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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맥 매카시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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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은 멸망해 버렸다. 그 이유는 나오지 않는다. 그저 독자들이 추측해 내야할 뿐이다. 소년과 아버지만이 서로 의지해가며 살아간다. 아버지는 소년을 지켜야 한다. 둘이 가지고 있는 것은, 어느 정도의 생필품이 담긴 카트와 배낭이다.

 

밤이 되면, 그들에게 시련이 찾아온다. 점점 추워지는 날씨에 서로를 껴안고 체온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밖에 없다. 아버지와 소년은 끊임없이 걸어간다. 걷고 또 걷는다. 가야할 길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가야할 곳은 남쪽이다. 점점 더 추워지는 날씨에 번식지와 월동지를 옮겨 다니는 철새마냥 살기위해 걸어가야만 한다.

 

폐허가 되어버린 세상에서, 더 이상 따뜻한 정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항상 자기 자신의 목숨을 지켜야한다. 세상이 세렝게티 초원처럼 야생으로 변한 것이다. 강자가 약자를 짓밟고 원하는 것을 쟁취하는 약육강식의 사회가 된 것이다. 약탈자들에서 자신의 목숨과 아들을 지켜야 하는 아버지의 의지와 반대로 찌르면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비정한 세상은 대조를 이룬다. 그리고 살기위해, 몸부림쳐야 한다. 지나가는 길에 뭐라도 먹을 것을 찾아야 한다. 아들을 지키기 위해, 싸워야 한다. 아버지 자신의 목숨은 중요하지 않다.

 

작가는 인간성이 상실되어가는 사회를 경고하는 듯하다. 아들의 순수한 눈을 통해서 보여주는데, 남을 죽이고 빼앗아 살아가는 것을 원치 않으며, 스스로 살아가는 법을 배우길 바라는 것 같다.

 

신마저 죽어버린 세상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죽어가는 아버지는 아들이 자신이 하지 못한 임무를 수행하길 바란다. 바로 불을 옮기는 것이다. 여기서 불이란 희망을 의미하는 것 같다. 점점 꺼져가는 희망의 불씨를 상징하는 것이 불인 것이다. 희망의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아버지는 죽어가면서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식이 홀로 남아, 불을 운반하기 위해 투쟁할 것을 염려하며, 아들을 격려해 준다.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에게 불을 주었다. 프로메테우스는 불을 준 죄로 인해, 낮에는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히고, 밤에는 쪼아 먹힌 간이 다시 생성되는 영원한 고통을 받는다. 그렇게 인간에게 준 불은 현대기술문명의 상징이 되었고, 우리는 문명의 이기를 누리며 살아가고 있다. 소설에서는 멸망해버린 사회를 그린다. 그러한 사회에서 다시 꺼지지 않는 불을 옮기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은, 우리에게 이 비정한 사회에 아직 희망이 남아있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 아닐까?

 

> 인상깊은 구절

p15

뭣 좀 물어봐도 돼요? 소년이 물었다.

그럼. 되고말고.

우린 죽나요?

언젠가는 죽지. 지금은 아니지만.

계속 남쪽으로 가나요?

.

따뜻한 곳으로요?
.

알았어요.

뭘 알았어?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알았다고요.

자라.

알았어요.

불 끌게. 괜찮니?

네 괜찮아요.

한참 뒤 어둠 속에서. 뭣 좀 물어봐도 돼요?

그럼. 되고말고.

제가 죽으면 어떡하실 거예요?

네가 죽으면 나도 죽고 싶어.

나하고 함께 있고 싶어서요?

. 너하고 함께 있고 싶어서.

알았어요.

 

p59

아빠? 소년이 소곤거렸다. 저사람 왜 저래요?

번개에 맞았어.

우리가 도와줄 수 없나요?
아빠?

못해 못 도와줘.

소년은 계속 남자의 외투를 잡아끌었다. 아빠?

그만 해라.

우리가 도와줄 수 없나요, 아빠?

못해. 우린 못 도와줘. 우리가 할 수 있는건 없어.

