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앞의 생 (특별판)
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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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앞의 생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

 

소설은 꼬마 모모가 바라보는 시각으로 전개된다. 모모는 자신이 어떻게 해서 태어났는지, 정확히 무슨 일이 있어서 태어났는지도 모른다. 자신을 돌봐주는 사람은 로자 아줌마와 창녀들의 아이들과 엘리베이터가 없는 7층 아파트에서 살아갈 뿐이다. 모모는 자신의 부모가 누구이며, 왜 자신을 보러오지 않는 것인지 궁금해 한다. 로자 아줌마에게 그러한 질문들을 하면, 아줌마는 울었고, 더 이상 질문을 하지 못하게 됐다. 로자 아줌마는 항상 자신의 죽음에 대해 두려워했다. 그럴 때마다, 모모는 죽음을 먼 곳에만 있다고 생각하며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하지만, 로자 아줌마는 점점 병약해져만 가고, 모모는 로자 아줌마를 걱정한다. 그리고 뚜쟁이들에게 엉덩이를 팔지 않고, 정당하게 돈을 벌어서 살아갈 것을 다짐한다. 자신의 우산이자 벗인 아르튀르와 함께 우스꽝스러운 옷을 착용하고 길거리에서 익살꾼 노릇을 한다. 그러한 장면에는 모모가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 같다. 모모가 조금씩 성장해갈 때 마다, 로자 아줌마의 병색은 더 깊어진다. 모모는 자신이 죽어간다고 걱정하는 아줌마를 위해, 위로를 해준다. 자신을 사랑해주고, 자신이 사랑하는 아줌마를 위해 최선을 다해 간호한다.

 

어느날, 모모의 아버지라는 작자가 로자 아줌마에게 찾아온다. 모모는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듣고, 자신의 나이가 10살이 아니라, 14살이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로자 아줌마는 모모의 아버지에게 자식이라고 싸질러 놓고 키우지 않으면, 부모의 자격이 없는 것이라며 나무란다. 그리고 로자 아줌마는 모모에게 모모의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모모에게 사실대로 말하지 않은 것에 대해 고백한다. 모모가 성장해서, 살던 집을 떠나게 되는 날이 빨리 다가오지 않도록 하기 위해 모모의 나이를 속이고,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끝내 로자 아줌마는 죽게 되지만, 모모는 부모 못지않게 키워준 로자 아줌마에 대한 사랑으로 인해 아줌마를 쉽게 떠나보내지 못한다.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 사랑에 대한 감사함을 전하지 못한다면, 사랑한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p265

노망이 들기 전 하밀 할아버지가, 사람은 사랑할 사람이 없이는 살 수 없다고 한 말은 옳은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아직 이 집 식구들에게 아무것도 약속할 수가 없다. 두고보아야겠다. 나는 로자 아줌마를 사랑했고, 계속 그녀가 보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이 집 아이들이 같이 있자고 조르니까 얼마 동안은 같이 있고 싶다. 나딘 아줌마는 내게 세상을 거꾸로 돌아가게 하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나는 그것에 굉장한 흥미를 느껴, 온 마음을 다해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라몽 아저씨는 내 우산 아르튀르를 찾으러 가기까지 했다. 감정을 쏟을 만한 가치가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아르튀르를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므로 내가 몹시 걱정했기 때문이다. 사랑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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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집을 발로 찬 소녀 1 밀레니엄 (뿔) 3
스티그 라르손 지음, 임호경 옮김 / 뿔(웅진)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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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집을 발로찬 소녀 <밀레니엄 3부>

 

​대망의 밀레니엄 3부, 드디어 다 읽었다. 개인적으로, 너무 아쉽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이제 어느정도, 설정을 많이 해놨는데, 작가님이 작고하시고 나서, 더이상 이야기가 전개되지 않는다. 밀레니엄 3부 1편에서는 조금 지루하게 늘어지는 경향이 있다. 뭔가 법정스릴러물이 되어버린 느낌이다. 리스베트 살린데르의 무죄를 주장하기 위해서, 미카엘은 자신의 여동생 잔니니에게, 변호해줄 것을 부탁한다.

 

안니카 잔니니는 여성 전문 변호사인데, 이런 형사사건에 어울리지 않는다며, 자신이 맡아서 하기에는 너무 부담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미카엘은 너에게 밖에 이 변호를 부탁할 수 밖에 없으며, 꼭 해달라고 부탁한다. 도대체 전편에서 실종된 로널드 니더만의 행방을 쫓지 않고, 재판내용만 1편에서 계속 나오고 2편이 끝날 때까지 이어져서, 이거 너무하지 않은가, 싶었지만, 어쨌든, 그의 행방이 끝에서 잡히긴 한다.

