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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후에 오는 것들 - 공지영 사랑 후에 오는 것들
공지영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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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후에 오는 것들.. 

'공지영'이라는 작가의 이름과 '사랑후에 오는 것들'이라는 제목은,  

나에게 이 책을 읽는 충분한 이유가 되어주었다.  

공지영 글이지만 잘 읽히지 않는다는 언니의 말 때문이었는지,

피곤함 때문이었는지, 

나 역시도 처음에는 쉽게 읽어내려갈 수가 없었다.  

 

어쩌면 제목에서 암시하듯이, 

사랑을 하고 떠나온 지 7년이 지난 시점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는 것이 낯설기도 했거니와, 

주인공 홍의 사랑의 과정을 충분히 함께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만큼 감정의 이입을 위한 시간이 걸렸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모든 글들은 좋다. 또한 모든 글들은 나쁘다.   

하지만 모든 글들은 특별하다.

매일매일의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특별한 날이 되는 것처럼, 

모든 글들은 누군가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된다.  

글을 쓰는 작가에게도, 글을 읽는 독자에게도. 

특히 순간순간 지나가는 상념속에서 책이 무언가 실마리를 제공해줄 때, 

그 책은 나에게 특별한 의미가 된다.  

 

나는 책을 읽는 동안 내 사랑을 떠올렸다.  

십여년간의 연애,  

모든 사랑이 결혼을 향해 가기 때문에 나 또한 그래야할 것 같고,

이미 충분한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그 목적지인 결혼에 도달하지 못한 연애, 

그 이유가 우리가 이상하다거나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은 아니라고 

누군가에게 핑계를 대야할 것 같고, 변명을 해야할 것 같은 부담감을 주는 연애. 

  

지금까지도 여전히 그를 만나고 있는 이유를

그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사랑'이라는 말은, 

그 사람에 대한 내 감정을 표현하기에는 지나치게 감정적이면서도, 또한 충분하지 않다.

 

하지만, 적어도 가슴설레고 불타오르는 격정적인 사랑은 아닐지라도,  

홍의 말처럼,  

내가 없는데도 그 사람이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상상할 수가 없고,

그 없이 행복할 수 있는 나를 상상할 수 없기에,

그리고 사랑후에 오는 후회, 아쉬움, 분노, 실망.... 

그 중에서도 작은 일상에서도 순간순간 밀려올지도 모를 그리움과

이별 후에 다시 만났을 때에도 여전히 두근거릴 내 심장을 참아낼 수 없기에

이 연애를 계속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결국

난 사랑후에 오는 것이 두렵고, 견뎌낼 자신이 없다. 

그래서, 이 책은 나에게 특별하다.  

그래서, 츠지 이토나리의 '사랑후에 오는 것들'을 읽고 싶어졌다 .

 

한 마디만 더,  

국가간의 문제와 사람의 문제를 혼동해서는 안된다.

또한 치열한 사람만이 본질을 알 수 있다. 

사람의 문제는 아무도 쉽게 판단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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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인문학 - 클레멘트 코스 기적을 만들다
얼 쇼리스 지음, 이병곤.고병헌.임정아 옮김 / 이매진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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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오마이뉴스에서인가 교도소에서 이루어지는 인문학 강좌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교도소와 인문학.

직관적으로 어울리지 않고, 작위적인 느낌이 들어 어색했던 두 단어의 조합을 억지스레 떠올리며 뉴스를 읽어내려갔다.

일단 신선했고, 기발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지하며 감탄했다.

그래서 '희망의 인문학'이라는 책을 읽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단순히 신선하고 기발한 발상이어서가 아니라, 그 철학적인 기반을 알고 싶어서였던 것 같다.

부자들이 경제적인 이익 독점하고, 부유함이 세습되는 이 시대.

마찬가지로 가난한 자들의 가난 또한 대물림될 수 없는 부당한 이 시대.

그 시대를 정확하게 분석하고 돌파구를 찾는 지점이

경제학도, 경영학도 아닌 '인문학'이었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세상을 정확하고 바라보고 분석하고, 스스로를 철학적으로 성찰할 수 있는 힘.

지금까지 인문학이 부자들에게 독점되었기 때문에,

가난한 자들은 체제라는 무력망에 포위되어 더이상 위험한 존재가 아니었기 때문에,

불합리한 부자와 가난의 이분법을 극복할 수 없었다는 분석.

