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 - 나와 나 사이에 숨겨진 열두 가지 이야기
요시다 슈이치 외 지음, 유은경 옮김 / 행복한책읽기 / 2006년 3월
평점 :
품절


살아가면서, 우리는 그늘을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때로는 그 그늘에서 얼굴보다 더 다양한 삶의 표정을 읽어낼 수 있기도 하지요. 그늘은 오히려 우리 내면에 대한 가장 솔직한 해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밀'에 실린 열두 가지 이야기들은 우리의 삶의 틈새에 숨어있던, 하지만 그대로 숨겨져있기엔 너무 아름다운 색채를 지닌 생의 한 단면들입니다. 각기 다른  두 명의 시점에서 시작하는 이야기는 가지를 뻗어나가며 서로 엇갈리고 이어지면서 서로의 시선에서 벗어나있던 그늘을 조금씩 보여주지요. 오랫동안 잠자고 있던 앨범 사이로 비집고 나온 비밀은 한 여인의 생에 가장 깊숙이 자리 잡힌 예술혼의 근원을 알려주며(전화 아티스트의 연인), 너무나도 전하고 싶은 말을 직접 전해줄 수 없는 남자의 비밀은 오히려 그 진심의 절절함을 전하며 감동을 선사합니다.(달링은 연기파) 알리고 싶지 않은 비밀을 알아챈 그녀는 그의 진심을 이해하며 비밀을 덮어주고(진도 4의 비밀), 마음을 흔드는 것은 꾸며낸 쾌활함보다 솔직하고 진심어린 눈빛임을 알려주지요. 그렇게 서로의 진심어린 모습들을 발견하면서 숨길 수밖에 없던 비밀은 따뜻한 미소가 되어 돌아옵니다. 어떻게 보면 감춰야 할 것처럼 느껴지는 우리의 그늘이, 사실은 서로를 알아가기 위한 과정이었던 것이죠.

우리는 삶의 틈새를 메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하고 비밀을 간직한다고 생각하지만, 이 책은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비밀보다 진심이 삶의 틈새를 아름답게 채워준다는 사실을 차근차근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에 얼마나 솔직한가요, 웃음 띤 얼굴 뒤에 숨겨진 초라한 뒷모습을 감추기 위해 얼마나 안간힘을 쓰는가요. 하지만 그 숨기고 싶은 뒷모습도 우리의 일부이며, 진정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기 위해서는 웃음 띤 얼굴보다 그 뒷모습을 보듬어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서로에 대한 몰이해로 끝맺는 이야기들을 읽으며 긴 여운을 느끼면서도 어쩐지 씁쓸한 감정을 감출 수 없는 것은 이러한 이유가 아닐까 합니다. 역설적이게도 '비밀'은 숨겨진 비밀을 밝혀내는 이야기이며, 그 비밀 속에 숨겨진 진실이 쓰라린 것이든 부끄러운 것이든 혼자 간직하고픈 추억이든,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삶을 더욱 빛나게 하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우리 주위에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비밀들이 많이 있겠지요. 그리고 그 중에는 반드시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보다 더 반짝반짝 빛나는 이야기가 숨어있을 것입니다. 이야기는 삶에 가깝기에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wallow (스왈로우) - Sun Insane
Swallow (스왈로우) 노래 / 스톤뮤직엔터테인먼트(Stone Music Ent.) / 200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봄의 피로>부터가 이 앨범의 성격을 극명하게 드러냅니다. <허클베리 핀>때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려주는 instrumental 곡이죠.

보통 그룹을 오래 하던 사람이 솔로 앨범을 내게 되면 첫 앨범의 경우는 자신의 색깔과 그룹의 색깔을 어느 정도 절충하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 조금 좋아지기도, 아주 나빠지기도 해요. 네, 결국은 그리 좋은 앨범이 나올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말을 하려고 했던 겁니다.

swallow의 앨범도 많이 기대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오히려 기대치가 낮았기 때문인지 아니면 정말 좋은 앨범인지 헷갈리고 있어요. 사실 제 취향에 묘하게 들어맞기 때문일지도 모르죠.


