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 온 더 트레인
폴라 호킨스 지음, 이영아 옮김 / 북폴리오 / 2015년 8월
평점 :
절판


감상

어딘가를 빠르게 지나갈 때나 빠르게 움직이는 물체 위에서 외부의 공간을 바라보거나 사진을 찍을 때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겉표지는 사진을 좋아하거나 자주 접했던 이들에게는 다소 친숙하고 관심을 끌 수 있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과거와 다르게 요즘은 누구나 휴대폰을 이용해 사진을 찍을 수 있기 때문에 가장 일상적인 풍경이 될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기차 위의 여자는 우리와 같은 기차를 탄 승객이며, 또 어쩌면 우리들 자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저 그 시선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의 차이만을 나타내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처음 시선을 보여준 레이첼은 도서의 전체적인 흐름을 통해 현재를 이야기했습니다. 마치 그녀 혼자 열차 위에 있는 듯 보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를 포함한 총 세 명의 인물을 중심으로 내용이 전개됐으며, 각기 다른 시간 속에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이야기는 조금씩 하나의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저 다른 위치에서 열차를 탔을 뿐, 다른 시간에 탔을 뿐이었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시선은 레이첼이었고, 시작과 끝 모든 부분에 관여하는 만큼 그녀만 진실일 것 같다는 착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하지만 그녀를 좋은 시선으로 바라보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결함이 많이 느껴졌으며, 어딘지 퍽퍽하고 마른 모래처럼 푸석했고 냉소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정확히는 냉소적이라기보다는 의도적이고 과하게 감정을 감추고 있는듯했습니다.

또 억지로 자신의 상처 입음을 숨기고, 온갖 상상력으로 누군가를 창조해 내는 모습을 보이면서, 때로는 바보 같아 보이기도 했지만, 어떤 면에서는 창의적이기도 했습니다. 허구지만 허구가 아닌 허구의 전혀 다름일지 모르는 그들을 통해 행복한 자신을 꿈꿨으며, 정말 완벽한 꿈일지 알 수 없는 의문만 남기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녀에게 완벽해 보였던 커플의 이야기는 끝까지 완벽으로 남아야 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과거를 송두리째 부정한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단지 그들 사이에 원치 않는, 불청객이 끼어들었을 뿐이라며, 그 불청객을 찾는 것에 적극적으로 임합니다.

자신의 그런 행동이 어떤 부정적 영향을 끼칠지는 고려하지 않은 채, 그저 눈앞에 있는 목적지를 향해 맹목적으로 달리는 듯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는 한없이 이기적인 모습으로 느껴져 혐오감까지 들 정도였습니다.

물론 이런 모습은 다른 두 명의 인물에게도 똑같이 느껴졌습니다. 한 명은 자신밖에 모르는 모습을 계속 보여주면서, 자신을 위해 남을 깎아내리고 상처 입히는 걸 아무렇지도 않게 행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쉽게 과장을 했고, 그 뒤의 일은 '나'의 일이 아니라는 듯 행동했습니다.

또 다른 인물은 자신의 행복이라는 이름 하에 불륜을 저지르면서, 자신 때문에 상처 입을 배우자를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고, 그런 행동을 하게 만든 것에 책임을 물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스스로에게 솔직하지 못했습니다. 분명 더 의심할 수 있는 인물이 있었음에도 외면했고, 자신의 모습이 상처를 줄 것이라는 것을 알았으면서도 오히려 더 의도적으로 상처 주기 위해 내뱉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본인이 상처 입을 수도 있다는 것은 철저히 외면할 뿐이었습니다.

그들에게 다가올 진실은 당연히 잔인하고 고통스럽습니다. 그래서 피하고 싶고, 외면하고 싶지만 끊임없이 모습을 드러내며 결국 눈앞까지 다가옵니다. 그렇게 진실이라는 이름의 태풍은 우리의 피부를 직접적으로 때릴 것입니다. 어쩌면 그녀들에게 필요한 것은 진실을 파헤치는 과정보다, 그 고통이 조금이라도 완화되거나, 충분히 이겨낼 수 있는 힘을 갖추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분투했고, 발버둥 쳤으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성장하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을 동정하거나, 위로하거나, 편을 들어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기엔 너무도 혐오스러운 모습을 보였고, 결과적으로도 온전히 성장하고 독립적이면서 이상적인 존재가 되었는지에 대해서도 쉬이 답을 내릴 수 없었습니다.