 

p146

왜 그래? 남자가 물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먹을 걸 찾을 거야. 언제나 찾았잖아.

소년은 대답하지 않았다. 남자가 소년을 지켜보았다.

그것 때문이 아니구나, 그렇지?

됐어요.

말해봐.

소년은 눈길을 돌려 길 아래쪽을 보았다.

말해봐. 괜찮아.

소년은 고개를 저었다.

날 봐. 남자가 말했다.

소년은 고개를 돌려 남자를 보았다. 운 것 같았다.

말해보라니까.

우린 아무도 안 잡아먹을 거죠. 그죠?

그래. 당연히 안 잡아먹지.

우리가 굶더라도요.

지금 굶고 있잖아.

안 굶는다고 했잖아요.

안 죽는다고 했지. 안 굶는다고는 하지 않았어.

어쨌든 안 잡아먹을 거죠.

무슨 일이 있어도요.

그래.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는 좋은 사람들이니까요.

그래.

그리고 우리는 불을 운반하니까요.

우리는 불을 운반하니까. 맞아.

알았어요.

 

p193

남자가 노인을 지켜보았다. 자기가 지상에 마지막 남은 사람인 줄 어떻게 알죠?

그걸 알 수는 없을 것 같은데. 그냥 그렇게 되는 거지.

누구라도 그걸 알 순 없을 겁니다.

하지만 달라질 게 뭐요. 자신이 죽으면 모두가 죽는 것과 똑같은데.

신은 알 것 같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신은 없소.

없다고요?

신은 없고 우리는 신의 예언자들이오.

 

p313 ~ 315

남자가 소년의 손을 잡으며 씨근 거렸다. 넌 계속 가야 돼. 나는 같이 못 가. 하지만, 넌 계속 가야돼. 길을 따라가다보면 뭐가 나올지 몰라. 그렇지만 우리는 늘 운이 좋았어. 너도 운이 좋을 거야. 가보면 알아. 그냥 가. 괜찮을 거야.

못 가요.

괜찮다니까. 오래전부터 이렇게 될 거였어. 지금 이렇게 된 것뿐이야. 남쪽으로 계속 가.

다 우리가 했던 대로 하면 돼.

괜찮아 질거예요. 아빠 그래야 돼요.

아냐 그렇지 않아. 항상 총을 갖고 다녀. 좋은 사람들을 찾아야 하지만 모험은 하지 마.

절대 하면 안 돼. 듣고 있니?

함께 있고 싶어요.

안 돼.

제발.

안 돼. 너는 불을 운반해야 돼.

어떻게 하는 건지 몰라요.

모르긴 왜 몰라.

그럼 진짜지.

어디 있죠? 어디 있는지도 몰라요.

왜 몰라. 네 안에 있어. 늘 거기 있었어. 내 눈에는 보이는데.

그냥 함께 데려가주세요. 제발.

못해.

제발. 아빠.

못한다니까. 난 죽은 아들을 품에 안을 수가 없어. 그럴 수 있을거라고 생가했는데 그럴 수가 없어.

절대 저를 떠나지 않는다고 하셨잖아요.

알아 미안하다. 내 온 마음은 너한테 있어. 늘 그랬어. 너는 가장 좋은 사람이야. 늘 그랬지.

내가 여기 없어도 나한테 얘기 할 수는 있어. 너는 나한테 얘기할 수 있고 나도 너하고 이야기를 할 거야. 두고 봐.

제가 들을 수 있나요?

그래 들을 수 있지. 네가 상상하는 말처럼 만들어야 돼. 그럼 내 말을 듣게 될거야. 연습을 해야 돼. 포기하지마. 알았지?

알았어요.

그래.

정말 무서워요. 아빠. 알아. 하지만 괜찮을거야. 너한테는 운이 따를 거야. 내가 잘 알아. 말을 그만 해야곘구나. 또 기침이 나오려고 해.

괜찮아요, 아빠 말하실 필요 없어요.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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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히스토리 - 한 권으로 읽는 모든 것의 역사
데이비드 크리스천 & 밥 베인 지음, 조지형 옮김 / 해나무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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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히스토리를 읽게 되었다. 이 책에서는 모든 것에 대한 역사를 한 권의 책으로 조망한다.

