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북플에서 자주 보이길래 그럼 당연히 재밌지 않을까, 봉인했던 연애세포도 깨울겸 구매한 책이다. ‘12월의 어느 날‘ 이후로 이런 달달한 소설은 오랜만이다. 읽은지 오래돼서 흐려진 기억을 감안하더라도 ‘12월의...‘ 보다 재밌었고 대학시절의 무언가가 그립기도 했다. 그때는 여러 이유로 보지 못했지만 지금은 보이는 그런거 말이다. 시작의 계절은 봄이라지만 나는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가을이 좋다고 생각한다. 청명하고 조금 쓸쓸한 날에 설레고 기대되는 일이 생긴다면 정말 기쁘지 않을까. 주인공들의 연애가 시작되는 계절, 깊어가는 가을에 나란히 손잡고 걸어가는 올리브와 애덤을 보고싶다. 아마 저 둘도 연인이 되기 전까진 교정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깨닫지 못했겠지. (나도 본적없지만)스탠퍼드 교내 커피숍에 앉아 막 시작하는 커플들 보면서 주접 떨고싶다. (대충 스탠퍼드 가고싶다는 얘기) 그리고 저는 검은색 좋아해요. (👥️: ???)+) BGM - With You (Mariah Carey)
예전에 악령들을 퇴마하며 다니는 형제가 나오는 미드를 즐겨봤었다. 형제가 한 마을에 들러 악령이 출몰하는 오두막을 조사하는데 사람들이 얘기하는 내용이 너무 제각각이라 애를 먹다가 결국에는 ‘카더라‘로 만들어진 실체없는 저주라는 게 밝혀진다. 수많은 사람들의 입을 거쳐 쌓인 나쁜 기운(?)이 스스로 악령이 된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기억안남) 여하튼, 없는 악령도 만들어 낼 만큼 말의 힘이 무섭다는 뜻일테다. 이 책은 담력 시험이라는 명목으로 ‘저주받은 나무‘를 보러갔던 대학생들 중 한명인 ‘안‘이 실종되고 나중에 죽은 채로 발견되자 안의 친구들과 그녀를 발견한 목격자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이다. 마지막에 가서야 그들이 했던 ‘증언‘의 의미를 알 수 있는데, 그래서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읽어보기도 했다. 텍스트 보다 최근에 개봉했던 영화로 보면 분명 더 무서울테지만 그런 이유로 영화는 보지 않겠다. 짧고 강렬한 이야기가 읽고 싶었는데 이건 그냥 짧기만 했던 것 같았거든. 리뷰 쓰면서 복기해 보니 평점을 이렇게 박하게 줄 일은 아니었나 싶기도하다. ˝누군가가, 오래전에, 나무에 의미를 부여했겠죠. 좋지 않은 목적으로요. 그게 수많은 사람이 소문내고, 담력 시험이니 뭐니 하며 가서 난리법석을 떨고, 여러 형태로 입에 오르내리는 사이에 점점 그런 나무가 되었을 거예요.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난 격이랄까요. 정말 입이란 재앙의 근원이네요.˝ (본문 中)
성공한 인생이란 무엇일까?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스토너의 인생은 객관적인 기준에서 보면 성공한 삶이라고 말하긴 어려울 것이다. 뚜렷한 학업적 성취도, 행복한 가정도 이루지 못했고 한때 삶의 의미였던 딸과의 관계도, 뒤늦게 찾아온 사랑도 지키지 못했다. 특별할 것도 없는, 어쩌면 불행해 보이는 하루하루를 그저 묵묵히 살아내는 그의 모습이 안타깝고 답답하고 화가 나서 몇 번을 쉬어가며 읽었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그러게... 나는 스토너의 삶에서 무엇을 보고싶었나. 읽는 내내 가슴 한켠을 짓누르던 먹먹함 때문이었을까. 그의 삶이 대부분의 사람들의 그것 보다 나은 것이었다는 작가의 말을 믿어보고 싶다.