사실 그들만 혐오스러운 것은 아니었고, 해당 도서에서 그렇지 않은 사람을 찾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모두가 어딘지 혐오스러운 모습을 보였고, 이기적이었습니다. 그저 조금 더 심하거나, 덜한 정도로만 보였습니다. 가장 이성적인 모습을 보이는 듯한 정신과의 선생님조차 자신의 욕망을 이따금 조절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으며, 경찰들은 색안경 끼고 행동했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이 모든 것들이 크게 상관없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녀들뿐 아니라 우리들도 언제나 일정 부부 외면하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따금 타인을 위해서 행동하지만 대부분은 자신을 위해서,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쪽으로 몸을 움직입니다. 결국 그들은 우리 자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저 우리가, 아니 내가 톰이 아니기를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아쉬운 점

  • 자극적인 요소들이 연속적으로 등장하곤 합니다.

이는 호기심을 자극하고 책의 재미를 끌어올리는 요소가 될 수도 있지만, 너무 빈번하고 당연하게 여겨지는 불륜이 너무도 쉽게 표현됨으로써 문화의 차이인지 생각의 차이인지 혼동을 느끼게 됩니다. 그렇다고 그 과정과 그들의 행동을 모두 세부적으로 묘사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들을 담아내는 것으로 다소 역함을 느끼게 만들기도 합니다. 이런 역함은 전체 등장인물들까지 확장함으로써 하나의 분위기로 만들어 내지만, 이 때문에 도서를 덮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일관적이지 않고, 뒤죽박죽 엉켜있는 듯한 시간의 흐름이 도서가 다소 복잡하게 느껴지게 합니다.

물론 각 인물들이 겪는 시간이 다르고,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적절한 선택으로 보이지만, 한쪽으로만 흐르는 시간의 전개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복잡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어쩌면 일반적인 이야기 흐름 속에서 이따금 등장하는 회상 정도의 표현이 적절하다고 믿을 수도 있지만, 분명 서로가 느끼는 시간은 다르기 때문에 이와 같은 표현 방식이 오히려 정확한지도 모르겠습니다.

  • 역한 모습을 지속적으로 보여주는 모든 인물들 때문에 도서의 내용 자체가 역함만 남을 수 있습니다.

어느 인물 하나 빼놓지 않고 이기적이고 자기 자신만을 위주로 모든 것을 바라보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기본적인 인간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표현한 듯 느껴집니다. 이는 실제 우리들의 모습일 수도 있지만, 도서를 통해 환상을 꿈꾸거나, 평소 '나는 다르다'라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거부감이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대부분 남보다는 나를 위해 행동하며, 아주 가끔 타인을 위해 움직이는 존재입니다. 그러한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독서에 문제가 없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심한 저항으로 다가올 것 같습니다.

  • 결코 그 누구도 해피 엔딩을 맞이하지 못합니다.

누군가는 죽음을 겪고, 누군가는 비밀을 끌어안은 채 살아가게 됩니다. 분명 문제는 해결되었지만, 그 누구도 제대로 성장하지 않은 듯 보이며, 어느 하나 온전하게 이익을 얻거나 행복을 쟁취하지 못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면서, 비관적인 시선을 많이 갖춘 저자의 생각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기본적으로 이기적인 우리들의 모습을 대변하지만, 어느 누구도 행복해지지 못했다는 사실이 안타깝고, 부정하고 싶어 거부감이 들 수도 있습니다.


총 평

열차 위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어느 사이엔가 다른 인물들의 시선과 시간으로 펼쳐지며, 이곳저곳에 이야기를 뿌립니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결국 '선로의 끝'을 향해 있으며, 하나의 결말로 모든 이들의 목소리가 집중됩니다. 결국 그것들은 하나로 합쳐지며, 진실이라는 이름의 현실에 다다릅니다. 그곳에서 또다시 각자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지만, 그 누구도 행복해지지 않는, 결코 성장하지 않은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현실보다 더 현실성이 느껴졌습니다. 그들의 모습은 어쩌면 당연히 외면할 수밖에 없으며, 우리가 왜 현실을 외면하려 하는지를 말하는 듯했습니다. 어쩌면 그들 자신이 결국 우리들의 일부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려는 것 같았습니다.


