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란다스의 개
봉준호 감독, 배두나 외 출연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3년 6월
평점 :
품절


역시, 제목과 홍보가 선입견을 만드는 대표적인 영화 중 하나입니다.

봉준호 감독은 심리를 다루는 데 천재적입니다. 플란다스의 개에서도, 관객들을 안심하게 만들지만 그것이 우리의 끔찍한 이기심임을 일깨우는 장면이 있습니다. 살인의 추억에서 형사의 아내를 계속 좇아가는 범인을 비추다가 여고생과 스쳐지나가면서 범인의 목표가 바뀌는 장면은 관객들에게 극단적인 감정의 대립을 보여줍니다. 플란다스의 개에서는 자신이 범인임을 알려주려는 사람과, 그가 주는 실마리를 전혀 잡지 못하는 사람을 보여줍니다.


플란다스의 개에서 죽는 건 오직 한 마리 개입니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살인의 추억보다 플란다스의 개가 더 잔인하죠. 살인의 추억은 적어도 일상적인 사건이 아니니까요. 살인의 추억에서 폭력은 일상적이지 않은 특수한 것이고, 소시민들의 죽음은 일상 아래로, 더 거대한 이름 아래로 묻힙니다.

그에 비해 플란다스의 개는 배경부터 매우 현실적인 생활공간, 아파트입니다. 그러한 '일상'의 공간에서 '우리'들이 만들어내고 있는 폭력은 살인의 추억처럼 체계적이지도, 강하지도 않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더 잔인한 폭력입니다. 서로에 대한 무관심에서 비롯된 오해, 서로에 대한 몰이해 때문에 만들어진 폭력이니까요. 아파트라는 개인적 협소함의 중첩은 그러한 오해를 더욱 크게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그 아파트 밑에서는 또 다른 일들이 펼쳐지고 있지요.

아파트 지하실은 무자비한 폭력이 이루어지고 있는 장소라는 오해를 뒤집어쓴 공간이지만, 사실 그러한 오해는 무관심의 공간이었다는 데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리고 무관심은 부랑자에 대한 시선, '뉴스'라는 매체 - 온 세상의 소식을 독한 표백제로 씻어서 무감각한 '이야기'로 만들어버리는 무관심의 폭력 - 로 이어집니다. 뉴스를 통해 모든 사람들은 이전까지 집중되었던 개인적인 폭력보다 더 커다란, '무엇이 중요한 것인가'를 '사회적'으로 재편성하는 폭력을 목도합니다.


배두나의 만화적 캐릭터리티를 과장하여 홍보한 것과는 달리, 이야기는 유쾌하다기보다 어딘가 신경을 긁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특히 이성재의 극한 연기가 그렇습니다) 늘어지는 듯한 전개도 의도적인 것처럼 보이고, 밝은 것 같으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음울한 분위기도 영 뒷맛이 개운치 않은 이 영화와 맞아떨어집니다. 여러 모로 보아 지구를 지켜라!와 겹치네요. 그 말도 안되는 홍보전략도 그렇고요.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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