정신과 의사인 그는 뉘른베르크에서의 연구를 근거로 나치들을 사이코패스이거나, 한나 아렌트가 말한 그 유형으로 규정하는 결론을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도 있었다. 독일인들이 독특한 문화적 특성을 지녔기에 그런 자들이 오직 특수한 여건에서만 권좌에 올랐다고 믿으며 편히 지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충격과 불안에 빠뜨리게 하는 전혀 다른 결론에 도달했다. 최고위 나치들이 끔찍한 행위를 자행하고 묵인하도록 이끈 자질은 세계 곳곳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 안에도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나치가 독일에서 집권할 수 있었던 데는 그 나라의 문화적 훈련이 일정 부분 작용했다. 하지만 "그들은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다"라고 켈리는 1946년 가을, 사형이 집행된 뒤 미국 각지에서 열린 강연에서 말했다. - P222
어찌 되었든 해로어의 생각에 따르면 개인의 성격적 특성은 나치 정권의 잔혹성과 그들이 저지른 만행과는 큰 관련이 없었다. 독일 파시즘의 부상을 결정지은 요인은 신화, 선전 조작, 기만, 공포에 쉽게 휘말리는 보통 사람들의 취약성에 있었다. 그리고 그 취약성은 우리 종의 기본적인 특성에 속했다. 그녀는 켈리의 말을 되풀이하듯 단언했다. "여기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 P297
1945년 8월 룩셈부르크 몽도르프레뱅의 임시수용소 ˝애시캔 (Ashcan)˝에 미군 소속의 정신과 의사 더글러스 M. 켈리 소령이 부임한다. (포로들은 곧 역사상 첫 국제군사재판이 열린 독일의 뉘른베르크로 이송된다.) 켈리의 임무는 애시캔에 수감된 22명의 최고위급 나치 포로들이 (정신적으로) 온전한지, 재판을 받을 능력이 있는지를 평가하는 것이었지만 그의 야망은 전범들의 심리를 연구하고 그들을 광기로 몰아넣은 ‘나치 정신‘이 어떻게 작용했는지를 밝히고 싶어했다. 1945년 11월 전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유럽을 전쟁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었던 21명의 나치 고위급들은 법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된다. 그들은 자신들의 무죄를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리고 나치 전범들에 대한 정신의학적 평가는 전쟁이 끝나고도 수십년 동안 논란의 대상이 된다. 그는 나치 지도자였던 수감자들에게서 공통된 결함, 즉 악행을 서슴지 않는 성향의 흔적을 찾아내고 싶었다. 그들의 행동을 설명할 공통된 정신질환이나 정신의학적 원인이 있었을까? 그들의 끔찍한 범죄를 설명해 줄 ‘나치 성격‘이라는 것이 존재했을까? 켈리는 그 답을 밝혀내려 했다. (P.44) 그는 이렇게 적었다. ˝광기는 나치를 설명하지 못한다. 그들도 모든 인간과 마찬가지로 환경이 빚어낸 산물이었고, 동시에 대부분의 인간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자기 환경을 만들어 낸 존재였다.˝ (P.217)나치 ˝병균˝은 없었다.역사상 유례없는 끔찍한 학살을 지시하고 묵인한 전범들이 여느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가족을 사랑하고 농담을 즐기며 때로는 의기소침한 모습도 보이는, 평범한(?) 인물들이었다는 것이 켈리의 결론이었고 이것은 이후 그의 삶에도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다.임상치료에 전념하던 정신과 의사는 범죄학으로 관심을 돌리고 자신 또한 극한으로 몰아간다. 그가 들여다 보던 심연이 그의 심연을 깨운 것이다. 야심만만하고 자기중심적이었던 켈리는 그가 면담했던 나치 독일의 2인자 헤르만 괴링과 많은 면에서 닮아있었다. 괴링에게서 강한 인상을 받았던 그는 삶의 마지막 순간에 무엇을 떠올렸을까? 지적인 능력이 뒷받침된 이성적인 사고를 강조했던 켈리의 삶이 자신의 바람과 다르게 흘러간 것 또한 아이러니 하다. 켈리의 말처럼 인간은 환경이 빚어낸 산물이자, 자신의 환경을 만드는 존재이기 때문일까? 넷플릭스에서 관련 다큐멘터리를 찾아서 보고있다. 이 책을 원작으로 한 영화도 연말에 개봉한다고 하니 많관부(?) +) 넷플릭스 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