평점

★ 5개 만점

★★★☆ (주제 7 구성 6 재미 7 재독성 6 표현력 8 가독성 8 평균 7)

선로의 끝에 다다른 열차에서 각기 다른 곳으로 다시 나아가는 인물들의 불행한 결말이 현실처럼 씁쓸함으로 다가온다.


감상자(鑑賞者)

나는 모퉁이에 멈춰 서서 굴다리 안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그 차갑고 습한 냄새를 맡을 때마다 항상 등골이 오싹해진다. 밑에 뭐가 있나 보려고 바위를 뒤집었다가 이끼와 벌레와 흙을 본 것처럼. - P45

뭔가가 보일 듯하다가, 어떤 말이 들릴 듯하다가 또다시 저만치 달아나버린다. 도무지 잡히지가 않는다. 잡힐 듯하다가도 마지막 순간 내 손이 닿지 않는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춘다. - P70

그는 나를 답답해하기 시작했다. 왜 가져보지도 못한 것을 그리워하고, 그것 때문에 슬퍼하는지, 그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나 혼자만 불행한 것 같았다. - P118

내 안의 착한 천사들이 이번에도 술에게, 그리고 술에 취하면 나타나는 인격에게 지고 말았다. 주정뱅이 레이첼은 뒷일을 생각하지 않고, 과도하게 마음이 넓어지고 태평해지거나 아니면 미움에 빠져버린다. - P155

알아내야 한다. 기억이 되살아날지도 모른다. 무슨 까닭인지, 내가 중요한 뭔가를 잊고 있다는 확신이 든다. 어쩌면 나 자신을 속이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내가 쓸모없는 인간이 아니라는 걸 나 자신에게 증명해 보이려는 욕심. - P216

하지만 그럴 리가 없다. 그의 충격과 고통은 거짓이 아니다. 이렇게 연기를 잘하는 사람은 있을 수 없다. - P293

경찰이 그 여자를 어떻게 처리할지 모르겠다. 접근하지 말라고 경고하는 정도로 끝낼까? 어쨌든 금지 명령 같은 걸 알아보기 시작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톰을 위해서라도 거기까지는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 P339

내게 이런 얘기를 하는 그녀가 밉다. 그녀의 얘기를 믿는 것 같은 나 자신도 밉다. 난 어쩌면 톰이 거짓말쟁이라는 걸 처음부터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예전엔 그의 거짓말이 내게 편리했을 뿐이다. - P392

그가 꼼수를 쓰고 있는 거다. 그는 늘 이런 식이다. 모든 게 내 잘못인 것처럼 느끼게 만들고, 나를 쓸모없는 인간으로 느끼게 만드는데 등한 사람이다. - P443

헤어지기 직전에 그녀가 내 팔을 잡았다. 그러고는 "잘 지내요."라고 말했는데, 그 말이 왠지 경고처럼 들렸다. 나는 그의 목을 찌를 수밖에 없었고, 애나는 그를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서로 입을 맞추어 말한 우리는 그 진술에 영원히 얽매어버린 공범자들이다. - P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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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 온 더 트레인
폴라 호킨스 지음, 이영아 옮김 / 북폴리오 / 2015년 8월
평점 :
절판


선로의 끝에 다다른 열차에서 각기 다른 곳으로 다시 나아가는 인물들의 불행한 결말이 현실처럼 씁쓸함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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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번째 내가 죽던 날
로렌 올리버 지음, 김지원 옮김 / 북폴리오 / 2017년 5월
평점 :
절판


감상

내용도 모르고, 읽어야 할 필요성이나 이유 등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시작한 도서였지만, 강렬한 표지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정말 강렬한 그 눈이 계속해서 붙잡는 듯한 느낌이 들었으며, 계속 그 눈을 봐야 한다고, 봐 달라고 하는 것 같았습니다. 본문과 어떠한 연관이 있는지, 그 표지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의문을 품은 채 첫 장을 펴게 됐습니다.

그 어떤 중대한, 무게감 있는 이야기도 없이, 끊임없이 수다 떨듯 내용들이 이어졌습니다. 시답잖은 이야기로 보이는 내용들이 나열됐고,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어느 순간 온전하게 책에 집중하고 있었으며, 알 수 없는 흡인력을 느끼게 됐습니다.

