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보스 문도스 밀리언셀러 클럽 62
기리노 나쓰오 지음, 김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이 단편집에 실린 작품 '암보스 문도스'에 언급된 호텔 암보스 문도스. 새롭고 낡은 두개의 세계, 즉 양쪽의 세계라는 뜻)

1951년에 태어난 기리노 나쓰오는 1993년 <얼굴에 내리는 비>로 일본 추리 소설의 등용문인 제39회 에도가와 란포 상을 수상하며 본격적으로 미스터리 추리 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1998년 <아웃>으로 일본 추리 작가 협회상을 수상했다. 1999년에는 <부드러운 볼>로 나오키 상을 수상했으며, 2003년에는 <그로테스크>로 이즈미 교카 문학상을 받았다. 이어 2004년에는 <잔학기>로 제17회 시바타 렌자부로 상을 수상했고, 같은 해에 <아웃>이 세계적인 추리상인 에드거 앨런 포 상 최고 소설 최종 후보에 오르며 전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기리노 나쓰오는 이처럼 빼어난 작가이지만, 이제서야 본격적으로 소개되는 작가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처음 읽어보게 된 작품이 바로 이 단편집인 <암보스 문도스>이다. 그녀의 대표작인 <아웃>을 읽어보지 않아 그녀의 추리작가로서의 재능을 헤아려 볼 수는 없지만, 현대의 사회 문제와 인간의 어그러진 욕망을 적나라하게 그려내는 솜씨가 일품이라는 것은 이 단편집을 읽어봄으로써 확인할 수 있었다. 이 단편집에는 총 일곱 편의 작품이 실려있는데 가쿠타 미쓰요라는 작가의 추천사대로 기리노 나쓰오씨의 번뜩이는 재주가 느껴지는 상당히 충격적인 작품들이었다. 비록 이 작품들은 추리나 스릴러, 서스펜스 등으로 구분할 수는 없지만, 비밀, 성, 음모, 사랑, 추억, 소외 등을 화두로 하여 각 작품들을 이끌어 나가는 작가의 숙련된 솜씨를 만끽할 수 있는 상당히 섬뜩하면서도 충격적인 내용들을 다루고 있다. 각 작품들에 나오는 여자들은 모두 자신들의 사랑과 욕망을 갈망하지만, 그 결말들이 대단히 섬뜩한 것들도 있고 인간의 무시무시한 심리를 반영하는 것이 있는가 하면 초현실적인 것도 있다. 각 작품들의 욕망하는 인물들과 다채로운 결말이 아직도 머릿속에 남아 있는 것만 같다.

<식림>

가족과 직장 동료들로부터 따돌림당하는 마키. 별볼일 없는 인생이라고 좌절하는 그녀에게 어느날 놀라운 변화가 찾아든다. TV에서 방영된 20년 전 미제 사건에서 들려온 협박범의 목소리, 바로 자신의 어린 시절 목소리였다. 그리고 기억의 저편에서 떠오른 놀라운 기억, 일본 전체를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의 중심에는 바로 자신이 있었다.

외모도 별 볼일 없고, 직장과 가족들에게도 무시당하고 소외받는 한 여자에 대한 이야기다. 그녀는 남자와 가족, 친구들에게 애정을 갈망하지만 그녀의 욕망은 좌절당한다. (이 작품에서는 그녀의 성적인 욕망 또한 적나라하게 묘사해 놓는다.) 사회문제라 할 수 있는 왕따문제가 이 작품의 화두를 이루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작품의 포인트는 주인공인 마키가 20여년전 겪은 미제 사건에서의 자신의 역할과 그 사건의 숨겨진 비밀이다. 미제 사건에서의 자신의 위치를 확인한 마키는 자신이 그 사건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크게 기뻐하지만, 사건속에 가려진 충격적인 비밀을 깨닫고는 좌절하고 만다. 마지막 주인공의 사소한 복수가 곁들여져 있는 약간 묵직하지만 중독성있는 작품이다.