신선함과 기발함 이면에 있는 철학적 성찰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책에서 추구하는 바는 선명했고,

그래서 크레멘트 코스를 실제로 어떻게 운영했는지에 대한 과정이 기술되어 있었다.

그리고 코스를 마친 사람들이 실제로 이후에 어떻게 살아가는지도 종단적으로 보여주려 했다.

그리고 내가 심리학자여서 그런지는 몰라도,

크레멘트 코스를 운영하는 중간중간 심리치료자가 개입하여

집단의 응집력을 높여주고, 코스에 대한 관여도를 높이는 부분도 빼놓을 수 없었다.

가난한 사람들의 인문학적 소양을 증가시키는 과정에서,

사회과학자인 심리학자가 보조적인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는 사실이,

개인의 문제에만 척착해있던 심리학이

좀 더 공적세계에 도움이 되는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는 사실이 뿌듯했다.

 

우리의 관심이 개인의 문제를 넘어서서 공적세계로 확장되는 과정에서

인문학은 그 철학적 기반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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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나의 도시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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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를 만나기 전, 서점에 들렀다.
베스트셀러 가판에 '달콤한 나의 도시'라는 책이 보였다.
이 소설이 재밌다는 이야기를 이미 들은 터라,
몇 분 되지 않는 시간이지만 한번 훑어보기로 마음먹었다.

첫번째 장을 넘기는 순간, 눈이 휘둥그레졌고 가슴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아니, 엑스보이프랜드의 결혼식 날, 이 여자는 뭘하고 있담"
"아니, 꿀꿀한 기분을 통쾌하게 날려버리려는데 베스트프랜드의 뒷통수치는 결혼 발표는 또 뭐람"
어느새, 서른 두살의 나는 서른 한살의 그녀와 동일시되어 책을 읽고 있었다.
어쩌면 책을 읽는 내내, '나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소설 첫 부분의 참신함과 감정 흐름과는 달리,
이 소설에는 인간 대 인간의 진지한 만남은 없고,
전형적인 인물설정, 조건적인 만남, 피상적인 감정교류로 뒤엉켜있을 뿐 이어서 실망이었다.
특히 마지막의 황당한 설정은 주인공만큼이나 독자를 허무하게 만든다.

어찌되었든, 소설에 대한 평가는 그렇다쳐도,
소설을 읽으면서 서른 두살 나의 사랑과 일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우선, 사랑에 대하여.
소설가가 표현한 연하남자친구의 세심함과 애교가 넘치는 즐거움
오랫동안 친하게 지내던 남자친구의 편안함,
때로는 나이많은 남자의 여유로움과 연륜, 그리고 안정감들은,
어쩌면 여성들이 원하는 서로다른 형태의 사랑을 표현한 것이 아니었을까.
다만 세가지 형태의 사랑을 한꺼번에 모두 얻을 수 없다는 것이 아이러니일테고,
그래서 사랑은 자신의 가장 큰 결핍감을 채워주고 충족감을 얻을 수 있도록 하는 누군가를 결정하게 되는, 결국 '선택'의 과정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렇다면, 일에 대해서는.
일은 도구가 되어서는 안되며, 그 자체로 만족감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성으로서 일을 갖는다는 것, 아니 일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일이라는 것이 가족갈등이나 육아에 대한 회피로서, 남녀 평등에 대한 신념의 일환으로서, 경제적 가치의 환산으로서만 존재한다면,
그래서 그 일을 하는 사람이 얻는 만족감이나 성취감을 느낄 수 없고, 일을 하는 사람이 소외되고 대상화된다면
일은 일로서의 가치를 상실하게 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물론 육아와 같은 다른 무언가를 위해 기꺼이 희생될 수 있는 대상으로 당연하게 여겨지는 경우라면, 더 이상 말해 무엇하겠는가.