어쩌면 죽음이, 삶의 종착지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라는 듯 덤덤하게, 아무렇지 않은 듯 녹여내는 문체들이 자연스럽게 책에 몰입하도록 만들었습니다. 물론 꼭 가까운 것이 아니라고 해도 우리 주위에는 언제나, 늘 죽음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지금도 어딘가에선 누군가 죽고 있을 것이며, 우리도 언젠가 죽을 것입니다. 그렇게 죽음은 늘 우리와 함께 합니다. 그저 망각할 뿐이며, 그녀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그저 죽음이 항상 함께하는 그 하루에, 그녀가 온전히 갇혀있다는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그렇다고 그 감옥에서 무기력하게 석방의 시간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끊임없이 그 안에서 변화를 꾀했고, 그 때문에 늘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됐습니다. 무엇인가 감춰진 비밀이 있는 것 같았고, 조금씩 정체를 드러냈습니다.

어쩌면 그녀는 그저 과하게 어떤 일들을 받아들이고, 그 과대망상이 반복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착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자신의 죽음에 대한 외면이 만들어낸 환상이거나, 그때의 죄책감이 보여주는 자신의 본모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계속해서 하루는 반복됐으며, 늘 죽음이 함께하는 그녀의 하루는 여섯 번째 반복에 이르러 지금까지와는 다른 분위기를 보였습니다. 밝고 경쾌했으며, 그녀의 표현처럼 모든 것을 바꿀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까지 느껴졌습니다. 그렇지만 불쑥 들어오는 한 남자의 폭력성과 비아냥대는 여자들의 역겨운 목소리가 그것이 결코 쉽지 않음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그녀가 모든 굴레를 벗어난다거나, 행복한 결말을 원할 수는 없었습니다. 독서가 진행되고, 뒷부분에 이르렀을 때 그녀의 존재나 가치는 역함이 함께 했기 때문입니다. 아주 사소하고 조금의, 일부분만을 보고 정의로워지겠다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또 어떤 비밀이 있을지, 자신이 어떠한 존재인지 그저 외면하고 순진한 척 행동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녀는 지금까지 많은 시간 동안 패거리들과 함께 저질러온 잘못을 고작 하루에 용서받을 수 있다는 듯 행동했습니다. 그보다 더 긴 시간 동안 고통받았던, 일곱 번의 하루 중 여섯 번을 죽었던 그 존재에 대한 반성을 고작 죽음으로 한방에 해결한다는 논리를 피력했습니다.

그렇게 누군가를 살렸지만 다시 자신의 죽음으로 끝맺으면서 나름 성공적인 모습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결국 처음과 거의 같은 상태처럼 보였고, 되돌아가는 모습처럼 느껴져서 절대로 해피엔딩에 다다를 수 없을 것 같았고, 무책임한 행동으로만 보였습니다. 오히려 그녀는 절대로 정의를 말할 수 없음을, 절대로 좋은 사람이 될 수 없다는 사실만 확고하게 만든 것 같았습니다.

그녀의 이기적인, 순진한 척하는 죽음이라는 선택 때문에 또다시 누군가는 슬퍼하고 그리움이나 죄책감 때문에 고통받는 이가 만들어질 것입니다. 결국 그녀는 완벽한 해결을 만들어 낼 수 없었으며, 그런 존재가 아니었기에 어딘가에서 또다시 다른 죽음을 가까이한 상태로 또 하루를 반복하고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영원히 그 안에 갇힌 상태로 또 다른 시도를 하고, 벗어날 수 있으리라는 헛된 희망을 갖고 있지만, 또다시 절망하며, 끊임없이 고통받고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반복되는 시간이라는 지옥 안에서 그녀는 존재할 것입니다.

그러다 반복 중에서 어느 하루는 그녀가 진정으로 개과천선하면서 또 다른 결말을 만들어 낼지도 모르겠지만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 보입니다. 단지 그때는 지금보다 더, 하루를 표현하는 그녀의 목소리와 문장들이 더욱 진해져 있을 것이며, 짙어져가는 하루의 상세함은 또다시 같지만 다른 하루를 탁월하게 묘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같지만 다른 모든 인물들을, 그들의 이야기를 더욱 상세하게 담아낼 것입니다.

그래서 표지에서 보여주었던 눈은, 그녀의 눈이 아닌 반복하고 있는 그녀를 바라보는 독자들의 눈이며, 그녀에게 그런 무서운 형벌을 내린 특별한 존재의 시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도서는 여러 의문들을 던져놓고, 그것에 대해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은 채, 마무리를 내버렸고, 어쩌면 더 이상의 반복이 불가피함을 피력하는 듯 보였습니다.


