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빠가 발가벗고, 엄마 엉덩이에 아빠 거기를 갖다 대면…. 아기가 잘 나온대!"

내 인생 최초의 섹스 이야기는 이 따위였다! 따지고 보면 틀린 말은 말인데, 애가 나오면 나오는 거지 '잘' 나오는 건 뭐며, 전자 기기 매뉴얼 같은 어정쩡한 표현은 뭐란 말인가. '로댕'을 '오뎅'으로 '오뎅'을 '어묵'으로 받아 적는 커닝처럼, 탄생과 성애의 담화가 비밀스럽고 음습하게 구전되는 탓이리라.

비디오 가게 정보지에서 '오르가슴'이란 단어를 발견하고 이건 또 뭔 '가슴'인가 싶어 사전을 뒤져봤던 기억도 생생하건만, 이제는 단어가 아니라 그 자체를 찾는 나이다. "하루 종일 같이 있고 싶다"고 속삭이는 남자친구에게 "난 안 그럴 건데? 혼자 있는 거 좋아하는데?"라고 무안 주던 소녀였지만, 이제는 '밀당(밀고 당기기)'도 제법 할 줄 아는 능구렁이다.

얼굴이 다 화끈거리지만 한편으론 신통하다. 이 모든 앎은 스승의 지도편달 없이 오로지 홀로 일궈 낸 결실 아니던가! 이게 다 중학생이었던 내게 '19금' 만화책을 빌려주는 것은 물론이요 더 과격한 책을 추천하기도 했던 OO아파트 만화책 대여점 사장님 덕분일지도 모른다. 부모님 잠든 시간에 화끈한 영화를 틀어주던 모 케이블 채널에 감사해야할 일인지도 모르고.


▲ <아슬아슬한 연애 인문학>(윤이희나 지음, 이진아 그림, 한겨레에듀 펴냄) ⓒ프레시안
물론 농담이다. 그런데 여기까지 읽고 "나도 그랬어"라고 공감하는 사람이나, 자기 아이들이 성애와 관련된 지식을 어떻게 터득할지 불안한 사람이라면 <아슬아슬한 연애 인문학>(윤이희나 지음, 이진아 그림, 한겨레에듀 펴냄)을 당장 펴드는 게 좋겠다. 물론 섹스에 대한 호기심에 몸이 달기 시작한 10대들이라면 더욱 '강추'다.

연애 경험이 많다고 자부하는 이들도, 나름 제 아들딸에게 자유를 허용한다는 '쿨'한 부모도, 그리고 몇 번의 이성 접촉에 이제 벌써 어른인 척하는 10대도 결국 그늘진 경로를 통해서만 성을 배웠기는 마찬가지. 어디 연애며 섹스가 야동이나 만화책에 나오는 그것대로 이뤄지던가. 그러나 누구도 드러내 놓고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기에 오늘도 소녀들은 팬픽에 밑줄을 긋고 소년들은 파일을 공유한다.

해서 '먼저 놀아 본 언니'라는 윤이희나가 나선 것이다. 저자는 '민들레'라는 대안 교육 공간에서 10대 소년소녀들과 같이 지내며 일하는 동안 그들의 오색찬란한 연애 행각을 목격하면서 연애 인문학 수업을 기획한다. 책 창고에 숨어 키스하는 녀석들, 몰래 한 단체 외박의 경험을 떠벌이는 녀석들 속에서 저자는 "내가 헤매고 있을 때 주변의 어른이 판타지가 현실과 어떻게 다른지 알려 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며 팔을 걷어 부친다.

수업을 진행하는 동안 저자가 다다른 결론은 10대들의 현장에 "연애는 넘쳐나되, 제대로 된 정보나 지식은 희박했다"는 판단이다. 일단 첫 단계, 상대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부터 판타지 위에 세워져 있다. 서울의 소년소녀 400여 명에게 이상형에 관한 설문을 돌린 결과 소년들은 "S라인에 청순가련하면서도 관능미를 보이는 여자"라든가 "키는 160~167㎝ 정도고, 귀여운데 4차원인 예쁜 여자"라든가 하는 답변을 줬다.

소녀들은 "순수하고 나만 바라봐 주고 다른 여자한테는 무뚝뚝하고, 속이 깊고 지적이고 개념이 잘 박인 남자", "지하철에서 문에 기대고 있을 때 "너 그러다 넘어진다"면서 안으로 끌어 주는 남자"라고 대답한다. 귀엽다며 웃고만 넘길 게 아니다. 소년소녀들의 답변을 분석한 저자의 통찰이 눈부시다. 소년들의 이상형은 단순히 외모와 성격을 묘사하는 데 그치지만, 소녀들의 이상형은 나와 어떤 관계를 맺을지에 대한 기대가 담겨 있다는 것.

이 차이는 소년들이 야동을 통해, 소녀들이 하이틴 로맨스나 팬픽을 통해 연애를 학습하고 욕망을 대리 추구하는 것과 흡사하다. "전자는 관계가 생략된 미디어이고, 후자는 관계가 핵심인 미디어다"라는 저자의 설명이 이어진다. 옳소. 이토록 감수성이 다른 텍스트로 몰래몰래 학습하다 보니 소년은 소녀의, 소녀는 소년의 욕망을 읽기 어려운 것 아니겠는가.

다음 단계, 연애의 기술이라든가 '진도'의 문제다. "제가 좀 쉬워요"라며 좀 더 '나쁜 여자'가 되고 싶다는 열일곱 살 소녀에게 '전화는 절대 먼저 하지 않기, 문자는 세 번에 한 번 꼴로만 답하기, 무심한 척 굴다 은근 슬쩍 스킨십하기'와 같은 연애의 잔기술을 찔러주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니다. 저자는 "나는 스스로를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나?", "나는 나 자신을 충분히 존중하고 있는가?"라고 되물으라고 조언한다. '나'에 대한 통찰에서 시작해, 상대방에게 휘둘리지 않을 수 있는 자기 기준을 만들어 보라는 것이다.

스킨십 진도의 문제로 들어가면 좀 더 현실적인 고민들이 날아온다. '이놈에게 입술을 허락해 줘야 하나', '섹스는 언제부터 해야 하나'…. 10대가 아니더라도 자유로울 수 없으며, 10대 자녀를 둔 부모라면 거의 '미치고 팔짝 뛰는' 이 문제에 대해 저자는 일단 독자들을 진정시킨다.

대신 질문의 방향을 달리 해 보자고 조언한다. "'진도의 고민'이라는 이름을 '내가 실현하고픈 소망들'로 바꾸어 보자"는 거다. "주체적이었는가?", "만족스러웠는가?", "타인에 대한 이해와 동의가 전제되었는가?"와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면서. 부모들도 자녀들의 연애나 성애 경험에 겁을 먹거나 아예 안 된다고 윽박지를 게 아니라, 그들이 진정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중심에 두고 문제를 바라봐야 한다.

한편, 책 제목은 연애 '인문학'이지만, 콘돔 사용법과 다양한 피임법 등을 소개한 3장은 실용서에 버금간다. 나 역시 몰랐던 사실을 많이 알게 됐음을 고백한다. 여기 나온 정보들만 잘 인지하고 있어도 어린 커플들 사이에서 종종 일어나는 우발적인 사고는 예방할 수 있지 않을까. 아이들과 함께 오이에 콘돔 끼워보고, 점액 검사를 위해 질 안에 손가락을 집어넣는 등 이 '언니'가 온몸으로 가르쳐 주는 덕이다.

또 의외의 복병은 '사랑과 이별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라는 제목을 단 마지막 4장이다. '이 정도면 괜찮을 법한데 난 왜 애인이 없을까', '좋은 사람이 나타나질 않아서 연애를 못 하겠다'고 고민하는 이들이라면 관계의 냉엄함을 다룬 이 부분부터 후딱 먼저 읽어도 좋겠다.

저자는 "우정이든 사랑이든 현재 자기 존재의 수준만큼, 딱 그만큼만 관계를 맺을 수 있다"면서 사랑을 대상의 문제로 바라보는 관점을 버리고, 먼저 자기 존재를 성찰해 보라고 권유한다. 이별 대처법을 소개하는 대목에선 코끝이 살짝 시큰해지기까지 한다. 지금까지 그리 애지중지 논했던 모든 '관계'를 다시 '0'으로 돌려놓는 작업이기에. 저자는 이별도 사랑의 한 과정이며, 언젠가 이별과도 이별해야 한다며 진심어린 충고를 해 준다.

연애의 본질을 어떻게 글로 파악할 수 있느냐며, 혹은 누가 남의 시시콜콜한 사랑 얘기 궁금해 하느냐며 '연애 지침서' 따위의 책은 일절 보지 않았다. 하지만 관계에 대한 철학적 물음과 피임 실용 정보를 동시에 담은 이 깜찍한 책은 예외로 해야겠다. 걸쭉하고 쫄깃쫄깃한 문체와 저자가 만난 10대들의 '빵 터지는' 질문들, 일러스트레이터 이진아의 귀여운 그림이 읽는 맛을 더한다.

이 책엔 매력적인 사람이 되는 법이나 상대를 유혹하는 법 따위의 내용은 실려 있지 않다. 연애란 자신의 조건에 바코드를 붙여 시장에 내다 파는 일이 아니라, 나와 너를 포함한 관계를 창조해나가는 일이라는 간단한 명제로부터 시작하는 연애 '인문학'이다. 케이블 TV 채널을 오가다가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자신의 '스펙'을 프레젠테이션 하거나 재력을 자랑하는 남녀들을 보고 있노라면, 연애 계(係)에서도 인문학이 위기긴 위긴 것 같단 생각에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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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언어의 획득

나는 이정철의 <대동법>(역사비평사 펴냄)에서 두 가지 희망, 역사학의 새로운 현실을 발견했다.

그 하나는 저자가 조선 시대를 자기 문제의식을 수립하고 설명하고 결론 내리는 과정에서 자신의 고민과 밀착되면서도 소화된 언어로 서술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회과학 담론에 기대고 사료 얼마를 덧붙여 입론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저자 자신의 고민을 밀고 들어가서 보편적인 인간과 제도에 대한 질문을 풀어내는 언어를 확보하고 있다는 점이 이 책이 갖는 가장 큰 장점일 것이다.

