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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고의 요리 연구가 장계향 ㅣ 역사 인물 돋보기 예술+문화 1
신혜경.한민혁 지음, 김병하 그림 / 보리 / 2025년 3월
평점 :
요즘 들어 아이와 함께 읽을 책을 고를 때, '이야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배움이 스며드는 책'을 찾게 된다. 역사책이라고 하면 뭔가 딱딱하고 외워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먼저 들지만, 『조선 최고의 요리 연구가 장계향』은 그런 부담이 없다. 얇고 가벼운 책 한 권 속에, 조선시대 한 여인의 진득한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처음 책 제목을 봤을 땐 솔직히 살짝 의아했다. 조선 시대에 '요리 연구가'라니. 부엌일은 당연히 여자의 몫이던 시대였고, 그런 시대에 ‘연구가’라는 말이 과연 어울릴까 싶기도 했으니까. 그런데 책을 읽다 보니 생각이 확 바뀌었다. 장계향은 단순히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조선의 음식 문화를 기록하고 후대에 전해준 '기록자'였다. 요즘 말로 하면 콘텐츠 크리에이터이자 푸드 아카이빙의 선구자랄까.
무엇보다 감탄스러웠던 건 《음식디미방》이라는 책을 우리말로 썼다는 점이다. 한자 범벅이던 시대에, 더군다나 여성은 책을 쓰는 것조차 쉽지 않던 시대에 말이다. 146가지 조리법을 하나하나 적어 내려간 그 마음.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남에게 전해주고 싶다는 마음. 그게 그냥 감동이었다. 지식을 쌓는 데서 멈추지 않고, 베풀고 나누려 했던 삶. 이런 게 진짜 배운 사람의 태도가 아닐까 싶었다.
책은 그림도 예쁘고, 글자 크기도 커서 초등 저학년 아이들이 읽기 딱 좋다. 하지만 내용은 절대 가볍지 않다. 장계향이라는 인물 자체가 무게감이 있다. 시와 글씨, 그림에도 재능이 있었던 그녀는 단지 요리책 하나 남긴 사람이 아니라, 당대의 여성 교육자이자 실천하는 철학자 같았다. 어쩌면 ‘조선의 숨은 르네상스 우먼’이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
아이와 함께 책을 읽고 나서 '음식디미방'이 궁금해서 인터넷으로 찾아봤다. 옛 문헌 속에 담긴 조리법이 지금 우리네 식탁과 얼마나 닮아 있는지, 또 얼마나 다른지 살펴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아이는 요리에 관심이 많아서 그런지, “엄마 우리도 이거 만들어 볼까?” 하며 한참을 들여다봤다. 그렇게 책 한 권으로 아이의 관심이 확장되는 걸 보니, 이런 책은 정말 고맙다 싶었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어릴 적 읽었던 위인전은 대부분 ‘너무 멀리 있는’ 사람들이었다. 성인군자나 독립운동가처럼, 나와는 딱히 접점이 없는 인물들. 그런데 장계향은 좀 달랐다. 우리가 먹는 밥상, 우리가 쓰는 말,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과 이어져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일까? 아이도 훨씬 더 자연스럽게 공감하고 몰입했던 것 같다.
『조선 최고의 요리 연구가 장계향』은 그냥 위인 이야기를 담은 책이 아니다. 조선이라는 시대 속에서, 여성이라는 한계 안에서도 자기 삶을 꿋꿋이 그려간 한 사람의 이야기다. 더 알고 싶고, 더 찾아보고 싶어지는 인물. 그래서 오히려 책이 너무 짧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앞으로는 더 자주 ‘이름 없는 역사 속 인물들’을 찾아보고 싶어졌다. 기록이 적다고, 유명하지 않다고 해서 그 삶이 작았던 건 아닐 테니까. 오히려 그런 사람들의 삶이 더 뜨겁고, 더 깊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이에게도 그런 생각을 자연스럽게 심어줄 수 있는 책이라면, 두말할 것 없이 추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