무 많았고, 처방이 자주 바뀌었다. 정확한 복용량을 지키는 것도 어려웠다. 단지 영어를 못한다는 것만이 이유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더욱이 약을 먹으면 후유증이 심하게 나타났다. 약이 아이를 낫게 하기보다는 죽게 한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지시대로 약을 먹일 수 없었다. 아예 안 먹이기까지 했다. 대신, 전통 의학에 대한 의존은 높아졌다. 의사들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계속 응급실로 실려 왔고 차도는 없었다. 그 이유가 약을 제대로 먹이지 않은 것에 있다고 보았다. 극단의 조치를 내렸다. 그대로 두면 간질 중첩으로 리아가 죽을 수도 있는지라 6개월간 양육권을 박탈했다.

이 극단의 대결은 리아의 대발작으로 파국에 이른다. 1986년 11월 25일 리아는 열여섯 번째로 입원했고, 생명이 위험한지라 밸리아동병원으로 옮겼다. 다시 MCMC로 돌아왔을 때는 혼수상태로, 의학적으로는 사망이 선고된 셈이었다. 앤 패디먼이 당시 치료에 참여했던 의사들을 인터뷰할 때 리아가 사망한 것으로 여기는 듯한 증언을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리아는 어떻게 되었을까?

"의사들은 리아가 금방이라도 죽을 줄 알았지만, 부모는 보란 듯이 리아를 살려냈다. 단, 죽지는 않았지만 사지마비와 뇌성마비에 대소변을 못 가리고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였다. 이른바 '식물인간' 상태였던 것이다."

수많은 질문이 터져나올 만한 결론이다. 누구 때문일까? 밸리아동병원의 허친슨은 놀랄 만한 증언을 한다. 리아의 뇌가 망가진 것은 폐혈성 쇼크 때문인데, 이것은 지속적으로 투약했던 데파킨이 면역 체계를 약화시켜 리아가 녹농균에 감염된 탓으로 볼 수 있단다. 무슨 말인고 하니, "문제는 리아의 가족이 처방대로 데파킨을 착실히 먹였다면 오히려 패혈성 쇼크가 오도록 도와준 셈일 수 있다는 점"이다.

리아가 식물인간이 된 것은, 상식에 기초한 예상과 달리, 가족 탓이 아니다. 그렇다면 누가 옳았고, 어느 쪽이 그른 것인가? 리아는 전적으로 미국 의료 시스템 탓에 식물인간이 된 셈인가? 그럴 리는 없을 터다. "리 부부가 계속 라오스에 살았더라면 리아는 계속되는 대발작으로 영아기나 유아기를 넘기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미국의 의료 시스템이 리 부부와 리아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힌 것은 분명하다.

이제 또 다른 질문을 던져야 한다. 리아의 건강을 되찾을 수 있는 대안은 있었는가, 라고. 앤 패디먼에 따르면, 있었다.

"프란체스카 파는 MCMC에서는 대체로 하지 않던 것, 특히 리아에 대해서는 더욱 안 하던 것을 여러 가지 시도했기 때문이다. 먼저 그녀는 가정 방문을 했다. 그리고 유능하고 적극적인 통역자를 대동했고, 단순한 통역자(즉 열등한 이)가 아니라 문화 중개인으로(개념상으론 대등하나 이 경우엔 우월한 이로) 대우했다. 또 그녀는 그 가족의 신념 체계 안에서 소통했다. 교섭하기 위해 자신이 신념 체계(이를테면 여성주의적 입장으로 볼 때 아내 대신 남편을 상대해야 한다는 불쾌함)를 주장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녀는 위협하지도 비판하지도 가르치려 들지도 않았다. 서양 의학에 대해선 거의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계획에 의존한 게 아니라 면담 시의 직감에 따랐던 것이다. 더구나 프란체스카 파는 몽 족을 '좋아하기도' 했다. 아니, 사랑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또 다른 사례도 있다. 1980년대 중반 프레즈노의 센트럴 캘리포니아 다민족 서비스 센터는 몽 족 샤먼을 고용한 적이 있다. 샤먼들은 250명에 이르는 환자를 치료했는데, 미국인들이 알면 경악을 금치 못할 치료가 시행되었다. "악귀 쫓는 의식, 이승과 저승을 나누는 의식, 큰 전자레인지 위에 사는 신령을 달래는 의식이 포함된 18가지의 치유 의식"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결과는? 때로는 의식 자체만으로 효과를 보았고, "그렇지 않은 경우라도 일단 의식이 거행되고 나면, 의뢰인은 정식 의료 서비스 제공자의 수술이나 약 같은 의료 행위에 대한 권고를 더 잘 받아들였다"고 보고되었다.

마지막 질문이 남아 있다. 그런데 왜 몽 족인가? 앤 패디먼은 결코 이 문제의식을 놓치지 않았다. 몽 족은 문화 충돌의 희생자이기 전에 베트남 전쟁의 희생양이었다. 여기에 얽힌 역사적 사실과 몽 족의 역사와 문화는 리아 사건을 이해하는 데 굉장히 중요하다. 그러기에 <리아의 나라>는 홀수 장은 리아 이야기에, 짝수 장은 몽 족 이야기에 할애되어 있다.

이 책은 미국에서 벌어진 어느 소수 민족의 불행한 이야기에 그치지 않는다. 당장, 개항기에 우리 선조가 서구 문명과 충돌하며 벌였을 고통스러운 저항과 힘겨운 적응의 이야기를 떠오르게 한다. 전통과 서구 문명이 맞서며 벌였던 숱한 일화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 기억이 값진 것은, 오늘 우리가 다문화 사회를 맞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슬프고 아픈 역사를 지닌 우리는, 과연 다름과 틀림의 차이를 알고, 다른 문화를 존중하고 있는가? 이주노동자들이 박해받고, 다문화 가정이 차별받는 현실을 직시하노라면, 새로운 질문이 떠오른다. 우리가 또 다른 리아를 낳고 있는 것은 아니가?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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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세계 경제는 2008년 금융 위기의 여파로 여전히 휘청거리고 있고, 한국 경제는 청년 실업과 사회 양극화 속에서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다.

이런 와중에 우리 사회에서는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자그마치 60만 부나 팔려나가면서 '정의' 열풍을 불러 일으켰다. 한편,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을 생각한다>와 장하준 교수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도 십수만 부가 팔리면서 올해 우리 책동네를 뜨겁게 달구었다.

위기의 세계 경제와 양극화 고통 속의 한국 사회, 그리고 '정의'는 서로 관계가 있는 것일까? 정의와 도덕, 그리고 경제는 상관이 있을까 없을까?