이러한 저자의 글쓰기는 그동안 근대주의 역사 해석, 즉 조선 후기를 해체기로 바라보는 시각에서는 결코 확보할 수 없었던 조선 시대사 연구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점에서 평가받아야 할 것이다. 망국, 식민지, 전쟁, 분단이 남긴 20세기형 트라우마나 콤플렉스를 발견할 수 없는 글이 근대주의적 조선사 해석의 세례를 받은 역사학자의 손에서 나왔다.

<대동법>에서 보여준 자기 언어의 획득은 저자의 스케일과도 상관이 있다. 그리고 그 스케일은 그동안 역사학자들이 잘 포착하지 못했던, 아니 어느 틈에 목전에서 사라졌던 역할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간단히 말하면, 저자는 지식인 또는 학자가 사회에 기여하는 몫을 '비판'과 동시에 '책임'에도 두고 있는 듯하다.

비판이 항상 책임을 수반하지는 않는다. 비판이 낭만적 공상과 결합하기 쉬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편, 비판의식이 결여된 책임의 하중은 타협으로 나아간다. 비판이 책임과 만날 때 비로소 우리는 원칙과 형편을 함께 고려하게 된다. 원칙을 통해 기준을, 형편을 통해 현실화를 도모한다.

그간 내가 생각이 있고 고민하는 조선 시대 연구자들에게 아쉬웠던 점은 조선 시대에 대한 비판의식의 과잉이었다. 그 이유는 조선이 빨리 망했어야 한다는 아쉬움이 비판의식의 외피를 쓰고 사료에 다가갔기 때문이다. 사실 이 비판의식이라는 게 다름 아니라, 이미 조선이 식민지로 귀결되었다는 결과론이었다.

그렇게 해서는 조선 시대에서 보아야만 할 것을 볼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역사는 경험 속에서 배우는 것이므로, 봐야할 것을 볼 수가 없다는 것은 기실 역사 연구에서 치명적인 약점이 된다.

<대학>을 떠올리다


▲ <대동법 : 조선 최고의 개혁>(이정철 지음, 역사비평사 펴냄). ⓒ역사비평사
근대인인 우리는 거의 과거에서 경험을 배워오지 않는다. 그런 경험이 인간의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유용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 우리는 진보한 사회에 살고 있다고 믿으니까. 뒤에 살펴보겠지만, 저자가 강조한 '경험'이라는 열쇳말은 근대 역사학을 비판적으로 이해하는 데도 유용하다.

그런데 비판-책임에 대한 논의에서 더 관심을 둘 사안이 있다. 책임이 빠진 역사 연구자들의 비판의식은 현실에서 자신들의 위상을 반영한다는, 아니 반영하게 되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이는 부분적으로 현실 정치에 대한 비판(을 넘어선 냉소)과 결합하면서, 사회와 나라의 경영에 대한 고민과 책임의식을 소홀히 한 것과 상관이 있다. 이 고민과 책임의식을 조선시대 말로 경세(經世)라고 했다. 조선 성리학자들은 우주론과 심성론만이 아니라, 정치 제도와 법률, 경제 정책, 사회복지 등의 구체적인 경세론을 가지고 있어야 온전한 학인이라고 생각했다.

근대주의에 오염된 조선 시대 연구와 함께, 지금 사회에 대한 경세론적 책임의식의 결여 때문에 역사학자는 역사=경험의 연구에서 소외되었고, 일상 용법에서 우리는 학자라는 표현보다 연구자라는 표현을 즐겨 쓰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삶과 역사를 묻는 학자'에서 '망해가는 조선을 설명하는 연구자'로의 전환, '자신의 삶이 별로 개입하지 않는 직업인으로서의 연구자'로의 전환이 아닐까. 이야말로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에서 민주주의의 '건설'로 가는 도정에서 부딪힌 위기이자, 과제가 아닐까.

<대동법>을 읽으면서 갖게 된 두 번째 희망이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저자는 1970~80년대를 이끌어온 역사학자들을 비판적으로 계승한다. 저자의 연구가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에서 민주주의의 건설로 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는 신뢰가 드는 것은, 그가 그의 저서 전반에 걸쳐 "오늘날 한국 사회의 공적 기능과 사회 문제의 제도적 해결에 대한 희망이 약한 이유"를 묻고 있으며, "(성리학자들은) 자신들이 믿은 성리학 이념을 민생 문제와 관련시켜 고민했다 (…) 그들은 자신들의 믿음을 정치나 사상을 넘어 생활과 삶의 양식에까지 성공적으로 확장했다"고 하면서, "민주주의는 이제 삶의 영역으로 확산되도록 요구받고" 있음을 알고 이 연구를 진행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대동법>에서 지식인 또는 역사학자가 스스로 고민하면서 자신의 자리를 찾는(修身) 공부를 통해 나라나 사회의 기능과 제도를 고민하고 민주주의의 실현을 자신의 역사 연구에 밀착시키는 태도와 실천(格物)을 보여주었다. 이것이 내가 <대학>을 떠올렸던 이유이다.

대동법의 위치 또는 스코프

대동법은 조선 시대에서 일어난 가장 큰 정책 변화로 꼽힌다. 하긴 개혁 논의와 실행에만도 100년이 걸린 경우가 인류 역사상 그리 흔하겠는가. 공납제 개혁 논의의 출발부터 보자면 거의 200년이 걸린 사안이다. 이는 어지간한 왕조 하나가 유지되는 시간이다. 이렇게 보면 조선 사람들은 우리가 애써 잊고 있는 귀한 경험을 참 많이 남긴 사람들이다. 조변석개하는 시사(時事)를 보고 있자니, 절로 드는 생각이다.

어느 시대나 국가를 경영하는 데는 비용이 들고, 이를 재정이라고 한다. 재정은 정부를 유지하는 비용만이 아니라, 나라 살림 전반에 걸쳐 소요되는 비용이다. 조선 시대의 재정도 세금을 거두어야 운영되며, 그 세금(賦稅)은 논밭에서 걷는 세금인 조(租), 특산물이 나는 지역에서 거두는 공납(貢納, 調), 그리고 현물의 형태가 아닌 노동력을 제공하는 요역(徭役, 身役), 즉 용(庸)이라는 '조용조' 체제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전체 재정 중에서 공물의 비중이 점차 확대되었다.

이렇게 공납제가 흔들리는데다가 연산군 대에 마구 추가로 거두어들인 공물이 그대로 항식(恒式)이 되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해당 지방에서 생산되지 않는 공물, 즉 불산공물(不山貢物)의 수취가 더욱 많아졌다. 그 결과 일정한 대가를 받고 생산되지 않는 공물을 대주는 전문 업종, 즉 '방납(防納)'의 폐단이 더욱 늘었다.

예나 지금이나 세금이 복잡해지거나 문란해지면 거기서 죽어나는 것은 소농, 월급쟁이 같은 노동자, 농민, 자영업자 등이다. 이들의 삶이 안정되지 않으면 나라는 유지되기 어렵다. 일차로 대동법은 이 공납제를 바로잡는 것이었다. 늘어난 공물, 생산되지 않는 공물을 재조정해야 했다.

거기에 더하여 공납을 현물이 아닌 전세(田稅)로 받자는 정책안이 등장하였고, 이것이 대동법으로 가는 것이다. 이정철의 <대동법>은 바로 그러한 과정을 다루고 있는 책이다.

20년 전의 기억

20년 전인 1992~3년 경, 한국역사연구회 17세기 유학사상사반에서 공동 연구를 수행했던 적이 있다. 그때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과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을 묶어서 맡았던 나는 기존 학계의 연구와 인식에 균열을 내는 몇 가지 사실을 발견했다.

하나는 이른바 '대명의리(大明義理)'였다. 조선 정치가와 학자들이 명나라에 대한 맹목적 사대주의 때문에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자초했다는 인식이 그것인데, 당시에는 다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지금도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그런 인식은 후금(청)의 침략성을 희석시키고 그 자리에 자기 모멸감을 가져다 놓았다. 당연히 그런 인식은 으레 '빨리 조선이 망했어야 하는데…' 라는 비역사적 가정 속에서 조선 시대사 연구가 이루어지는 토양과 심성을 형성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더 놀랐던 것은 김장생의 공납제에 대한 논의였다. 서인 산림(山林) 세력인 김장생, 그의 아들 신독재(愼獨齋) 김집(金集),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이 대동법에 반대하면서 소농(小農)이 아닌 지주(地主)의 이해를 대변했다고 알고 있었기 때문에, 대동법 시행을 지방 재정과 연관 지어 고민하는 김장생의 논의에 거의 '쇼크'를 받았다.

생각해보면 김장생은 수미법(收米法)을 통해 공납의 폐단을 개혁하고자 했던 율곡 이이의 제자였으므로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공납 개혁에 동의하는 게 당연했다. 적어도 이 무렵 조선에서는, 이해관계에 따라 이합집산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학문과 그에 입각한 정책을 통해 붕당이 형성되고 이어졌기 때문에 기실 이런 관점은 상식이었다. 이런 상식과 사료가 내가 알고 있던 역사 지식과 계속 갈등하기 시작했다.

사계 김장생에게 배운 것

충청도 연산에 살면서 공납의 폐단을 가장 심하게 겪었던 김장생은, 인조 초 삼도(三道) 대동법의 실시에 반대한다. 그는 부자에게 더 거두고 농민의 세금을 줄이는 것, 즉 균등 과세에 반대한 것이 아니라, 그 공정 과세를 하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수단인 양전(量田)이 먼저 실시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진왜란 이후 양전이 없었으니, 당연한 개혁의 수순이었다. 그의 공납제 개혁론은 내게 세 가지 궁금증을 남겼다.

첫째 공안개정과 대동법의 관계이다. 공납제 개혁을 위해서는 공안개정과 대동법, 둘 다 중요하다. 공안개정이란 공납을 낼 품목과 수량을 바꾸는 개혁이고, 대동법은 아예 공납을 전세화(田稅化)하여 토지를 대상으로 부과하는 법이다. 흔히 대동법은 개혁, 공안개정은 미봉책, 이런 식으로 설명하는 논자도 있었는데, 특산물을 내는 공납제에서 품목과 수량을 줄이는 게 미봉책일 수는 없다. 그럼 실제로 공안개정과 대동법은 정책적으로 어떤 길항을 겪었는가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둘째, 대동법은 전세화를 의미하기 때문에 고을 단위로 부과되던 공납제와는 그 부과 대상, 운영 체계를 달리한다. 중앙 집권 국가에서 재정 운영의 근본 체계가 바뀌는 사태였다. 당연히 이는 그동안 공납을 통해 충당하던 지방 재정을 대동법 체제에서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 하는 과제를 낳는다.