우주가 어떻게 탄생했으며, 지구의 탄생, 그리고 인류의 탄생까지, 거대한 흐름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동시에 이 광활한 우주에서 나란 존재가 얼마나 작은 것인지, 137억년의 빅 히스토리에서 인류의 역사는 얼마나 조금 차지하는지를..

 

책에서는 8가지 임계국면을 설정하여, 빅 히스토리의 주요 흐름을 알려준다.

1. 빅뱅(137억 년 전)

2. 별의출현(135억 년 전)

3. 새로운 원소의 출현(135억 년 전)

4. 태양계와 지구(45억 년 전)

5. 지구 상의 생명(38억 년 전)

6. 집단학습(20만 년 전)

7. 농경(11000년 전)

8. 근대 혁명(250년 전)

 

임계국면이란?

어떤 현상이 다르게 나타나기 시작하는 지점 혹은 경계. 빅 히스토리에서는 새로운 현상이나 물질이 나타나는 지점 혹은 시기를 의미한다.

 

이 책의 서술은 독특하다. 데이비드 크리스천, 밥 베인 교수가 직접 강의를 하듯이 서술되어 있다. 독자에게 직접 물음을 던지거나, 아니면 그에 따른 답을 해주거나.

 

우리는 주장에 대한 신뢰도를 어떻게 파악할까?

 

빅 히스토리는 직관, 권위, 논리, 증거라고 말한다.

 

직관 : 본능적인 느낌, 우리가 그냥 그녀가 우리에게 옳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느꼈을 때의 느낌. 감정에 근거한 빠른 판단과 관련된 느낌

 

권위 : 우리가 신뢰할 만한 출처에서 정보를 얻게 되었을 때

 

논리 : 어떤 것에 대해 사고함으로써 주장을 테스트해보고 그것이 납득이 되는지를 파악하는 것

 

증거 : 이 세상에 대한 가능한 정보를 수집할 때, 어떤 것의 진위를 파악할 수 있는, ‘분명한것으로부터 유래하는 것. 빅 히스토리 카페 이야기에서, 우리는 각자 다른 출처에 근거하여 증거를 파악했고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신뢰했다.

 

이러한 방법을 이용하여, 빅 히스토리를 읽어보도록 하자.

 

이 책은 우주에 역사에 비하면, 우리의 역사가 얼마나 하찮은지를 깨닫게 해준다. 그리고 우리에게 계속 물음을 던진다. 그에 대한 답은 나와 있지는 않고 스스로 찾도록 한다.

우리나라의 교육은 이미 정해진 답을 찾는 것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입시까지, 객관식 문항에서 정해진 답을 골라내는 것이다.

 

하지만, 빅 히스토리는 그렇지가 않다. 역사는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새로운 증거가 나타나거나 혁신이 일어나면 우리는 기존의 역사를 깨고 새로운 역사를 인정해야만 한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생각했던 천동설에서, 지구가 태양계를 공전하는 일계 행성에 불과하다는 지동설을 믿게 되기까지, 우리는 얼마나 많은 희생이 있었는지를 안다.

 

이렇게 정해진 답만을 고르는 풍토 속에서, 새로운 것을 인정하지 않는 병폐속에서, 빅 히스토리와 같은 학문이 정착된다면, 기존의 교육의 틀도 바뀌지 않을까?

 


 

<책에 있는 사진과 그림들은 빅 히스토리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돕는다.>

 


 

<한 챕터가 끊날 때마다, 우리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물론 답은 없지만,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연습을 시킨다> 

 

http://blog.naver.com/young92022/220124467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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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 정유정 장편소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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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 의해 벌여지는 28일간의 비극.>

 

소설은 재미가 있어야한다. 하지만 우리에게 어떠한 메시지를 남겨야 한다. 재미와 메시지를 동시에 남길 수 있는 소설은 거의 없다. 하지만, 소설28에서 그러한 면모를 보았다. 소설 285명의 인간과 1마리의 개의 시선으로 전개된다. 드림랜드라는 유기견 보호소를 운영하는 재형, 세상을 삐딱하게 살며 일탈행위를 수 없이 저지르는 동해, 근거 없는 기사로 한 사람의 인생을 흔드는 윤주, 개들에게 아내를 잃고 개를 학살하는 기준, 전염병이 아닌 인간들에게 몸을 빼앗기는 수진, 그리고 한 마리 개 링고이다.

