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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폭력 대화
마셜 로젠버그 지음, 캐서린 한 옮김 / 바오 / 200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사실, 비폭력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폭력의 반대는 평화이지, 적어도 비폭력은 될 수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특히나 학생운동이든 노동운동이든 이루고자 하는 목적을 위해 화염병이나 쇠파이프와 같이 폭력적인 수단을 사용했다는 이유만으로 매도당하는 것을 보아왔기에, 비폭력이라는 말에서는 왠지 반동의 냄새가 난다.
나는 대학시절 학생운동을 했었고, 졸업 이후의 전망을 고민하면서 임상심리학을 택했다.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학문이 개인적인 고민이나 개인의 행복에 그치지 않고, 나와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누군가의 행복에 기여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바램으로 나는 임상심리학을 선택했다. 하지만, 대학원에서 그리고 병원에서 경험했던 임상심리학은 나의 바램과는 달랐다. 대학원 졸업을 위해서는 여러가지 이론들을 외우고 흥미없는 주제로 논문을 써야했고, 병원생활 역시 하루하루 일정을 소화해내는 것만도 벅차게 느껴졌다. 그즈음 나는 내가 전공하고 있는 임상심리학에 회의가 느껴졌고, 그만 뛰쳐나가버릴까하는 생각도 했었다. 임상심리학이 누군가의 행복에 기여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기를 바랬지만, 바램과는 너무 다른 현실속에서 나와 고민을 함께 할 누군가가 그리웠었다.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로 이 책을 접하게 되었다. 그리고, 비폭력 대화 워크샵에도 참여하게 되었다. 우연한 기회였지만, 나에게는 희망이 느껴졌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는데, 우선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그동안 무수한 이론과 일상의 답답함으로 인해 쉴 수가 없었는데 책을 읽고 워크샵을 듣는 동안 마음껏 즐기고 쉴 수 있었다.
그리고, 나의 고민을 검증할 수 있었다. 즉, 지금까지는 임상심리학이라는 학문이 어떻게 사회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가를 고민했었는데, '연결성'이른 개념을 통해 고민을 해결할 수 있었다. 부연 설명하자면, 연결성이란 나와 네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나'라는 개념속에 나를 가둠으로써 타인을 배제해왔고, 나의 이익을 위해 타인이 희생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겨왔다면, 나라는 개념을 확장함으로써 나와 타인이 연결성을 자각하고, 나의 이익이 타인의 희생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바로 '연결성'의 개념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타인의 욕구가 충족되었을 때 마치 나의 일인듯 기뻐할 수 있고, 타인의 욕구가 좌절되었을 때 역시 마치 나의 일인듯 고통스러움을 함께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내가 임상심리학을 전공함으로써 사회적으로 기여하고 싶다는 나의 바램을 다시 해석하자면, 내가 전공하고 있는 임상심리학에 대한 수요가 많아진다는 것은 필요로 하는 사람이 많아진다는 것이고, 나의 행복을 위해서 임상심리학을 선택했지만 나의 행복을 통해 누군가는 행복과 기쁨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며, 또한, 그들의 행복이나 기쁨이 결국 나의 욕구와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게 되면서, 힘이 느껴졌다. 그리고, 연결성을 자각하기 위해서는 '명료성'이 중요하고, 명료성을 위해서는 '관찰, 느낌, 욕구, 요청'의 4단계가 필요하며 상대방의 욕구를 자각하고 느낌을 공감할 수 있을 때 자연스럽게 연결성이 생기고, 사랑과 자비의 마음을 통해 평화로운 문제해결이 가능하다. 이제 정말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나는, 비주류로 살아가는 것에 만족하고 기뻐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까지는 늘 다른 사람이 하는대로 따라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하면서 불안해하고, 주류가 되고 권력을 얻고 힘이 생겨야 결국 내가 하고자하는 것을 이룰수 있다면서 나를 고통으로 떠밀었다. 하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내가 원하는 것, 즉, 나의 욕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즉, 나는 더 많은 사람이 행복하고 기뻐하기를 원한다. 그리고, 힘이나 권력을 통해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평등한 관계에서 서로의 자발성을 인정하고 서로를 존중함으로써 나의 이상이 실현되기를 원한다. 더이상 주류로 편입되기 위해 나의 행복을 포기하고 권력에 복종하며 살고 싶지는 않다. 물론, 누군가는 나의 바램이 실현 불가능하고 지나치게 이상적이라고 비판하겠지만, 나의 행복이 당신의 희생과 무관하지 않기에, 나의 행복을 당신은 진심으로 기뻐할 수 있고, 당신의 행복을 나 역시 진심으로 기뻐할 수 있기에, 그렇게 나와 당신의 연결성을 자각할 수만 있다면,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더 많아진다면, 바램이 현실이 될 수 있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