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지음 / 창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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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알록달록 아기자기한 느낌의 표지가 주는 귀여움과 작은 사이즈에 한 페이지당 고작 스무 줄로만 채워져 있는 도서는 시작을 죽음으로 열었으며, 제대로 알아보기 어려운 사투리들로 이야기를 하곤 했습니다. 이와 함께 등장한 한문이 아니었으면 이해하기 힘들었을 단어들이, 옛말들이 자주 등장했고, 이 때문에 독서의 과정은 무척 더디게 되었습니다.

몇 번씩 그들의 대사를 다시 읽어야만 했고, 요즘과 달리 길고 부차적인 말들로 서로의 언어들을 꾸며주었습니다. 오직 내용을 전개하는 화자만 표준어를 구사했을 뿐이었고, 대부분의 말들은 어렵게만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더 깊이 있는 내용들로 다가왔고, 상황을 빠르게 인지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더 확실하게, 사실적인 상상을 하게 했고, 어쩌면 더딘 시간은 그 상상에 빠져 그만큼 시간이 흘려버렸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표현들이 부질없거나 쓸데없다고 느껴지지 않았으며, 요즘은 보기 힘든, 어쩌면 전통적이고 과거부터 이어져 오던 소설의 참 형태를 유지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것을 뒷받침하듯 자꾸만 책장을 앞으로 넘기며 좋은 구절들이 많음을 느꼈습니다. 그만큼 이야기에 매료되기 충분했고, 어딘지 강하고 짙은 여운을 계속 남겼습니다.

이런 말들로 표현되는 전반적인 내용들은 사회주의에 대한 이야기를 했고 이데올로기적 대립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또한 여호와의 증인을 언급하면서 종교적인 부분들도 다루고 있기에 결코 쉬운 독서가 되지 않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사회주의에 대한 시선은 화자를 통해서 냉소적으로 담아냈습니다. 그 말들은 날카로운 칼 같았으나, 그것과는 별개로 벌어진 사건은 비극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마치 하나의 사실이나 진리 등을 가운데에 두고 옳고 그름으로 편이 갈려 대립하고 있는 듯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종교는 무척 호의적으로 묘사했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이단으로 분류되고 부정적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어쩌면 정말 이단이며 사회적으로 악영향을 끼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에 대한 진실은 시간이 판단할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들이 옳았는지, 정말 그른지 분명하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직접 그것을 판단할 수 있는 눈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저 어떤 종교에서 말하는 '그들은 나쁘다, 사이비다'라는 말만을 믿고 따라서는 안됩니다.

정확한 판단을 위해서 그들이 실제로 어떤지 알아보아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것도 없이 편견을 갖고 무조건적인 부정을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지만 해당 도서에서 너무 많은 언급과 묘사를 했기 때문에 찬양처럼 느껴졌고, 과도한 반복이 불편한 감정을 만들어내기까지 했습니다. 어쩌면 조금은 덜었어야 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이런 논쟁거리들을 앞세운 저자는 그렇다고 특정한 사상이나 종교를 지지하거나 따르라는 식의 언급은 하지 않습니다. 그저 그것을 가운데에 두고 서로가 옳다고 싸우는 모양새를 만들어 냈으며, 또한 그 자체를 배경으로 활용해 아버지라는 존재를 이해하고, 그의 모든 날을 알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냈습니다.

물론 초반에는 그것들을 무조건적인 부정의 요소로 다루었습니다. 특히 여러 표현들을 통해 사회주의자의 딸로 살았던 지난 세월을 이야기함으로써 받았던 피해들을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그뿐, 어느새 그런 것들은 모두 제쳐두고 그저 아버지를, 한 인간을 온전히 바라보게 했습니다.

어쩌면 그 모습은 우리들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의 사실이나 진리 등을 가운데에 두고 아등바등 부대끼며, 때로는 싸우고, 또 때로는 웃으며 살고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진실이지만, 또 다른 이에게 거짓일 수 있으며, 누군가는 믿지만 또 다른 이는 믿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반대 급부의 생각을 가진 이들이 이 사회에서 언제나 뒤엉키고 있습니다.

그만큼 해당 도서는 특별히 특정 이데올로기나 종교를 강요하지도, 마냥 좋은 것이라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그 안에서 느끼고 겪었을 감정들과 여러 사건들을 담아냄으로써 아버지를 추억하고, 분명하게 그 존재를 느끼고 받아들이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어느 사이엔가 쉴 새 없이 눈물이 흘렀고, 온전하게 감정이입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들은 말미에 이르러 차분하게 정돈이 됐습니다. 그렇게 한 사람에 집중하게 했고, 그를 통해 우리를 되돌아볼 수 있게 했습니다. 그만큼 짙은 여운이 남아있었습니다.