 

소설에서는 질병의 공포보다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 서술한다. ‘빨간 눈 괴질로 불리는 인수공통전염병으로 죽어가는 모습보다는 인간에 의해 죽어가는 모습을 강조한다. 이렇게 인간에 의해 인간이 죽어가는 모습을 읽어가면서, 인간적인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도대체 인간적인이라는 뜻을 어떻게 해석해야 되는가라는 문제에 대해 인간의 본성에 따라 해석하면 어떻게 될까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는 성선설인간의 본성이 악하다는 성악설인간의 본성이 교육이나 환경에 의해 후천적으로 결정된다는 백지설로 접근하게 된다면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우리는 인간적이다라는 뜻을 일반적으로 휴머니즘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적인이라는 뜻에 대해 살아가는데 있어서 함께 희노애락을 느끼며, 정을 나누는 따뜻함을 떠올린다. 하지만, 소설에서는 인간의 본성이 어떻게 무너지는가를 보여준다. 개만도 못한, 아니 개보다 못한 인간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소설에서 한 마리 개인 링고가 죽은 줄 알았던, 스타라는 개를 어떻게든 살려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장면이 나온다. 하지만, 대조적으로 인간들은 죽어가는 화양시를 살리려고 하지 않는다.

 

그리고 인간들은 자신들의 목숨에 대해 걱정을 하고, 화양시에 공수부대를 보내어 통제한다. 나라를 지키는 군인들이 총을 들어, 총구를 우리에게 향하게 한다. 질병에 대한 공포는 인간들을 비인간적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인간의 본성이 악하다면, 이러한 상황에서 비인간적이라는 말은 옳지 않다. 인간들이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총을 드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작가가 인간이 악하다고 여기고, 소설을 구성했으면, 인간적인 면모를 참 잘 보여준 것이다.

 

마지막으로 백지설에 대해서 생각했다. 항상 삐뚤어지게만 살았던, 동해는 다르게 살 수 있지 않았을까? 동해는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한 못난 아들로만 살아왔다. 형은 아들동생은 내딸개를 내 새끼라 부르지만, 동해만은 항상 박동해였다. 아버지가 가혹행위체벌이 아닌 애정과 사랑으로 잘못을 바로잡아 주었다면, 동해는 이렇게 살지 않았을 것이다.

 

이 소설에서 화양에서 벌어지는 비극은 유기견 보호소인 드림랜드(꿈의 나라)와 대조된다. 인수공통전염병 창궐이라는 국가비상상태에서 벌어지는 디스토피아는, 꿈의 나라에 냉소를 퍼붓는다. 최근 에볼라 바이러스가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고 있다. 최근 모 대학에서 개최한 국제대회에 에볼라 바이러스가 발병한나라의 학생이 참가한다고 해서 비난여론이 들끓은 적이 있다. 만약 자신이, 에볼라 바이러스에 걸린 나라의 학생이고, 입국금지를 당했으면 어떤 기분일까? 그리고 소설과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면, 디스토피아가 아닌 꿈의 나라로 나아갈 수 있을까?

 

> 인상깊은 구절

p377 ~ p378

예전부터 아빠한테 궁금한 게 있는데.”

아버지는 미동도 없이 그의 눈을 노려봤다. 잿빛 머리칼은 시너로 젖어 있고 잿빛 수염에는

피 응괴가 면도 크림처럼 뒤덮여 있었다.

왜 그렇게 나를 미워했어.”

이상하게 다리가 덜덜 떨려왔다. 목소리까지 떨리는 것 같았다. 동해는 종아리에 힘을 주고 방문 쪽으로 한 발짝 더 물러섰다. 문턱에 운동화 뒤꿈치가 닿았다.

