뉘른베르크, 나치와 정신과 의사 - 악마와의 두뇌 게임, 괴링에 빠져들다
잭 엘하이 지음, 채재용 옮김 / 히포크라테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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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의사인 그는 뉘른베르크에서의 연구를 근거로 나치들을 사이코패스이거나, 한나 아렌트가 말한 그 유형으로 규정하는 결론을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도 있었다. 독일인들이 독특한 문화적 특성을 지녔기에 그런 자들이 오직 특수한 여건에서만 권좌에 올랐다고 믿으며 편히 지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충격과 불안에 빠뜨리게 하는 전혀 다른 결론에 도달했다. 최고위 나치들이 끔찍한 행위를 자행하고 묵인하도록 이끈 자질은 세계 곳곳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 안에도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나치가 독일에서 집권할 수 있었던 데는 그 나라의 문화적 훈련이 일정 부분 작용했다. 하지만 "그들은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다"라고 켈리는 1946년 가을, 사형이 집행된 뒤 미국 각지에서 열린 강연에서 말했다. - P222

어찌 되었든 해로어의 생각에 따르면 개인의 성격적 특성은 나치 정권의 잔혹성과 그들이 저지른 만행과는 큰 관련이 없었다. 독일 파시즘의 부상을 결정지은 요인은 신화, 선전 조작, 기만, 공포에 쉽게 휘말리는 보통 사람들의 취약성에 있었다. 그리고 그 취약성은 우리 종의 기본적인 특성에 속했다. 그녀는 켈리의 말을 되풀이하듯 단언했다.
"여기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 P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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뉘른베르크, 나치와 정신과 의사 - 악마와의 두뇌 게임, 괴링에 빠져들다
잭 엘하이 지음, 채재용 옮김 / 히포크라테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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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룩셈부르크 몽도르프레뱅의 임시수용소 ˝애시캔 (Ashcan)˝에 미군 소속의 정신과 의사 더글러스 M. 켈리 소령이 부임한다. (포로들은 곧 역사상 첫 국제군사재판이 열린 독일의 뉘른베르크로 이송된다.)

켈리의 임무는 애시캔에 수감된 22명의 최고위급 나치 포로들이 (정신적으로) 온전한지, 재판을 받을 능력이 있는지를 평가하는 것이었지만 그의 야망은 전범들의 심리를 연구하고 그들을 광기로 몰아넣은 ‘나치 정신‘이 어떻게 작용했는지를 밝히고 싶어했다.

1945년 11월 전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유럽을 전쟁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었던 21명의 나치 고위급들은 법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된다. 그들은 자신들의 무죄를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리고 나치 전범들에 대한 정신의학적 평가는 전쟁이 끝나고도 수십년 동안 논란의 대상이 된다.



그는 나치 지도자였던 수감자들에게서 공통된 결함, 즉 악행을 서슴지 않는 성향의 흔적을 찾아내고 싶었다. 그들의 행동을 설명할 공통된 정신질환이나 정신의학적 원인이 있었을까? 그들의 끔찍한 범죄를 설명해 줄 ‘나치 성격‘이라는 것이 존재했을까? 켈리는 그 답을 밝혀내려 했다. (P.44)

그는 이렇게 적었다. ˝광기는 나치를 설명하지 못한다. 그들도 모든 인간과 마찬가지로 환경이 빚어낸 산물이었고, 동시에 대부분의 인간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자기 환경을 만들어 낸 존재였다.˝ (P.217)



나치 ˝병균˝은 없었다.
역사상 유례없는 끔찍한 학살을 지시하고 묵인한 전범들이 여느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가족을 사랑하고 농담을 즐기며 때로는 의기소침한 모습도 보이는, 평범한(?) 인물들이었다는 것이 켈리의 결론이었고 이것은 이후 그의 삶에도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다.
임상치료에 전념하던 정신과 의사는 범죄학으로 관심을 돌리고 자신 또한 극한으로 몰아간다.
그가 들여다 보던 심연이 그의 심연을 깨운 것이다.

야심만만하고 자기중심적이었던 켈리는 그가 면담했던 나치 독일의 2인자 헤르만 괴링과 많은 면에서 닮아있었다. 괴링에게서 강한 인상을 받았던 그는 삶의 마지막 순간에 무엇을 떠올렸을까?
지적인 능력이 뒷받침된 이성적인 사고를 강조했던 켈리의 삶이 자신의 바람과 다르게 흘러간 것 또한 아이러니 하다. 켈리의 말처럼 인간은 환경이 빚어낸 산물이자, 자신의 환경을 만드는 존재이기 때문일까?

이 책 읽고 넷플릭스에서 관련 다큐멘터리를 찾아서 보고있다. 이 글을 원작으로 한 영화도 연말에 개봉한다고 하니 많관부(?)