아쉬운 점

  • 폭력을 행하는 누군가의 행동들이 다소 과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잘못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요소이지만, 어느 순간 역함을 느낄 정도로 세세하게 묘사됐고, 폭력적이고 강압적인 태도를 가진 이들을 많이 등장시킴으로써 결코 단순한 판타지가 아님을 지속적으로 어필합니다. 이 모든 요소들이 도서의 전체 분위기를 살리는 데는 탁월하지만 불편함을 느끼게 될 수도 있습니다.

  • 끊임없이 수다 떨듯 전개되는 이야기 때문에 초반 집중에 방해가 될 수 있습니다.

너무나도 일상적인 이야기, 별것 없이 시작되는 하루가 반복이라는 특별함을 갖추기 전까지는 그저 수다스러운 재잘거림처럼 느껴지곤 합니다. 하지만 순식간에 몰입하게 되고, 이러한 일상이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다는 사실을 더욱 강하게 보여줌으로써 처음의 분위기는 더 이상 유지되지 않으며, 점점 더 그녀의 이야기에 집중할 수밖에 없게 만듭니다.

  • 열린 결말이라고 보이는 마무리 없는 마무리가 당혹스러울 수 있습니다.

그녀의 이야기가 어떻게 마무리되는지, 어떠한 결론에 도달했는지 보여주지 않은 채, 만족스러워하는 듯한 상태로 도서가 마무리됩니다. 하지만 이는 그녀가 진정으로 성숙해졌다거나, 용서받았다는 것에 대한 저자의 의견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 더 이상 이야기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표현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비록 마무리는 없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적절한 마무리로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총 평

시시콜콜하고 수다스럽게 시작된 이야기들은 어느 사이엔가 특별함을 갖추고, 반복에 집중하게 됩니다. 또한 같지만 묘하게 다른 하루의 표현들과 점점 선명하게 표현되는 이후의 하루들에 더욱 궁금증이 생기며, 그 안에서 보이지 않았던 이야기들이 수면 위로 드러나자, 그녀에 대한 평가나 시선들이 순식간에 역함으로 역전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스스로 성장했다고 하지만, 자신의 죽음으로 모두 대갚는다는 식의 엉터리 논리는 결국 전혀 성장하지 않았음을, 결코 용서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더욱 굳세게 만드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마무리하지 않은 마무리가 더욱 진하게 느껴졌으며, 그녀는 또다시 반복이라는 굴레의 지옥에서 또 다른 시도를 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평점

★ 5개 만점

★★★☆ (주제 6 구성 8 재미 7 재독성 6 표현력 8 가독성 7 평균 7)

마무리하지 않음으로써 결코 용서받을 수 없다는, 또다시 반복이라는 지옥에 갇혔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마무리.


감상자(鑑賞者)

대부분은 오늘 밤이 내일 밤으로 변하고 한주가 그다음 주로 뭉쳐지고 한 달이 다른 달과 뒤섞인다. 그리고 늦건 빠르건 우리 모두 죽는다. - P61

자.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너도 알겠지. - P135

그가 단풍나무를 언급하자마자 기억이 물 표면을 뚫고 밖으로 튀어나오듯이 솟구쳐 올랐다. - P149

나하고 안 맞는 일이라. 그 말이 무슨 뜻인지조차 모르겠다. 그런 걸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고. 나는 평생 해 왔던 일들을 하나하나 떠올려 보려고 했지만, 내가 어떤 사람인지 말해 줄 만한 뚜렷한 일이라곤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 P251

아마도 이게 비결인 것 같다. 변하지 않고 예전과 똑같기를 바란다면, 그저 고개를 들고 위를 올려다보면 된다. - P298

하지만 너무 늦었다. 나는 미끄러지고 있었다. 내가 사라지고, 그가 사라지고, 시간이 휘어지고, 그렇게 밤이 되어 꽃잎을 오므리는 꽃처럼 되돌아간다. - P357

게다가 오늘은 내 새로운 시작의 첫날이다. 지금부터 나는 잘못을 바로잡을 것이다. 다른 사람이, 더 좋은 사람이 될 것이다. 사람들이 그냥 기억하는 게 아니라 뚜렷하게 기억할 만한 사람이 될 것이다. - P386

