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번째 내가 죽던 날
로렌 올리버 지음, 김지원 옮김 / 북폴리오 / 2017년 5월
평점 :
절판


감상

내용도 모르고, 읽어야 할 필요성이나 이유 등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시작한 도서였지만, 강렬한 표지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정말 강렬한 그 눈이 계속해서 붙잡는 듯한 느낌이 들었으며, 계속 그 눈을 봐야 한다고, 봐 달라고 하는 것 같았습니다. 본문과 어떠한 연관이 있는지, 그 표지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의문을 품은 채 첫 장을 펴게 됐습니다.

그 어떤 중대한, 무게감 있는 이야기도 없이, 끊임없이 수다 떨듯 내용들이 이어졌습니다. 시답잖은 이야기로 보이는 내용들이 나열됐고,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어느 순간 온전하게 책에 집중하고 있었으며, 알 수 없는 흡인력을 느끼게 됐습니다.

어쩌면 죽음이, 삶의 종착지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라는 듯 덤덤하게, 아무렇지 않은 듯 녹여내는 문체들이 자연스럽게 책에 몰입하도록 만들었습니다. 물론 꼭 가까운 것이 아니라고 해도 우리 주위에는 언제나, 늘 죽음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지금도 어딘가에선 누군가 죽고 있을 것이며, 우리도 언젠가 죽을 것입니다. 그렇게 죽음은 늘 우리와 함께 합니다. 그저 망각할 뿐이며, 그녀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그저 죽음이 항상 함께하는 그 하루에, 그녀가 온전히 갇혀있다는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그렇다고 그 감옥에서 무기력하게 석방의 시간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끊임없이 그 안에서 변화를 꾀했고, 그 때문에 늘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됐습니다. 무엇인가 감춰진 비밀이 있는 것 같았고, 조금씩 정체를 드러냈습니다.

어쩌면 그녀는 그저 과하게 어떤 일들을 받아들이고, 그 과대망상이 반복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착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자신의 죽음에 대한 외면이 만들어낸 환상이거나, 그때의 죄책감이 보여주는 자신의 본모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계속해서 하루는 반복됐으며, 늘 죽음이 함께하는 그녀의 하루는 여섯 번째 반복에 이르러 지금까지와는 다른 분위기를 보였습니다. 밝고 경쾌했으며, 그녀의 표현처럼 모든 것을 바꿀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까지 느껴졌습니다. 그렇지만 불쑥 들어오는 한 남자의 폭력성과 비아냥대는 여자들의 역겨운 목소리가 그것이 결코 쉽지 않음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그녀가 모든 굴레를 벗어난다거나, 행복한 결말을 원할 수는 없었습니다. 독서가 진행되고, 뒷부분에 이르렀을 때 그녀의 존재나 가치는 역함이 함께 했기 때문입니다. 아주 사소하고 조금의, 일부분만을 보고 정의로워지겠다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또 어떤 비밀이 있을지, 자신이 어떠한 존재인지 그저 외면하고 순진한 척 행동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녀는 지금까지 많은 시간 동안 패거리들과 함께 저질러온 잘못을 고작 하루에 용서받을 수 있다는 듯 행동했습니다. 그보다 더 긴 시간 동안 고통받았던, 일곱 번의 하루 중 여섯 번을 죽었던 그 존재에 대한 반성을 고작 죽음으로 한방에 해결한다는 논리를 피력했습니다.

그렇게 누군가를 살렸지만 다시 자신의 죽음으로 끝맺으면서 나름 성공적인 모습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결국 처음과 거의 같은 상태처럼 보였고, 되돌아가는 모습처럼 느껴져서 절대로 해피엔딩에 다다를 수 없을 것 같았고, 무책임한 행동으로만 보였습니다. 오히려 그녀는 절대로 정의를 말할 수 없음을, 절대로 좋은 사람이 될 수 없다는 사실만 확고하게 만든 것 같았습니다.

그녀의 이기적인, 순진한 척하는 죽음이라는 선택 때문에 또다시 누군가는 슬퍼하고 그리움이나 죄책감 때문에 고통받는 이가 만들어질 것입니다. 결국 그녀는 완벽한 해결을 만들어 낼 수 없었으며, 그런 존재가 아니었기에 어딘가에서 또다시 다른 죽음을 가까이한 상태로 또 하루를 반복하고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영원히 그 안에 갇힌 상태로 또 다른 시도를 하고, 벗어날 수 있으리라는 헛된 희망을 갖고 있지만, 또다시 절망하며, 끊임없이 고통받고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반복되는 시간이라는 지옥 안에서 그녀는 존재할 것입니다.

그러다 반복 중에서 어느 하루는 그녀가 진정으로 개과천선하면서 또 다른 결말을 만들어 낼지도 모르겠지만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 보입니다. 단지 그때는 지금보다 더, 하루를 표현하는 그녀의 목소리와 문장들이 더욱 진해져 있을 것이며, 짙어져가는 하루의 상세함은 또다시 같지만 다른 하루를 탁월하게 묘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같지만 다른 모든 인물들을, 그들의 이야기를 더욱 상세하게 담아낼 것입니다.