 

3부 내용이 너무 질질 끄는 면이 없지 않으나, 작가가 다음편을 고려해서, 그렇게 한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다음 작품이 나오질 않으니 너무 아쉬운게 사실이다. 그렇게, 재판은 계속 진행되어가고, 원고측에서 리스베트 살린데르를 정신병자로 몰며 그녀의 죄에 대한 형벌을 주장하지만, 리스베트의 결정적인 증거인 비디오로 인해 재판이 순식간에 역전된다.

 

그리고, 변태 정신과 의사의 더러운 음란물 소지 행위로 잡혀가고, 통쾌하게 재판에 승리하게 된다. 이렇게 그냥 3부가 마무리 될줄 알았지만, 다행스럽게도 아니였다. 3부 내용은 마지막 한 100p가 절정인 것 같다. 리스베트 살린데르의 체구에 어울리지 않는 액션신이 등장하고, 통쾌하게 나쁜녀석들을 쓰러뜨린다.

 

다음 4부에 어떤 내용이 나올 지 작가님이 정확하게, 표현을 하지 않아서, 사실상 밀레니엄 시리즈는 3부까지만 읽어도 별로 지장이 없다. 3부에서, 그냥 재판만 하고 내용이 끝났으면, 정말 억울할 뻔 했다. 사실상 별로 없다. 그냥, 정치적인 내용이 너무 나오고, 스웨덴 정치에 대해서 우리가 잘 모르니 더욱, 집중이 안되는 게 사실이다.

 

스웨덴 비밀경찰 sapo의 부정부패에 대한 비판과 과거 구소련 당시에 정치적인 문제점에 대해서 직접적인 비판이라고 봐도 될 것같다. 작가님이 원래 기자였으니, 그 자신의 모습을 미카엘에게 투영한 것 같다. 어쨋든 악의무리도 전부 소탕했고, 리스베트도 무죄로 풀려나고 참 다행이다. 만약에 4부가 나왔다면, 리스베트의 여동생을 찾는 내용이 아닐까 싶다.

 

http://blog.naver.com/young92022/220151146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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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블랙 장르의 재발견 1
오스카 와일드 지음, 서민아 옮김 / 예담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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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영원한 아름다움을 손에 넣을 수 있다면,>

 

나는 아직 노화에 대해 고민해 보질 않았다. 영원한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 나도 언젠가 도리언 그레이처럼 아름다움을 잃어간다는 것에 대해 고민하게 될 것이다. 그저, 어릴 때는 언제 나이를 먹고, 자유롭게 내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밖에 해보질 않았다. 내가 늙어간다는 것에 대해서 전혀 고민해보질 않은 것이다. 단순히 나는 성장에 대해서만 생각했다. 내가 빨리 어른이 되어서 부모님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스스로 주체적으로 나의 의사를 결정할 수 있기만을 원했던 것이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가면서 나도 늙어갈 것이다. 그리고 내 영혼을 팔아서라도, 소설 속 주인공처럼 영원한 젊음을 손에 넣기를 바랄지도 모를 일이다. 인간은 마흔이 넘으면 얼굴에 책임을 져야한다는 링컨의 말처럼, 언젠가, 나의 얼굴에 내 삶의 모든 것이 드러날 것이다.

 

그저 타인의 좋은 평가를 받기위한 아름다움은 아름다움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왜 외적인 아름다움만이 자신의 모든 아름다움을 대변할 수 있다고 생각 하는가? 현대 사회에서 외모도 스펙이라며, 다들 외모를 가꾸는데 혈안이 되어있다. 심지어 얼굴에 칼을 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 소설은 그러한 행태에 경종을 울리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헨리경의 악마의 속삭임에 넘어간 도리언 그레이는, 결혼까지 생각한 여자에게 자신의 사랑을 죽인 것이라며 그녀를 처참하게 버린다. 자신의 연인인 시빌 베인의 연극을 헨리경과 홀워드에게 보여주지만, 연극이 형편이 없었던 것이다. 사랑을 위해서 연극배우의 꿈까지 버리고 그레이에게 가려던 시빌 베인은 자살한다.

 

외적인 평가를 바라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이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는 것과는 상관없이 자신의 사랑에 대한 확고함은 변하지 말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도대체 남들에게 자신의 연인을 자랑하고 싶어서 연애질을 하는 인간은 무엇이란 말인가?

 

소설 속에서 헨리경의 냉정함과 잔인함 그리고 아름다움과 쾌락에 대한 숭배는 파우스트의 메피스토팰레스보다 더 사악하다고 생각한다. 시빌 베인의 죽음에 대해 단지, 한편의 비극의 주인공으로 승화 시키다니, 죽음은 그 어떠한 말로도 위로 어떠한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것이다.

 

세월이 흘러가면 흘러 갈수록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화는 점점 추악해져 간다. 그레이는 추악해져가는 초상화와는 반대로, 점점 젊어져가는 자신의 얼굴을 본다. 아름다움을 위해 자신의 영혼까지 팔겠다는 그레이는 결국 살인까지 저지르게 된다. 자신의 초상화를 그려준 홀워드에게 책임을 떠넘기며, 그를 죽인 것이다.

