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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의 첫사랑
배수아 지음 / 생각의나무 / 1999년 12월
평점 :
절판


배수아의 소설 <그 사람의 첫사랑>을 산 것은 세기말 십이월 이십팔일이었다.

그 때 나는 세 번 놀랐는데 그 첫 번째가 배수아 소설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이 책의 볼륨이 너무 두껍다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다 읽고 나니 현장비평가가 뽑은 올해의 좋은 소설에 선정되어야 마땅할 정도로 문학적으로도 너무 올바르기 짝이 없다는 것이었으며 세 번째는 그런 문학적 성숙에도 불구하고 나는 부주의하고 나쁜 개종하기 이전의 배수아가 더 그립다는 것이었다. 물론 세 번째는 전적으로 내 개인적인 취향의 문제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배수아 소설은 당연히 <심야통신>이다. 그렇다고 그 소설이 이 소설보다 문학적으로 더 탁월하다는 말은 아니다. 그 소설을 읽은 후 내가 아는 배수아 마니아 하나는 이건 책도 아니야, 라고 말하며 집어던져 버리기까지 했으니까. 어쩌면 취향에 따라서는 극단적으로 혐오할만한 요소가 그 속에 충분히 들어있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므로 작품성만을 따져본다면 <그 사람의 첫사랑>이 훨 모범적이다. 이 소설은 그 이전까지 배수아라는 작가를 낯간지러워하는 건전한 부르주아의 시민들까지도 단숨에 매혹시켜 버릴 정도로 그들이 그토록 바라마지 않았던 문학적 진정성이라는 말이 뚝뚝 묻어나고 있었으니까. 그렇지만 더이상의 나쁜 피는 없었다.

확실히 배수아는 변했고 시간이 흘렀으므로 당연히 변해야 했다. 또 다시 <심야통신>과 같은 막 나가는 컬트소설을 쓸 수는 없으니까. 그래서 이번 소설이 저번 소설만 못하면 어떡하나 책을 사기 전까지 불안해했는데 아, 다행이었다. 여전히 너무 좋았다. 믿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정말 이 작가가 <푸른 사과가 있는 국도>를 쓴 그 작가가 맞나 의심했을 정도였다. 문장공부를 하는 사람에게는 독이 든 사과라고까지 일컬어지는 그 책을 생각해 볼 때 말이다.

그렇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그 변화가 걱정스러웠다. 배수아라는 작가를 각인시켰던 그 눈부신 이미테이션 큐빅조각들은 사라져 버리고 결국 평범하기 짝이 없는 물방울 다이아몬드만 남아있게 될 것 같은 그런 불안함. '핑크의 터널로 그만 사라져 버렸나' 그 이후 나온 <붉은 손 클럽>이나 <내 안에 남자가 숨어있다> <나는 이제 니가 지겨워>는 솔직히 말하자면 정말 실망스러웠다. 유미리의 <남자>를 읽고 나니까 <내 안에 남자가 숨어있다>는 말 그대로 저리가라였다. 그 책들이 순수문예 잡지가 아닌 다른 잡지나 사이트에 연재된 책이라는 일정한 한계를 미리 가지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현재 모 사이트에서 연재되고 있는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을 생각해 볼 때 나는 점점 더 배수아를 지지하기가 어려워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오래전 문학적인 모욕을 감수하면서까지 <푸른 사과가 있는 국도>를 옹호했던 나의 이력으로 볼 때 그 것은 뜻밖의 일이지만 결국 미래는 알 수 없는 법. 그리하여 생은 그 의미를 가지니까.

그렇지만 나는 아직 배수아 마니아다. 돈을 지불할 때는 새로운 작가를 찾아 나서는 모험보다 알고있는 작가를 다시 선택하는 안전빵이 언제나 우선이었으므로. 그래서 <나는 이제 니가 지겨워> 팬 사인회에도 가서 줄을 선 후 얌전히 사인을 받아왔다. 그래. 배수아는 살아남을 것이다. 배수아는 삶이 주는 모욕 또한 견뎠다. 그런데 무엇을 위하여? 아무리 생각해도 언제나 그 무엇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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