어찌되었든, 서른 두살의 나는 지금, 사랑을 하고 있고, 일도 한다.
십년간의 연애는 때로 사랑보다는 의리같고, 설레임보다는 편안함과 익숙함에 길들여있는 듯하고,
새로운 것을 시작하기보다는 함께 하고 있는 일상이 많아진 상태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를 알아가고, 나를 보여주는 것,
무엇보다 그 누구도 이해해줄 수 없을 것 같은 나를 아무런 이유 없이 있는 그대로 보아주고 알아봐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
그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는 부족한, 설명될 수 없는 충족감을 안겨주는 것 같다.
함께 있는 것만으로 아려오는 그 감정을, 우리는 사랑이라고 부르는 거겠지..

사실, 책은 생각만큼 유쾌하지 않았고 가벼웠지만,
그래서 더욱 내 사랑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만큼은 분명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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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폭력 대화
마셜 로젠버그 지음, 캐서린 한 옮김 / 바오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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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비폭력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폭력의 반대는 평화이지, 적어도 비폭력은 될 수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특히나 학생운동이든 노동운동이든 이루고자 하는 목적을 위해 화염병이나 쇠파이프와 같이 폭력적인 수단을 사용했다는 이유만으로 매도당하는 것을 보아왔기에, 비폭력이라는 말에서는 왠지 반동의 냄새가 난다.

   나는 대학시절 학생운동을 했었고, 졸업 이후의 전망을 고민하면서 임상심리학을 택했다.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학문이 개인적인 고민이나 개인의 행복에 그치지 않고, 나와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누군가의 행복에 기여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바램으로 나는 임상심리학을 선택했다. 하지만, 대학원에서 그리고 병원에서 경험했던 임상심리학은 나의 바램과는 달랐다. 대학원 졸업을 위해서는 여러가지 이론들을 외우고 흥미없는 주제로 논문을 써야했고, 병원생활 역시 하루하루 일정을 소화해내는 것만도 벅차게 느껴졌다. 그즈음 나는 내가 전공하고 있는 임상심리학에 회의가 느껴졌고, 그만 뛰쳐나가버릴까하는 생각도 했었다. 임상심리학이 누군가의 행복에 기여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기를 바랬지만, 바램과는 너무 다른 현실속에서 나와 고민을 함께 할 누군가가 그리웠었다.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로 이 책을 접하게 되었다. 그리고, 비폭력 대화 워크샵에도 참여하게 되었다. 우연한 기회였지만, 나에게는 희망이 느껴졌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는데, 우선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그동안 무수한 이론과 일상의 답답함으로 인해 쉴 수가 없었는데 책을 읽고 워크샵을 듣는 동안 마음껏 즐기고 쉴 수 있었다.

   그리고, 나의 고민을 검증할 수 있었다. 즉, 지금까지는 임상심리학이라는 학문이 어떻게 사회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가를 고민했었는데, '연결성'이른 개념을 통해 고민을 해결할 수 있었다. 부연 설명하자면, 연결성이란 나와 네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나'라는 개념속에 나를 가둠으로써 타인을 배제해왔고, 나의 이익을 위해 타인이 희생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겨왔다면, 나라는 개념을 확장함으로써 나와 타인이 연결성을 자각하고, 나의 이익이 타인의 희생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바로 '연결성'의 개념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타인의 욕구가 충족되었을 때 마치 나의 일인듯 기뻐할 수 있고, 타인의 욕구가 좌절되었을 때 역시 마치 나의 일인듯 고통스러움을 함께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내가 임상심리학을 전공함으로써 사회적으로 기여하고 싶다는 나의 바램을 다시 해석하자면, 내가 전공하고 있는 임상심리학에 대한 수요가 많아진다는 것은 필요로 하는 사람이 많아진다는 것이고, 나의 행복을 위해서 임상심리학을 선택했지만 나의 행복을 통해 누군가는 행복과 기쁨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며, 또한, 그들의 행복이나 기쁨이 결국 나의 욕구와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게 되면서, 힘이 느껴졌다. 그리고, 연결성을 자각하기 위해서는 '명료성'이 중요하고, 명료성을 위해서는 '관찰, 느낌, 욕구, 요청'의 4단계가 필요하며 상대방의 욕구를 자각하고 느낌을 공감할 수 있을 때 자연스럽게 연결성이 생기고, 사랑과 자비의 마음을 통해 평화로운 문제해결이 가능하다. 이제 정말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나는, 비주류로 살아가는 것에 만족하고 기뻐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까지는 늘 다른 사람이 하는대로 따라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하면서 불안해하고, 주류가 되고 권력을 얻고 힘이 생겨야 결국 내가 하고자하는 것을 이룰수 있다면서 나를 고통으로 떠밀었다. 하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내가 원하는 것, 즉, 나의 욕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즉, 나는 더 많은 사람이 행복하고 기뻐하기를 원한다. 그리고, 힘이나 권력을 통해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평등한 관계에서 서로의 자발성을 인정하고 서로를 존중함으로써 나의 이상이 실현되기를 원한다. 더이상 주류로 편입되기 위해 나의 행복을 포기하고 권력에 복종하며 살고 싶지는 않다. 물론, 누군가는 나의 바램이 실현 불가능하고 지나치게 이상적이라고 비판하겠지만, 나의 행복이 당신의 희생과 무관하지 않기에, 나의 행복을 당신은 진심으로 기뻐할 수 있고, 당신의 행복을 나 역시 진심으로 기뻐할 수 있기에, 그렇게 나와 당신의 연결성을 자각할 수만 있다면,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더 많아진다면, 바램이 현실이 될 수 있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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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abica1 2008-01-20 2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와 스탠스(stance)가 비슷하다고 느껴집니다.
평등한 인간관계와 다양성 속에서 서로를 존중하고 자신을 표현하며 살 수 있기를 바라고 또 그런 입장에서 행동하지만 보통 주류와는 다른 삶의 방식으로 현실에서 함께 살아감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래도 그 믿음을 그 이상을 버릴 수가 없네요. 바로 그게 저가 저인 이유니까요
 