 

결국 도리언 그레이는 자신의 죄의 대가를 치르게 된다. 그레이의 마지막은 끔찍하다. 주름투성이에 쇠약하고 추악하기 짝이 없는 모습으로 죽은 채 발견된다. 결국 사람은 죗값을 치르게 되기 마련이다. 자신의 쾌락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p40

“그렇지만 누군가 자신의 삶을 충실하고 완벽하게 살아간다면, 모든 감정에 형식을, 모든 생각에 표현을, 모든 꿈에 실체를 부여한다면ㆍㆍㆍㆍㆍㆍ 세상은 즐거움이라는 대단히 신선한 충동을 회복하며, 우리는 중세적 관습으로 빚어진 온갖 병폐를 잊고 고대 그리스의 이상으로, 아니 어쩌면 고대 그리스의 이상보다 더욱 섬세하고 풍요로운 무언가로 회귀하게 되리라 믿네. 하지만 우리들 가운데 가장 용감한 사람조차 자기 자신을 두려워하지.

 

그러는 동안 불구가 된 야만성은 우리의 삶을 망치는 자기부정 속에서 비참하게 목숨을 연명해왔다네. 그 바람에 우리는 자신이 행한 온갖 자기부정으로 인해 벌을 받고 있어. 그토록 애써서 억압해온 그 모든 충동들이 우리의 정신 속에 알을 품고 부화해 우리를 독살시키고 있는거지. 육체는 단 한 번 죄를 지음으로써 그 죄와 관계를 끊는다네.

 

행동이 정화의 한 형태가 되어주거든. 그러고 나면 남는 것은 쾌락에 대한 기억 아니면 사치스러운 회한뿐이지. 유혹을 없애는 유일한 방법은 유혹에 굴복하는 것뿐. 유혹에 저항하라. 그리하면 우리의 영혼은 스스로 금지한 것들을 향한 갈망으로, 괴물 같은 법들이 극악무도하고 비합법적으로 만들어놓은 것들을 향한 욕망으로 차츰 병들어갈 테니.

 

세상의 위대한 사건들은 인간의 머릿속에서 일어난다고들 하지. 하지만 세상의 엄청난 죄악들이 일어나는 곳 역시 인간의 머릿속, 오직 인간의 머릿속이라네. 그레이 군, 붉은 장미와도 같은 젊음과 흰 장미처럼 순결한 소년 시절을 보내는 자네 역시 스스로를 두렵게 만드는 열정을 가져봤을 테고,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부끄러워 뺨을 얼룩지게 할 공포와 백일몽과 한밤의 꿈에 온통 정신을 빼앗긴 적이 있을 걸세ㆍㆍㆍㆍㆍㆍ .”

 

p46 ~ P49

“그래,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 하지만 언젠가 자네가 늙고, 주름지고, 추해질 때, 생각이 한 줄 한 줄 주름을 패어놓아 이마에서 생기가 사라질 때, 열정이 그 끔찍한 불길로 입술에 낙인을 찍을 때, 그때 비로소 알게 될 걸세. 젊음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몸서리치게 느끼게 될 거야. 지금이야 어디를 가든 세상 사람들 모두가 자네에게 한눈에 반하겠지. 하지만 언제까지 그럴 수 있을까? 자네의 외모는 놀라도록 아름답네, 그레이 군. 얼굴 찡그리지 말게. 사실이 그러니까. 그리고 미모는 천재성의 한 형태라네ㆍㆍㆍㆍㆍㆍ

 

아니, 사실상 천재성보다 훨씬 우월하지.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으니까 말이야. 햇빛처럼, 봄날처럼, 검은 물속에 비친 우리가 달이라고 부르는 저 은빛 조가비의 그림자처럼, 아름다움은 세상을 구성하는 가장 위대한 요소 가운데 하나야. 그건 의문의 여지가 있을 수 없네. 아름다움은 그 자체로서 신성한 주권을 지니고 있지.

 

그래서 아름다움은 세상을 구성하는 가장 위대한 요소 가운데 하나야. 그건 의문의 여지가 있을 수 없네. 아름다운은 그 자체로서 신성한 주권을 지니고 있지. 그래서 아름다움은 그것을 간직한 사람들을 일인자로 만든다네. 자네 지금 웃고 있나? 아! 하지만 자네가 미모를 모두 잃었을 땐, 미소 지을 일도 없을 걸세ㆍㆍㆍㆍㆍ 사람들은 때때로 이렇게들 말하지. 아름다움은 한낱 껍데기에 불과할 뿐이라고. 그럴지도 몰라.