동범이 형이나 동아는 사랑했으면서, 나는 자식 아닌가?”

아버지는 말이 없었다. 어금니를 꽉 물었을 뿐, 표정 변화도 없었다. 그렇겠지. 무슨 할말이 있겠어. 동해는 문턱 너머로 물러섰다. 아버지는 문턱 앞으로 다가왔다.

병원 환자처럼만 대해줬어도 좋았잖아. 적어도 환자들을 지하실에 가두지는 않을 테니까.”

동해는 화염병 주둥이에 라이터를 댄 채 계단 문 쪽으로 뒷걸음질했다. 아버지는 두 발짝 거리를 유지하며 전진했다.

아홉 살짜리 어린애가 지하실에 갇혀 어떤 심정으로 밤을 새웠을지, 한 번이라도 생각해봤어? 얼마나 무서울지 짐작이나 해봤냐고, 거기 갇힐 때마다, 엄마나 형이나 동아가 거실에서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웃고 떠들고 뭘 처먹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그 컴컴한 지하실 구석에 몸을 웅크리고 내가 무슨 상상을 했을 것 같아? 이 집이 활활 타는 꿈을 꿨어. 다 태워 죽여버리는 꿈을 꿨다고ㆍㆍㆍㆍㆍ.”

 

p402

거리의 총성이 사라졌다. 총성과 관련된 것들도 완전히 사라졌거나 사라지는 중이다. 완전히 사라진 것은 개다. 화양 곳곳을 돌아다닌 지난 며칠 동안, 단 한 마리도 보지 못했다. 산기슭이나 들판을 나도는 개조차도 없었다. 총을 든 자들은 사라지는 중이다. 시청을 제외한 주요 관공서 앞 초소들이 대부분 비었다. 빈 검문소도 부쩍 늘었다. 어젠 통금 단속반도 나타나지 않았다. 총소리는 도시 외곽이나 산골짜기에서만 요란하다. 그 많던 군인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봉쇄선 밖으로 물러갔을까? 아닐 것이다. 우선 이동이라 할 만한 대규모 움직임이 없었다. 취재한 바로, 사라진 군인들이 몰려 있는 곳은 화양의료원이다. 그들 역시 죽거나, 죽어가는 중이고, 외부에서 병력이 수혈되는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이대로 가면 화양이 무정부 도시가 되는 데는 일주일이 채 걸리지 않을 것이다.

반면 봉쇄선 병력은 점점 늘어나고 강화되는 분위기다. 다른 도시로 연결되는 순환도로, 국도, 터널 등은 말할 것도 없고, 산골짜기까지 중화기로 무장한 군인들이 이중 삼중 방어선을 치고 있다고 했다. 밤이 되면 정찰 헬기가 서치라이트를 켜고 도시 외곽을 쉴 새 없이 맴돈다...

 

 http://blog.naver.com/young92022/2201221797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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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자들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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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자들을 읽었다. 인물 각각이 다 개성이 있다. 주인공인 래생, 개들의 도서관을 운영하는 너구리 영감, 청부업자의 새로운 강자인 한자, , 미토, 미사, 털보, 이발사는 이 소설에 등장하는 등장인물이다.

 

죽음을 설계하는 설계자들과 죽음을 실행시키는 청부업자. 죽음의 설계에 있어서 한 치의 오차도 용납하지 않는다. 만일 죽음을 거스르는 자는 자신의 죽음을 볼 뿐이다.

 

여자를 살려줘서 죽게 되는 추, 자신의 동료였던, 추를 죽이게 되는 래생, 남이 죽어야 내가 사는 구조는 비정함만을 느끼게 한다.

 

죽음을 설계하는 과정을, 좀 더 세밀하게 묘사했으면 좋았을 것 같지만, 소설 속에서는 그러한 면이 조금 부족하다. 마지막에 결말이 참 아쉽다. 이제 막 시작할 것 같은데, 급하게 결말을 지은 한 편의 영화를 본 것 같다.