아무 곳에도 없는 남자 - 제2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전경린 지음 / 문학동네 / 199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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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가 조선일보의 자본력을 바탕으로 성장했다면, 은희경은 문학동네를 기반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그 두 번째가 전경린이라 할 수 있다.

은희경 소설의 인물은 지극히 개인적이다. 세상속에서 고독을 즐기며 자기에게로 지독히 침잠하는 조금은 낯선 인물들. 개인화된 일상속에서 자의식은 강하지만, 조금은 회의적이고 허무주의적인 인간의 모습. 가족제도와 감정사이에서 갈등을 느끼는 인물들...

반면, 전경린의 소설의 인물은 개인적으로는 나약하지만, 타인을 통해 삶의 의미를 깨달아가는 인물들이다. 유독 80년대라는 시대적 상황이, 무거운 배경과 야만적 폭정이 그네들의 개인적 감정을 허락치 않더라도 그들의 생의 의미는 결국 사랑이라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비롯된다.

사회의 구조적 모순 앞에, 패배의 울분을 참아야 하는 동시대의 인물들 앞에 분노와 적대감을 원동력 삼아 운동의 길을 갈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사람들. 태인이라는 이름의 아무곳에도 존재할 수 없었던 사람들, 어쩌면 정수처럼 죽어갔던 우리네 노동자들, 결국, 실존을 부정해야하는 현실 앞에서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던 이들, 하지만, 80년대가 패배나 상실이 아닌 그리움으로 기억될 수 있는 건, 그네들의 삶을 하나로 묶어세울 수 있는 사랑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시대의 무게에 눌려 또한 어머니의 외도로 인한 사랑의 강박적 두려움을 가진 태인의 이나에 대한 본능과도 같은 사랑, 끝없는 존재의 심연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이나의 태인에 대한 홀로서기를 감당하는 사랑, 시대의 목표를 상실한 활동가로서 허무와 회의를 감당해야하는 정수의 태인에 대한 삶을 위한 사랑, 아내의 죽음으로 원죄와도 같은 죄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정서현의 이나에 대한 생명을 창조하는 사랑, 그네들의 사랑이 조금은 의존적이고 왜곡되었을지라도 아름다울 수 있는 건 자신의 부정이 아닌 성장의 모태가 되었기 때문이리라.....

운동은 있으되 사람은 없었던, 분노와 적대감은 있으되 사랑은 존재하지 않았던 지독히도 아팠던 그 시절에 대해 그리워할 수 있는 80년대를 자신의 태생지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는 전경린과 같은 사람은, 어쩌면 행복한 사람이지 않을까? 적어도 그 시대를 경험해보지 못한 나같은 사람에 비한다면.....하지만, 80년대가 아쉬운 건 감히 그리움을 말할 수 없다는 것일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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