셋째, 이쯤에서 정치 세력들의 공납제 개혁, 대동법 실시에 대한 입장을 가지고 그 정치 세력의 계급성과 진보성을 설명하려던 나의 계획은 사태를 피상적으로 이해한 것이라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어쩌면 내가 배워서 알고 있는 역사상이 흔들릴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던 때였다.

그런데 대동법은 나의 연구 주제에서 1순위가 아니었다. 그래서 경제사를 하는 동료 학인들에게 이런 관점이나 문제의식을 넌지시 얘기해보기도 했다. 기다린 보람(呵呵!)이 있는지 이제야 <대동법>이란 고마운 책을 만나게 되었다.

문제의식이 중요한 이유

우리는 이미 이 책의 심장부에 들어와 있다. 이제 저자의 말을 빌려 이 책의 의미를 들어보자. 저자의 문제의식을 보면 책의 구조와 내용이 보일 것이다. 저자는 기존 연구를 세 범주로 나누고, 각각의 의미와 한계를 정리했다.

첫째, 대동법의 성립 이유와 과정에 대한 연구이다. 그런데 이들 연구는 공납제의 여러 측면들이 고립적으로 설명되었다. 장기간의 공물 변통 과정을 연속적인 흐름으로 파악하지 못했다.

둘째, 대동법을 성립시킨 주체에 대한 연구이다. 기존 연구를 보면 대동법을 옹호했던 사람은 언제나 소수였고 비주류였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대동법은 전국으로 확대되었다. 어떻게? 민(民)이 조정을 압박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해석은 지금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다. 뭔가 일리가 있는 대목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가 정책은 그렇게 단순하게 작동하지 않는다. 그 논리대로라면 정책 논의의 공적 공간은 애당초 불필요한 것이다.

나아가 호서대동법의 효과가 분명해진 뒤, 초기에 대동법을 반대한 사람들이 찬성으로 돌아서는 것을 설명할 수 없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그 효과에 확신이 없을 때는 주저하게 마련이다. 결국 이미 경제주의적 환원론, 가진 자들은 대동법을 반대하고 가난한 농민은 찬성할 것이라는 환원론에 빠졌기 때문에 공안개정과 대동법의 상관성 등 정책 논의의 핵심 사안은 건드릴 엄두도 나지 않는다.

셋째, 사상사나 경세론의 맥락에서 대동법의 시대적 의미를 묻는 연구이다. 예컨대 부세 제도 개혁론과 토지 소유 개혁론을 '지주 중심 개혁론 : 소농중심 개혁론'의 구도로 놓고, 주자(朱子)-반주자의 구도로 논의하는 방식이다. 우선 사실 수준에서 이런 개혁론의 차이가 주자-반주자의 구도로 나뉘지도 않았고, 대동법에 대한 논의는 항상 토지 소유에 기초한 균등 과세(均等課稅)가 포인트였다.

저자가 보기에, 국가 재정과 전쟁, 혁명, 민란의 연관성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나타났던 현상이다. 고대 로마의 몰락, 미국 독립전쟁, 프랑스 혁명, 러시아 혁명도 이러한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 역사적 사건들은 모두 재정과 세금 문제에서 시작되었다. 국가 재정과 세금은 결코 온건한 개혁의 대상이 아니다. (29쪽, 각주1)

<대동법>의 구성 : 제1부

이 책은 크게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 '대동법의 계보'에서는 공납제 개혁의 대안으로 대동법이 표면에 등장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렸다. 먼저 저자가 대동법의 '기원'이 아니라 '계보'라고 한 데 주목해보자.

'기원'이 최초의 것 속에 이미 이후에 발생할 무엇인가를 내포하고 있다고 전제하는 실체론적 표현이라면, '계보'는 그런 실체론보다는 과정론적 표현이다. 따라서 '계보'는 실체=X로 환원을 반복하면서 해답을 찾기보다 끊임없이 문제 자체에 주목한다. 저자가 '식민지가 되었다는 결과론'에 빠지지 않은 이유도 역사는 과정 그 자체라고 생각하는 방법론이자 관점에 서있기 때문일 것이다.

제1부에는, 공납 관행의 변화, 대동법의 출발, 공안개정과 대동법의 관계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다. 장기적으로 재정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전세(田稅)에서 공물로 바뀌고, 공납제의 문제점을 통찰하고 그 개혁을 주장하는 율곡이나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 같은 관료들이 생겨났다. 선조 때 임진왜란을 겪으며 전세에 대한 국가 재정적 통제가 붕괴되면서 공납제 개혁의 현실적 필요성이 더 커졌다.

실제로 몇 해 농사를 못 지어 농지가 절단 난 것이든지, 짓고 있으면서 세금을 내지 않으려고 안 짓는다고 신고한 것이든지 간에, 재정 수입이 되는 경작지가 줄었다. 양전과 공납제 개혁을 추진해야할 시점이었던 광해군 대에는 오리(梧里) 이원익(李元翼)의 발의에도 불구하고 광해군 등 정권 담당자들의 반대와 몰이해, 계속되는 토목 공사(궁궐 건축)와 역모 사건으로 점철되어 대동법 시행의 시기를 놓쳤다. 그래서 이 책은 주로 인조 대부터 논의를 시작했다.

제2부 : 획기는 축적에서

제2부에서는 효종대와 현종대의 대동법 논의와 실행을 다루었다. 여기서 우리는 저자가 말한 '경험'의 의미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그는 '경험'이란 용어를 정책과 관련해서 다음과 같이 사용하고 있다.

"그것은 특정한 조건들로 구성된 어떤 현실 상태를 의도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 어떤 정책이 실시되고, 그 정책 실시가 불러온 의도된 혹은 의도되지 않은 상황 변화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말한다. 특정한 경험은 나중에 유사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그 상황을 인식하는 일반화된 틀로 기능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그러한 경험은 자연히 '집단적 경험'이자 '정책적 경험'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저자는 "효종과 현종대의 대동법 성립 과정에서 제기된 문제들과 그것들의 귀결이 어떤 힘에 의해서 지배되고 유도되었는가"를 탐구한다. 그리고 그 힘은 "다름 아닌 인조대의 공물 변통 문제를 둘러싸고 형성되었던, 또 축적되었던 경험의 힘"이라고 진단했다. 즉, 공물 변통의 집단적 경험 속에서 대동법 성립의 방향과 동력을 추적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아가 청나라나 지방 유생들이 대동법 실시에 끼친 영향까지도 염두에 두었다.

제3부 : 공시와 통시의 종합

이러한 통시적 해석과 함께, 제3부 '대동법이 지향하는 진정한 개혁'은 완성된 현실태로서의 대동법을 구조, 개념, 이론의 측면에서 다루었다. 아울러 대동법의 운영과 조선 학자들의 경세론(經世論)에서 나타난 공납제의 위상을 다루었다. 예를 들어, 호(戶)와 토지(土地), 현물과 미포(米布), 제도 개혁과 절용(節用) 등 대동법을 경세론의 맥락에서 설명한다. 1부와 2부가 통시적(通時的) 이해라면, 3부는 공시적(共時的) 접근인 셈이다.

먼저 공물 변통과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문서인 '대동사목(大同事目)'을 분석했다. 대동사목은 대동법의 최종 결과이므로, 이를 통해 대동법이 전체적으로 어떻게 운영되었는지를 독해해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저자는 '경험'에서 얻은 대동법의 실제를 다시 대동법을 이해하는 '관점'으로 추상화하고, 그에 기초하여 그동안 17세기 변통론에 대한 학계의 논의가 가졌던 선험성을 비판적으로 극복하고 있다. 저자가 재정 개혁이 차지하는 의미를, 정책이나 사회운동, 경제적 이해 등의 차원이 서로 혼동하지 않는 가운데 제 위치에 놓고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연구 결과였다.

아쉬움 하나 : 진상 공물

이 책에는 독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친절한 자료가 많다. 서문('책머리에')과 프롤로그에서 누구나 함께 조선 시대 대동법 여행에 동참할 수 있도록 안내했고, 연표와 용어 설명, 인명 사전도 핵심적이고 간결하여 <대동법>의 독해에 요긴하다. 사족 같지만, 이런 걸 통해서 나의 불친절한 글쓰기를 반성하게 된 것도 소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못 본 게 아닌가 하는 대목도 있고 더 써주었으면 하는 주제도 있다. 공안 개정론 중에서 진상 공물의 개혁에 대한 논의는 좀 더 밀고 나갈 필요가 있어 보인다. 저자도 이야기 했듯이, 전통적인 공납제 개혁론인 공안 개정론이 더 근원적인 해결 방법인 대동법에 포섭되고, 지양되기 위해서는 합리적으로 공물가 총액이 산정되고 결(結)마다 균등하게 분정되어야 했다. 그리고 이는 대략 현종 연간에 이르러 가능해졌다. 그런데도 공안 개정론은 계속 제기되었다. 왜 그랬을까? 바로 어공(御供)과 진상(進上) 때문이었다. 이 부분이 대동법에 흡수되지 못하고 공물로 계속 남아 있었던 탓이다.

어공이나 진상은 '진공(進供)'이란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국왕이나 왕실에서 사용할 물품들을 바치는 것이었다. 원래 '공물(貢物)'이 중앙 정부의 수요에 충당하는 공납의 개념이라면, 진상은 지방직에 있는 신하가 국왕에게 예물로 바치는 '예헌(禮獻 : 예의로 바치는 선물이라는 관념)'에 기초해 있다. 이때 과일이나 생선 등의 식품(物膳), 활이나 환도(環刀), 꿀이나 인삼 따위의 약재가 그 예물이 되었다. 대략 품목은 320종 정도였고, 그 양을 공물가로 치면 2만 석 정도였다.

게다가 진상 공물은 품질이 우수해야 했으므로 품질 검사(點退)가 엄격했고, 그에 따라 비리가 횡행해 백성들의 고역이 되었다. 당연히 방납도 가장 많을 수밖에 없었다. 이래서 현종 연간에 송시열이 대동법 실시 및 확대를 주장하면서도, 대동법에 포섭되지 않은 어공과 진상 부분 때문에 공안 개정론을 계속 견지한 것이다.

이런 송시열의 주장은 허적(許積) 등의 반대에 직면했다. 이는 경각사(京各司) 회계를 잘 몰랐던 송시열과 관료 출신 허적의 차이이기도 하지만, 진상 공물에 관한 한 송시열의 지적의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진상 공물의 정점에는 왕실(王室)이 있었다. 대동법 연구의 연장에서, 정책과 제도사 연구의 지평을 위해서도 이 부분이 차후에 검토되었으면 한다.