 

한편의 느와르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서사와 구조 그리고 뛰어난 가독성은 큰 재미를 선사한다. 영화 아저씨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하지만, 결말이 참 영화 달콤한 인생같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http://blog.naver.com/young92022/22012161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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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노래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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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노래 <영웅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의 고뇌>

 

최근에 이순신 장군의 리더쉽이 재조명 받고 있다. 영화 명량에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는 지도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필사즉생, 필생즉사라는 말이 있다. 살자고 하면 죽을 것이고 죽자고 하면 살 것이라는 이러한 용기로 국란을 이겨낸 모습에 감명을 받아 칼의 노래를 다시 읽게 되었다.

 

소설에서 이순신 장군의 투옥된 장면부터 시작한다. 선조의 명을 어겼기 때문이다. 투옥된 이후에 조선 수군 연합 함대가 칠천량 해전에서 전멸되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이후에 이순신 장군은 백의종군한다.

 

이순신 장군은 백의종군 길에 어머니의 부고를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순신 장군은 어머니의 초상을 치루지 못한다. 그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직전에, 관에 직접 누우셨다는 것과 시신이 가랑잎처럼 가벼웠다는 사실을 듣자, 홀로 술을 마시며 슬픔을 삼킨다.

 

두 달전에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보았을 때,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얼른 떠나라는 말씀보다는 차라리, 자신에게 어리광을 부리셨다면 그의 마음이 이토록 불편하지 않을 것이다.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슬픔과 나라를 지켜내야 한다는 사명감에 대한 부담감은 그를 짓누른다.

 

그 이후에 이순신 장군은 고작 12척의 배로 명량으로 출전을 하게 된다. 왜적의 330척의 배를 이겨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숫자이다. 명량에서 대승을 거둔 그는 죽음을 본다. 자신의 여종이었던 여진의 시체를 보고 개별적인 죽음들 앞에서 수많은 죽음을 본다. 그 수많은 죽음들을 위로할 수 없음을 안다.

 

정유년 명량해전이 끝나고 난후 아들 면은 아산 고향에서 죽는다. 이순신 장군은 나라를 지키기에 앞서 자신의 아들을 지켜낼 수 없었다는 사실에 홀로 눈물을 훔친다. 아들의 어릴 적 옹알이를 하던 모습을 추억한다. 죽기 전에 홀로 싸우던 면의 분노를 떠올린다. 그리고 칼을 받고 혼자서 죽어갈 때의 면의 무서움을 생각했고, 쓰러져 통곡하던 늙은 아내를 떠올렸다.

 

정유년에 잠시 전쟁이 멈추지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멈추지 않는다. 지속적으로 아들 면의 모습과, 여종 여진의 모습이 떠오른다. 이제 출전의 날이 다가온다. 백성들은 수영을 또 버리시는 것이냐며 애원을 하고 다시 돌아와 달라고 한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은 자신의 무사히 귀환할 것을 약속하지 못한다. 노량에서 자신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것을 알았던 것일까? 그는 서서히 다가오는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인 것 같다.

 

그는 노량해전에서 끝내 죽지만, 끝까지 전쟁을 포기하지 않는다. 마지막까지 부하들의 사기가 떨어지지 않도록, 자신의 죽음도 개별적인 죽음에 불과하다고 여기며, 나라를 지키고자 한다. 소설 속에서 이순신장군에 대해 영웅으로서의 면모보다는 한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준다. 전쟁을 이기기 위한 외적인 과정보다, 개인의 내적인 고뇌에 대해서 서술한다. 개인이 느끼는 죽음이 얼마나 두려운 것인지, 그러한 두려움을 이겨내는 용기를 얻게 되는데 얼마나 많은 각오가 필요한 것 인지를... 

 

인상적인 구절

p70

명량에서는 순류와 역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었고, 함대가 그 흐름에 올라탄다 하더라도

마침내 올라탄 것이 아니었다. 때가 이르러, 순류의 함대는 역류 속에 거꾸로 처박힌 것이었다. 명량에서는 순류 속에 역류가 있었고, 그 반대도 있었다. 적에게도, 그리고 나에게도 여기는 사지였다. 수만 년을 거꾸로 뒤채는 그 물살을 내려다보면서, 우수영 언덕에서 나는 생사와 존망의 흐름을 거꾸로 뒤집을 만한 한줄기 역류가 내 몸속의 먼 곳에서 다가오고 있음을 느꼈다.