"있다! 그것도 밀접하게"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정의와 책임이야말로 최고의 돈벌이 수단이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바로 오랫동안 사회책임투자(SRI) 운동을 펼쳐오고 있는 경제학자 김영호 유한대학교 총장이다.

김영호 총장에 따르면,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이후 신자유주의는 "좀비"가 됐다. 사실상 죽었지만 아직도 현실 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의미에서. 김 총장은 신자유주의가 세계 경제의 한 요소로는 살아남겠지만 구조로서의 역할은 끝이 났다고 진단했다. 2008년 금융 위기로 신자유주의적 세계 경제는 파탄을 맞았지만 아직 새로운 세계 경제의 틀은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다만 그는 앞으로 세계 경제에서 과도한 금융 부문에 대한 일정한 규제가 합의될 것으로 예상했다. 내년 프랑스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 회의에서 토빈세가 채택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또 앞으로 기업은 물론 정부, 소비자에게 사회와 지구 환경에 대해 책임을 지는 책임 자본주의의 시대가 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세는 "도덕적인 경제, 즉 사회 책임 자본주의"다. 정의와 책임이 밥 먹여주는 시대가 와야 한다는 것이다. 정의와 책임이 어떻게 밥을 먹여주지? 너무 이상적인 것은 아닐까?

지난 3일 유한대학교에서 김영호 총장으로부터 올해 책동네의 화두였던 '정의'와 '도덕' 그리고 '경제'에 대해서 들었다. 인터뷰는 박인규 프레시안 대표가 진행했다. <편집자>


▲ 김영호 유한대학교 총장(오른쪽). ⓒ프레시안(최형락)

"보수 정권의 부패가 정의 열풍 불렀다"

프레시안 :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60만 부 이상 팔렸다. 그의 다른 책 <왜 도덕인가>(안진환·이수경 옮김, 한국경제신문 펴냄)도 '정의' 열풍 덕택에 수만 부가 나갔다고 한다. 정의 관련 서적이 한국에서 이토록 폭발적인 반응을 보인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보나?

김영호 : 정의 관련 서적이 그 나라의 부패 정도에 반비례해 많이 나가는 것 아닌가 싶다. <정의란 무엇인가>가 일본에서는 20만 부가 팔렸다고 들었다. 샌델이 도쿄대학교에 와서 강의할 때 2000명이 모였다. 경희대학교에서는 4500명이 모였다. 일본보다 2배 이상 모인 셈이다. 그만큼 한국이 부패가 심하고 정의에 대한 목마름이 크다는 것을 방증한다.

정의 관련 서적이 열풍인 이유는 한국에 보수 정권이 들어선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보수 정권에는 체질적인 부패 문제가 있다. 부패에 대한 잠재적인 근심이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 것 아닌가 싶다. 정의 열풍은 보수 정권이 공정 사회 담론을 들고 나오게 하는 전환점을 만들었다.

프레시안 : 보수 정권이 '공정 사회'라는 화두를 내건 배경에 <정의란 무엇인가>가 한 역할을 했으리라고 봤다고 했다. 하지만 그 이후에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 딸의 특채 문제 등 이른 사회지도층의 특혜문제가 불거지면서 한국이 공정 사회가 아니라는 판명이 났다.

김영호 : 이명박 대통령이 공정 사회를 들고 나올 때 다소 위화감을 느낀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보수 세력은 필요하고, 보수 세력이 뿌리 깊은 부패 체질을 극복하고자 공정 사회를 평하고 나온 것은 바람직하다. 그렇게 가도록 격려하고 장려하는 것이 중요하다. 실제로는 공정하지 않더라도 공정 사회를 표방한 것만으로도 진전이 있다고 볼 수 있다.

프레시안 : '정의' 열풍의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어쩌면 우리 사회의 극심한 양극화와도 연관이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노무현 정부 말기인 2006년부터 한국 사회에 '양극화'라는 문제가 본격 제기됐고, 청년 실업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정의, 도덕, 경제가 서로 관계있는 것 아닌가?

김영호 : '정의 열풍'은 신자유주의가 가진 일종의 정의의 결핍과도 관련이 있다. 한국 사회는 부패 고리가 존재한다. 재벌, 관료, 정치권력, 법조인 그리고 국제 투기 자본 간의 부패의 연결 고리는 우리 사회 전체를 휘감고 있다. 국민 세금 위에서 잠자는 관료, 군경, 국영기업체 임직원도 그 연결 고리의 일부이다. 전국의 도시 근교와 관광지에 독버섯처럼 무성한 러브호텔도 그 부패 구조의 또 다른 측면이다.

아일랜드 금융 위기 사태는 정치권력, 외국 투기 자본 세력, 금융 기업 간의 부패의 연결 고리가 곪아터진 것 아닌가.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을 생각한다>(사회평론 펴냄)가 광고 하나 안 싣고도 두어 달 만에 약 15만 부가 팔렸던 현상은 <정의란 무엇인가>가 많이 팔린 맥락과 같다. 그 책은 삼성이라는 대단한 기업의 지배 구조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커튼 속에 가려있던 문제점을 과감히 고친다면 삼성에게 정의 혁명이 될 것이다. 요즘 <위키리크스>가 보여준 국제 외교의 커튼 속 풍경은 정치지도자들이 아무리 덮으려 해도 스마트폰, 트위터와 같은 SNS에 의하여 덮어버릴 수 없을 것이다.

2008년 세계 금융 위기의 수습 과정의 제일 큰 문제가 금융 위기를 일으킨 주범인 월가의 금융 자본가에게 국민 세금을 왕창 줬다는 점이다. 범인들에게 벌을 준 것이 아니라 상을 줬다. 이것을 스티글리츠는 '짝퉁 정의'라고 했다. 이러한 아이러니 속에서 정의란 개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복지 국가'라는 대안 철학을 세운 롤스

프레시안 : 김 총장께서는 70년대 존 롤스의 정의론에 깊이 빠졌다고 했는데 샌델의 정의론과는 어떤 차이가 있나.


ⓒ프레시안(최형락)
김영호 : 솔직히 샌델의 책을 처음 접했을 때는 시니컬한 마음으로 읽었다. 두 번째 다시 정독했지만 여전히 나는 롤스가 좋다는 결론을 내렸다. 센델은 정의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샌델의 책이 롤스를 비롯한 정의론 전반에 대한 열풍을 부활시켰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본다. 센델이 일상적인 일들을 정의론의 철학과 접목시키는 훈련을 하도록 한 것은 좋은 일이다. 그는 "철학의 가장 좋은 학교는 저녁 식탁이다"라고 말했다.