아쉬움 둘 : '왕안석과 같다는 말'

제2부에 별도의 칸을 만들어 왕안석을 설명한 대목이 있다.(226쪽)

"조선 시대에 안민과 국가 재정의 관계는 어떤 면에서 오늘날 경제적 성장과 분배, 개인적 자유와 공동체적 공정성 등의 상징적 관계를 연상케 한다. 이들 대립항에서 현재 사회적으로 우월한 지위에 있는 사람들은 앞쪽의 가치를, 그렇지 못한 사람은 뒤쪽의 가치를 옹호하는 경향이 있다. 국가 재정과 안민의 관계는 원칙적으로 대립하지 않고 궁극적으로 그럴 수도 없다. (…) 오늘날 대립항의 앞쪽 가치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뒤쪽 가치에 대해서 '좌파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조선 시대에 상대를 '왕안석과 같다'고 몰아붙이는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아 보인다."

이런 저자의 견해는 '안민(安民)과 국가 재정의 관계'를 '경제적 성장과 분배, 개인적 자유와 공동체적 공정성'의 관계로 놓은 데서 삐걱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안민은 분배나 공동체적 공정성과 가깝지, 안민(요즘 말로 노동자, 농민 생활의 안정)이 성장-개인적 자유(요즘 말로 시장주의)와 짝을 이루지는 않는다. 왜 이런 실수를 저자가 저지른 것일까? 아마도 삐끗한 이유는 왕안석에 대한 저자의 선입견, 아니 학계의 선입견에서 찾아야 할 듯하다.

흔히 왕안석 연구의 권위자라고 하는 제임스 류 이래로 왕안석의 신법(新法)을 진보적 개혁으로(저자의 말에 따르면 '좌파적'으로) 사마광(司馬光) 등을 구법당(舊法黨)이라고 불렀다. 명칭 자체가 '구'법당이니 당연히 우리에게는 '보수 진영'으로 각인되었다. 이런 선입견 때문에 저자는 왕안석은 '좌파적' 개혁가로 놓고 '국가 재정-분배-공동체적 공정성'의 짝을 맞춘 듯하다.

그러나 제임스 류는 송대 성리학자들의 국가와 공동체에 대한 태도를 잘 몰랐기 때문에 왕안석의 정책에 대한 당시의 논란을 올바로 이해할 수 없었다. 예를 들어, 주자(朱子)는 왕안석의 청묘법(靑苗法)에 대해, "청묘법은 (…) 백성들에게 곡식이 아니라 돈을 지급하며, 처리 단위가 현(縣)이지 향(鄕)이 아니다. 그 자리에 관리를 임명하지 지역 사회의 사군자(士君子)를 임명하지 않는다. 따라서 한 읍에는 시행할 수는 있지만, 천하에 시행할 수는 없다"고 비판했다. (<朱文公文集> 권79, '婺州金華縣社倉記')

주자에게 '현(縣)'은 중앙 정부의 연장이자 국가 권력의 표현이었다. 곡식이 아니라 돈을 지급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돈은 국가에서 통제할 수밖에 없는 것이므로 역시 국가(이 경우는 중앙 집권 국가) 중심의 해결 방식이었다. 그러므로 주자는 시폐(時弊)를 국가 중심으로 해결하려는 시도, 즉 지역(향촌, 마을)의 자발성에 기초하여 해결하지 않는 시도를 거부하였다. 왕안석의 개혁은 곧 국가 권력의 강화, 법제의 강화를 의미하였고, 패도(覇道)로 가는 길이라고 인식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주자나 조선 시대 유학자들은 근대 학자들보다 '국가'에 훨씬 덜 포섭되어 있었다. 사유나 존재 두 측면에서 모두 그랬다. 유가(儒家)는 늘 제도를 말하지만 그보다 앞에 두는 것은 인간의 자발적 동력이다. 이것이 유가가 문명(文明) 일반을 대하는 두 측면이다. 좀 더 두고 논의할 사안이지만, 조선 시대 관료들의 출사(出仕 : 관직에 나아감)에 대한 열망 또는 사회적 책임감이 국가주의를 전제로 한 것이 아니라는 정도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재지 기반도 그렇고, 이념적 지향도 그렇다.

나라=왕조는 사회의 안정을 위해 자신들이 책임을 져야할 대상이지만 동시에 그것은 관리의 대상, 견제의 대상이기도 했다. 이 긴장성을 놓치면 우리는 근대 국민국가의 전일성(專一性)에 포섭된 채, 아니 그 획일성을 내면화한 관점으로 왕안석을 '진보적'이라고 평가할 것이다. 늘 국가 제도가 공정한 것은 아니며, 또 제도가 공정하게 만들어졌다고 해서 공정하게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포식성의 측면에서 볼 때 근대국가는 더 심하다.

나가며

공부를 할수록 학문을 업으로 하고 사는 게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하나는 학문은 다수결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때이다. 어떤 견해가 유행하거나 다수라고 해도 소수의 견해가 무시될 수 없고, 무시되지도 않는다. 학문만이 아니라, 사회도 그러해야 할 것이다.

둘째, 학문은 항상 이기게 되어 있는 게임을 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 때이다. 다른 학자들의 연구와 고민을 통해, 미처 보지 못한 인간과 사회의 모습을 발견하고 깨달아 가다보면, 어느덧 그런 연구가 소중하게 느껴지고, 그런 연구를 소중하게 느낄 줄 아는 내가 대견하게 느껴진다. 그러면서 이 연대감에 삶이 새삼 뿌듯하게 다가온다.

이번에 <대동법>을 읽으면서 다시 들었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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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fn 2011-07-01 2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쉬움 둘 : 왕안석과 같다는 말"

이 부분에 대해 오항녕 교수가 이해를 잘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저자는 민심이란 가난한 백성을 가리키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지적했습니다. 저자가 226쪽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민民으로서의 가장 큰 혜택은 양반들이 누리는 경우가 많았고, 위에서 대동법을 불편하게 여기고 반대 상소를 올리는 주체는 백성이 아닌 대가와 호족입니다.

오항녕 교수는 이 부분에 대해 언급하면서, 왠일인지 위에서 말한 민民의 명분과 실제의 혼동을 싹둑 잘라먹고 안민과 국가재정의 관계에 대한 부분만 인용하면서 왕안석과 같다라고 한 저자를 비판하고 있습니다.

저자의 말대로 국가재정과 안민의 관계는 원칙적으로 대립하지 않고 궁극적으로 그럴 수도 없습니다. 경제적 성장과 개인적 자유를 옹호하는 사회적으로 우월한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분배와 공동체적 공정성을 옹호하는 사람들을 '좌파적'이라고 말하는 것이 바로 현재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배불뚝이 박정희 아들이 깡마른 박정희를 빨갱이로 몰아가고 있는 현상" 즉, 사다리 걷어차기입니다.

오항녕 교수가 말한 "안민은 분배나 공동체적 공정성과 가깝지, 안민(요즘 말로 노동자, 농민 생활의 안정)이 성장-개인적 자유(요즘 말로 시장주의)와 짝을 이루지는 않는다." 는 대목은 저자가 지적한 '민民의 실체' 로 볼 때 부당한 시비라고 생각합니다.
 

캘리포니아 대학교(버클리)의 언어학과 교수 조지 레이코프는 언어 능력도 인간의 일반 인지 능력의 일부이므로 언어의 본질은 인간의 다양한 인지적 측면을 고려할 때야 비로소 해명 가능하다고 보는 인지언어학의 창시자이다.

레이코프는 MIT 재학 시절 놈 촘스키의 제자였다. 그러나 그는 촘스키의 생성언어학이 언어의 본질을 해명하는 데 근본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언어 연구에서 인지적 측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처럼 언어학자로서 레이코프는 스승과 완전히 대립적인 입장에 섰다.

언어학자 레이코프에서 정치 평론가 레이코프로

인지언어학의 중요한 발견 중의 하나는 은유가 단순히 언어의 장식적 사용이나 화용적 효과의 강화와 같은 언어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고 과정의 중요한 기제라는 시각이다. 레이코프는 개념적 은유 이론이라 불리는 새로운 은유관을 <삶으로서의 은유(Metaphors We Live By)>(1980/2003년)에서 정립한 이후 <여자와 불, 위험한 것들(Women, Fire and Dangerous Things)>(1987년)과 <냉철한 이성을 넘어서(More Than Cool Reason)>(1988년), <몸의 철학(The Philosophy in the Flesh)>(1999년)에서 계속 다듬어 왔다.

특히 레이코프는 이 은유 이론과 프레임 이론을 이용하여 미국인의 정치적 세계관의 본질을 분석하려고 시도했다. 그 결과 그는 미국인의 정치적 사고 기저에 '가정은 국가'라는 은유가 작용하고 있으며, 가정에 대한 상이한 두 가지 모형('엄격한 아버지 모형'과 '자애로운 부모 모형')이 미국 정치에서 대립하는 두 가지 정치적 세계관, 즉 보수주의적 정치관과 진보주의적 정치관을 낳는다고 주장한다.

그의 이러한 시도는 <도덕, 정치를 말하다(Moral Politics)>(1996/2002년)와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Don't Think of an Elephant!)>(2004년), <프레임 전쟁(Thinking Points)>(2007년), <자유는 누구의 것인가(Whose Freedom)>(2007년), <정치와 마음(The Political Mind)>(2008년) 등의 책에 오롯이 반영되어 있다.

상대의 프레임은 아예 언급하지도 마라!


▲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조지 레이코프 지음, 유나영 옮김, 삼인 펴냄). ⓒ삼인
언어학자로서의 레이코프는 은유 이론을 정립한 <삶으로서의 은유>(나익주·노양진 옮김, 박이정 펴냄)가 나오기 전부터 이미 유명한 인물이었지만, 그가 대중적인 관심을 끌기 시작한 것은 2004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펴낸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유나영 옮김, 삼인 펴냄)가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오른 덕택이다.

이 책에서 레이코프는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라는 말을 들을 때 사람들은 누구나 코끼리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는 사례를 들면서, 상대방의 프레임을 부정하면 할수록 오히려 그 프레임이 강화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는 1980년대 레이건 행정부 이후 미국의 진보 진영이 잇달아 보수 진영에게 패하고 있는 이유가 미국의 보수는 자신들의 정치적 가치와 정체성을 적절한 프레임에 넣는 반면 진보는 그러하지 못하는 데 있다고 보고 정치와 선거에서 프레임 형성이 중요하다는 점을 역설하였다.

