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나에게 거리를 가르쳐 주었다. 18세 여름의 석양, 우리들은 풀의 달콤한 향기를 맡으면서 냇물의 상류로 걷고 있었다. 목적지가 있던 것은 아니였다. 그저 상류로 걸어갈 뿐이였다. 급류를 몇번이나 건너며 맑은 웅덩이의 물고기들을 바라보았다.

우리들은 둘다 맨발이였다.

맑고 차가운 물이 둘의 발목을 적셨고 냇물 바닥의 모래는 마치 새로 짠 실처럼 부드럽게 발에 다았다. 너는 비닐 쇼울더 백에 힐이 붙은 노란색의 샌들을 넣은 채 나보다 몇 걸음인가 앞을 계속 걷고 있었다.


너의 젖은 다리에는 풀의 가느다란 싹이 빛의 가루처럼 덧붙여져서 오후의 마지막 햇살의 그림자를 수면에 흔들고 있었다. 너는 걷다가 지쳤고 여름 풀속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았다. 침묵속에 짙은 어둠이 둘의 몸을 덮어오기시작했다. 왠지 이상한 기분이였다. 마치 수천 가닥의 눈에 보이지 않는 실이 너의 몸과 나의 마음을 이어주고 있는 듯 했다. 너의 눈언저리의 움직임이나 입술의 미묘한 떨림조차도 내 마음을 견딜 수 없게 흔들었다.


우리에게 이름은 없다. 18세의 여름 풀밭위의 추억 그것뿐이였다. 너에게도 나에게도 이름은 없다. 냇물도 이름은 없다. 그것이 우리의 RULE이였다. 우리의 머리 위에 희미한 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별에도 이름은 없었다.

우리는 그런 이름없는 세계의 풀밭 위로 침전해 가고 있었다.


'거리는 높은 벽에 둘러 쌓여 있어' 라고 너는 말했다.

'넓은 거리는 아니지만 숨막힐 만큼 좁지도 않아'

이렇게 하여 거리는 벽을 갖게 되었다. 네가 계속 말했던 거리는 한줄기의 강과 3개의 다리를 갖고 망루와 도서관을, 그리고 버려진 주물공장과 가난한 공동주택을 가지고 있었다. 여름의 석양의 뜨거운 빛속에서 나와 너는 어깨를 움츠리듯 그 거리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사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그 벽에 쌓인 거리의 가운데야' 라고 너는 말했다.

'그러나 18년이 걸렸어, 그 거리를 찾는데..... 그리고 진실한 나를 바라보는데'

'그 거리에서 도대체 너는 무엇을 하고 있지?' 라고 나는 물었다.

'도서관에서 일하지' 너는 당당하게 말했다.

'일은 저넉 6시부터 11시까지'

'그곳에 가면 정말 너를 만날 수 있을까?'

'응, 물론 네가 그 거리를 찾을 수만 있다면 그리고 만약..........'

너는 그 부분에서 입을 다물고 얼굴을 붉혔다. 그러나 나는 말 못한 너의 이야기를 눈치챌 수 있었다. 그리고 만약 네가 정말로 나를 바란다면 그것이 너의 말이였다. 나는 너를 안았다. 그러나 그 여름 황혼 속에 내가 안았던 것은 그저 너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았다. 정말 너는 벽에 둘러 쌓였던 거리속에 있었다.


그곳에는 아름다운 강이 흐르고 사과나무가 자라고 짐승들이 있었다.

사람들은 가난하고 오래된 공동주택에 살며 검은 빵과 사과를 먹으며 살고 있었다. 짐승들은 나뭇잎과 나무 열매를 먹고 긴 겨울에는 그 반수가 굶주림으로 죽었다. 어째서 나는 그 거리에 들어 가고 싶다고 바라게 되었을까


'거리에 들어가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야' 라고 너는 말했다.

'그리고 나오는 일도'

'어떻게 하면 되지?'

'바램을 가져 지금보다도 더욱 강하게 그렇게 하면 언젠가는 거리에 살 수 있게 돼. 얼마만큼 긴시간이 걸려도 체념하지 말고 나는 언제까지라도 그곳에 있을 테니까.

언제까지라도.... 너를 위한 장소도 계속 놓아 둘께'

'나를 위한 장소'

'그래 하나정도 빈 곳이 있어, 너는 그 거리에서 예언자야.'

'예언자?' 나는 웃었다. '나는 예언따위는 할 수 없어'

'아무 예언도 하지 않아도 좋아, 손님을 얻을 필요도 없으니까. 예언자는 도서관의 서고에서 오랜 꿈의 정리를 하는 일만하면 돼. 나도 그일을 도와주지'

'오랜 꿈'

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의 팔속에서 너의 그림자가 흔들렸다.

'그러나 이것만은 기억해. 만약 그 곳에서 내가 너를 만난다하여도 나는 너와의 일은 무엇하나 기억할 수 없으니까'

'왜' 라고 나는 물었다.

왜라니? 너는 모르겠어? 지금 네가 안고 있는 것은 그저 나의 그림자일 뿐이라는 것을, 너자신의 따뜻함이라는 것을 ....

너는 그 벽에 둘러 쌓인 상상의 거리의 속에서 죽었다.

네가 죽은 것은 아침 6시, 거리에는 조의(弔意)의 종이 울리고 사람도 짐승도 그 머리를 숙였다. 너의 뼈는 하얀 천에 쌓여 벽바깥의 묘지에 뭍혀 졌다. 묘지는 언덕위에 있고 그 주위를 사과나무들이 둘러져 있었다. 사과나무는 봄이 되면 아름다운 꽃이 피고 묘지는 바람에 흔들려 그 꽃잎으로 물들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장례를 치른 것은 너의

그림자일뿐, 너는 어두운 도서관에 계속 살고 있었다.


오랜 꿈이 있는 거리로 돌아가자... 그곳만이 나의 장소이다.


계절은 이미 가을로 접어 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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