 

하지만 신이 준 것은 신이 냉큼 앗아가 버리고 말지. 자네가 진정으로, 완벽하게, 그리고 충만하게 살 수 있는 날도 몇 년 남지 않았다네. 자네의 젊음이 가고 나면 미모도 함께 사라지고, 그렇게 세월이 흐르다 어느날 문득 더 이상 승리의 기쁨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거나, 아니면 과거의 기억 때문에 패배보다 더 쓰라릴 변변찮은 승리감에 만족해야 할 걸세.

 

달이 가면 갈수록 자네는 점점 끔찍한 모습이 되어가겠지. 시간은 자네를 시기한 나머지 백합 같고 장미 같은 미모에 전쟁을 선포할 걸세. 혈색은 누렇게 변하고, 뺨은 핼쑥해지며, 눈에는 총기가 사라질 거야. 그렇게 무시 무시한 고통을 느끼게 되는 거지ㆍㆍㆍㆍㆍ. 아! 그러니 아직 젊을 때 자신이 젊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하게.

 

따분한 이야기를 듣는다든지, 희망도 없이 실패를 개선하려 애쓴다든지, 무지하고 평범하고 천박한 이들에게 자네의 인생을 내맡겨 황금 같은 젊은날을 낭비하지 말란 말일세. 이런 것들은 우리 시대의 병약한 목표요, 그릇된 이상이야 살게! 자네 안에 간직한 놀라운 생명력을 마음껏 발산하며 살게! 세상 모든 것의 기운을 빨아들이게. 항상 새로운 감각을 찾아 나서게. 세상 그 무엇도 두려워 하지 말게ㆍㆍㆍㆍㆍ

 

새로운 쾌락주의- 이것이야말로 지금의 세기가 원하는 것이라네. 자네는 눈으로 볼 수 있는 쾌락주의의 상징이 될지도 몰라. 자네 매력 정동면 할 수 없는 일은 아무것도 없을걸세. 세상은 잠시 자네의 것이 될거야ㆍㆍㆍㆍㆍ . 자네를 처음 본 순간, 자신이 실제로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 얼마나 대단한 존재일 수 있는지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걸 알았네. 자네에게는 나를 황홀하게 만드는 요소가 무궁무진해서, 자네에 대해 뭔가 말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

 

자네가 이대로 버려진다면 얼마나 비극적인 일일까 하는 생각도 했다네. 그도 그럴 것이, 자네의 젊음이 지속되는 시간은 아주 잠깐이니까ㆍㆍㆍㆍㆍ 젊음은 정말이지 아주 순식간에 지나가니까 말일세. 평범하기 그지없는 언덕의 꽃들은 어느새 시들다가도 때가되면 다시 피어나지. 금련화 역시 내년 유월이면 지금처럼 노랗게 다시 꽃을 피울 거야.

 

한달 후면 클레마티스에 자줏빛 별과 같은 꽃이 필 테고, 푸른 밤과 같은 그 잎들은 해마다 자줏빛 별 무리들을 감싸 안겠지. 하지만 우리 인간의 젊음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네. 스무 살에 펄떡펄떡 고동치던 기쁨의 맥박도 차츰 그 기능이 둔해지지. 팔다리는 약해지고, 감각은 못쓰게 돼. 그토록 두려워하던 열정과 도저히 굴복할 용기가 없었던 격렬한 유혹의 기억에 사로잡혀 우리는 흉측한 꼭두각시로 퇴화되고 말지. 오 청춘! 청춘! 세상에 청춘만한 것은 결코 없다네!“

 

p54

“얼마나 서글픈 일일까요!” 도리언 그레이가 여전히 자신의 초상화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이렇게 중얼거렸다. “얼마나 서글픈 일일까요! 나는 점점 늙고, 추하고, 끔찍해지겠지요. 하지만, 이 그림은 언제까지나 젊음을 간직하고 있을 거예요.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유월의 오늘 모습 그대로 남아 있을 거라고요ㆍㆍㆍㆍㆍㆍ 아 그 정반대가 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나는 언제까지나 젊은 모습 그대로 남아 있고, 그림이 나 대신 점점 나이가 먹는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렇게만 된다면, 그렇게만 된다면, 난 무슨 짓이든 할 거예요! 그래요, 그럴 수만 있다면 온 세상을 뒤져서라도 무엇이든 가져다 바치겠어요!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내 영혼이라도 바칠거예요!“

 

p55

“난 영원히 시들지 않는 아름다움을 간직한 것들 모두를 질투해요. 당신이 그린 내 초상화에도 질투를 느껴요. 나는 잃어버릴 수밖에 없는 걸 어떻게 이 초상화는 영원히 간직할 수 있는 거지요? 순간순간 시간이 흐를 때마다 내게서는 무언가가 사라지고, 이 그림에는 무언가가 더해지겠지요. 오, 정반대가 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림은 시들어가고, 나는 언제까지나 지금 모습 이대로 살아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왜 초상화를 그리셨나요? 언젠가 이 초상화가 나를 비웃을 거예요ㆍㆍㆍㆍㆍㆍ 끔찍하게 나를 비웃을 거란 말이에요!”