예를 들어, 보수주의자는 '세금 인하'를 '세금 구제' 프레임으로, '상속세'를 '사망세' 프레임으로 재구성하여 '세금은 모든 납세자에게 고통을 주는 해로운 무기와 같은 것'이므로 반드시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를 통해 부시를 비롯한 보수파는 자신들은 영웅이며 세금 인하에 반대하는 진보주의자는 악당이라는 인상을 심어주는 데 성공하였다.

가치를 두고 벌이는 개념 쟁탈전


▲ <프레임 전쟁>(조지 레이코프 지음, 나익주 옮김, 창비 펴냄). ⓒ창비
레이코프는 <프레임 전쟁>(나익주 옮김, 창비 펴냄)에서 은유 이론이 미국의 다양한 진보적 가치를 분석하는 데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새로운 논증의 프레임을 구성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 책은 미국을 정의와 평등을 실현하는 위대한 자유 국가로 만든 미국의 진보적인 가치를 은유 이론의 시각에서 다루며, 미국 진보주의자의 나아갈 길을 제시한다.

그가 보기에 현재 미국의 진보적 가치들(공평성, 정의, 평등, 책임, 안전 등)은 자칭 '보수주의자'라는 극우들에 의해 그 본질적인 의미가 훼손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진보주의자는 무엇이 옳고 그른가를 본능적으로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진보주의자는 자신의 옳은 판단을 언어로 표현해야 하며, 자신의 진실을 타인에게 명확히 전달할 수 있는 프레임을 찾아야 하고, 이것을 효과적인 논증으로 전환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그는 진보주의자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반영할 프레임을 재구성함으로써 이러한 가치의 전통적인 의미를 지켜나갈 수 있다고 조언한다.

'자유'를 두고 벌이는 개념 전쟁


▲ <자유는 누구의 것인가>(조지 레이코프 지음, 나익주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웅진지식하우스
레이코프는 <자유는 누구의 것인가>(나익주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펴냄)에서 미국의 가장 중요한 개념인 '자유'의 의미를 보수주의자들이 어떻게 훼손하고 있는지에 초점을 맞췄다.

레이코프는 이 책에서 미국 민주주의의 발달 과정에서 노예제 철폐, 여성 참정권 인정, 노동자 권리의 신장, 시민적 권리의 확대, 기회의 확대, 환경 보호 운동을 가능케 했던 것이 바로 (자애로운 부모 가정 모형에 근거한) '자유'의 진보적인 해석이라고 단언한다. 그가 보기에 지금 이 자유는 위기에 처했다.

미국의 보수 우익이 미국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개념인 '자유'의 의미를 자신의 구미에 맞도록 새롭게 해석하면서 이 개념을 훔쳐갔기 때문이다. 레이코프는 이 위기감을 "자유를 잃는 것도 두려운 일지만, '자유' 개념을 잃는 것은 훨씬 더 두려운 일이다"라는 짧은 어구로 표현하고 있다.

정치는 뇌와 마음에 있다!

<정치와 마음>에서도 레이코프는 인지언어학의 은유 이론을 토대로 미국의 정치적 상황과 미국인의 정치적 사고를 분석하여, 보수주의자들이 정치·사회적 이슈를 프레임에 넣어 사람들의 마음을 통제함으로써 선거에서 승리하고 권력을 계속 장악해 왔다고 주장한다.

특히 이 책에서 레이코프는 정치적 사고가 프레임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자신의 생각이 신경과학적으로 근거가 있다는 주장을 앞의 책보다 더 강력하게 펼친다. 그는 정치가 논쟁, 논증을 통해서 마음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신경 경로나 회로(neural circuitry or pathways)를 만들고 짠다고 주장한다.

마음에 와 닿고, 매력이 있으며, 마음을 편하게 하는 서사(narrative), 은유, 어구를 반복적으로 접하게 되면, 그러한 표현의 이해에 관여하는 우리의 특정한 신경 경로가 계속 활성되어 결국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몸에 고착된 신경 경로는 강력한 프레임으로 작용해, 우리의 사고와 행동을 이끌고 제약한다.

한 마디로, 사람들의 뇌를 통제하는 정치가가 선거에서 승리한다.

정치평론가 레이코프의 출발점은?


▲ <삶으로서의 은유>(조지 레이코프 지음, 나익주·노양진 옮김, 박이정 펴냄). ⓒ박이정
앞에서 간략히 살펴봤듯이 레이코프는 생성언어학자에서 인지언어학자로 전향하고 나서, 미국의 정치와 미국인의 이념을 분석하는 데 자신의 이론을 적용하여 상당히 통찰력 있는 결과를 내놓고 있다. 또 새로운 책을 내놓을 때마다 그는 조금이라도 새로운 주장을 더하고 있다.

그렇지만 <삶으로서의 은유>부터 <정치와 마음>까지 다섯 권의 책은 한 가지 핵심 주장을 공유한다. 그는 미국 정치의 보수적인 세계관과 진보적인 세계관의 밑에는 '국가는 가정'이라는 은유가 깔려 있으며, 미국인의 보수주의적 가치관은 '엄격한 아버지' 가정 모형에서 진보주의적 가치관은 '자애로운 부모' 가장 모형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바로 이런 주장을 처음으로 체계적으로 정리한 책이 바로 <도덕, 정치를 말하다>(손대오 옮김, 김영사 펴냄)이다. 정치평론가이자 정치철학자로서의 레이코프는 <도덕, 정치를 말하다>에서 출발한 것이다.

한국 사회와 레이코프

대부분의 주요 저서가 번역되어 나왔을 정도로 레이코프는 한국에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인지언어학계는 이제는 고전으로 평가 받는 <삶으로서의 은유> 덕택에 상당히 오래전부터 유명하였다. 또 미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은유 이론과 프레임 이론으로 정치 담론을 분석한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프레임 전쟁>, <자유는 누구의 것인가> 등으로 한국의 일반 독자에게도 낯설지 않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정치평론가 레이코프의 출발점이었던 <도덕, 정치를 말하다>는 몇 년 전 한국어판이 출간되었지만 별로 관심을 받지 못하였다. 그렇지만 도덕과 공정성이 우리 사회의 중요한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는 바로 이 시점에 이 책이 다시 출간되었으니 반가운 일이다.

정치적 세계관은 이상화된 가정 모형의 도덕성에서 나온다


▲ <도덕 정치를 말하다>(조지 레이코프 지음, 손대오 옮김, 김영사 펴냄). ⓒ김영사
레이코프는 <도덕, 정치를 말하다>에서 미국인의 정치적 사고는 대부분 무의식적인 은유에 의해서 결정되며, 대립하는 두 가지 정치적 입장(진보와 보수)은 앞에서도 간단히 소개했듯이 '국가는 가정' 은유 (달리 표현하면, '가정으로서의 국가' 은유)와 이상적 가정에 대한 두 가지 모형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한다.

이 은유의 존재는 독립전쟁 유공자 자손 단체의 이름이 '미국 혁명의 딸들'이라거나, 1787년 미국 헌법안에 서명한 제헌의원 55명을 '건국의 아버지들', 이라크 전쟁에 참여하는 미군을 묘사하는 '우리의 아들과 딸들' 또는 '형제의 부대'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은유에서는 국가는 가정에, 정부(의 수장)는 부모에, 국민은 자녀에 대응한다.

보수의 정치적 세계관과 진보의 정치적 세계관은 미국인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이상적 가정 모형의 도덕성에 의해 정교하게 형성된다. 하나는 엄격한 아버지 가정이고 다른 하나는 자애로운 부모 가정이다.

엄격한 아버지 가정에서는 위험으로 가득한 세계에서 가족을 보호하고 부양할 책임을 떠맡으며, 자녀들의 행동을 제약하는 규칙을 부과할 권위를 지닌다. 어머니는 자애로운 사랑으로 아버지의 권위를 보완할 뿐이다. 이 세계관에서는 자기절제와 자립심, 합법적 권위에의 순종이 바로 자녀들이 배워야 하는 가장 중요한 속성이다.

이 모형에서는 보상과 징벌의 원칙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순종에 대한 보상과 불순종에 대한 징벌은 도덕적 권위(힘)를 유지하는 데 중요하기 때문이다. 또 자녀는 절제력을 기르고 외부의 간섭을 차단하며 자기이익을 추구해야 한다.

반면 자애로운 부모 가정 모형은 감정 이입과 자애로움, 자신과 타인에 대한 보살핌, 공정한 분배 등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 가정에서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동등하게 자녀들을 감정 이입과 사랑으로 보살피며, 이로 인해 자녀들은 행복감을 느끼며, 부모에 대해 존경과 사랑의 마음을 갖게 된다. 그 결과 성장한 뒤에 자녀들은 벌을 받을까 두려워서가 아니라 존경과 사랑의 마음으로 인해 자신의 부모와 공동체를 보살피게 된다.

레이코프는 진보주의와 보수주의를 정의하는 데 도덕성에 대한 은유들의 무리가 동일하게 사용되고 있으며, 이 무리 중에서 어떤 은유들에 우선순위가 주어지는가에 따라 보수적 사고와 진보적 사고의 특성이 규정된다고 주장한다. '안녕은 부', '도덕 회계'(예를 들어, '명예는 자본', '불명예는 부채', '모욕은 피해', '존경은 수익' 등), '도덕성은 자기 이익 추구', '일은 가치 있는 물건', '도덕은 힘', '악은 힘', '도덕적 권위', '도덕적 질서'(즉, '도덕적 질서는 자연적 질서'), '도덕적 본질', '도덕은 깨끗함', '도덕은 건강', '도덕적 감정 이입', '도덕적 양육' 등의 은유가 엄격한 아버지 가정의 도덕성과 자애로운 부모 가정의 도덕성을 정의하는 데 사용된다. 그런데 이 두 가정 모형이 어떤 은유들에 우선순위를 부여하는가는 다르며, 이것이 정치적 세계관의 차이로 이어진다.

