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르니카]
-1937
-캔버스에 유채, 351*782cm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1930년에 그려진 피카소의 통렬한 파시스트 고발 및 반전 작품이다. 뿐만 아니라 20세기의 정치, 예술 논쟁을 불러일으킨 최대의 걸작이며 대작이다. 1936년 피카소의 모국 스페인에서는 프랑코(뒤에 종신 총통)에 의해 공화국 체제를 반대하는 쿠데타가 발생했다. 나치스 독일과 이탈리아의 파시스트가 프랑코를 지원하는 가운데 1937년에는 나치스의 폭격기가 피레네산 근처의 작은 도시인 게르니카를 짓이겨 버렸다.
그 죄악상을 파리에서 전해 들은 피카소는 당장 일련의 데생을 하기 시작했다. 죽음과 공포 속에서 울부짖는 인간과 쓰러진 말과 소 등이 상징적으로 강조된 형태로 그려졌다. 그리고 그것들이 대작 <게르니카>로 집대성 된 것이다.
그전에 피카소는 마침 파리에서 개최될 예정이던 만국박람회의 스페인관을 위해 벽화를 스페인 정부로부터 위임 받았었다. 피카소는 이를 위해 <게르니카>를 약 한달만에 완성시켰다고 한다. 그것은 독재 세력과 잔인한 살육에 대한 정치적 저항과 분노를 표명한 피카소의 최초의 대작이면서 동시에 입체주의의 평면화라는 피카소의 또 다른 새로운 방법을 펼쳐준 작품이다

[창가의 정물]
-1934
-캔버스에 유채, 80.6*101cm
-시카고 미술관

활짝 열린 창가에 놓인 테이블 위에 꽃병과 과일이 놓여 있다. 이러한 정물 배치의 작품은 피카소가 1925년 이후 가끔 시도한 주제인데, 여기선는 그전에 볼 수 없는 부드럽고 온화한 색체와 필치의 구성으로 그려져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배치는 입체주의 초기의 전개 과정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여기서 화가의 관심보다 한정된 공간 속에 대상의 형태를 분석하는 일에 집중되어 있다. 이 그림에서 볼 수 있는 좌우로 펼쳐진 창 저쪽의 공간은 그러한 분석적 방법이 잘 드러난 것은 아니지만, 색으로 공간을 암시하고자 하는 시도는 일체 배제되고, 평면적인 색면의 배역에 역점이 주어져 있다.


[세 악사]
-1921
-캔버스에 유채, 200*223cm
-뉴욕 근대미술관

 

<파이프를 든 사나이>와 비교될 수 있으면서 훨씬 장식적 평면성이 강조된 작품이다. 그러면서 입체주의의 달성을 딛고 인강를 소재삼은 대표작의 하나이다. 중앙에는 기타를 치는 아를르 캥(울긋불긋한 옷차람을 한 익살광대)이, 그 왼쪽에는 클라리넷을 부는 피에로가 앉아 있다. 오른쪽은 가면을 쓴 검은 옷의 수도라로서, 악보를 펼쳐들고 있는 것 같다. 테이블 밑으로는 개가 있어, 왼쪽 벽면에 개의 머리가 그림자로 나타나 있다.


[파이프를 든 사나이]
-1915
-캔버스에 유채, 130.3*89.5cm
-파리 근대미술관

 

입체주의 화가들에게 있어서 콜라즈의 커다란 이점은 여러 색명을 결합시키는 과정에서 밑과 위로 겹치는 효과의 묘미가 자연스럽게 얻어지고, 형태의 상호 거리감이 스스로 명확해진다는 점이었다. 그것을 피카소는 이 작품에선 유채 표현으로 역이용하고 있다. 그리하여 벅지, 목재, 의자 등은 물질적 요소의 부분들을 단편화시켜 자유롭게 재구성하는 화면을 만들어 내어, 그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순수한 공간적 존재의형태로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다.

 

 

 


기타리스트]
-1909~10
-캔버스에 유채, 100*73cm
-파리 근대미술관

이 작품은 피카소의 입체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작품의 하나다. 그는 인생의 어두운 면을 서적적으로 노래한 청색시대와 구성적인 분홍색 시대를 거쳐, 1907년부터는 대상을 마음대로 분해하고, 그렇게 분해된 여러 요소를 자신의 조형적인 의도로 다시 재구성하는 입체주의를 시도하게 된다. 이 작품에서 억지로나마 기타리스트의 얼굴과 기타의 형태를 살펴볼 수 있지만, 여기서 피카소의 의도는 결코 기타리스트의 초상이 아니라 선과 면에 의한 순수한 조형적 세계이다. 색채도 전적으로 임의의 갈색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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