이제 모든 게 이해가 갔다. 린지의 분노, 줄리엣 사이크스를 막아 달라는 듯 항상 손가락으로 십자가를 그리던 행동. 린지는 줄리엣을 미워하지 않았다. 두려워했던 거다. 린지의 가장 오래되고, 아마도 가장 끔찍한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 줄리엣 사이크스.
그리고 이제는 모든 것이, 가능성과 무작위성 모두가 어리석게만 느껴졌다. - P410

나는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
"태워다 준 거랑 또 다른 모든 것들 때문에."
어둠 속에서도 그의 눈이 고양이처럼 반짝이는 게 보였다. - P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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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번째 내가 죽던 날
로렌 올리버 지음, 김지원 옮김 / 북폴리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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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마무리하지 않음으로써 결코 용서받을 수 없다는, 또다시 반복이라는 지옥에 갇혔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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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 플레이어 원 - 2045년 가상현실 오아시스 게임에 숨겨진 세 가지 열쇠를 찾아서 AcornLoft
어니스트 클라인 지음, 전정순 옮김 / 에이콘출판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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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사실 영화를 먼저 접했기 때문에 큰 틀에서 벗어나지는 않겠다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그 작품 자체의 완성도가 너무나 뛰어났고, 만족스러운 전개, 매력적인 배우들을 통해 다양한 모습을 충분히 보여주었습니다. 그럼에도 영화의 영상에는 다 담아내지 못한 무엇인가가, 더 깊은 이야기들이 펼쳐질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표지는 아쉬움이 많이 느껴졌습니다. 영화 개봉 이후 변경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표지는 영화의 후광을 직접적으로 이용하려는 노골적인 의도가 느껴졌습니다. 띠지로도 충분히 가능했을 것 같았으며, 기존 표지에 대한 궁금증만 커져갔습니다.

이는 소설 내용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식었거나, 불확실성에서 나온 선택으로 보였습니다. 간혹 원작이 영화나 다른 2차 작품들이 훨씬 좋았던 경우들이 있어 우려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시작부터 이어지는 종교에 대한 저자의 시선은 흥미를 유도하기에 충분했던 것 같습니다.

전반적으로 반 신앙적인 모습을 보였지만, 종교적 이야기에 대한 옳고 그름을 떠나 자신만의 방식으로 풀어내려는 시도가 엿보였습니다. 물론 주인공의 환경이 누가 봐도 불우해 보였고, 착취까지 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상황에서 신을 믿지 않는다는 것이 당연하게 보이기도 했습니다.

반면, 비슷한 상황, 혹은 같은 환경에 있는 이웃은 신을 믿는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대조를 만들어 냈습니다. 이런 종교적 입장의 반대에 있으면서도 그들은 서로에게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지도, 말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보여주었을 뿐이며, 그것은 나름의 존중으로 느껴졌습니다.

그저 그의 이웃과는 다르게 일반적인 우리들 중 누군가로 표방되는 사람으로 여겨졌으며, 평범한 존재였기 때문에 누구보다 현실적인 판단을 내린듯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환경에 의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아닌, 그곳에서 딱히 필요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도 아닌, 그만의 판단으로 내린 선택 같았습니다.

이는 종교적인 논쟁거리를 만들기보다는 각자의 상황을 수려하게 보여준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분명 누군가는 불편하게 느끼겠지만 그것을 부정하는 것도, 긍정하는 것도 개인의 영역이며, 뭐라고 할 수 없는 부분임을 말하는 듯했고, 저자가 진정으로 말하고자 하는 내용에 포함되는 듯했습니다.

초반의 이러한 흐름은 한순간에 책에 빠져드는 요소가 되기도 했으며, 이후에 등장하는 이야기들은 저자가 얼마나 많은 연구와 공부를 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많은 책과 영화들을 보고 자신이 선보일 수 있는 모든 것을, 온 힘을 다해 표현하고 녹여내려는 것 같았습니다.

단순하게 지식을 펼쳐놓는 것이 아닌, 그것을 충분히 자신의 것으로 온전하게 습득한 뒤 여러 표현들을 통해 뿜어내는 것 같았습니다. 특히나 스타트렉의 "페이저 조준 완료"를 이야기할 때는 소름까지 돋았습니다. 단 몇 마디일 뿐이었지만 이 시리즈를 봤던 기억을 한순간에 떠오르게 했고, 긴 시간 함께한 감흥이 고스란히 느껴졌습니다.