<루비>

도시 노숙자의 적나라한 생활 모습과 성(性)적인 문제를 다루는 전 작품보다는 약간 더 가벼운 단편이다. 먼저 도시 노숙자들의 리얼한 삶을 그린다는 점에서 작가의 빼어난 솜씨를 엿볼 수 있고, 커다란 도시에서 다양한 인생을 살아오다가 끝끝내 몰락하여 밑바닥을 살아가는 인간들의 성적인 욕망과 억눌린 심리 또한 섬세하게 묘사해 낸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루비>라는 막나가는 여성과 그녀를 갈망하는 남자들의 심리와 배신등이 잘 어우러진 작품이다.

<괴물들의 야회>

유부남과 불륜 관계를 맺고 있던 사키코. 가족과 자신 어느 쪽도 버릴 수 없다는 애인 말에 상처만을 안고 산다. 결국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 사키코는 남자를 속여 자기집 욕실에 가둬 두고,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그의 가정에 과감히 쳐들어간다.

잘라내고는 싶지만 결코 그럴 수가 없는 여자의 불륜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특별한 주제 의식을 찾아보기는 힘들지만, 치명적인 사랑에 상처입은 여자의 결말은 볼만한 작품이다. 작가 자신과 동년배인 듯한 여자의 심리 또한 이 작품에서는 섬세하게 묘사된다. 이 작품에서는 불륜을 묵인하는 남자의 가정과 사랑에 중독된 중년 여성의 복잡한 관계가 얽히고 ˜鰕耽?된다.

<사랑의 섬>

해외여행을 떠난 세 여자의 이야기. 성적인 탐닉과 자신들이 겪은 충격적인 과거를 밝히는 것이 중심 이야기이다. 복잡한 현대인의 성과 성에 탐닉하는 인간들의 이상심리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상당히 충격적인 작품이다.  

<부도의 숲>

이 단편집에서 가장 길었던 작품이었던 것 같다. 이름이 널리 알려진 작가집안이지만 그 가정사와 가족들이 상당히 복잡한 여주인공의 이야기이다. 처자를 버리고 자신의 즐거움만을 추구하는 비정한 아버지와 정신적으로 고통받는 여주인공의 복잡다단한 심리와 인생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빼어난 단편이다.

<독동毒童>

결말은 <기묘한 이야기>나 <환상특급>같은 약간은 초현실적인 작품이었다. 평범하고 단순한 생활에 억눌린 심리가 끝내 폭발하여 극단적인 방법을 통한 자유와 해방을 추구코자 하는 여주인공의 운명과 이 작품의 결말을 어떻게 될 것인가. 일단 그녀는 목적을 이루지만 결말은 안습이다.

<암보스 문도스>

교감과 불륜의 여행을 쿠바로 떠난 여선생 하마사키. 그러나 여행에서 돌아오자 담임을 맡던 반의 아이가 사고로 죽어 있었다. 둘의 비밀은 폭로되고, 직장과 사랑 모두 끝없는 나락으로 추락한다. 하지만 이 모든 사건이 반 아이들 누군가에 의해 조작된 거 같다는 의심을 품고 조사에 착수한다.

아무도 모르게 교감과 불륜의 여행을 떠난 여주인공. 이 작품에서는 학교라는 곳에서조차 인간의 욕망과 욕정이 꿈틀거리는 공간으로 설정해 놓았다. '비밀은 어디에도 없다'라는 말이 이 작품에는 잘 어울리며, 한 인간에 대한 증오와 분노, 복수와 잔인한 인간들의 성격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그런 작품이다. 약간 아쉽지만 이 작품의 제목인 <암보스 문도스>에서 기대했던 실재하는 호텔 <암보스 문도스>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호텔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으로 알았는데 약간은 실망했다. 그러나 작품집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단편답게 이 작품은 미스터리적인 냄새와 차가운 인간의 심리가 잘 어우러졌다고 볼 수 있겠다.

이상 일곱 단편을 살펴보았는데, 각 작품들은 모두 생각지도 못했거나, 상상도 하지 못했던 화두를 거침없이 다루고 있으며, 기리노 나쓰오의 대가로서의 솜씨를 마음껏 뽐내는 작품들이라 할 수 있다. 살아가는 일상이 너무나 무미건조하고 삼삼하다면 이 단편집을 꼭 읽기 바란다. 기리노 나쓰오 특유의 생각치 못한 인간의 탐욕과 욕망의 세계에 '흠뻑' 빠져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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