몸의 느낌이었을까, 아니면 바람이었을까. 희미했지만, 그것은 확실했다. 내 몸이 그 희미한 역류를 증거하고 있었다. 그것이 삶에 대한 증거인지 죽음에 대한 증거인지는 확실치 않았다. 여기는 사지였다. 일출 무렵의 아침 바다에서는 늘 숨을 곳이 없었다. 사지에서, 죽음은 명료했고, 그림자가 없었다. 그리고 그 역류 속에서 삶 또한 명료했다. 사지에서, 삶과 죽음은 뒤엉켜 부딪혔다. 그것은 순류도 아니었고 역류도 아니었다. 거기서 내가 죽음을 각오했던 것인지, 삶을 각오했던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나는 그 모호함을 중언부언하지 않겠다.

 

p81

송만호, 어떤 진이 좋겠는가?

송여종은 머뭇거렸다.

이제 배가 열두 척이온즉....

안위가 말했다.

열두 척으로 진을 짠다면 대체 어떤...?

내가 말했다.

아무런 방책이 없다. 일자진뿐이다. 열두 척으로는 다른 진법이없다.

수령들이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한참 후에 김응함이 입을 열었다.

일자진이라 하심은....?

횡렬진이다. 모르는가?

열두 척을 다만 일렬횡대로 적 앞에 펼치신다는 말씀이시온지?

그렇다. 밝는 날 명량에서 일자진으로 적을 맞겠다.

수령들이 다시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나는 말했다.

적의 선두를 부수면서. 물살이 바뀌기를 기다려라. 지휘체계가 무너지면 적은 삼백 척이 아니라. 다만 삼백 개의 한 척일 뿐이다. 이제 돌아가 쉬어라. 곧 날이 밝는다.

 

p106

나는 겨우 말했다. 나는 개별적인 죽음을 이해할 수 없었다.

온 바다를 송장이 뒤덮어도, 그 많은 죽음들이 개별적인 죽음을 설명하거나 위로할 수는 없을 것이었다. 나는 여자가 죽으면 어디가 먼저 썩을 것인지를 생각했다. 나는 그 썩음에 손댈 수 없을 것 같았다. 죽은 자는 나의편도 아니고 적도 아니었다. 모든 죽은 자는 모든 산 자의 적인 듯도 싶었다. 내 몸은 여진의 죽은 몸 앞에서 작게 움츠러들었다.

 

p124

나는 칼로써 지켜내야 하고 칼로써 막아내야 할 세상의 의미를 돌이켜볼 수 없었고, 그 하찮음들은 끝끝내 베어지지 않는다는 운명을 알지 못했다.

 

p159

(아버님, 저는 죽었습니다.)

면이 말할 때, 죽은 머리는 옆으로 꺾여져 있었다. 눈썹과 이마가 나를 닮아 있었다. 저것이 나로구나, 라고 나는 꿈속에서 생각했다. 저것이 나로구나, 라고 나는 꿈속에서 생각했다. 나는 면을 꾸짖었다.

(죽은 녀석이 너뿐이더냐? 내가 죽인 적이 헤아릴 수 없고 네가 죽인 적 또한 적지 않거늘, 네 어찌 내꿈을 어지럽히느냐.)

(아버님, 저의 칼을 찾아주십시오.)

(칼을 어찌했느냐?)

(칼을 놓쳤습니다. 눈이 멀어서 찾울 수가 없습니다.)

(물러가라. 무인이 칼을 놓쳤으면 죽어 마땅하지 않겠느냐.)

면은 다가와 내 다리에 매달려 울었다. 면은 잘려진 어깨로 울었고, 거기서 눈물이 흘렀다.

(아버님. 죽을 때 무서웠습니다. 칼을 찾아주십시오.)