샌델 덕택에 올해 정의론 관련 책이 많이 나와서 좋다. 한국에서는 김우창 씨가 <정의와 정의의 조건>이라는 책을 냈고, 지난 가을 낸시 프레이저가 <지구화 시대의 정의>라는 책도 나왔다(최근 국내 번역 됐음). 정의론은 대체로 공동체 문제를 논하다 보니 일국주의에 갇히는 경향이 있다. 샌델도 그렇다. 하지만 낸시 프레이저는 '지구화 시대'를 말해서 새로웠다.

1970년대 존 롤스의 신화에 빠졌다. 롤스의 <정의론>은 깊이가 있어서 샌델의 책처럼 그때그때 붐을 타는 책이 아니었다. 롤스는 서서히 많은 관심을 끌었다. 당시 철학적 조류는 주로 유럽에서 이끌었고 미국은 철학적 기반이 없었다. 그런데 서양철학의 위대한 전통을 잇는 롤스가 미국에서 등장했다. 복지 개념이 등장한 케인스 이후의 자본주의에 걸맞은 철학이 나타난 것이다. 과거 정의론의 전통을 이으면서 현대 자본주의에 적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롤스의 정의론은 독보적이었다.

자본주의가 발현하면서 벤담의 공리주의적 정의론이 등장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시장 경제와 맞아 떨어지는 정의론이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은 자본주의와 맞아 떨어진다. 공리주의에 따르면 개인의 인권이나 개성보다 부르주아 사회의 전체 행복이 더 중요하다. 이 논리가 신자유주의까지 뒷받침했다. 벤담의 철학이 나온 직후부터 칸트는 벤담을 비판했다. 칸트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에 양보할 수 없는 개인의 고귀함을 강조했다. 롤스는 이러한 칸트의 생각을 계승하고 발전시켰다.

롤스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보다는 개인의 자유와 존엄성이 존중돼야 한다고 봤다. 롤스는 자본주의가 성숙하면서 일어났던 피해를 수정하고 극복하자고 말했다. 복지 국가를 뒷받침하는 철학 체계를 세웠다는 점에서 롤스는 위대하다. 롤스는 현실에서의 인간의 실천적 문제, 현실 정치 사회의 개혁에 초점을 맞추는 구체적 원칙을 세우고자 했다.

프레시안 : 샌델은 롤스와 다르고 롤스를 극복했다고들 한다. 롤스와 샌델의 차이는 무엇인가. 그럼에도 롤스에 더 끌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김영호 : 롤스가 개인의 자유와 이성을 강조했다면 샌델은 역사와 문화를 가진 공동체의 정서를 살려야 한다고 했다. 개인의 존엄성을 최우선시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롤스는 "옳은 것이 좋은 것"이라고 말했다. 샌델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좋은 삶의 관점으로 회귀하여 "옳은 것보다 좋은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롤스는 좋지 않더라도 옳은 것을 따라야 한다고 했다. 샌델은 공동체 정서와 질서에 맞는 좋은 삶을 중심으로 하면서도 공동체의 도덕성과 시민의 공동선을 강조하는 점에서 벤담주의와 구별된다. 그래서 흔히 그를 공동체주의자로 분류하지만 그 자신은 "시민 참여 공화주의자"로 자칭한다.

롤스는 현실 속에서 실천 의지를 살려 나가는 철학 체계를 세우는 데 온몸을 투신했다. 샌델에게는 롤스와 같이 온몸을 던지는 처절한 몸부림이 안 보인다. 다른 의견을 받아들이는 열린 사회를 만드는 것이 정의로 가는 첫째 조건이라는 지적은 좋다. 하지만 샌델에게는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에 부딪쳤을 때 무엇이 정의인가에 대한 기준이 없다.

롤스의 평등주의적 자유주의에는 세계화로 가는 길이 있다. 샌델은 공동체와 다른 공동체의 이해가 부딪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내놓지 못한다. 샌델의 해법이 일국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샌델의 주장은 세계화 시대에는 한계가 있다.

MB의 공정 사회, "짝퉁 정의"일 수도…

프레시안 : 샌델의 <왜 도덕인가>라는 책도 나왔다. 시장과 도덕의 충돌에 대해 많은 페이지를 할애했다. 이 책은 경제 생활이 사회·도덕적 생활에 기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한국 경제는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버느냐와 같은 논의만 한다. <왜 도덕인가>라는 책을 어떻게 봤나?

김영호 : 공동체를 구성하는 시민의 도덕성 고양, 그것에 의해서 규제되는 시장 경제를 염두에 뒀다는 점에는 충분히 동의한다. 하지만 <정의란 무엇인가>만큼 빠지지는 못했다. 다소 관념적이라고 생각했다. 경제학자가 아닌 사람의 경제 이야기는 투철하지 못하다는 생각도 했다.

자유민주주의는 민주주의와 자유주의가 결합한 단어다. 신자유주의에서는 민주주의는 떼어지고 자유주의만 남았다. 건전한 시민사회가 시장 경제에 의해서 소외됐다. 민주주의와 시장 경제가 충돌하면 이는 결국 시장 경제조차 어렵게 만든다. 양극화가 대표적인 사례다.

프레시안 : 샌델도 시장 경제가 커지면 민주주의는 무너질 수 있다고 했다.

김영호 : 공동선에 대한 강조는 롤스와 샌델이나 같다. 시민사회에 의해 통제되는 시장 경제, 적어도 조화되는 시장 경제 정도에는 동의할 수 있다. 미국에서 1980년대 이후에 신자유주의가 들어서면서 시장 경제가 시민사회를 무너트리고 파괴했다. 여기에 대한 통찰로 '공동체의 반성'이라는 샌델의 문제제기가 등장했다.

시민사회와 시장 경제는 서로 갈등을 못 풀고 있다. 시민사회는 금융을 통제하려 한다. 오바마도 금융 시장을 규제하려 한다. 그러나 시장 쪽에서 반발이 일어났다.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에 의한 금융 위기가 바로 시장 경제가 시민사회를 절단 낸 대표적인 경우다. 오바마가 이를 통제하려고 하니 시장의 반발에 의해 오바마 정권이 흔들린다. 시민사회와 시장 경제의 접점을 전 세계가 못 찾고 있다. 그걸 찾는 게 지금 세계 정치경제의 중요한 과제다.

프레시안 : 한국에서 경제라고 하면 어떻게 성장률을 늘릴 것인가, 분배를 개선할 것인가 등의 기술적인 문제에 집중한다. 경제에 정의나 도덕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잘 없는 것 같다. 한국에서 경제에 대한 인식이 지나치게 기술적인 부분에 치우치지는 않았나.