 

p227 ~ p228

캔버스에 그려진 얼굴은 자줏빛 덮개 아래에서 차츰 짐승처럼 흉측하고 무표정한 모습으로 더러워질 것이다. 그런들 무슨 상관이겠는가? 어차피 이 그림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텐데. 그 자신조차 보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영혼이 끔찍하게 썩어가는 모양을 왜 지켜보아야 하는가? 그는 젊음을 지녔고, 그거면 충분했다. 게다가 결국 본성이 점점 훌륭해질지 모를 일 아닌가? 미래가 수치로만 가득 차리라는 법은 없었다.

 

인생에 또다시 사랑이 찾아와 그를 정화시키고, 이미 영혼과 육체를 뒤흔들어 놓은 것 같은 죄악들로부터 - 그림에는 묘사되지 않은 기이한 죄악들, 너무나 수수께끼 같은 특성으로 인해 미묘함에 매력까지 더해진 죄악들로부터 - 자신을 지켜줄지도 모를 일이었다. 또 누가 알겠는가. 그러다 어느 날, 섬세한 진홍빛 입가에서 잔인한 표정이 사라지고, 마침내 바질 홀워드의 걸작을 세상에 보여줄 수 있는 날이 찾아올지. 아니,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한 주 한주가 지날수록, 캔버스 위의 얼굴은 점점 늙어가고 있었다. 죄악으로 인한 섬뜩한 표정은 피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나이를 먹어 추해진 얼굴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두 뺨이 야위거나 축늘어질 것이다. 초점 잃은 눈동자 주위로 눈가의 잔주름이 하나둘씩 늘어 어느새 두 눈은 흉측해질 것이다. 머리카락은 윤기를 잃을 테고, 입은 헤벌어지거나 늘어지며, 늙은이들이 입 밖에 내는 말들이 늘 그렇듯 어리석은 말이나 천박한 말들을 입에 올릴 터였다. 어린 시절 자신에게 그토록 엄했던 할아버지의 모습에서 보았듯이, 목에는 주름이 지고, 차가운 손에는 푸르스름한 정맥이 튀어나오며, 몸은 구부정해지겠지. 초상화를 반드시 숨겨야 할 것 같았다. 그 수밖에 방법이 없었다.

 

p401

아! 세월의 짐은 초상화가 모두 떠맡고 자신은 영원한 젊음을 유지하며 흠 없이 화려한 빛만 발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던, 오만과 정념으로 똘똘 뭉친 극악무도한 순간들이여! 그의 모든 타락들은 바로 그 기도 때문이었다. 차라리 죄를 지을 때마다 그 즉시 확실하게 벌이 내려졌더라면 좋았을 것을. 차라리 벌을 받았더라면 영혼은 정화되었을 텐데. 가장 공정한 신에게 바치는 인간의 기도는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가 아닌 ‘우리 죄를 벌하시고’가 되어야 했다.

 

http://blog.naver.com/young92022/22014797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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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을 가지고 노는 소녀 1 밀레니엄 (뿔) 2
스티그 라르손 지음, 임호경 옮김 / 뿔(웅진)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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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을 가지고 노는 소녀 <밀레니엄 2부>

 

밀레니엄 2부에서는 리스베트 살린데르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1부에서 방예르가의 사건을 해결한 이후로 리스베트는 홀로 떠난다. 베네르스트룀을 고발한 이후에 돈을 슬쩍 자신의 계좌로 챙긴 리스베트는 미카엘에게 생긴 감정을 정리하기 위해 홀로 떠난다.

 

그 기간 동안에 미카엘은 새로운 기사거리를 찾고 다그 스벤손과 미아 베리만이 미카엘에게 기사거리를 준다고 접근한다. 미카엘은 그 둘과 만나게 되고, 엄청난 사실을 듣게 되는데, 성매매와 인신매매를 한 고위급 사람들을 고발하겠다는 것이다.

 

그 후에 미카엘은 다그 스벤손과 미아 베리만을 끊임없이 접촉하지만, 그 둘은 총살된 채 발견된다. 둘에게는 어떠한 일이 벌여진 것일까? 총 하나만이 살해현장에서 발견되고, 총에서는 리스베트의 지문이 나온다.

 

리스베트의 지문이 발견되자, 미카엘은 혼란에 빠지고, 리스베트가 그 둘을 살해했을리가 없다며, 리스베트를 찾는다. 언론에서는 리스베트가 살인자로 낙인이 찍히며, 전국으로 수배령이 내려진다. 은신에 있던 리스베트는 미카엘의 컴퓨터에 자신이 깔아놓았던 해킹 프로그램 '적대적 인수'를 통해 그와 연락을 하지만, 그에게 도움을 청하기 꺼려한다. 미카엘은 그런 그녀를 도와주려고 하며, 계속되는 추적에 금발의 거한과 살라라는 인물에 대해서 알게되고, 리스베트의 전 후견인인 비우르만이 그 둘과 관계가 있다는 것에 대해 알게된다.