엄격한 아버지 가정 모형에서는 '도덕적 권위'와 '도덕적 힘', '도덕적 질서' 은유에 최우선 순위를 부여한다. 이 가정 모형은 엄격한 도덕적 질서를 명시하는데, 아버지는 본래부터 가정을 이끌기에 적합하며 자녀를 통제할 권위(힘)을 갖는다. 이 권위는 아버지의 자연적인 우위와 성품으로부터 나온다. 이 가정 모형에도 '도덕적 감정 이입'과 '도덕적 양육'이 있지만, 도덕적 힘과 합법적 권위를 계발하는 일차적인 목적에 비해 부차적이다. 반면 자애로운 부모 가정 모형에서는 '도덕적 양육(자애로움)'과 '도덕적 자애로움' 은유를 특별히 강조한다. '도덕적 권위'와 '도덕적 질서' 은유는 이 가정 모형에도 존재하지만, 부모의 자애로운 보살핌과 성품에 비해 보조적이다.

얼핏 별로 관련이 없어 보이는 사회 복지 프로그램 축소론자, 감세 옹호자, 사형제 옹호자, 낙태 합법화 반대자, 총기 소유 지지자, 환경 규제 반대자(개발론자), 차별 시정 조치 반대론자, 동성애 반대자들이 주로 보수주의 경향을 가진 사람인 반면, 사회 복지 프로그램 확대론자, 감세 반대자, 사형제 폐지론자, 낙태 합법화 옹호자, 총기 소유 반대자, 환경 규제론자, 차별 시정 조치 옹호자, 동성애 옹호자 등도 쪽은 진보 경향을 가진 사람인 이유는 무엇일까? 레이코프는 엄격한 아버지 가정 모형의 가치와 자애로운 부모 가정 모형의 가치 덕택에 전자의 무리와 후자의 무리가 각각 일관성 있게 묶이게 된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엄격한 아버지 가정 모형을 적용하는 보수주의자에게 사회 복지 프로그램은 사람을 응석받이로 만들고 도덕적으로 약하게 만들며 절제와 의지력을 길러야 할 필요를 제거하므로 도덕적이지 못한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사람을 돕는 데 사용하는 세금을 늘리는 것은 비도덕적이며, 오히려 세금을 낮추는 것이 도덕적이다.

자애로운 부모 가정에서는 부모가 자녀에게 무조건적인 자애로운 사랑을 베풀어야 하며, 이것은 생명에 대한 경외감을 암시하기 때문에, 당연히 진보주의자는 사형 제도에 반대하게 된다. 반면, 엄격한 아버지 가정의 도덕에 따르면, 자녀들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서는 아버지가 당연히 엄한 벌을 주어야 하기 때문에, 보수주의자는 당연히 사형의 징벌을 지지한다.

보수주의자는 낙태가 엄격한 아버지 도덕을 위반하기 때문에 반대하며, 진보주의자는 원하지 않는 아기의 출산으로 인해 곤란에 처하게 될 산모가 동정과 도움을 필요로 한다고 보기 때문에 낙태를 허용하는 입장을 갖는다. 그리고 누구든지 자신의 가족을 최대한 보호할 책임이 엄격하고 권위 있는 아버지에게 있다고 보는 보수주의자는 총기 소유권을 지지한다. 총기는 개인적인 보호의 한 형태이며 남성성의 상징으로 도덕적 힘과 도덕적 권위, 도덕적 질서를 유지하는 도구이다. 반면에 진보주의자는 고통스런 육체적 징벌은 폭력의 악순환을 가져올 뿐이라고 보는 자애로운 부모 도덕성에 따라 총기 소유권에 반대한다.

이러한 보수와 진보 사이의 격렬한 논쟁은 미국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한국에서도 현재 두 진영 사이에 치열한 개념 쟁탈전이 벌어지고 있다. (물론 개념 쟁탈전의 수준에 이르지 못하고 거의 물리적 대결이나 언어적 감정적 대립의 수준에 머무르는 경우가 더 많기는 하지만 말이다.) 전국적으로 논란이 되는 쟁점을 살펴보자면, '4대강 개발 사업' ' 고교 평준화의 유지 여부' '기업형 슈퍼마켓 및 대형 할인점 영업 허가 제한' '서울대학교 지역 균형 선발제' '대북 정책(햇볕정책 지속 여부)' '(종합부동산세 폐지를 비롯한) 감세 정책' '낙태 금지' '사형제 폐지' '이주노동자 인권 보호 문제' '소외 지역 교육 복지 투자 우선 사업(사회 보호 프로그램)' '의료 보험 민영화' '영리법인 병원 허용' '직업 안정성이냐 노동 유연성이냐' 등을 두고 보수 진영과 진보 진영이 첨예한 의견 대립을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엄격한 아버지 가정의 도덕성을 따르는 보수파에게 한반도의 4대강은 자원이자 인간의 소유물이며, 따라서 이익 추구를 위해 개발할 수 있는 대상으로 간주된다. 따라서 그들에게 4대강 개발 사업은 이익 추구 과정에서 환경에 손상을 입히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이기 때문에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들의 도덕에서는 원하는 것을 추구하는 활동을 중단할 수는 없으며 손상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기만 하면 된다.

대북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보수주의의 엄격한 아버지 도덕성에서 볼 때, 한반도는 갑자기 부모가 계시지 않은 가정이며, 이 가정에 두 형제(남한과 북한)가 살고 있는데, 한 형제(남한)는 충분한 자기절제와 책임을 바탕으로 성장하여 스스로 도덕적으로 권위 있는 성인이 되었지만 다른 한 형제(북한)는 절제가 부족하기 때문에 도움을 주면 더욱 응석받이가 되어 절제를 기르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더욱 엄하게 대하여 그로 하여금 스스로 절제를 길러 살아가도록 훈육해야 할 것이다. 현 시점에서의 대북 관계는 이러한 엄격한 아버지 가정의 도덕성에 근거하여 이루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의 핵심은 보수주의와 진보주의의 대립이 단순한 당파성이 아니라 그들이 자라났거나 이상화했던 가정 모형의 도덕성에 의해 영향 받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 레이코프는 지루할 정도로 세세하게 개념 정리를 하고 있다. 이 책이 저자의 다른 정치 평론책의 출발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당연한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의 서술이 진보주의와 보수주의 어느 한쪽 편에 편향되어 있지는 않지만, 레이코프는 환경문제와 빈부 격차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보수주의자의 인식 부재가 위험하다고 지적하면서 진보주의자들이 보수주의자의 정치적 세계관을 정확하게 이해하여 그들과의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자신의 바람을 밝힌다. 저자의 이러한 바람이 한국의 보수와 진보는 경계를 정하기가 그리 쉽지는 않는 한국의 상황에서도 그대로 적용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그렇지만 대립하는 쟁점의 범위가 점점 확대되어 가고 있는 이 상황에서 이 책은 진보와 보수의 정치적 세계관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리라 판단한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번역 상태와 관련하여 언급하고자 한다. 전체적으로는 저자의 주장을 이해할 수 있었으나 적지 않게 눈에 띄는 오역과 생경한 용어, 어법이나 호응 관계가 어색한 문장으로 정확하게 이해하기 힘들고 글의 흐름이 자꾸 끊기었던 점은 아쉬움으로 남으며 다음 판을 인쇄하기 전에 바로잡아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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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5·18 민주화 운동과 학살 사건의 진상은 어느 정도 규명되었고, 그 과정에서 두 전직 대통령이 처벌까지 받은 바 있다. 그런데 시스템클럽의 지만원은 "광주5·18 사태야말로 대한민국 역사의 암흑기로 불릴 정도로, 자유민주주의 이 땅을 좌익 세력과 북한 김일성이 침투시켰던 간첩 및 특수군인들에 의해 解放赤化(해방적화) 시키려는 국가전복을 노린 엄청난 사태"였다고 줄기차게 주장하고 있다.

한편, 이승만 전 대통령의 양자인 이인수와 4·3 사건 당시 토벌군 사령관이었던 박진경의 양자인 박익주, 서울 한 교회의 목사인 이선교 등은 공식적인 진실 규명이 완료되고 1만8000명의 무고한 민간인 대다수가 군인, 경찰, 서북청년단 등에 의해 희생된 사실이 확인된 제주 4·3 사건에 대해 '진상 조사 보고서 배포 금지', '희생자 결정 무효', '4·3 특별법 일부 조항 위헌' 등을 주장한 바 있다. 이들은 헌법소원 2건, 행정 소송 2건, 국가 소송 등 6건의 소송을 제기했으나 최근 헌법재판소에서 각하되었다.

4·3 사건 당시 초토화 작전과 학살 현장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피해자들은 사건 이후 지금까지 한 평생을 고통을 안고 살아왔으며, 남은 가족도 빨갱이로 낙인찍힌 후 변변한 직장조차 갖지 못했고 이웃의 따돌림으로 고통을 당해왔다. 그런데 1948년 4월 3일 이후 제주에 투입되어 좌익 무장대 토벌한다면서 중산간 지역에 거주했던 수많은 민간인을 빨치산 동조자라고 무참하게 학살했던 군 지휘관이나 병사들 중 누구도 자신의 과오를 공개적으로 반성하거나 고백하지 않았으며, 현장에서 민간인 학살을 자행한 부대의 그 어떤 지휘관도 처벌된 적이 없다.

광주 5.18 민주화 운동의 희생자들 역시 다르지 않다. 아직도 병상에서 그날의 상처로 신음하는 사람, 자살로 생을 마감한 사람의 가족들, 생활고와 트라우마로 가정이 풍비박산된 사람도 부지지수이다.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비롯한 35명의 신군부 지휘관들이 내란죄, 내란목적살인죄로 기소, 수감되었으나 2년도 안 되어 석방되었으며, 곧바로 사면, 복권되었다.

전두환은 그 이후 자금까지도 공공연하게 공적 활동은 해왔으며, 그의 고향에서는 그의 호를 딴 일해공원까지 설립되었고, 급기여 한나라당의 소장 개혁파의 대표 선수이자 과거 전두환 정권에 맞서 투쟁을 했던 국회의원 원희룡은 세배까지 가서 그에게 큰절을 올리기도 했다. 한편, 1980년 광주에서 공수부대가 시위대와 민간인들을 향해 무자비한 살육이 발생했을 때, 이 사건을 간첩에 의한 소요로 몰고, 시민을 '폭도'로 규정했던 <조선일보>를 비롯한 주류 언론들은 이에 대해 한번 도 공식적으로 사과를 한 적이 없다.

이 두 큰 사건의 발생과 우리 사회가 그것을 다루어온 모습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가? 국가가 저지른 범죄는 처벌되지 않고, 그 범죄에 가담했던 사람들은 반성은커녕 승승장구해왔고, 그 사건의 피해자들은 극히 형식적인 사과와 알량한 보상 금액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으며, 망가진 인생과 깊은 상처를 한탄하며 파괴된 영혼을 어루만지며 살아가고 있다.