김영호 : 한국 경제는 지나치게 벤담주의에 갇혀있다. 성장, 효율, 경쟁력을 위해서 개인은 중요하지 않다고 한다. 예를 들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위해 농민은 희생해도 좋다는 식이다. 그런 점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서민경제와 중소기업을 중시하려는 정책에는 정의와 공정 개념을 부활하려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예단할 수 없다. 스티글리츠가 말하는 짝퉁 정의의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프레시안 : 장하준은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에서 2008년 금융 위기로 신자유주의의 파탄이 분명히 드러났다"면서 시장만능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나름의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예컨대 "지식 기반 경제는 환상이다. 금융은 덜 효율적일 필요가 있다. 금융을 규제하고 제조업을 중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어떻게 생각하나.

김영호 : 장하준의 제조업 옹호론을 반갑게 생각했다. 토플러는 제조업이라는 굴뚝 산업을 버리고 정보화라는 '제3의 물결'로 가라고 했지만, 나는 제조업과 지식 기반 경제가 별도가 아니라, 제조업과 정보화가 결합한 지식 경제 산업으로 재구성되고 있다고 주장했고 토플러를 만나서도 반박했다.

그러나 지식 경제와 분리한 제조업 옹호론은 이상하다. 한국에서는 이제 소프트웨어가 중요하다. 삼성이나 LG의 휴대전화는 하드웨어는 훌륭하지만 콘텐츠가 부족하다. MS의 시대는 가고 구글과 애플로 가는 시대가 왔다. 한국 기업에는 소프트웨어에서 한계를 느끼고 분발해야 하는 실천적 과제가 놓여 있다. 장하준의 책에는 이러한 점에 대한 논의가 아쉬웠다.


ⓒ프레시안(최형락)

"신자유주의는 좀비다"

프레시안 :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장하준은 신자유주의가 파탄이 났다며 새로운 틀을 짜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이나 유럽의 정치지도자들은 현 세계경제 체제에 문제가 있긴 하지만 약간 규제만 제대로 한다면 이대로 갈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다. 진보 쪽에서는 세계 경제의 룰이 바뀌어야 한다고 하고, 반대쪽에서는 약간만 고쳐서 쓰면 된다고 본다. 어느 쪽이 맞는 건가.

김영호 : 신자유주의의 시대는 끝났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의 몸통이 타격을 입어 죽은 듯한데도 벌떡 일어나 돌아다닌다. 그래서 제이미 펙은 '좀비 신자유주의'라고 했다. 이 좀비가 오바마도 박살내고 있다. 미국 월가가 좀비를 조정하고 있고, 이는 다시 공화당이라는 정치 영역으로 연결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비가 역사를 주도하는 기력은 잃었다고 본다. 앞으로 올 새로운 질서가 등장하기까지의 과도적인 현상이다.

덴마크는 '유연 안정성' 모델을 자랑한다. 미국적 신자유주의의 유연성과 북구적 안정성을 결합한 것이다. 스웨덴에서도 기업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노동 유연성 법인세 등의 분야에 신자유주의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 요컨대 신자유주의의 세계경제의 구조가 아니라 한 요소로 살아남을 수 있겠지만, 신자유주의라는 요소를 안을 수 있는 큰 질서가 있을 수 있다고 본다.

프레시안 : 장하준은 금융이 지금보다 덜 효율적일 필요가 있다면서 규제의 필요성도 제기하고 있는데.

김영호 : 금융 규제 가운데 핵심적인 것이 금융행위세(Financial Activities Tax : FAT)와 금융거래세(Financial Transactions Tax : FTT)다.

오바마도 금융행위세의 일종인 은행세를 도입하자고 주장했고, 이번에 서울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 회의에서도 은행세에 대한 공감대가 있었다. 독일의 메르켈과 프랑스의 사르코지는 금융거래세도 적극적으로 주장한다. 영국은 보수당으로 바뀌기 전까지 금융거래세에 적극적이었다. 북유럽은 말할 것도 없었다. 일본 민주당 정권은 금융거래세라고 할 수 있는 토빈세를 실시하겠다는 정치 공약을 내걸고 정권을 잡았다.

오바마를 떠받드는 관료 중에는 토빈학파가 많다. IMF조차 토빈세 도입을 쭉 반대해 오다가 올해 3월 찬성으로 기울어졌다. 토빈세는 학자들이 주장하는 단계를 지나서, NGO들이 운동하는 단계를 거쳐 지금은 세계 주요 국가들이 정부 차원에서 추진하는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토빈이 내게 보낸 이메일에서 IMF가 주체가 되어 토빈세를 추진해야 한다고 했다. IMF 개혁은 여기까지 가야 한다.

이런 분위기를 염두에 두면, 2011년 프랑스 G20 회의 때 토빈세가 통과되리라고 본다. 유럽연합(EU) 정상 회담에서 사르코지가 이번 서울 회의에서 토빈세를 제기하기로 결의했다. 이번 G20이 이를 안 받았긴 하지만, 상황에 따라 토빈세 도입이 가능할 수도 있다고 본다.

그러나 금융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지금은 금융 시대다. 2008년 통계를 보면 하루에국제 금융시장에서 거래되는 규모가 3조2000억 달러다. 반면에 세계에서 제조업 상품이 무역으로 거래된 금액은 300억 달러를 약간 넘는다. 금융 대 실물상품 규모가 97:3이다. 몸통이 제조업이라면 꼬리가 금융인데,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시대가 왔다. 한국은 세계 경제를 주도하기보다는 따라가는 상황이다. 금융과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

"경제와 환경을 분리한 스티글리츠의 분석은 60년대식"


ⓒ프레시안(최형락)
장하준과 스티글리츠가 비슷한데, 나는 스티글리츠에 불만이 있다. 그는 실물 경제와 금융 경제 두 부분만 본다. 그래서 실물에서 괴리한 금융 경제는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나는 경제를 실물 경제와 금융 경제 두 부분으로 나누지 않고 자연환경을 포함해 세 부분으로 봐야 하고 자연환경과 괴리된 실물 경제와 실물 경제와 괴리된 금융 경제를 구조적으로 연결시켜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스티글리츠에게는 자연환경, 실물 경제, 금융 경제를 연결하는 고리가 없다. 스티글리츠는 환경을 중시하는 글을 쓰지만, 경제와 환경문제를 따로 나누어 본다. 실물, 금융, 환경 세 부분을 연결하는 통합 정책이 나와야 앞으로 새로운 자본주의 질서를 만들 수 있다. 바로 그린자본주의다.