 

2부에서는 리스베트가 왜 계속 무능력자로 살아왔는지에 대한 이유가 나온다. 역시, 컴퓨터 천재이자 수학에도 엄청난 재능이 있는 그녀가, 괜히 무능력자로 살아온 것은 아니였다.

 

불을가지고 노는 소녀 1권에서는 살라와 금발의 거한에 대한 실마리가 잡힐 듯 말듯 하면서, 2권에서는 엄청난 내용들이 쏟아져 나온다. 리스베트의 후견인이였던 비우르만조차도, 예사로운 인물이 아니였고, 리스베트도 아픈 과거를 숨긴채 살아온 것이였다.

 

그러한 사실을 알게 된 미카엘은 살라와 금발의 거한에게 생명을 빼앗길 뻔한 그녀를 1부에서와 반대로 도와주고, 리스베트를 걱정한다. 아쉽게도 2부에서는 1부와는 달리 독립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그 다음에 3부로 이어지게 된다. 원래 작가가 계획한 대로 였다면, 10부작으로 구성되었어야 하는데, 작가님의 죽음으로 3부가 마지막 이야기가 되버렸다.

 

아쉽게도 나도 3부를 읽을 차례이다. 과연, 리스베트와 미카엘의 이야기가 어떻게 될 지 궁금하다. 10부까지 완결이 됬으면, 더 명작이 됬을뻔한 이야기인데, 정말로 아쉬운 작품이다. 3부를 보게되면 아쉬워질까봐 쉽사리 보질 못하겠다. 살라와 금발의 거한은 어떠한 결말을 맞게 될것인가? 빨리 3부를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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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을 만들다 - 특별한 기회에 쓴 글들
움베르토 에코 지음, 김희정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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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을 만들다. <특별한 기회에 쓴 글들>

 

적은 만들다는 다양한 칼럼들의 집합이다. 각각의 소주제들을 합쳐 14개의 칼럼들을 수록해 놓은 이 책은 작가가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나 보여준다. 현존하는 최고의 지성으로 불리는 에코의 진면모를 보여준다.

 

각 주제별로 철학, 역사, 기호학, 미학, 천문학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해 에코가 평해놓은 글들을 읽다보면 놀라 수밖에 없다. 한 분야에 대해서 해박하기도 힘든데, 전 분야에 대해서 자세히 안 다는 것은, 저자가 모든 분야에 대해서 끊임없이 공부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모든 칼럼이 다 흥미로우나, 내용이 너무 길어질 것 같아서, 가장 재밌게 읽은 5개의 칼럼을 골라서 리뷰를 쓰고자 한다.

 

개인적으로 지리학과 천문학의 발전을 다룬 <상상 천문학>과 속담을 행복의 최고의 원칙으로 규정한 유토피아에 대해 고찰한 <속담따라 살기>도 재미있었으나, <적을 만들다>, <절대와 상대>, <불꽃의 아름다움>, <천국의 아름다움>, <오, 빅토르 위고! 과잉의 시학>이라는 주제들에 대해 쓰게 되었다.

 

■적을 만들다.

적을 만들다라는 칼럼에서는 우리가 다름의 차이를 차이로 인정하지 않고, 차별해 온 역사에 대해 서술한다. 단순히 우리와 다르다는 이유로 외국인, 흑인, 유대인, 여성, 나병환자, 이주민들에 대해 적으로 규정해 온 역사들을 보여준다. 우리는 왜 적을 만들까? 나와 타인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적으로 규정해야 하는가에 대해 물음을 던지게 된다. 자신도 모르게, 타인을 적으로 만들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나와는 다르다는 이유로, 타인이 자신에게 해를 가한다는 확신도 없이 단순히 적을 만들어 왔다면 이러한 문제에 대해 한번 고민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적을 가진다는 것은 우리의 정체성을 규정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우리의 가치 체계를 측정하고 그 가치를 드러내기 위해 그것에 맞서는 장애물을 제공한다는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다. 따라서 적이 없다면 장애물을 제공한다는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다. 따라서 적이 없다면 만들어 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p13)

 

적을 만들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문명화의 과정을 거치면서도 적의 형상을 지워 버리지 못했다. 평화를 사랑하는 온순한 사람에게도 적의 필요성은 본능적이다. 이 경우 적의 이미지는 인간이라는 대상에서 자본주의 착취나 환경 오염, 제3세계의 빈곤 문제 등을 비롯한, 어떻게 해서든 우리를 위협하고 망가뜨리는 자연적인 힘으로 단순하게 이동된다. (p35)

 

른 사람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다름을 부정하거나 무시하지 않는 것이자 우리의 고정 관념을 파괴하는 것이다. (p36)

 

이와 관련해 장 폴 사르트르는 희곡 「닫힌 방」에서 가장 비관적인 시각을 보여 주고 있다.