첫곡 <봄의 피로>부터가 귀를 확 잡아끕니다. 클래식을 전면적으로 활용한 이 곡은 앨범의 전체적 분위기를 확실하게 각인하면서 '잔인한 4월'같은 이미지를 드러내며 분위기를 살짝 반전시키는 <몇 가지 오해들>로 이어집니다.

왠지 모르게 나른하게 늘어지는 느낌을 주는 곡 <어느 배우>, 잔잔한 피아노와 기타와 바이올린 연주가 시작되다가 자연스럽게 볼륨을 높인 듯이 올라가는 감정. 차근차근히 쌓인 우울함을 한꺼번에 터뜨리는 것이 아니라, 중간 중간에 조금씩 내보이는 조절이 돋보입니다.

게다가 <킹맨의 거짓말>은 기타와 드럼이 들어간 전형적 락 트랙인데도 다른 곡들과 그리 상충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이 앨범 전체의 분위기를 좌우하는 이기용의 보컬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자연스럽게 보컬과 호흡이 맞는다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보컬에 맞춰 앨범의 컨셉을 맞춘 걸까요, 그것도 아니면 앨범의 컨셉에 맞춰 보컬을 들여온 걸까요. 아무런 채색도 되지 않은 듯한 보컬은 이기용의 취향이기도 하지만 또 이 앨범 전체<저녁의 룸펜>은 아예 기타가 뒤로 물러서고 현이 가장 앞에 나와서 멜로디를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분위기는 많이 다르지 않습니다.

<긴 방랑이 끝나는 아침>은 어쿠스틱 기타의 잔잔하게 뒷받침되어 정말 '봄'의 기분을 잘 표현했습니다. <무엇이 나를 눈멀게 했을까>는 한술 더 떠서 피아노와 목소리만으로 만든 곡입니다.

뿐만 아니라 Deja Vu에서 보이는 작사의 스타일은 주목할 만한 것입니다.
[소리 없는 순간의 미명으로 모진 고된 시절을 마치면 장례식에 흐르는 Moon River 사라지지 않은 채 거리에 흐르고 있어]같은 가사는 근래 보기 드문 것이니까요.

마냥 슬프지도 않고, 극도로 우울하지도 않으며, 그렇다고 약한 느낌도 아닙니다. 정말 봄처럼 미친 태양이 녹아있는 앨범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3호선 버터플라이 3집 - Time Table
3호선 버터플라이 노래 / 파스텔뮤직 / 2004년 1월
평점 :
절판


저는 희한하게 3집을 유별나게 좋아하는 경향이 있나봅니다. 사실 3집이란 것이 상당히 안정적인 변화를 꾀하는 대체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거든요. 대표적인 예가 서태지이고, 롤러코스터나 언니네 이발관도 그래요. 역시 3호선 버터플라이도 그 목록에 올려야 할 것 같습니다.

앞의 네 곡은 전형적인 3호선 버터플라이의 색깔을 하나씩 보여줍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귀에 들어오는 곡은 안녕, 나의 눈부신 비행기였어요. 굉장히 정통적이면서도 재미있는 곡이거든요. 제가 좋아하는 펑크 스타일이기도 하고요. 삐뚤빼뚤 원래 그래는 사실 3호선 버터플라이의 원래 보컬색이 제 취향이 아니어서 좀 걸리더라고요. 첫곡이 너무 전형적인 3호선 버터플라이식 노래라고 생각해서 변화를 기대했던 저에게 실망감이 있었는지도 모르겠지만요. 사랑은 어디에같은 곡은 대중적인 곡이지만 특징이 잘 잡히지 않았던 것 같아요.