자연을 살리고 이용하고 순환하는 실물 경제를 만들려면 엄청난 자금이 필요하다. 금융에 대한 토빈세나 은행세를 걷지 않고는 자연과 실물 경제의 관계를 재구축할 수 있는 자금이 안 나온다. 0.05%의 토빈세를 매기면 금융 규제가 가능해지면서 1년에 약 2000억 달러가 모인다. 이 돈으로 자연을 살리는 실물 경제를 재구축할 수 있다.

지금은 기후변화협약이 잘 안 된다. 중국, 인도에서는 "이산화탄소 과다 배출은 기본적으로 선진국 책임"이라며 "이산화탄소 배출을 규제하기 위해 필요한 자본과 기술을 내놓으라"고 한다. 선진국은 코펜하겐회의에서 자금을 줄 것처럼 말했지만 사실은 지금 선진국도 재정에 허덕인다.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려는 신교토협약이 이행되지 못하는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에 이산화탄소를 줄이는데 필요한 돈과 기술을 제공할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프레시안 : 2008년 금융위기로 신자유주의적 경제 패러다임이 극적으로 바뀌지는 않았지만 변모하는 모습이 있다고 보시는 것같다. 나아가 금융과 실물 경제뿐 아니라 자연까지도 포함하는 새로운 경제질서가 필요하다는 것으로 정리될 수 있겠다.

김영호 : 스티글리츠가 꿈꾸는 자본주의는 60년대 자본주의다. 시장 경제와 민주주의가 조화를 이루는 케인스적 자본주의를 꿈꾼다. 거기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이제는 자연자본주의로 가야 한다. 자연에 대해서 책임을 지고 인권에 책임을 지고 안전에 책임을 지는 사회책임 자본주의로 가야 한다.

"대안은 큰 시장도 큰 정부도 아닌 '큰 사회'"

프레시안 : 세계경제에서 새로운 걸 모색하는 흐름은 분명하다고 보는 것인가?

김영호 : 그렇다. 사람들은 "큰 시장이냐, 작은 정부냐" 혹은 "큰 정부냐 작은 시장이냐" 하는 이분법만 생각한다. 영국에서는 '빅 소사이어티(Big society)'를 시도한다. 사회적 기업도 정부 정책으로 할 것을 시민사회가 사회적 기업 형태로 끌어안았다. 큰 사회 형태다. 고전적인 "큰 정부, 작은 정부" 혹은 "큰 시장, 작은 시장"이 아닌 다른 사회 형태가 얼마든지 나온다.

프레시안 : 김영호 총장은 오래전부터 사회 책임 투자(SRI) 운동을 해왔다. 금융 위기를 겪으면서 사회 책임 투자 운동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할 것 같나?

김영호 : 나는 수 년 전부터 세계가 '사회 책임 자본주의'로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오바마는 취임사에서 새로운 책임의 시대를 표방하고 나왔다. 영국 수상도 "책임을 재건하자"고 말하고 나왔다. 세계적으로 압도적인 찬성을 얻어 '사회 책임의 국제 표준'인 ISO 26000 시대가 왔다.

기업뿐 아니라 정부, 시민사회 등 모든 조직이 책임 위주로 활동해야 한다고 국제 표준이 재정비됐다. 현재 금융자본 가운데 헤지펀드 규모가 2조 달러인데 사회 책임 투자(SRI) 규모는 5조 달러가 넘는다. 헤지펀드보다 훨씬 많은 사회 책임 투자 펀드가 번창한다. 세계 연기금이 자꾸 책임 투자 방향으로 간다.

소비자 운동도 소비자의 권리 보호라는 측면에서 전개됐지만 요즘은 소비자 책임 위주로 바뀌고 있다. 소비자는 환경에 유익한 제품만을 사야 하고 인권 유린하는 기업의 제품을 사지 않아야 하고 사회 공헌을 많이 하는 기업을 격려하는 소비를 해야 한다는 식이다. 노동운동도 이전에는 노동자의 권리 위주로 전개됐다면 이제는 노동의 책임 위주로 바뀌고 있다.

이제는 환경을 생각하는 소비 투자 환경으로 가야 한다. 자연환경은 상수가 아니라 하나의 변수가 됐다. 금융 위기를 일으킨 주범에게 상을 주는 게 아니라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 오바마 금융규제법안의 핵심이라고 본다.

<정의란 무엇인가>도 책임을 강조한다. 사회 책임을 다하는 것이 돈벌이가 되는 사회가 와야 한다. 사회 책임이 돈벌이의 가장 좋은 수단이 되는 그렇게 함으로써 더욱더 책임을 지게 되는 사회가 와야 한다. 자크 이탈리는 21세기는 이타적인 사람이 돈 버는 시대라고 했는데 제러미 러프킨의 <공감의 시대>도 비슷한 맥락인 것 같다.


ⓒ프레시안(최형락)

"정의와 책임이 밥 먹여주는 시대가 와야 한다"

프레시안 : 경제에서 정의와 도덕이 왜 중요한가. 정리해 달라.

김영호 : 아시아인 최초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인도 출신 아마르티아 센이 얼마 전 한국에 와서 "완전한 정의를 찾기보다 명백한 불의, 부패, 가난을 막아라"고 말했다. 그는 시민사회가 나서 공공 이성을 세워 명백한 불의를 척결하라고 역설한다.

샌델도 시민이 도덕심을 함양하는 것이 정의의 중요한 과제라고 강조한다. 정의를 자기의 실천적 책임으로 연결하려면 "그 사람이 정의로웠더니 돈을 벌더라, 더 이익을 많이 얻더라"라고 생각하게 만들어야 한다. 정의나 사회적 책임이 바로 돈벌이 수단이 되게 해야 한다. 그 점을 잘 연결시키면 개인주의적 정의와 이성, 공동체가 부딪치지 않고 조화하는 길을 찾을 수 있다. 정의가 이뤄질 때만 경제가 제대로 돌아갈 수 있어야 한다.

한국에서 살면서 제일 우울한 세 가지가 있다.

첫째, 한국 자살률이 세계에서 제일 높다는 것이다. 범죄나 자살률이 높아지는 것은 사회적 약자 책임이 아니라 한국의 폭탄 돌리기(bomb passing) 사회 구조의 문제다. 권력은 경제에 짐을 떠맡기고, 대기업은 1차 하청 기업에 떠넘기고, 제1차 하청 기업은 재하청 기업에, 하청기업은 다시 노동자에게, 정규직 노동자는 다시 비정규직이나 외국인 노동자에 떠넘긴다. 제일 약자는 떠넘길 대상이 없으니 할 수 있는 일이 범죄나 자살밖에 없다. 이것은 경제 정의가 실종된 악순환 구조이다.

