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미래는 언젠가 노화하고 취약해지고 병들고 의존하게 될 모든 사람이 마주할 미래이기도 하다. 살아가는 동안 누구나 어떤 시기에는 정상성의 범주에서 밀려난 존재가 된다. 단지 그것을 상상하지 않으려 애쓸 뿐이다. 그래서 나는 장애인 사이보그를 이야기하는 것이나 기술과 취약함, 기술과 의존, 기술과 소외를 살피는 것이 결국 모든 이들의 문제이기도 하다고 말하고 싶다. 독립적이고 유능한 이상적 인간과 달리, 현실의 우리는 누구도 취약함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 P40
현실에서 기계와 결합한 존재란 아이언 맨 슈트를 입고 하늘을 날거나 온갖 화려한 차종으로 변신하는 모빌리티를 타는 존재가 아니라, 낡은 철제 수동 휠체어를 탄 이들, 오래된 전동 휠체어를 타고 배터리가 방전될까 걱정하는 이들, 3일에 한 번씩 신장 투석기에 접속하고 4시간씩 혈액의 노폐물을 걸러주느라 스케줄 조정에 곤란을 겪는 이들이다. - P63
음성 합성 AI, 웨어러블 로봇, 그리고 보청기를 통해 들려오는 ‘첫 소리‘ 영상들의 연출이 의도하는 바는 일관적이다. 기술은 장애인에게 정상성을 선물하고, 비장애인들은 그 아름다운 순간을 보며 감동을 받고, 장애인들은 희망을 얻는 것이다. 그러나 이 연출에는 여러 문제가 있다. 먼저, 장애인이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 비장애인에게 감동을 주는 구도는 오래전 호주의 코미디언이자 작가인 스텔라 영Stella Young이 비판했던 ‘감동 포르노‘에서 조금도 나아가지 못했다. 미디어에서 거의 유일하게 허락되었던 ‘역경을 극복한 장애인‘이라는 스테레오타입이 이제는 기술의 보조를 받게 되었을 뿐이다. - P70
기술철학자이자 장애학자인 애슐리 슈Ashley Shew는 기술의 발전이 장애인의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관점을 테크노에이블리즘Technoableism이라고 칭하며 비판한다. 테크노에이블리즘은 기술 낙관론에 기반한 비장애중심주의다. 이러한 관점은 장애를 손상된 몸을 가진 개인의 문제로 환원하고, 그 개인에게 기술적 지원이나 교정을 통해 장애를 제거할 것을 혹은 정상적인 기능을 회복할 것을 요구한다. - P86
왜 휠체어를 위해 경사로를 설치하는 것보다 로봇 외골격이 더 주목과 찬사를 받을까? 이동 보조기기를 이용하는 것보다는 ‘걷는‘ 것이 더 정상성에 가깝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소리를 더 잘 듣게 하는 기술보다 수어나 문자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로봇 외골격보다 휠체어가 더 적합할 수 있다. 장애인의 몸은 설령 가능 유형의 장애라 해도 규격화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하며, 사람마다 서로 다른 상황에 처한다. - P87
사이보그를 상상하는 사람들이 그리는 세련되고 효율적인 삶 속에는 기계를 유지하고 보수하는 일상의 불편함이 제거되어 있다. 사이보그 신화는 사이보그의 현실이 기계와의 불완전한 동거, 즉 불화에 가깝다는 사실을 은폐한다. - P138
플라스틱 빨대를 둘러싼 일련의 논쟁은 기술과 장애의 관계가 대단히 복잡하다는 것, 더불어 특정한 진보적 가치를 위한 운동이 다른 권리운동과 충돌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환자와 장애인을 위해 개발된 주름 빨대는 주류화되어 어디서나 구할 수 있게 되었지만, 다른 한편 그 주류화를 통해 원래의 목적이 잊히고 말았다. 장애 접근성 이슈에서는 이처럼 자원 사용이나 환경 문제와 관련된 또 다른 충돌이 생길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어떤 충돌 지점에서는 결국 격렬한 논쟁이 필요하다. - P210
어쩌면 미래의 기술, 미래의 과학은 장애인들에게 지금보다 더 많은 선택지를 제공해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 발전은 분명히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장애의 종식‘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결함 없는 완전한 기술을 거머쥘 수 없고, 불멸에 도달할 수도 없다. 대신 우리는 다른 대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 바로 능력차별주의를 끝내는 것. 그것은 손상과 취약함, 의존에 대한 우리의 근본적인 태도를 바꾸는 것이다. - P278
몸의 위계, 능력의 위계가 사라진 세계를 상상하는 것은 쉽지 않다. 부적절한 신체를 가진 사람들이 차별에서 자유로울 세계를 그려보는 것조차 막연하고 어렵다. 차라리 인간이 죽음, 노화, 질병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세계를 묘사하는 것이 더 쉬울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설령 그것이 아주 어려운 상상이라고 해도 나는 모든 사람이 ‘유능한‘ 세계보다 취약한 사람들이 편안하게 제 자신으로 존재하는 미래가 더 해방적이라고 믿는다. (P.281-282) - P281
<사이보그가 되다>를 처음 쓰기 시작했을 때 내가 반복해서 떠올린 이미지는 블록버스터 영화 속 사이보그들이다. 그들은 매끈한 팔다리를 휘두르며 스크린 속을 날아다닌다. 이런 사이보그들은 내가 선뜻 이입할 수 없는, 감히 이입할 엄두도 내지못하는 존재들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 사이보그들은 내 옆에 와 지친 표정을 지으며 앉는다. 보철 다리를 분리해서 손에 들고 사실은 이거 좀 걸리적거렸어, 하면서 투덜거린다. 결함을 가진, 그것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 넘어서려고 하지만 실패하고, 결국은 그 텅 빈 구멍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사이보그들을 상상한다. - P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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