+) 넷플릭스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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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령
알베르 카뮈 지음, 안건우 옮김 / 녹색광선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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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당시에 구입하고 이제야 읽느라 시의성을 놓친건 아닐까 했는데 지금 읽어도 와닿는 지점들이 많다. 권력이라는 절대반지의 유혹을 떨치기란 그렇게 힘든 것일까. 현실에 환멸이 느껴질수록 침묵하지 않고 외면하지 않아야 하는데 그러기도 힘이 든다.

읽으면서 ‘쥴퓌 리바넬리‘의 ‘마지막 섬‘이 생각났다. 좋아하고 잘 쓰인 소설이라 생각하는데 많이 읽히지 않아 아쉬웠다. 이 책을 읽으신 분들은 ‘마지막 섬‘도 읽어보시길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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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이 애매모호한 것에 길들여지도록 하기 위한 거예요. 이해를 못 하면 못 할수록 더 말을 잘 들으니까요. 자, 그럼 이 포고령들을 하나씩 도시 전체가 듣도록 큰 소리로 알리도록 하세요. 아주 멍청한 사람들도 금방 이해할 수 있게 말이에요. 저기 전령이 오네요. 얼굴이 반반하게 생겨서 저들이 하는 말은 쉽게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P. 65-66) - P65

당연하지, 이 여편네야. 똑같은 언어로 말을 하더라도, 누구도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도록 하는 게 목적이니 말이야. 당신한테 똑똑히 말해 두겠는데 어떠한 반응도 얻지 못하는 상태를 모두가 경험하게 되는 완벽한 상태에 도달하고 있어. 하나의 도시에서 서로 날을 세우는 두 개의 언어가 어찌나 집요하게 서로를 파괴하는지 결국에는 모두가 침묵과 죽음이라는 최후의 목표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 나아가는 그런 상태를 말이야. -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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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디너
헤르만 코흐 지음, 강명순 옮김 / 민음사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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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은 늘 함께할 누군가를 찾는다. 불행은 결코 침묵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특히 혼자 있을 때의 그 기분 나쁜 침묵을.˝ (P.14)


두 쌍의 부부가 저녁 식사에 모였다. 파울 로만과 그의 아내 끌레르. 파울의 형이자 유력 정치가인 세르게, 그리고 형수 바베테. 파울은 이 저녁 초대가 얼마나 싫은지, 그의 형 세르게가 얼마나 위선적인 인간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말한다.

그들이 모인 이유는 파울의 아들 미헬과 세르게의 아들 릭 때문이다. 이 아이들은 누군가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부모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

초반에는 파울의 형 세르게가 정말 단순하고 위선적인 속물처럼 보이는데 이야기가 진행될 수록 파울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필요이상으로 형에게 적대적이고 꼬여있으며, 비단 형에게 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분노 장애와 폭력적인 모습을 보인다.
화자인 파울의 심리가 불안정하다는 것은 서술에서도 느껴지는데 부연 설명이 장황하고 갑자기 과거의 일을 끌고오거나 자신이 과거에 타인에게 가했던 폭력에 대해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한다.
자신의 아들 미헬이 사건의 주동자라는 것을 알았을 때 역시,

˝주동자는 미헬이었다. 뭘할지, 어떻게 할지 결정을 내린 사람은 미헬이었고, 릭은 용감하게 그 지시를 따랐을 뿐이다. 실은 두 아이의 역학관계가 그런 식인 게 몹시 자랑스러웠다. 그 반대였다면 기분이 몹시 상했을 것이다.˝ (본문 中)

내 아이만 괜찮다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되어도 상관 없다.
필요하다면 ‘사적제재‘는 얼마든지 정당화 될 수 있다.
사회에 필요한 존재가 아니라면 피해자라고 해서 동정할 필요가 있을까?
이런 파울의 머리속을 들여다보는 것은 불쾌한 경험이었다. 그가 경멸해 마지않던 형 세르게가 이들 중 가장 정상적인 인물이다. 그렇다면 그의 ‘현명한‘ 아내 끌레르는? (남편보다 더한 또라이다)

사람들은 지금 우리 아이들을 본보기로 삼으려는 거예요. 생각해 봐요. 판사들은 아마 우리 아이들을 보면서 통제할 수 없는 자기 자식들을 떠올릴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미헬을 피를 요구하는 대중들의 희생양이 되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어요. 사형 제도의 부활을 소리쳐 외치는 성난 대중들에게 던져 줄 수 없다는 말이에요. 그러기에는 우리 아이는 너무 지적이에요. 미헬은 보통 사람들을 훨씬 뛰어넘는 영리한 아이라고요." (P.299-300) - P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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