진실화해위원회가 각종 인권 침해 사건의 진실 규명을 결정하고, 법원이 사건을 재심하여 애초의 사법부의 판결이 번복된 일부 사건 관련자들은 어느 정도 명예도 회복했고, 보상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수십만 명에 달하는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유족들, 수백 명의 군사 정권 하 납북 어부와 그 가족들, 수천 명을 넘어설 국가보안법, 긴급조치, 반공법 관련 피의자나 수감자들은 여전히 빨갱이의 멍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수많은 군 의문사 유족들은 사랑하는 아들을 국가에 보냈다가 청천벽력 같은 비보를 들은 후 자식의 시체조차 자기 손으로 수습하지 못한 채 지금까지 자식을 가슴에 묻고서 살아가고 있다.

이 어처구니없는 부정의, 불법, 반인륜, 부도덕한 일이 이 땅에서 60년 이상 계속되고 있는데도 그 고상한 법 기술과 논리로 먹고사는 대다수의 검사, 판사, 변호사, 법학자들은 이 문제를 거의 모른 체 했을 뿐더러 오히려 국가 범죄의 가담자, 협력자가 되어 법의 이름으로 폭력 질서를 정당화하고 피해자들을 법의 이름으로 살해하고도 죄의식을 느끼지 않은 채 살아왔다.


▲ <국가 범죄>(이재승 지음, 앨피 펴냄). ⓒ앨피
이재승의 <국가 범죄>(앨피 펴냄)는 바로 이 대한민국의 국가 범죄 전반에 대한 준엄한 고발장이자 검사의 입장에서 이 범죄에 동조한 모든 과거의 '육법당'을 학술적으로 기소한 것이다. 나치의 법을 고발했다가 사상이 의심스럽다고 해직당한 독일의 구스타프 라트브루후 같은 법철학자가 유신 시절이나 전두환 시절에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것은 우리 역사의 참으로 부끄러운 장면이지만 우리 사회에서 과거의 '법률적 불법'을 이제 부담 없이 비판할 수 있게 된 1987년 이후에도 과거 사법부의 정치 재판의 관행을 비판하는 용기를 가진 법학자나 변호사도 가뭄에 콩 나듯이 예외적으로만 존재했다는 것도 대단히 안타까운 일이다. 늦었지만 이재승의 작업은 이제 한국의 법학계도 불법과 폭력을 법이라 우기면서 국가 범죄, 헌정 유린, 불법적 법, 폭력을 정당화해온 법학자들이 자신의 잘못된 과거를 털어버릴 수 있는 중요한 발걸음이라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이재승의 <국가 범죄>는 1987년 이후 우리 사회에서 진행된 과거 청산 과정에서 제기된 거의 모든 법적인 쟁점을 다루고 있다. 6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도 독자들을 압도하지만, 저자의 법철학적 식견, 과거 '법률적 불법'에 불과했던 여러 실정법에 대한 날카로운 해석과 비판, 독일 등 외국 사례와 국제적 표준에 대한 충실한 해설, 조용수 사건 등 국내의 재심 사건 재판부의 판결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 풍부한 사례 제시 등이 돋보인다.

그래서 이 책은 그 동안 이 문제에 앞장서온 재야 변호사들의 논리나 외국의 사례에 대해 무지한 채 오직 자연법적인 논리로만 정치 재판에 대해 비판을 해온 사법 피해자들, 인권운동 진영의 논리를 확실하게 넘어서서 새로운 인식의 지평을 열어주고 있다. 더구나 국내외 각종의 사례가 중간에 엄청나게 많이 삽입되어 있고, 또 풍부한 각주까지 달려 있어서 가히 이 분야의 교과서로 자리매김할 수도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재승이 시, 소설, 영화의 예를 들어서 관련 사안의 성격을 부연한 것은 다른 딱딱한 법학 서적이나 비평서에서 거의 예를 찾아 볼 수 없는 이 책만의 장점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단순히 과거 법률과 사법부에 대한 비판을 넘어서서 유사한 경험을 겪은 나치 하의 독일과 한국을 비교하면서 통일 이후의 우리가 맞이할 법적인 쟁점까지 거론하기 때문에, 미래 지향적인 가치도 지니고 있다.

이재승이 서문에서 언급하듯이 그가 지난 10년 동안 관련 위원회나 단체에서 활동하지 않았다면 그가 이러한 문제의식과 식견을 갖기 어려웠을 것이기 때문에 이 책은 그의 개인의 작업을 넘어서서 한국의 20년 과거 청산 작업에 진력했던 모든 사람들의 공통의 고민과 고뇌의 결집이라고 볼 수도 있고, 또 그 작업에 대한 충실한 해설서, 보고서의 성격도 갖고 있다.

이 책에서 이재승이 여러 가지 중요 과거사와 관련 법의 문제점을 지적한 부분도 읽어볼 만하지만, 역시 그가 가장 많은 비중을 둔 분야는 국가 범죄에 협력한 과거의 사법부와 사법부 과저 청산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분야를 서술할 때는 논리적인 비판보다는 감정이 앞서는 인상도 있다. "폭력을 법의 이름으로 포장하는 자들보다 더 가증스러운 것은 없다"는 비판이나 특별 재판부의 판결을 완전히 무효화시키지 않은 채 조용수를 무죄 선고한 법원을 "사악한 의지가 충만한 법을 아무리 쓰다듬어도 손에 독만 묻어난다"고 공격한 것이나 그것을 "편의적인 곡예", "수공예 작업"을 한다고 지적한 것들이 그 예이다.

이재승은 이 책을 통해 재심 사건을 제대로 판결함으로써 자신의 임무를 다하고 과거의 잘못에 대해 면피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법부를 향해 일침을 가하고 있다. 즉 과거의 폭력적 법, '법률의 탈을 쓴 불법'을 완전히 무효화시키는 조치를 적극적으로 수행하지 않은 채 국가 테러 기구의 일부였던 자신의 과오를 윤리적인 수사로 무마하거나 자신도 피해자라는 식으로 강변하는 사법부는 오히려 법적인 심판을 받아야할 존재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과거 청산이 단순히 재심과 결정 번복으로 완료될 수 있다는 생각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하고 있다. 이 점에서 이재승은 겉으로는 과거 청산 작업을 지지하는 듯하면서도 여전히 '수공예 작업'에 매몰되어 있는 오늘날의 '법 관료'들의 한계를 강하게 지적하고 있다. 한국의 사법부는 비판 세력에게 가혹하고 아군에게는 한량없이 따뜻하다는 점에서 과거나 현재나 정치 재판의 틀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용산 재판의 사례 등에서 나타나듯이 이명박 정부 들어서 정치 재판은 더욱더 심각한 양상으로 계속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셈이다. 그가 강조하듯이 정치 재판이나 계급 재판은 법의 중립성은 물론 사법부의 존립 근거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사회가 이 문제를 제켜두고는 결코 민주주의와 인권을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에서 나타난 이재승의 강한 주장에 대해 논란이 될 여지도 상당히 있을 것이다. 국가 안보의 긴급성을 또다시 거론하면서 과거 국가 기관이 저지른 인권 침해나 잘못된 판결은 당시의 시대적 조건 속에서는 불기피한 것이었으며 정당한 법집행이라고 주장하는 통상의 반론들도 계속 제기될 것이다. 그가 지적하는 4·3 사건 당시 군사 재판의 불법성 역시 한국 사회를 뒤흔들 뇌관이 될 수도 있을 것이고, 희생자들에 대해서도 집단 보상보다는 개인 보상의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는 주장도 광주 5·18 보상에 대한 평가와 더불어 과거 청산 운동을 해온 시민사회 일각의 입장과는 충동할 여지가 있다.

특히 과거 국가 범죄의 제기와 해결 과정을 정치·사회적 맥락과 사회운동, 피해자의 요구와 운동과의 관련성 속에서 설명하기보다는 주로 법 논리적인 관점에서만 분석한 것도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한국의 법학이 사회과학의 한 분과로 확고하게 자리 잡아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이전까지 법 중심주의는 극복되기는 어려운 과제로 남을 것 같다. 그리고 이 책의 전반적인 서술 역시 학술적인 쟁점과 외국 사례, 국내 판례 등이 혼란스럽게 섞여있어서 이 문제에 평소에 관심을 갖지 않았던 사람들에게는 좀 난해하게 다가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의 가치와 장점은 이러한 약간의 문제점을 충분히 상쇄하도고 남는다. 이 책은 법률가의 길을 걸어가고자 하는 모든 청년들이 읽어야 하고 계급 재판의 예비 후보생 양성소가 될지도 모르는 오늘의 로스쿨의 정규 과정에 들어가야 할 것이다. 한국의 사법부나 법학계가 이 책에 어떻게 대응하는지 한번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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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에 이런 우스갯소리가 있다.

"세계에서 일본을 우습게 아는 나라가 둘 있다. 하나는 중국이고 하나는 한국이다. 그런데 세계에서 중국을 우습게 보는 나라는 딱 하나 있다. 어딘 줄 아느냐? 한국이다."

물론 중국을 우습게 봐서는 안 된다는 강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말일 테다. 100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 선배들은 중국을 통해 세계를 보았고, 중국과 더불어 문명을 나누었으며, 중국을 이해하는 것을 지식의 기초로 여겼다. 그런데 이런 우스갯소리가 유행할 정도가 된 것은 지난 150년 동안 중국의 못남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맹목적으로 선진국 특히 미국만을 절절이 지향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작년에 중국이 그 미국과 더불어 'G2'로 불리더니 올해는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이 되었다.

베이징 올림픽이 끝난 2008년 8월부터 8명의 중국 전문가들이 중국을 제대로 보자면서 <프레시안>에 '중국 탐구'를 진행했다. 한인희 대진대학교 교수를 비롯하여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각 방면에서 중국 관련 연구 업적을 많이 낸 한국 학자들과 중국 외교 전문가인 장리리(張歷歷) 중국외교학원 교수가 참여하여 독자로 하여금 중국을 우습게 보지 않도록 만드는데 일정한 기여를 하였다.