둘째, 세습 사회의 지속이다. 북의 3대 세습, 한국 재벌의 한결같은 3대 세습, 언론과 학원의 3대 세습…. 한국 시민 사회의 정의감이 참 약하다는 느낌이다.

셋째, 국제 사회 책임 투자 펀드가 전 세계적으로 5조 달러나 되는데 한국에는 별로 오지 않는다. 대신 헤지펀드가 들어온다. 한국은 투기 자본의 천국이다. 카지노 자본주의에 무슨 경제 정의가 있겠는가. 선진화보다 사회 정의의 확립이 중요하다.

프레시안 :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전 세계적으로 경제에 새로운 흐름이 필요하다는 움직임이 있는데 한국 정부는 둔감한 것 같다. 한국 정부가 경제를 대하는 태도는 어떻게 보는지, 정부에 주고 싶은 조언은 무엇인가?

김영호 : 한국 경제는 정의 구현에 실패한 경제다. 이 문제는 결국 정의의 문제라고 본다. 그래서 정부가 경제 정책에서 정의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사회 책임을 통해 성장하려는 질서를 확립하려는 것이 중요하다.

이명박 대통령이 최근에 "기부는 기업이 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에서 배당받는 개인이 하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는 ISO 26000 이전의 사고방식이다. 미국 부자들이 하는 기부 형태다. 지금은 기업이 영업 활동의 일환으로 직접 기부한다. 기부는 하나의 투자다.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뿐 아니라 발바닥도 알게 하는 전략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사회 책임 이전 시대의 사고방식이다. 중세나 근대 초기의 기득권자들이 기득권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지금은 폭탄 돌리기 시스템을 정의로운 복지 사회로 전환해야 한다. 노블레스 자체가 없어야 한다.

기업과 투자와 소비와 노동이 각각 사회 책임을 갖고 시장 활동을 하는 사회 책임 자본주의로 가야한다. 정의에서 책임으로 라는 말로 요약하고 싶다.

프레시안 : "정의롭지 않는 경제는 앞으로 성공할 수 없을 것이다"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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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능에 충실한 책이 있다. 독자들이 궁금해 하는 내용을 콕 짚어서 정리해 놓은 책, 문장이 너무 쫄깃해서 잘근잘근 씹으며 읽게 되는 책들이 그렇다. 하지만 진짜 본능에 충실한 책은 따로 있다. '뒷담화'가 듬뿍 담긴 책이다.

'뒷담화'가 점잖지 못한 짓이라는 건 누구나 안다. 그러나 어쩌랴. 본능인 걸. 뒷담화가 전혀 없는, 무균질 대화로만 채워진 언어 생활이 과연 가능할까. 적어도 아직까지는, 그렇게 사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뒷담화 본능에 유독 충실한 인간으로는, 기자들을 빼놓을 수 없다. 기자들이 낀 술자리에 가보라. 뒷담화 빼면 이야기가 안 된다. "이번에 ○○가 된 김△△ 있잖아. 걔가 알고 보면…" 늘 이런 식이다. 이런 뒷담화는, 영양은 빈약하지만 맛은 좋은 싸구려 과자와 닮았다. 배가 고프지도 않은데도 괜히 손이 가는 과자처럼, 별 내용 없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자꾸 듣고 싶다. 그리고 듣고 나면, 남한테 알려주고 싶다.

세계를 뒤흔든 8개월, 생생한 다큐멘터리


▲ <대마불사 : 금융 위기의 순간 그들은 무엇을 선택했나>(앤드루 로스 스킨 지음, 노다니엘 옮김, 한울 펴냄). ⓒ한울
<뉴욕타임스> 기자 앤드루 로스 소킨이 쓴 <대마불사 : 금융 위기의 순간 그들은 무엇을 선택했나>(노다니엘 옮김, 한울 펴냄)는, 한마디로 미국 금융계 거물들에 대한 맛깔스런 '뒷담화'다. 830여 쪽이라는 두께 때문에, 2008년 금융 위기의 구조적 원인에 대한 사회과학적 분석을 담은 책이겠거니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이 책은 학자가 아닌 '기자'가 썼다. 그것도 '뒷담화' 본능에 충실한, 새파랗게 젊은 기자가 말이다. 그래서 재미있다. 미국 월스트리트를 대표하는 투자 은행인 리먼브러더스가 법원에 파산 신청을 한 2008년 9월을 앞뒤로 한 몇 개월을 다큐멘터리처럼 생생하게 묘사했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월스트리트 5대 투자 은행 가운데 가장 규모가 작으면서 동시에 가장 공격적인 투자를 했던 베어스턴스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영향으로 무너진 2008년 3월부터 같은 해 10월, 즉 미국 정부의 금융구제안이 의회를 통과했을 때까지를 다뤘다.

그 시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미국 재무성, 월스트리트의 대형 로펌과 투자 은행, 예컨대 리먼브러더스, 골드만삭스, JP모건체이스 등을 움직이는 거물은 누구를 만나 어떤 이야기를 나눴나. 저자는 이런 질문에 답을 찾아 나선다.

그런데 여기서 궁금증. 저자는 월스트리트의 심장부에 도청 장치라도 설치해 뒀던 걸까. 보통사람은 만나기도 힘든 금융계 거물들이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어쩌면 그렇게 구체적으로 묘사할 수 있지. 그건 알 수 없다. 저자는 광범위한 인터뷰와 자료 조사를 통해 '세계를 뒤흔든 8개월'을 복원해 냈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 책에 실린 생생한 대화는, 대부분 누군가의 기억을 저자가 다시 다듬은 것이라는 이야기다. 약간의 '구라'가 섞여 있으리라는 점은 어쩔 수 없다.

예컨대 리먼브러더스 CEO인 리처드 펄드(딕 펄드)의 어리버리한 모습, 재무성 관리들의 우유부단한 모습 등은 조금 과장됐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게 '뒷담화'의 매력이다. 그리고 이 책의 미덕 역시 거기 있다.

현대의 연금술사들, 마법은 없다

저자의 금융계 거물들에 대한 '뒷담화'를 따라가노라면, 금융 위기를 낳은 다이너마이트인 파생금융상품들이 만만하게 여겨진다.

잘 알려져 있듯이, 파생금융상품 가운데 상당수는 이른바 '로켓 과학자'들이 만들었다. 냉전이 끝나면서, NASA(미국 항공우주국) 등 우주·군사 과학 분야에서 일하던 과학기술자들이 대거 일자리를 잃었다. 그리고 이들 가운데 일부가 금융공학에 뛰어들었다. 이들이 만든 금융 상품은 평범한 이들에겐 암호나 다를 바 없었다.

