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미의 축제
밀란 쿤데라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2014년 7월
평점 :
절판


... 쿤데라는 어렵다. 특히 인물의 이름이 헷갈리는 경우가 많아 다소 복잡하고 산만하게 읽은 것 같다. 이 지역의 문학을 조금 더 접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확실한 물음들을 던져준 책이었다.


복잡한 세상 속에 그저 아무 의미없이 만들어 진 것들이 있을까. 그렇다면 의미 있는 것은 무엇이며 의미 없는 것은 또한 무엇일까. 누가 정하는 것일까. 의미 없이 만들어지는 것이 한 가지 있다면 그것은 인간이 아닐까? 


알랭은 공상 속 어머니와 대화를 하며 어머니의 말을 듣는다. 인간은 무슨 권리에 근거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주변의 사람들 중에 그 누구도 자기 의지로 여기 있는 것이 아니며 이 말은 가장 진부한 진리이다. 인간과 관련되어진 권리들은 가장 쓸데 없는 것들에만 관련되어있다는 허무주의적인 시선. 아이를 죽이려다 실패하고 그의 어머니는 결국 알랭을 낳아버리고 만다. 이처럼 쿤데라는 인간의 탄생을 무척 타의적이며 수동적인 현상으로 표현함으로써 인간은 결국 무의미한 존재라는 것을 묘사한다.


분명 맞는 말이다. 탄생되어지는 인간의 주체는 아무런 이유와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은 채, 부모란 타자적 관계에 의해서 그 존재를 부여받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주체적인 입장에서는 분명히 아무 의미 없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주체에게 존재를 부여한 타자, 즉 부모와 그리고 사회는 그 탄생에 대해 결코 무의미를 논하지 않는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삶을 통해 우리는 하나하나 의미를 발견해나가며 의미있는 미래를 추구해간다. 그 누구가 보잘것 없는 작고 하찮은 인생을 소망할까. 하지만 살다보면 세상을 보며, 주변을 보며, 나를 보며 물밀듯이 밀려오는 회의감에 존재가 부정당하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내가 추구하는 가치는 지향적이지만 그것에 미치지 못하는 자신의 현실을 보며 우리들은 스스로를 가엾게 여긴다. 그렇게 생겨난 니힐리즘 앞에서 쿤데라의 소설은 그것이 인간의 본질이라고 말해준다


무의미. 하찮고 의미없다는 것은 존재의 본질. 인간이 태어난 이유도, 우리가 존재하는 것도, 결국 모든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 시선은 무척 거시적이지만 쿤데라는 그 무의미의 인정과 사랑을 통해 니힐리즘을 기꺼이 수용하는 태도를 말한다. 그러면서 쿤데라의 사상도 결국 니체에게 수렴되어진다. 무의미는 절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며, 존재하는 것은 일상이다. 일상은 결국 무의미하지만 본질적으로 아름답다. 그렇기에 일상에서의 행복을 추구하자, 삶에서 매순간 의미를 찾으려 하지 말자는 메세지를 전달받는다. 


라몽이 계속 배꼽에 대해 생각한 것은 인간의 욕구와 결부가 되어지는 것이어서였을까. 배꼽의 의미는 생명의 줄을 나타낸다. 그 생명의 탄생. 무의미의 영역에서 라몽은 인간 욕구의 기저인 아름다움의 가치를 발견해 낸 것도, 또한 칼리닌그라드의 지명이 뛰어난 역사인물들을 제치고 전립선비대증 환자였던 칼리닌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도 무의미의 소중함을 더욱 상징하기 위해 피력했던 것이 아닐까.


일단 이 책을 봄으로써 들었던 생각은 여기까지이고 더 자세히 책에 대한 평들을 찾아 봐야겠다.


- 무의미한 것들이 의미있는 것처럼 보여지고 있지는 않을까? 혹은 그 반대는 어떨까?

- 그렇다면 의미와 무의미를 가르는 것은 무엇이며 그 가치를 누군가가 규정할 수 있을까?


p 43-44

팬티를 더럽히지 않기 위해 괴로움을 견딘다는 것 ... 청결의 순교자가 된다는 것 ... 생기고, 늘어나고, 밀고 나아가가고, 위협하고, 공격하고, 죽이는 소변과 맞서 투쟁한다는 것 .....
이보다 더 비속하고 더 인간적인 영웅적 행위가 존재하겠냐?

나는 우리 거리들에 이름을 장식한 이른바 그 위인이라는 자들은 관심 없어. 그 사람들은 야망, 허영, 거짓말, 잔혹성 덕분에 유명해진 거야. 칼리닌은 모든 인간이 경험한 고통을 기념하여, 자기 자신 외에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은 필사적인 투쟁을 기념하여 오래 기억될 유일한 이름이지.

p 133

저 사람들 전부 좀 봐라! 한번 봐! 네 눈에 보이는 사람들 중 적어도 절반이 못생겼지. 못생겼다는 것, 그것도 역시 인간의 권리에 속하나? 그리고 한평생 짐처럼 추함을 짊어지고 산다는 게 어떤 건지 너는 아니? 한순간도 쉬지 않고? 네 성도 마찬가지로 네가 선택한 게 아니야. 네 눈 색깔도. 네가 태어난 시대도. 네 나라도. 네 어머니도. 중요한 건 뭐든 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권리들이란 그저 아무 쓸데없는 것들에만 관련되어 있어, 그걸 얻겠다고 발버둥치거나 거창한 인권선언문 같은 걸 쓸 이유가 전혀 없는 것들!

p 147

하찮고 의미 없다는 것은 말입니다, 존재의 본질이에요. 언제 어디서나 우리와 함께 있어요. 심지어 아무도 그걸 보려 하지 않는 곳에도, 그러니까 공포 속에도, 참혹한 전투 속에도, 최악의 불행 속에도 말이에요. 그렇게 극적인 상황에서 그걸 인정하려면, 그리고 그걸 무의미라는 이름 그대로 부르려면 대체로 용기가 필요하죠. 하지만 단지 그것을 인정하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고, 사랑해야 해요,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해요. 여기, 이 공원에, 우리 앞에, 무의미는 절대적으로 존재하고 있어요. 그래요. 아름답게요. 바로 당신 입으로, 완벽한, 그리고 전혀 쓸모없는 공연... 이유도 모른 채 까르르 웃는 아이들 ... 아름답지 않나요라고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들이마셔 봐요, 다르델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이 무의미를 들이마셔 봐요, 그것은 지혜의 열쇠이고, 좋은 기분이 열쇠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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