우리는 다른 이들의 현존을 통해서 비로소 우리 자신을 인식할 수 있으며, 여기에 근거하여 공존과 순응의 규율들이 세워진다. 그런데 우리는 다른 이들에게서 못마땅한 구석을 더 쉽게 발견한다. 그들은 우리와 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들을 적으로 만들고 지상에다 산 자들의 지옥을 건설한다. 사르트르의 작품에서 3명의 남녀는 죽은 뒤에 출구가 없는 한 방에 갇히게 된다. 바로 가장 끔찍한 지옥은 그들 서로라는 것, 즉 타인이 지옥이라는 것이다. (p40)

 

■절대와 상대

절대와 상대라는 칼럼에서는 저자가 절대적 진리에 대한 인식과 상대주의자들의 대립에 대해 서술한다. 과연 에코가 모르는 분야가 어디까지일까 의심되어 진다. 절대와 상대에 대한 철학적 개념과 문화상대주의와 윤리상대주의에 대한 사조와 ‘사실이란 없고 해석만 있다‘라는 니체 사상에 대한 비판까지, 괜히 최고의 지성이라 불리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철학 사전에 따르면, 절대라는 말은 연결이나 경계에서 자유로운, 얽매이지 않는 모든 것을 뜻한다. 즉 다른 것에 종속하지 않고 그 자체로 이유와 근거를 가지며 설명되는 무엇이다. 따라서 신이 <나는 존재하는 자다>라고 밝힌 의미에서 볼 때, 절대는 신과 매우 유사한 무엇이다. 그 외의 나머지는 모두 우연적이며 그 자체로 존재의 필연성, 이유와 근거를 가지지 못한다. (p42)

 

일부 철학 사전은 우리에게 인식 상대주의의 존재를 알려 준다. 인식 상대주의에 따르면 사물들을 인간의 능력이 미치는 조건 아래에서만 인식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의미에서는 칸트 역시 상대론자 였을 것이다. 분명히 그는 보편적 가치의 법규들을 설계하는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았으며, 더욱이 그는 도덕적인 이유에서 신을 믿었다. 반면 다른 철학 사전을 보면, 상대주의는 <지식과 행동의 영역에서 절대적인 원리를 거부하는 것>은 각기 다른 문제다. (p56)

 

<사실이란 없고 해석만 있다>라는 이론은 프리드리히 니체가 주장한 것으로, 그의 소논문 「비 도덕적 의미에서의 진리와 거짓에 관하여」에서 아주 명료하게 설명되었다. 자연은 열쇠를 버렸기 때문에 사고는 진리라고 부르는 개념상의 허구 위에서 작용한다. 우리는 나무와 색깔 눈과 꽃에 대해 말한다고 믿지만, 그것들은 본래의 실체가 아닌 은유들이다. 가지각색의 나뭇잎들을 생각해 볼 때, <우리가 서투른 손으로 엮고, 묘사하고, 측정하고, 물들이고, 둥글게 말고, 색칠하는 모든 나뭇잎의 전형이 되는> 최초의 나뭇잎은 존재하지 않는다. 새나 곤충은 우리와는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지각한다. 그리고 어떤 지각이 더 적절한지 가리는 일은 의미가 없다. <정확한 지각>의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자연은 <그 어떤 형태나 개념도 인식하지 않는다. 따라서 어떤 부류에도 속하지 않으며 다만 우리가 도달할 수 없고 정의할 수 없는 X일 뿐이다.> 그러므로 진리는 <공허한 자연이 잊어버린 환영들>이 지식으로 정착된 시적 창작물들의 <은유와 환유, 의인화의 떠다니는 무리>가된다. (p65)

 

■불꽃의 아름다움

불꽃의 아름다움에서는, 불에 대한 신학적, 철학적, 미학적, 연금술, 문학적인 해석으로 불에 대해 고찰한다. 한 가지 형태에 대해서 많은 분야에 대해서 고찰하므로 불에 대해 여러 가지를 느낄 수 있다. 불은 우리에게 천국의 환희를, 지옥의 불꽃으로 죄의 형벌을, 문학에서는 아름다움을 현대문명에서는 이로움을 상징한다. 저자는 마지막에 불은 신들의 권한으로 남겨 뒀어야 했을지도 모른다며 현 시대에 대해 비판한다. 우리 인류는 불이 주는 이로움을 누리며, 생태계를 파괴했으며, 인간의 현존뿐만 아니라 지구의 실존마저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 문명의 시발점으로 시작되는 불을 마구잡이로 사용한 대가는 언제가 치르게 될 것이다...