맛보기로 약간씩 보여줄락말락하던 네 곡을 뒤로하고, Shush부터 본격적으로 변화가 시작됩니다. Shush는 '메밀꽃 필 무렵'의 한 장면을 그대로 옮겨왔다고 하는데, 분위기는 완전히 이국적입니다. 어떻게 표현할 길이 없군요. 그냥 들어보셔야 해요, 이런 곡은. 보컬의 파격적인 변화도 변화이거니와 전체적인 소리색의 변화가 상당히 인상깊었어요.

그림으로 가는 사람들은 사랑은 어디에와 비슷하지만 약간 더 조용조용하고 감성적인 발라드식입니다. 할머니가 피었어요는 백보컬의 앙증맞은 목소리가 참, 귀여워요. 가장 유쾌한 노래가 아닐까 합니다. 김포 쌍나팔의 sonic youth스러움도 이젠 많이 거슬리지 않고. 재미있고 유쾌하게 들립니다. 죽여 밟아 묻어 같은 곡도 sonic youth의 그늘이 (더 짙게)남아있지만 오히려 더 인상적으로 들리면서 그늘은 걷혀집니다. 어떤 강박관념도, 고정관념도 없이 편안하면서도 강렬한 이번 앨범, 정말 강력히 추천할 만 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플란다스의 개
봉준호 감독, 배두나 외 출연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3년 6월
평점 :
품절


역시, 제목과 홍보가 선입견을 만드는 대표적인 영화 중 하나입니다.

봉준호 감독은 심리를 다루는 데 천재적입니다. 플란다스의 개에서도, 관객들을 안심하게 만들지만 그것이 우리의 끔찍한 이기심임을 일깨우는 장면이 있습니다. 살인의 추억에서 형사의 아내를 계속 좇아가는 범인을 비추다가 여고생과 스쳐지나가면서 범인의 목표가 바뀌는 장면은 관객들에게 극단적인 감정의 대립을 보여줍니다. 플란다스의 개에서는 자신이 범인임을 알려주려는 사람과, 그가 주는 실마리를 전혀 잡지 못하는 사람을 보여줍니다.


플란다스의 개에서 죽는 건 오직 한 마리 개입니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살인의 추억보다 플란다스의 개가 더 잔인하죠. 살인의 추억은 적어도 일상적인 사건이 아니니까요. 살인의 추억에서 폭력은 일상적이지 않은 특수한 것이고, 소시민들의 죽음은 일상 아래로, 더 거대한 이름 아래로 묻힙니다.

그에 비해 플란다스의 개는 배경부터 매우 현실적인 생활공간, 아파트입니다. 그러한 '일상'의 공간에서 '우리'들이 만들어내고 있는 폭력은 살인의 추억처럼 체계적이지도, 강하지도 않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더 잔인한 폭력입니다. 서로에 대한 무관심에서 비롯된 오해, 서로에 대한 몰이해 때문에 만들어진 폭력이니까요. 아파트라는 개인적 협소함의 중첩은 그러한 오해를 더욱 크게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그 아파트 밑에서는 또 다른 일들이 펼쳐지고 있지요.

아파트 지하실은 무자비한 폭력이 이루어지고 있는 장소라는 오해를 뒤집어쓴 공간이지만, 사실 그러한 오해는 무관심의 공간이었다는 데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리고 무관심은 부랑자에 대한 시선, '뉴스'라는 매체 - 온 세상의 소식을 독한 표백제로 씻어서 무감각한 '이야기'로 만들어버리는 무관심의 폭력 - 로 이어집니다. 뉴스를 통해 모든 사람들은 이전까지 집중되었던 개인적인 폭력보다 더 커다란, '무엇이 중요한 것인가'를 '사회적'으로 재편성하는 폭력을 목도합니다.


