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
콜슨 화이트헤드 지음, 황근하 옮김 / 은행나무 / 2017년 9월
평점 :
미국의 역사 속 흑인에게 평등한 권리가 주어지기까지 얼마나 고되고 잔혹했는지. '코라'라는 한 소녀의 일대기를 통해 그 역사가 전달이 되어진다.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기고, 그들을 돕기 위한 조력자들은 계속해서 희생당한다.
그들이 추구했던 가치는 오로지 '자유' 하나 뿐.
그 자유를 얻기 위한 대가는 너무나 가혹했으며 절망으로 온통 도배되어진 어둠 뿐이었다.
새까만 터널 같은 어둠의 공간 속에서 존재하는지 알 수 없는 한 조각의 빛을 향해 그녀, 아니 그들은 달려 나갔다.
번역의 오점을 넘긴다면 소설의 문체는 놀랍도록 담담했다. 그 어떤 놀라운 일들도 그들이 걸어온 역사에 비하면 특별하지 않다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담백하게 진행되는 것이 더 경이롭게 느껴졌다. 지금에서야 쟁취해낸 자유의 뒤편엔 상상하지도 못할 만큼의 수많은 희생들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자.
그들이 꿈꾸었을. 그리고 그들이 일구어낸 소중한 오늘을.
- 나는 사회에서 요구하는 정의와 규율을 거스르고 윤리와 규범을 위해 목숨을 걸고 용기 있게 맞설 수 있는가?
p 70 그러나 모든 노예는 그 생각을 한다. 아침에, 오후에 그리고 밤에도. 그것을 꿈꾼다. 모든 꿈은 비록 그렇게 보이지 않을지라도 탈출하는 꿈이다. 새 신발 꿈도.
p 135 갑판을 걸레질하고 백인 납치범들에게서 잘했다고 칭찬을 받는 납치된 소년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코라가 신은 고급 가죽 부츠 차림의 그 진취적인 아프리카 소년은 갑판 밑에서 제 오물로 몸을 닦으면서 쇠사슬에 묶여 있었을 것이다. 때로 실을 잣는 것은 노예의 일이었다, 맞다. 그러나 대부분은 아니었다. 어느 노예도 물레 앞에서 고꾸라져 죽거나 꼬인 실을 풀다가 죽임을 당하지 않았다. 그러나 누구 하나 세상의 진짜 모습에 대해 말하려고 하지 않았다. 듣고 싶어 하는 사람도 없었다. 바로 그 순간 유리에 그 기름진 코를 들이밀며 놀리고 비웃는 진열창 맞은편의 백인 괴물들 중에는 분명 없었다. 진실은 당신이 보지 않을 때 누군가에 의해 뒤바뀌는 상점 쇼윈도의 진열과 같았다. 그럴싸하고 결코 손에 닿지 않는.
p 243 대농장에서 정의란 비열하고 늘 같은 것이었지만, 세상은 마구잡이였다. 세상 밖으로 나와보니 사악한 자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벌을 피해 가고 선량한 사람들이 채찍질 나무에 대신 서 있었다. 테네시의 재앙은 정착민들의 범죄와는 무관한, 무심한 자연의 결실이었다. 체로키 인디언의 삶의 방식과도 마찬가지로 무관했다. 그저 길을 벗어난 불꽃 하나 때문이었다.
p 319 우리는 모두를 구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시도해볼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쓸모 있는 착각이 쓸모 없는 진실보다 낫습니다. 이 사나운 추위 속에서는 무엇도 자라날 수 없을 테지만, 우리는 그래도 꽃을 가질 수 있습니다.
p 330 절망감이 그녀를 이기고 악마처럼 속삭였다. 이 순간을 비밀로, 그녀만의 보물로 하리라. 나중에 코라에게 설명할 말을 찾게 된다면 코라도 농장 너머에 뭔가가, 자신이 아는 걸 전부 넘어서는 뭔가가 있음을 이해하리라. 포기하지 않는다면 언젠가 코라도 그걸 가질 수 있다는 것도. 세상은 비열해도 사람까지 그럴 필요는 없다. 그러기로 선택하지 않는 한.
p 340 한쪽 끝에는 지하로 들어가기 전의 당신이 있고, 맞은편 끝에서는 빛을 향해 발을 내딛는 새 사람이 있었다. 위의 세계는 이 밑의 기적, 당신들이 땀과 피로 만든 이 기적에 비하면 분명 너무나도 평범하리라. 당신들이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는 비밀스러운 승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