 

드높은 빛의 깊고 투명한 실체 안에서

빛깔은 셋, 부피는 하나인

세 개의 둘레가 내 눈에 보였는데

 

마치 무지개에서 무지개처럼

하나가 다른 하나에서 반사되는 듯 보였고

셋째 것은 그 둘이 골고루 발산하는 불꽃 같았다. (「신곡」 천국편, 제33곡, 115~120) (p80)

 

하지만 인류는 냄새와 맛, 소리에 대한 애착과 감촉이 주는 즐거움을 포기할 수 없을 것이며, 마찰을 통한 불의 생산도 단념할 수 없을 것이다. 아마도 불은 아주 가끔 번갯불의 형태로만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신들의 권한으로 남겨 뒀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p102)

 

■천국 밖의 배아들

이 주제에서는, 저자가 낙태와 줄기세포 배아를 비롯한 생명 보호 문제에 대해서, 스콜라 철학의 대부인 토마스 아퀴나스의 철학적 해석을 논한다. 태아가 인간의 존재로 인정받는데 어떠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보여준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성의 영혼을 가진 존재만이 인간으로서 인정받을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태아는 단지 감성적인 영혼만을 가진다고 한다. 태아는 인간으로 인정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토마스 아퀴나스적인 해석에 따르면, 낙태와 줄기세포 배아에 대해 허용해도 되는 것인가에 대해 저자는 고찰하고 있다. 가톨릭에서는 토마스 아퀴나스를 추앙하면서도, 태아의 문제에 대해서는 멀리한다는 것에 대해서 흥미로운 소재가 아닐 수 없다.

 

 

아퀴나스는 태아의 형성을 아주 생물학적인 관점에서 보았다. 신은 태아가 단계적으로 먼저 식물의 영혼을 흡수하고 이후 감성의 영혼을 획득했을 때 비로소 이성의 영혼을 전하기에, 육체가 이미 형성된 그 지점에서 이성을 갖춘 영혼이 생성된다. 따라서 태아는 단지 감성적인 영혼만 가진다. 철학자는 배아가 처음에는 동물이었다가 나중에 인간이 된다고 가르친다. 만약 감성적인 영혼의 본질과 이성적인 영혼의 본질이 같은 것이라면 그렇게 될 리가 없다. 감성의 영혼에 의해 동물이 되고 인간은 이성의 영혼으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감성의 영혼과 이성의 영혼의 본질은 같은 것이 아니다. (p135)

 

그렇다면 태아 형성의 어느 단계에서 온전한 인간을 만드는 이성적인 영혼이 주입될까? 전통 교리는 이 점에 관해 아주 신중한 자세를 취했으며, 대체로 임신 40일 이후라고 전해졌다. 아퀴나스의 경우, 태아의 육체가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을 때에 영혼이 깃든다고만 언급하였다. (p139)

 

■ 오, 빅토르 위고! 과잉의 시학

저자가 빅토르 위고의 작품세계를 설명해주는 칼럼이다. 빅토르 위고의 대표적인 작품<노트르담 드 파리, 93년, 웃는남자, 레미제라블>들을 가지고, 위고의 작품들을 접해보지 못한 독자들에게 흥미롭게 설명해준다. 기존의 문학에서는 추함이란 전형적인 악인의 형태였다. 하지만 위고는 추함을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킨다. 노르트담 드 파리에서 역겨운 외모의 콰지모드를 섬세한 영혼과 위대한 사랑의 감성의 인물로 바꾸어 놓는다. 웃는 남자의 그윈플레인은 귀족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정치적 보복으로 인해 평생 웃기만 하는 불행한 얼굴을 가지게 된다. 추함으로 인해 불행한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위고는 순수한 영혼과 무한한 사랑의 소유자로 바꾸어 놓는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은 웃는남자의 결말이 스포일러 된다는 것이지만, 웃는 남자를 당장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빅토르 위고의 문학세계의 빠져들게 하는 에코의 평론은, 에코가 평론에도 굉장한 실력가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책에서 들려주는 이야기, 위고의 문체상의 선택, 그리고 읽기와 해석(우리의, 그리고 다른것들의)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떠올리는가? 역사가들이 이 책에서 시대착오적인 발상과 용납할 수 없는 방종을 발견했다는 것? 그것이 무슨 상관인가! 위고는 역사를 쓰려고 했던 게 아니라, 역사의 숨 가쁜 호흡과 악취가 진동하는 포효를 우리가 느끼길 바랐다. 그가 계급 투쟁에 대한 이해보다 개개인의 도덕적인 투쟁에 더 관심을 뒀다고 생각했던 마르크스처럼 위고는 우리를 속이려고 했을까? 오히려 그 반대고, 그도 그렇게 말했다. 위고는 우리에게 투쟁의 위력을 전하기 위해 도끼날을 가지고 그의 심리적인 초상화들을 조각하였다. 그가 계급 투쟁을 목표로 하지 않았다면, 헝가리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루카치가 인식한 것처럼, <미래의 길을 여는 혁명적 민주주의>의 이상들을 분명히 추구했을 것이다. (p180)

 

<서평단으로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리뷰임>

 

http://blog.naver.com/young92022/220146947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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