대략적으로 알고만 있었다면 절대 그런 감정을 일으킬 표현으로 느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분명 정확히 인지한 상태로 담아냈으며, 이는 추억을 통해 웃음 지을 수 있는 부분이 되었습니다. 영화도 그랬지만 해당 도서 역시 이런 요소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었습니다.

하지만 영화와 전체적인 흐름과 인물만 같을 뿐 전개되는 방식과 등장하는 게임 캐릭터, 게임, 영화 및 각종 작품들은 대부분 달랐습니다. 그저 일부 겹칠 뿐이었습니다. 멜로적 측면이 더 강조되지 않았고, 인물들 간의 우정 역시 크게 두드러지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훨씬 완벽하고 직접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어쩌면 더 세심한 묘사들이 흘러넘쳤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로 넘어가면서 영상화할 때, 각종 라이선스 협의가 발생했을 것입니다. 그 금액이 천정부지로 치솟을 것이기 때문에 온전히 녹여내기는 불가능했을 것이며, 각색이 필수였을 테지만 이렇게까지 차이가 나는 것은 놀라웠습니다.

물론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만큼은 분명하게 같은 선상에 있는듯했지만, 전혀 다른 작품으로 같은 이야기를 하는, 같은 제목을 갖고 있을 뿐인 완전히 새로운 작품으로 보였습니다. 오히려 훨씬 많은 요소들을 충분히 집어넣은 도서의 힘이 더 강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것들이 궁극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것은 삶에 대한 것이며, 그것을 대하는 우리들의 태도를 말하고자 하는 듯했습니다.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것과 불확실한 무엇인가에 대해 공포감을 느끼고 맞서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느낍니다. 오히려 눈을 돌리려는 경향이 강하며, 사실 자체를 외면하고자 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발버둥 쳐도 다가온 파도를 피할 수 없습니다. 결국 모두 받아내야 하고 선택해야 합니다. 파도를 넘을 수도, 그것에 올라탈 수도, 그저 휩쓸릴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무엇인가 해야 하며, 그렇게 살아가는 것일 것이며, 차분히 또 다른 곳으로, 또 다른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저 우리가 현실을 온전히 받아들이기를 원하고 있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영화와 도서의 결정적인 차이는 주인공의 모든 선택과 행동들이 영화보다 도서가 훨씬 더 풍성하게 다가왔다는 것입니다. 인용하는 작품들이 더 많다 보니 그것들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들이 훨씬 구체적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이후에 해당 도서를 다시 볼 때는, 도서 내에 등장하는 각종 산물들인 게임, 음악, 영화 등을 더 경험해 보고 시도해 본 뒤에 새로운 느낌으로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마 그렇게 되면 훨씬 풍부한 묘사와 감동이 찾아올 것이 분명하며, 이전보다 더 즐거운 소설 읽기가 될 것 같습니다.

물론 과거의 이야기이며, 이해할 수 없는, 즐기지 못할 콘텐츠들일 수도 있습니다. 그저 추억이며, 그 추억을 자극받은 이들에게만 좋은 느낌이 됐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이 순간도 기억이 되고, 추억으로만 남을 것입니다. 분명 언젠가는 같은, 혹은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며,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쨌든 우리는 지금이라는 이 순간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쉬운 점

  • 인용되는 캐릭터, 영화, 게임 등의 요소들이 너무나 방대해서 복잡하게 느껴집니다.

그만큼 방대한 분량과 이야기들을 담아내고 있으며, 자칫 피로도를 느낄 수 있지만, 일부만 그것들을 알아도 충분히 즐거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또한 대중적으로 인지도 높은 요소들이 생각보다 많기 때문에 많은 이들에게 공감과 추억으로 다가올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 영화와는 전혀 다른 내용 전개와 이야기 때문에 당황할 수 있습니다.

물론 소설을 먼저 보거나, 소설만 접했다면 해당되지 않을 이야기입니다. 유명한 도서이기 때문에 영화보다 먼저 접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하지만 장르적 특성 때문에 먼저 출판이 되었음에도 외면받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소설과는 인물과 일부 등장 작품이 겹칠 뿐 전혀 다른 내용이 펼쳐집니다. 그래서 오히려 더 즐겁게 볼 수도 있습니다. 전혀 다른 이야기이기 때문에 예측이 되지 않고 새로운 것을 접하기 때문에 더 흥미진진할 것입니다.