고도의 수학적 훈련 없이는 이해할 수 없는 금융 상품을 만들어내는 금융공학자들은 '현대의 연금술사'였다. 고대 연금술사들이 돌을 금으로 바꿨다면, '현대의 연금술사'들은 '리스크 없는 이익'을 만들어 냈다. '증권'이 될 수 없었던 부동산, 채권, 지적 재산, 사업 기획안 등을 '증권'으로 만드는 것, 그리고 '리스크' 요소를 분리해서 정교한 수학적 기법으로 처리하는 게 비결이었다.

하지만 돌이 금으로 바뀌는 일은 자연계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그저 눈속임만이 가능할 따름이다. 누구나 이걸 알게 된 것은 근대과학이 생긴 뒤였다. 마찬가지다. '리스크 없는 이익' 역시 환상이다. 리스크를 이리저리 떠넘길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렇게 떠넘겨진 리스크가 한곳에서 폭발하면 재앙이 된다. 2008년을 지나며, 누구나 알게 된 사실이다.

돌을 금으로 바꾼다던 연금술사들을 의심한 이들이 고대에는 없었을까. 아마 있었을 게다. 하지만 이들의 의심이 상식이 될 수 없었던 것은 연금술사들의 권위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신비의 장막 때문이었다. 역시 마찬가지다. '리스크 없는 이익'이 가능하다는 현대의 연금술사들을 의심했던 이들은 2008년 이전에도 많았다. 그러나 이들의 의심은 인류의 상식이 될 수 없었다. 난해한 수학 기호의 권위를 들춰낼 수 없었던 탓이다.

"핵무기는 천재가 만들었지만, 발사 버튼은 바보가 누른다"

'뒷담화'가 힘을 발휘하는 것은 이 대목이다. 우리 시대 가장 총명한 이들이 만든 것, 그래서 보통 사람은 감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고 여겨졌던 파생금융상품이 실은 바로 옆 자리 동료나 이웃집 아저씨와 다름없는, 지극히 평범한 이들에 의해서 운용됐다. 예컨대 천재 과학자들이 만들어 낸 핵무기가 보통 지능을 갖춘 정치인과 군인들에 의해 운용됐듯 말이다. 저자의 '뒷담화'는 파생금융상품을 운용했던 금융계 수장들이 이들 정치인, 군인과 다를 바 없다는 점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이는 핵무기와 마찬가지로 파생금융상품 역시 평범한 시민들에 의해 통제돼야 한다는 점을 일깨워 준다.

독자의 눈을 끄는 흥미로운 '뒷담화' 몇 가지. 잘 알려져 있듯이, 한국산업은행은 리먼브러더스 인수를 추진했다. 리먼브러더스에서 일한 경력이 있는 산업은행 행장 민유성의 야심찬 계획이었다. 리먼브러더스는 협상 과정에서 산업은행 측에 부실을 떠넘기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냈고, 민유성은 결국 뜻을 접었다. 이미 언론에 소개된 이런 과정 역시 '뒷담화'가 듬뿍 섞인 채 자세히 묘사돼 있다. 예컨대 이런 대목이다.

"하지만 민유성과 함께 일했던 리먼의 동료들은 그가 한국산업은행 행장이 될 만한 자질을 갖췄는지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한국산업은행의 직원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면서 그의 임명을 반대했다. 그런데도 그가 행장으로 임명되자 리먼 본사의 몇몇 동료들은 놀라움을 표했다. 서울에서 민유성의 전도를 막는 것은 없었다. (215쪽)"

월스트리트를 이끄는 백인 엘리트들이 동양인에 대해 가진 편견이 드러났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선진국에서 쌓은 경력을 국내에서 너무 높게 평가하는 것 역시 위험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미국 유명 투자 은행에서 일한 경력을 내세우는 한국인들 가운데 일부는 어쩌면, 미국 현지에서의 평판이 썩 좋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이런 깨달음은 2008년 금융 위기를 다룬 '정사(正史)'에선 얻기 힘들 게다. 공개적인 '뒷담화'가 가진 긍정적인 힘이다.

"1997년 외환 위기 주범들에 대한 '뒷담화'를 기다린다"

여기서 다시 궁금증이 생긴다. 한국에서 기자들은 흔하디흔한 직업인데, 그리고 이들 역시 술자리에선 흥미로운 '뒷담화'를 끝없이 쏟아내는데, 왜 이런 책이 안 나올까.

우리 사회에선 2008년 금융 위기 같은 충격적인 사건이 없어서? 그건 아니다. 예컨대 우리에겐 1997년 외환 위기의 끔찍한 경험이 있다. 그리고 이 사건에 대해 당시 경제 부처를 출입했던 기자들만큼 '뒷담화' 소재가 많은 이들도 드물다. 그들은 왜 당시 한국 경제를 움직였던 거물들의 말과 행동에 대한 책을 쓸 수 없을까. 긴 호흡의 글을 쓰기 힘든 언론사 근무 여건, 협소한 출판 시장 등 여러 이유가 있을 게다. 하지만 어떤 이유를 들어도 석연치 않은 느낌은 남는다. 그래도 '뒷담화' 본능을 도무지 누를 수 없는 기자들이 몇 명쯤은 있을 텐데….

마침 서점에 가니, 1997년 외환 위기 당시 경제부총리였던 강경식이 낸 회고록이 눈에 띈다. <국가가 해야 할 일, 하지 말아야 할 일>(김영사 펴냄)이라는 제목이다. 외환 위기 당시의 경험을 정면으로 다뤘다.

당시 경제 부처를 출입했던 기자들이라면, 이 소식만으로도 '뒷담화' 본능이 불끈 치솟지 않을까. <대마불사>를 능가하는 '뒷담화'가 곧 쏟아지리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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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한 재즈 콘서트에서 백발이 성성한 한국 재즈 1세대의 연주를 들을 수 있었다.

'음악가'보다는 '딴따라'로 무시당하고 생계를 위해 미군 클럽을 드나들면서도 한국 재즈의 지평을 열고 명맥을 이었을 이 어르신들의 연주 스타일은 요즘의 취향으로 보면 조금은 투박했다. 그러나 그들의 백발과 어우러진 해맑은 웃음과 열정이 담긴 연주는 어느 콘서트보다도 더욱 큰 감동을 주었다.