그래서 표지에서 보여주었던 눈은, 그녀의 눈이 아닌 반복하고 있는 그녀를 바라보는 독자들의 눈이며, 그녀에게 그런 무서운 형벌을 내린 특별한 존재의 시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도서는 여러 의문들을 던져놓고, 그것에 대해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은 채, 마무리를 내버렸고, 어쩌면 더 이상의 반복이 불가피함을 피력하는 듯 보였습니다.


아쉬운 점

  • 폭력을 행하는 누군가의 행동들이 다소 과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잘못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요소이지만, 어느 순간 역함을 느낄 정도로 세세하게 묘사됐고, 폭력적이고 강압적인 태도를 가진 이들을 많이 등장시킴으로써 결코 단순한 판타지가 아님을 지속적으로 어필합니다. 이 모든 요소들이 도서의 전체 분위기를 살리는 데는 탁월하지만 불편함을 느끼게 될 수도 있습니다.

  • 끊임없이 수다 떨듯 전개되는 이야기 때문에 초반 집중에 방해가 될 수 있습니다.

너무나도 일상적인 이야기, 별것 없이 시작되는 하루가 반복이라는 특별함을 갖추기 전까지는 그저 수다스러운 재잘거림처럼 느껴지곤 합니다. 하지만 순식간에 몰입하게 되고, 이러한 일상이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다는 사실을 더욱 강하게 보여줌으로써 처음의 분위기는 더 이상 유지되지 않으며, 점점 더 그녀의 이야기에 집중할 수밖에 없게 만듭니다.

  • 열린 결말이라고 보이는 마무리 없는 마무리가 당혹스러울 수 있습니다.

그녀의 이야기가 어떻게 마무리되는지, 어떠한 결론에 도달했는지 보여주지 않은 채, 만족스러워하는 듯한 상태로 도서가 마무리됩니다. 하지만 이는 그녀가 진정으로 성숙해졌다거나, 용서받았다는 것에 대한 저자의 의견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 더 이상 이야기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표현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비록 마무리는 없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적절한 마무리로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총 평

시시콜콜하고 수다스럽게 시작된 이야기들은 어느 사이엔가 특별함을 갖추고, 반복에 집중하게 됩니다. 또한 같지만 묘하게 다른 하루의 표현들과 점점 선명하게 표현되는 이후의 하루들에 더욱 궁금증이 생기며, 그 안에서 보이지 않았던 이야기들이 수면 위로 드러나자, 그녀에 대한 평가나 시선들이 순식간에 역함으로 역전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스스로 성장했다고 하지만, 자신의 죽음으로 모두 대갚는다는 식의 엉터리 논리는 결국 전혀 성장하지 않았음을, 결코 용서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더욱 굳세게 만드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마무리하지 않은 마무리가 더욱 진하게 느껴졌으며, 그녀는 또다시 반복이라는 굴레의 지옥에서 또 다른 시도를 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평점

★ 5개 만점

★★★☆ (주제 6 구성 8 재미 7 재독성 6 표현력 8 가독성 7 평균 7)

마무리하지 않음으로써 결코 용서받을 수 없다는, 또다시 반복이라는 지옥에 갇혔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마무리.


감상자(鑑賞者)

대부분은 오늘 밤이 내일 밤으로 변하고 한주가 그다음 주로 뭉쳐지고 한 달이 다른 달과 뒤섞인다. 그리고 늦건 빠르건 우리 모두 죽는다. - P61

자.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너도 알겠지. - P135

그가 단풍나무를 언급하자마자 기억이 물 표면을 뚫고 밖으로 튀어나오듯이 솟구쳐 올랐다. - P149

나하고 안 맞는 일이라. 그 말이 무슨 뜻인지조차 모르겠다. 그런 걸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고. 나는 평생 해 왔던 일들을 하나하나 떠올려 보려고 했지만, 내가 어떤 사람인지 말해 줄 만한 뚜렷한 일이라곤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 P251

아마도 이게 비결인 것 같다. 변하지 않고 예전과 똑같기를 바란다면, 그저 고개를 들고 위를 올려다보면 된다. - P298

하지만 너무 늦었다. 나는 미끄러지고 있었다. 내가 사라지고, 그가 사라지고, 시간이 휘어지고, 그렇게 밤이 되어 꽃잎을 오므리는 꽃처럼 되돌아간다. - P357

게다가 오늘은 내 새로운 시작의 첫날이다. 지금부터 나는 잘못을 바로잡을 것이다. 다른 사람이, 더 좋은 사람이 될 것이다. 사람들이 그냥 기억하는 게 아니라 뚜렷하게 기억할 만한 사람이 될 것이다. - P386

이제 모든 게 이해가 갔다. 린지의 분노, 줄리엣 사이크스를 막아 달라는 듯 항상 손가락으로 십자가를 그리던 행동. 린지는 줄리엣을 미워하지 않았다. 두려워했던 거다. 린지의 가장 오래되고, 아마도 가장 끔찍한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 줄리엣 사이크스.
그리고 이제는 모든 것이, 가능성과 무작위성 모두가 어리석게만 느껴졌다. - P410

나는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
"태워다 준 거랑 또 다른 모든 것들 때문에."
어둠 속에서도 그의 눈이 고양이처럼 반짝이는 게 보였다. - P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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