▲ <G2 시대 : 중국 발전의 빛과 그림자>(한인희·강준영·양평섭·박한진·전병곤·강진석·임대근·장리리 지음, 대선 펴냄). ⓒ대선
이 글들이 이제 책으로 묶여 오프라인 세상으로 나왔다. '중국 속의 中國 시리즈' 1권으로 나온 <G2 시대 : 중국 발전의 빛과 그림자>은 강국으로 부상하는 중국의 실체에 관한 글들을 '1장 G2 시대 중국의 힘'에 모았고, 다양한 분야에서 변화 조정 중인 내용에 관한 글들을 '2장 튜닝 중인 중국'에 모았으며, 중국 발전 과정에 나타나고 있는 문제점들을 지적한 글들을 '3장 과속 스캔들'에 모았다.

요즘은 중국을 '쭝국'이라 하고 '짱께'라 하고 짝퉁과 싸구려로만 보는 시각이 많이 줄었다. 그건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상하이 엑스포, 각종 국제 스포츠 제전 등 중국 내의 원인도 있지만 무엇보다 중국이 한국의 제1교역국, 제1투자국이 되면서 중국과의 왕래가 빈번해진 때문이기도 하다. 이제 중국 한 번 안 다녀온 사람은 술자리에서 얘기하기도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책방에는 '중국' 자가 들어가는 책들이 항상 몇 개의 서가를 차지할 정도로 넘쳐난다.

넘쳐나는 중국에 관한 정보들을 보면서 정보를 생산하는 사람들이 중국 신문이나 제대로 읽을 줄 아는가? 라고 의심한 적이 많다. 우리나라에 넘치는 중국 이야기들 가운데 그만큼 도움 되는 이야기는 적고, 중국인들은 오히려 '한국에 과연 중국 전문가가 있는가?'라고 의심한다. 이 점에서 중국어에 능통한 이 책의 저자들이 들춰주는 중국의 내면은 참으로 리얼하다.

"중국 사회에서 '부자들에 대한 증오'와 '부패한 관리들에 대한 증오' 심리는 최근 몇 년간 주요 이슈 가운데 하나였다. 그 원인은 부도덕한 부자와 관리들의 도덕적 해이가 일반 중국인들에게 분노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 사회의 불공평한 분배와 치부 과정에서 '원죄'적 성격을 갖고 있다. 부자들이 획득한 부가 성실한 노동과 지혜에 의거한 것이 아니라 대부분 부동산 개발 업자가 국가의 공공 권력을 통해 치부를 하거나, 각종 광산의 주인들이 자연 자원을 불법으로 이용하여 치부하거나, 노동자 계급을 착취하여 부를 축적하고, 폭력 집단과 권력자 간의 보호를 통해 부를 획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치부는 곧 부도덕한 일로 중국인들은 생각한다." (236~238쪽)

이 책은 이렇게 중국인들의 생각을 알려주어 한국인들로 하여금 중국 사회의 내면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특히 중국 경제와 중국의 국제 관계에 대하여 애정 어린 충고를 거듭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국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문제를 깨우치도록 하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중국은 지금 서체서용에서 중체중용으로 가고 있는가?'라는 내용을 읽으니(179~184쪽) 지난 광저우 아시안게임의 모습들이 달리 보인다.

소비의 진작과 확대에 중국의 정책 역량이 총 집결되어야 한다는 논의(255~263쪽)를 통해 중국 경제의 출구를 짐작해볼 수 있다. 최근 한반도를 둘러싼 일련의 사태 추이를 보면서 "미국과 중국 관계는 이제 상호의 실체를 구체적이고 본격적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특별한 관계'가 되었다."(71쪽)는 강준영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의 단정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8명의 필자가 펼치는 중국에 관한 미시적 담론의 파노라마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문득 거시적인 얘기, 심지어는 거대 담론을 주문하고 싶어진 것은 우습게 보다가 큰 코 다치게 될까 두려워서이다. 사실 1982년 등소평이 '중국 특색적 사회주의(中國特色的社會主義)'란 말을 중국 공산당 12차 전당 대회에 보고할 때부터 중국은 '중화적' 문제 해결 방식을 선언한 셈이다. 그것은 민족 정서를 바탕에 깊이 깔고 사회 갈등과 대·내외 문제를 중국 중심주의로 뭉뚱그려 해결하는 장구한 중국 역사에서 보여 온 전통적인 방식이다. 공산주의 이상사회를 건설하겠다는 공산당 수뇌가 경제 건설이 국가 목표라고 선언한 이때부터 우리는 전통적으로 그래왔듯이 두려움을 갖고 미리 정치적 설계를 해두었어야 했다.

18세기까지 중국은 세계 최고의 강대국이었고, 제국주의 세력에 흔들릴 때도 강국의 면모를 유지하였고, 제2차 세계 대전에서도 연합군의 아시아 지역 사령관은 중국인 장개석이었다. 겨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들어간 한국이 중국의 경제적 낙후를 우습게 보던 시절에도 중국은 정치적으로 강국이었다.

한중 수교(1992년 8월 24일) 다음 해 필자는 대륙연구소에서 발행한 <전망>이란 잡지에 한중 교류의 미래는 정치가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달려 있으며, 철저한 정치적 기획 위에 한중 경제 교류를 넓혀가야 한다는 주장을 한 적이 있다. 하지만 18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이 책에서 보여주듯이 미시적 경제 우위의 담론에 갇혀있을 따름이다.

그래놓고는 천안함 사건이나 연평도 포격에 대하여 돈거래 많이 했으니 도와주리라는 엉뚱한(?) 기대를 중국에 걸고 실망하는 등 정서적 정치 행위만을 거듭하고 있다. 중국은 중국의 이익을 위해서 움직이고 미국은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 움직인다. 이러다 중국과 미국의 고래싸움에 우리가 낀다면 정말로 큰 코 다칠 것이다.

이 책 1권을 읽고 나면 국가 권력을 동원한 강력한 내부 통제와 수출을 통한 경제 발전이라는 중국의 걸음걸이가 박정희식 한국 발전 모델과 너무도 닮았다는 사실 때문에 필자들이 2권과 3권에서 어떻게 풀어낼 것이지 자못 궁금해진다. '경제 우위'의 시대에 경제가 정치를 이끌면서 드러난 도덕과 이상의 상실이 신자유주의의 만연으로 아예 '경제 유일'의 시대로 바뀌고 있다.

전체주의보다 더 획일적인 돈의 이데올로기가 전 지구를 뒤덮고 있는 오늘, 필자들이 그렇게 강조한 '현실적' 민족인 중국인이 어떤 '중화적' 대안을 마련해 낼 수 있을지도 궁금하다. 우리가 경험했듯이 중국도 천민 자본주의로 인한 각종 병폐와 더불어 불평등과 부자유에 대한 정치적 욕구가 더 큰 문제로 등장할 것이며, 경제 발전이라는 명제는 한 방에 날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끝내는 경제를 넘어 정치의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

정치가 인간관계의 총화라는 점에서 정치 문제에 대한 고민의 첫걸음은 역시 사람에 대한 이해일 것이다. 한국에서 중국을 이해하는데 일조하겠다는 이 책의 취지가 살아나려면 중국인에 대한 이해가 앞서야 한다는 말이다. 중국을 이해하는 가장 정확한 길은 중국인을 이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생각과 행동과 몸짓을 제대로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중국 속의 중국'을 이해하는 첩경이다.

구미 국가들과 일본에서 중국을 이해하기 위해 가장 많이 읽는 책이 사마천의 <사기>라고 한다. 미국의 저명한 대학들은 중국보다 더 상세한 <사기> 주석서를 내고 있기도 하다. <사기>는 중국인의 마음과 몸짓과 인간형을 만들어온 조형자임에 틀림없다. 지역적으로, 언어적으로, 문화적으로, 역사적으로 가장 가까운 우리가 중국학을 우습게 여기는 풍토와는 사뭇 대조적이다. 문예와 역사와 철학이 깊게 녹아 있는 저자들의 '중국 탐구'가 이어지리라 기대한다.

마지막으로 자조적이긴 하지만 10년 내에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의 경제 대국이 될 중국이, 1조 달러에 육박하는 미국 국채를 움켜쥐고 과거 미국이 해온 문화 제국주의(?)의 길을 똑같이 걸을 것인가? 이 책에 다음과 같은 일례가 실려 있다.

"언어의 보급과 전파는 문화 제국주의의 선봉장이다. 중국 정부는 이러한 목표에 따라 2004년 서울에 세계 최초의 '공자 학원(Confucius Institute)'을 설립하였다. 이러한 공자 학원 프로젝트는 지난 3년 동안 69개국에 238개를 설립하면서 이른바 '사흘마다 한 곳이 설립' 되는 경제 발전에 비유되는 '중국적 속도'를 보여주고 있다. 이 사업은 매년 약 2억 위안(한화 300억 원)을 투입하는 사업이다." (96~97쪽)

아예 영어를 공유하자거나 국제 경쟁력을 위해 오로지 영어에 매달려야 한다는 우리와는 너무도 다른 정책이어서 짐작이 안 가지만, 좀 크게 넘겨짚으면 중국과 사업하려면 이제 중국어로 하라는 적극적인 정책으로 읽힌다. 자신들이 돈을 내어 주변을 중국화하겠다는 이 전통적인 방식은 역사적으로 항상 성공을 거두어왔다.

그 주변으로서 우리나라는 지금 너무도 '자발적으로' 전 세계 HSK(중국한어수평고시) 응시생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이 책처럼 많은 중국 관련 책이나 매체들이 한자에 대한 우리식 독음의 주권을 포기하고 주체성도, 상호주의도, 역사성도, 시대성도 정확하지 않은 현대 중국어 독음을 '자발적으로' 쓰고 있으며, 그래서 한 쪽 안에서도 같은 한자에 대해 표기를 달리 하는 책과 신문이 많다. 심지어 중국의 누구도 요청하지 않았는데 '수이(首尔, 서우얼)'라는 기막힌 말을 '자발적으로' 만들어내어 보편화시키기도 하였다. 중국을 무시해온 세계 유일의 나라가 자기도 모르게 스멀스멀 중국에 예속되기 시작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중국을 중국 속에 들어가 들여다보아야 한다는 이 책의 기획 의도에 공감한다. 저자들은 매끄러운 글쓰기로 "우리에게 중국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상당히 많은 대답을 해주기도 하였다. 하지만 결국은 우리의 입장에서 중국을 들여다볼 수밖에 없다. 문제는 그 '우리의 입장'이란 것이 정리되지 않았거나 없다는 점이다.

이제라도 정치적 기획이 필요하다. 중국을 상대하고 그들의 제국으로부터 우리의 생존을 모색할 100년, 1000년을 내다보는 체계적이고 거대한 프로젝트가 가동되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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