배두나의 만화적 캐릭터리티를 과장하여 홍보한 것과는 달리, 이야기는 유쾌하다기보다 어딘가 신경을 긁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특히 이성재의 극한 연기가 그렇습니다) 늘어지는 듯한 전개도 의도적인 것처럼 보이고, 밝은 것 같으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음울한 분위기도 영 뒷맛이 개운치 않은 이 영화와 맞아떨어집니다. 여러 모로 보아 지구를 지켜라!와 겹치네요. 그 말도 안되는 홍보전략도 그렇고요. :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구를 지켜라! 일반판 - 아웃케이스 없음
장준환 감독, 신하균 외 출연 / CJ 엔터테인먼트 / 2003년 8월
평점 :
품절


여기 한 인물이 있습니다. 이름은 이병구, 어렸을 때 아버지가 사고로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몇년째 식물인간 상태입니다. 학교에서 교사에게, 교도소에서 교도관에게 구타를 당하고 공장에서는 동원된 깡패들의 손에 여자친구를 잃습니다. 그가 겪은 폭력은 80년대가 우리에게 주었던 폭력입니다. 그는 그 폭력을 고스란히 받은 세대입니다. 그는 가장 보편적인 80년대를 살아왔기 때문에, 당연하게도, 미쳤습니다.

여기서 영화는 한발 더 나아가 그 모든 억압자들을 '더러운 외계인새끼"로 만드는 병구를 보여줍니다. 병구의 생각은 강만식 사장이 "모두 미쳤어, 정상이 아냐" 라고 말하는 대목과 관련이 있습니다. 서로 죽이고 파괴하는 인간의 파괴본능은 80년대의 시대적인 문제, 사회적 대립을 통해 극명하게 드러났고, 병구는 그런 사회적 폭력에 노출되었습니다. 그런 폭력은 그가 견딜 수 없었고, 그에게 폭력을 행사한 모든 사람들이 '더러운 외계인새끼'가 아닌 이상, 그러한 무자비한 폭력은 인간으로써 절대로 할 수 없는,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였다고, 스스로를 설득하였던 것이죠.

이 영화에서는 그러한 자기합리화를 진지하게 말하는 병구를 코믹스럽게, 또 굉장히 처절하고 쓰게 그려냅니다. 병구의 마지막 말인 '지구는 누가 지키지'는 웃긴 대사지만 차마 웃을 수 없습니다.
형사가 찾아와 하루를 묵게 되었을 때의 병구는 자신이 그저 '미친 사람'일 뿐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평화로운 외계인을 믿는 라엘리안적 광신교도를 연기합니다. 그는 정상적인 사람처럼 자신을 꾸밀 수도 있을 정도로 자의식을 가진 사람이에요. 그리고 '내가 미쳐가고 있을 때 뭘 했어"라고 울부짖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에게 그가 가진 '신념'을 깨뜨려서 '진실'을 이야기해줄 수 있는 사람, 그 진실이 단순한 세상의 참혹함을 말하는 진실이 아니라 아름다울 수도 있다는, 그런 달콤한 진실을 이야기해줄 수 있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달콤한 진실은 세상에 없다는 것을, 모든 사람들은 알고 있었으니까요. 병구는 달콤한 거짓말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그의 '거짓말'은 쓰디쓴 거짓말입니다.

드라마의 다른 한 축을 이루고 있는 순이와의 멜로도 그냥 넘어갈 수는 없겠지요. 우스꽝스러운 순이의 캐릭터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래서 더 소박한 느낌이 듭니다. 요약된 줄거리만 보자면 정통 멜로지만 주변의 상황과 캐릭터가 너무나 비틀려 있습니다. 만약 순이역을 전지현이 (엽기적인 그녀 식으로)했다면 어땠을까요? 뭐, 어울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과장된 순정만화가 지구를 지켜라!식은 아니겠지요. 지구를 지켜라!는 슬랩스틱보다는 언밸런스한 진지함(개그)과 우스꽝스러운 슬픔이 있어야 하니까요. 그녀의 죽음은 병구의 옛사랑과도 같은 결말이었지만, 단순한 슬픔은 아니었습니다. 병구의 마지막 말이 '순이야 사랑한다'가 아니라 '지구는 누가 지키지'인 것은 그만큼 멜로의 비중이 작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말하지 않아도 그 상황과 인물의 표정만으로 모든 감정이 와닿을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