  • 전반적으로 80년대를 추억하지 않는다면 공감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방대하게 인용된 작품들은 대부분 과거의 것들이 많기 때문에 아무리 대중적이어도 시대적 특성을 탈 수밖에 없습니다. 자칫 이해도가 떨어진다면, 도서에 대한 흥미 자체를 느끼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먼저 독서를 한 뒤, 도서에서 만나는 작품들을 추후에 일부라도 다시 보거나 경험한 뒤 추가적인 독서를 한다면, 훨씬 더 흥미롭고 풍성한 느낌이 될 것 같습니다.


총 평

극한의 상상력을 활용한 새로운 이야기인지에 대한 것은 의문으로 남지만, 80년대를 겪었거나, 당시 작품들을 어느 정도 알고, 좋아했다면 즐거운 마음으로 체험할 수 있는 내용들이 흘러넘칩니다. 단순하게 이것들 중 하나는 걸리겠지의 의도보다는 저자 본인이 경험했거나 접했던 것들을 추가적인 연구를 통해 충분히 공부한 뒤 온전하게 녹여낸 것 같습니다. 또한 삶에 대한 지극히 단순하지만 진리에 가까운, 철학적인 이야기를 흥미롭게 섞음으로써 우리 자신, 삶에 대한 방향과 이야기들을 다시 한번 되짚어 볼 수 있는 조금은 심도 있는, 즐겁게 읽을 수 있는 도서인 것 같습니다.


평점

★ 5개 만점

★★★★ (주제 8 구성 8 재미 9 재독성 9 표현력 8 가독성 8 평균 8.33)

SF 소설에서 접하게 된 삶에 대한 철학적 이야기.

이런 아이템들은 오아시스 서버에 저장된 0과 1로 이루어진 데이터에 지나지 않았지만 사회적 지위를 드러내는 상징물로 자리잡았다. - P89

바로 그때였다. 하늘에서 쇳덩이가 떨어져 두개골에 내리꽂힌 느낌이었다. 나는 같은 반 아이들을 둘러보았다. ‘많은 것을 배워야‘하는 집단은 대체 누구인가?
학생들이었다. 고등학생들이었다.
나는 ‘많은 것을 배워야‘ 하는 학생들로 가득 찬 바로 그 행성에 있었다. - P103

어스름이 질 무렵 나는 승합차 밖으로 나와 차문을 잠근 다음 열쇠를 폐차 더미 어딘가로 휙 던져버렸다. 그러고 나서 책가방을 들쳐 메고는 이것이 마지막이라고 다짐하며 빈민촌을 벗어났다. 나는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 P237

그녀의 답장은 점점 길어졌고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는 사이가 되었다. 처음에는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였다. 얼마 후부터는 점점 내용도 길어지고 더 속 싶은 이야기를 하게 되면서 최소한 하루에 한 번씩은 주고받기 시작했다. - P253

이 장치는 내 감각을 속여 존재하지도 않는 가짜 세상에 살도록 만드는 정교한 기계 덩어리에 불과했다. 장치의 부품들은 자발적으로 스스로를 옥죄는 감옥의 빗장이었다. - P287

몸에 덜컥 이상이 왔다. 숨쉬기가 곤란했다. 일종의 공황 발작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심장이 덜덜 떨렸다. 정신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다. 뭐라고 부르든지 간에. 나는 머리가 약간 돌아버렸다. - P341

오히려 사진 속의 얼굴은 그녀의 아바타보다도 훨씬 더 아름답게 느껴졌다. 생명이 깃든 진짜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 P419

바로 그 순간 키가 크고 흰 수염을 기른 할아버지 아바타가 우리 뒤에 나타났다. 그레이트 앤 파워풀 오그, 바로 오그던 모로의 아바타였다. - P448

나를 둘러싼 막강한 두 군단이 지상과 공중에서 격돌하는 장면에 나는 차마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어찌나 격렬하고 압도적인 광경인지 꿀벌집과 말벌집 여러 개가 서로 부딪쳐 박살이 난 다음 거대한 개미집에 떨어진 듯했다. - P482

사람들과 어떻게 어울려야 하는지 몰랐지 나는 평생토록 두려워만 했었다. 끝이 가까웠음을 알았을 때 비로소 깨달았단다. 현실은 두렵고 고통스러울 수도 있지만 진정한 행복을 찾알 수 있는 유일한 곳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말이지. 현실은 실제 삶이니까. - P527

그때, 나는 내가 기억하기로는 생애 처음으로, 오아시스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씻은 듯 사라져 버렸다. - P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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