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까, 최후의 빛이 사라져간 서고에 다시 암흑이 돌아왔을 때 우리들은 말없이 서고를 빠져 나왔다. 도서관의 불을 끄고 긴 복도를 지나서 밖으로 나왔다. 밤이 되어 계절풍이 멈추고 우리들의 머리 위에는 기묘하리만큼 깨끗하고 조용한 별이 하늘에 가득히 펼쳐져 있었다. 우리들은 말없이 길을 걷고 언제나 처럼 다리의 한가운데 강물의 흐름을 바라보았다.



'너를, 너의 그림자를 만났던 때는 내가 16세였어'



나는 어두운 수면을 향해 그렇게 말했다. '그 해는 뭔가 이상한 해였어 뭔가 점점 뒤로 지나가는 것같은 기분이였지. 뭔가가 나를 골목길로 빠지게 해버리는 듯했어... 내가 너를 처음으로 만난 것은 어떤 파티석이 였어. 누구의 생일파티였던가 그럴꺼야 내가 너와 말을 나눈 것은 두마디인가 세마디인가 뿐이지만 그때 갑자기 나의 눈 앞에 세계가 쫙 펼쳐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지'



너는 나로부터 몇걸음 떨어져, 나와 같은 수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로 부터 몇개월이나 나는 너를 생각했던 것같아. 너에게 전화를 할 용기가 날 때까지는 몇달이던가, 매일 아주 괴로웠어. 어떤 때는 바라는 모든 것을 손에 넣은 듯했고 어떤 때는 영원히 어딘가에서도 만날수 없을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 어떤 때는 견딜 수 없을 만큼 너와 자고 싶었고 어떤 때는 멀리서 너를 바라보고 있는 것으로 만족했어... 그리고 그것이 몇달인가 계속되는 사이에 나의 의식속에서 너는 나에게 있어 살아가는 의미로 변해가고 있었어. 혹은 삶을 지속하도록 하는 것으로... 나는 그런 꿈속에서 살고 있었지. 꿈을 부르고 꿈을 먹고 꿈과 함께 잤어. 이런 기분을 알 수 있을까?'



너는 작은 머리를 흔들었다. '물론 이런 것은 모두 사소한 일에 불과하니까, 혹은 아무의미도 없을지 몰라, 단지 그뿐이야. 너에게만은 어떻게 해서든 말해 주고 싶었어. 어떠한 꿈이라도 결국은 모두 어두운 꿈이였지. 만약 네가 그것을 어두운 마음이라고 부른다면 그것은 어두운 마음일거야, 머리속에서 만들어낸 금가루처럼 빛나지만 실제는 진흙일뿐. 이런 꿈은 사람을 어디로도 갈 수 없게 만들지. 그 웅덩이를 흐르던 물처럼 갈 방향없는 지하의 어두운 수맥을 영원히 방황할지도 몰라'



나는 말을 잃고 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너는 꼼짝하지않고 가만히 수면에 시선을 둔채 물의 흐름이 중주(中洲)의 바위에 부딪쳐 내는 소리만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었다.



'나는 이런 생각을 가진채 꽤 오래동안 살아왔어. 괴로운 말뿐인 것같은 기분도 들어. 그러나 이런 생각을 지우기에는 나는 나이를 너무 먹어버린 것같은 기분이야. 내가 나가고 있는 긴 복도가 출구가 없는 복도라 하여도 정말 내 자신은 그곳에서 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 나의 어두운 꿈은 그것이 아무리 어두운 것이라도 그곳에 내버려두고 떠나서 살아갈수는 없어. 그것을 끊어버린 나는 진정한 내가 아니야'



'이 거리에서 너와 이렇게 해서 함께 사는 한 나는 다른 것을 바랄것은 없어. 이런 기분이 드는 것은 태어나서 처음이야. 어떤 불안도 없고 어떤 어둠도 없어 아마 영원히 그럴거야. 그러나 거리밖에서는 지금도 시간이 계속 흐르고 있어 짐승들도 죽고 그림자도 죽어. 셔츠에 묻었던 소스의 얼룩처럼 나의 마음에서 그것이 떠나지않아'





강물이 손에서 계속 넘쳐흘렀다. 그래도 나는 말을 멈출이유는 없었다.



'나는 그림자와 함께 이 거리를 나간다. 너와 헤어지는 것은 견딜 수 없이 괴로워, 너와 둘이서 영원히 이거리에 살고 싶다고 생각했었지.'



'16세의 나는 그렇게 아름다웠어요?' 너는 얼굴을 들어 나에게 물었다.



'아름다웠어, 마치 꿈처럼.'



그리고 나는 너를 안았다. 나는 너의 볼위에 뜨거운 눈물을 느꼈다.



'당신을 언제까지라도 기억할께요' 라고 너는 말했다.



'언제까지라도... 제가 당신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예요.'



'안녕' 나는 말했다.



'안녕'





그녀가 옛다리의 어둠속으로 사라져 간 뒤에도 나는 계속 어두은 수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새로운 태양이 동쪽의 하늘에서 하얀 색을 살짝 들어내놓을 무렵, 나는 언덕위의 '관사'에 돌아가서 텅빈 침대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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