(가거라, 죽었으면 가거라. 목숨은 물리지 못한다. 칼 또한 그러하다. 다시는 내 꿈에 얼씬거리지 말아라.)

면은 울면서 돌아섰다. 무릎걸음으로 면은 멀어져갔다. 면이 엉덩이를 밀어서 멀어져가는 쪽으로 노을이 붉었다. 노을 진 갈대숲 속으로 면이 기어들어갈 때 나는 면을 불렀다.

(면아, 면아.)

 

p209

나는 죽음을 죽음으로써 각오할 수는 없었다. 나는 각오되지 않는 죽음이 두려웠다. 내 생물적 목숨이 끝장이 두려웠다기보다는 죽어서 더 이상 이 무내용한 고통의 세상에 손댈 수 없게되는 운명이 두려웠다. 죽음을 돌이킬 수 없으므로, 그것은 결국 같은 말일 것이었다. 나는 고쳐쓴다. 나는 내 생물적 목숨의 끝장이 결국 두려웠다. 이러한 세상에서 죽어 없어져서, 캄캄한 바다 밑 뻘밭에 묻혀 있을 내 백골의 허망을 나는 감당할 수 없었다.

나는 견딜 수 없는 세상에서, 견딜 수 없을 만큼 오래오래 살고 싶었다. 바다에서, 삶은 늘 죽음을 거스르고 죽음을 가로지르는 방식으로만 가능했다. 내어줄 것은 목숨뿐이었으므로 나는 목숨을 내어줄 수는 없었다. 죽음을 가로지를 때, 나는 죽어지기 전까지는 죽음을 생각할 수 없었고 나는 늘 살아 있었다. 삶과 분리된 죽음은 죽음 그 자체만으로 각오되어 있지 않았다.

 

p340

갑자기 왼쪽 가슴이 무거웠다. 나는 장대 바닥에 쓰러졌다. 군관 송희립이 방패로 내 앞을 가렸다. 송희립은 나를 선실안으로 옮겼다. 고통은 오래전부터 내 몸속에서 살아왔던 것처럼 전신에 퍼져나갔다. 나는 졸음처럼 서서히, 그러나 확실히 다가오는 죽음을 느꼈다.

- 지금 싸움이 한창이다. 너는 내 죽었다는 말을 내지 말라.

내 갑옷을 벗기면서 송희립은 울었다.

- 나으리, 총알은 깊지 않사옵니다.

나는 안다. 총알은 깊다. 총알은 임진년의 총알보다 훨씬 더 깊이, 제자리를 찾아서 박혀 있었다. 오랜만에 갑옷을 벗은 몸에 서늘한 한기가 느껴졌다. 서늘함은 눈물겨웠다. 팔다리가 내 마음에서 멀어졌다. 몸은 희미했고 몸은 멀었고, 몸은 통제되지 않았다.

- 북을······· 계속······울려라. 관음포······ 멀었느냐?

 

·····(중략)·····

 

내 시체를 이 쓰레기의 바다에 던지라고 말하고 싶었다. 졸음이 입을 막아 입은 열리지 않았다. 나는 내 자연사에 안도했다. 바람결에 화약 연기 냄새가 끼쳐왔다. 이길 수 없는 졸음 속에서, 어린 면의 젖냄새와 내 젊은 날 함경도 백두산 밑의 새벽안개 냄새와 죽은 여진의 몸냄새가 떠올랐다. 멀리서 임금의 해소기침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냄새들은 화약 연기에 비벼지면서 멀어져갔다. 함대가 관음포 내항으로 들어선 모양이었다. 관음포는 보살의 포구인가. 배는 격렬하게 흔들렸고, 마지막 고비를 넘기는 싸움이 시작되고 있었다. 선창 너머로 싸움은 문득 고요해 보였다.

세상의 끝이······ 이처럼········ 가볍고····· ····· 고요할 수 있다는 것이·····, 칼로 베어지지 않는 적들을····· 이 세상에 남겨놓고······ 내가 먼저······, 관음포의 노을이······· 적들 쪽으로·····

 

 http://blog.naver.com/young92022/2201210248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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