이들이 음악을 처음 시작했을 시기에는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수많은 한국인이 외국으로 탈출하여 난민(refugee)이 되었고, 그보다 더 많은 사람은 한반도를 떠도는 실향민이 되어야 했던 때였다. 그 뿐인가? 곧이어 군사 독재를 지나면서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하던 수많은 사람이 독재자의 겁박을 피해 또다시 외국으로 망명길에 떠나야 했고, 20세기 말에 이르러는 기아에 굶주린 북녘의 동포들이 중국과 동남아시아로 탈출하는 아픔을 겪어야만 했다. 20세기의 한반도는 그렇게 난민의 세기였다.

그런데 21세기에 들어설 즈음부터 그 반대의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제는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각국에서 자신의 생명과 존엄을 지키기 위해 한국으로 찾아와 난민 신청을 하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은 1992년에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에 가입하고 1994년부터 난민 신청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수많은 난민 신청을 모두 거부하다가 2001년에 이르러서야 처음으로 난민을 인정하였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2010년 11월까지 2820여 명이 난민 신청을 했으나 이 가운데 217명만이 난민으로 인정되었고, 131명은 인도적 차원에서 체류가 인정되었다. 그 외에 1583명은 신청이 거부되어 한국의 법원에서 소송을 진행하고 있거나 한국을 떠나 또 다른 도피처를 찾아 어딘가를 헤매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 난민이 있다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의 생명과 존엄을 지키고자 본국을 탈출하여 한국에 온 이들이 본국에서는 얼마나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었고 한국에서는 또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어려움에 처해 있는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난민 신청을 하면 1년 동안은 아무런 일도 할 수 없고 생계나 주거 지원조차 없이 방치될 뿐이고, 외상 후 스트레스나 우울증에 시달리더라도 아무런 도움도 받을 수 없으며, 난민의 자녀로 태어나면 무국적자가 되는 경우도 빈번한데, 그나마 난민으로 인정되는 비율은 채 10%가 되지 못한다는 이 먹먹한 현실을 과연 몇 사람이나 들어 보았겠는가?

난민으로 인정이 되더라도, 본국에서 대학을 나왔건, 정치 지도자였건, 변호사나 고위 관료였건 또 잘 나가는 축구선수였건 상관없이, 결국은 목구멍의 거미줄을 치우기 위해 허름한 공장에서 일을 하며 근근이 살아가는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치가 떨리는 현실을 누가 알고 있을까? 한국의 난민들이 결국은 버마의 김대중이고, 콩고의 홍세화이며, 아프가니스탄의 윤이상이지 말라는 법은 없는데도 말이다.

이런 척박한 한국 땅에서 조명숙·이호택 부부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난민 보호'라는 분야를 개척한 1세대라고 할 수 있다. 여느 1세대들이 그렇듯이 세련되거나 잘 갖춰진 환경 속에서 시작하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한 채 정말로 "맨 땅에 헤딩"하듯이 시작했지만, 이들의 활동은 한국에 찾아 온 난민들에게는 마른 땅에 단비와 같았다.

10년 동안 사법 시험을 준비하다가 꿈을 접었다지만 10년 공부의 내공이 어디를 가겠는가? 이호택은 그 내공으로 난민에 대한 법률 지원에 나섰다. 그는 난민 지위를 인정받을 수 있도록 상담에 응하고, 본국 정황에 대해 문헌 조사를 하다가 부족한 것이 느껴지면 직접 현장을 다녀오고, 변호사의 도움도 받을 수 없을 때는 난민들이 직접 소송을 진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한국 정부의 난민 정책이 개선되도록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조명숙은 난민들에게 때로는 큰누나, 큰언니와 같은 역할을 하면서 또 한 편으로는 자유터학교와 여명학교를 통해 탈북 청소년들을 돌봤다.


▲ <여기가 당신의 피난처입니다 : 한국의 난민 이야기>(이호택·조명숙 지음, 창비 펴냄). ⓒ창비
조명숙·이호택 부부가 난민들을 돕기 위해 발 벗고 활동을 시작한 지 어느 새 10여 년이 흐른 지금, 이들 부부에게 남은 것은 무엇일까? 이런 질문을 떠올리기 시작할 무렵, 그들이 미리 알아서 대답이라도 하듯 지난 10년을 돌아보는 책 한 권을 펴냈다. <여기가 당신의 피난처입니다>(창비 펴냄).

하고 싶은 말이 많았던 탓이겠지만 정체가 모호한 책이다. 이호택·조명숙 부부가 어쩌다 난민과 탈북 청소년을 돕는 길에 나서게 되었는지 맛깔나게 쓴 에세이인 듯하다가, 어느 순간에는 한국의 난민들이 겪고 있는 가슴 아픈 사연을 두런두런 풀어내다가, 결국 마지막에는 난민이란 어떤 사람들인지 법학 전공자다운 해설에 현장에서 우러나온 생생한 사례를 덧붙여 설명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건 에세이인지, 현장 보고서인지 또는 학술 서적인지 참으로 애매하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지난 10년간 난민의 현실에 대해 제대로 된 보고서 한 편, 전문 서적 한 권이 없었던 것이 한국의 현실이었고, 유쾌하기로 유명한 조명숙·이호택 부부는 할 말이 산더미처럼 쌓였을 텐데.

이 책은 결국 이 부부가 어떤 마음으로 살아왔는가를 보여주는 에세이이며, 한국의 난민들이 어떻게 견뎌왔고 고통을 받고 있는가에 대한 증언이고, 난민이란 어떤 사람들인지 알고 싶은데 제대로 된 책 한권이 없어서 고민하던 사람들에게는 부담스럽지 않은 입문서로 평가될 것이다. 참으로 기이한 책이지만 지난 10년간의 한국의 난민 판을 정리하기에는 참으로 적절한 책이다.

국가가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는데 실패했거나 보호할 능력이 없는 국가 실패 상황에서 자신의 생명과 권리를 지키기 위해 외국으로 탈출하여 보호를 요청하는 사람을 난민(refugee)이라고 부른다. 20세기를 지나며 전 세계적으로 난민의 주요 발생지로 주목 받던 한국이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아시아의 난민 보호를 향상시키기 위해 전략적으로 가장 중요한 국가 가운데 하나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1세대의 헌신과 활약에 힘입어 한국의 난민 보호 제도도 한걸음씩이나마 차츰 나아지고 있고(비록 갈 길이 더 멀지만), 독립된 난민법이 국회에 올라가 통과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피난처의 외로운 투쟁에 함께 하며 무거운 짐을 덜어 줄 다른 단체와 기관들도 생겨나고 있고, 난민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젊은 친구들도 많아지고 있다.

지난 10년은 결코 '잃어버린 10년'은 아닐 것이고, 앞으로의 10년은 더더욱 기대해볼 만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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