분명 논쟁거리가 될 수 있는 이야기들이 있었지만, 어느 한쪽을 강요하지 않는 그들의 이야기는 그래서 더욱 냉정하게 바라볼 수 있었으며, 결국 불편할 수 있는 요소들이 전혀 불편하지 않게 다가왔습니다.


아쉬운 점

  • 어려운 말들과 사투리들이 뒤섞여 내용을 쉽게 파악하기 어려웠습니다.

표준어를 구사하는 것은 화자 한 명뿐이며, 모두가 사투리를 쓰고 옛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한자로 이루어진 말들을 많이 쓰곤 합니다. 다행히 한자가 나오는 것 때문에 이해가 되기도 했고, 어느 정도 패턴에 익숙해져 자연스럽게 받아들 일 수 있었지만, 처음부터 나오는 이것들은 분명 독서에 방해가 되기 충분했습니다.

  • 이데올로기적 논쟁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합니다.

물론 도서 자체는 그런 것들에 구애받지 않은 채, 배경으로만 사용하곤 했습니다. 정확히는 그것보다 사람에게 집중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배경은 계속해서 함께 했고, 누군가에는 그것만으로도 불편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하게 사람에 집중했음을 알고 끝까지 독서를 이어나가길 바랄 뿐입니다.

  • 특정 종교에 대한 과도한 언급이 불편했습니다.

물론 그 종교를 맹목적으로 찬양하거나 지지하는 태도를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해당 종교를 권유하지도 않았지만, 생각보다 많이 언급되면서, 오히려 찬양하듯 보였고, 불편한 감정을 느끼게 됐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옳지 않다, 이단이다, 나쁘다는 판단을 한다면 직접적으로 알아보고 판단하기를 바랄 뿐입니다.


총 평

종교적, 이데올로기적 언급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지만, 결국 한 사람에 집중하며,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돌아보게 합니다. 어쩌면 그의 장례식은 이 세상을 축소해놓은 서로의 이념이 대립하는 장소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는 우리이며, 우리가 그, 그리고 모두이듯 결국 삶을 살아간 한 사람이며, 누군가의 아버지, 누군가의 남편이었습니다. 비록 그가 누군가는 지지하지 않는 이데올로기적 사상을 갖고 있다고 해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지만, 저자는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더욱 냉정하게 그들의 이야기를 바라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또한 그것들을 뒷받침하는, 흡인력 있고 매력적인 언어들은 조금은 떨어질지 모르는 가독성을 충분히 만회했습니다. 불편할 수 있는 요소들이 있지만 전혀 불편하지 않은 기분을 느끼게 됐습니다.


평점

★ 5개 만점

★★★★ (주제 9 구성 7 재미 8 재독성 8 표현력 9 가독성 7 평균 8)

부정적인 모습이건 긍정적인 모습이건 결국 한 사람, 한 남자, 한 아버지의 이야기.


감상자(鑑賞者)


https://blog.naver.com/persimmonbox/223198544128

그날 이후 아버지는 그에게 동생 대신이었다. 그러니 나는 동생이 살아 있었다면 용돈 쥐여주며 귀여워했을 조카였던 셈이다. 그 마음 쌩 깐 것이 늙어서야 마음에 걸렸다. 그래봤자 그때 그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나도 모르게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마음의 상처를 준 사람이 그만은 아닐 것이다. 인간이란 이렇게나 미욱하다. - P28

그런데도 두고두고 아버지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날, 아버지와 내가 무언가를, 사람 살이에 아주 중요할지도 모르는 무언가를 놓친 것 같다는 막연한 느낌 때문이었다. 그게 무엇인지 아직도 모르겠다. - P32

이가 하나도 없어 합죽이였던 할머니는 허리끈을 풀지도 못한 채 마루에 털썩 주저앉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고 합죽합죽 웃었다. - P36

그러게, 아버지의 사정은 아버지의 사정이고, 작은아버지의 사정은 작은아버지의 사정이지, 그러나 사람이란 누군가의 알 수 없는 사정을 들여다보려 애쓰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아버지는 그렇게 모르쇠로 딴 데만 보고 있으면 안 되는 것 아닌가, 뭐 그런 생각도 드는 것이었다. - P42

다만 하염없이 남은 인생을 견디고 있을, 만난 적 없는 아버지 친구의 하염없는 인생이 불쑥불쑥 내 삶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곤 했다. - P50

고요한 눈빛으로. 아버지의 죽음뿐이 아니라 곧 닥칠 자신의 죽음까지 덤덤하게 수긍한, 아니 죽음 저편의 공허를 이미 봐버린 눈빛이었다.

...

(중략)

...

삶이란 것이 오빠의 몸에서 빠져나가고 있는 듯했다. 나는 오빠가 밝은 햇빛 속으로 사라져가는 뒷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오빠는 자기 인생의 마지막 조문을 마치고 자신의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중이었다. - P85

한편으로 아버지는 입만 열면 옳은 말하는 잘나고 똑똑한 양반, 또 한편으로는 잘나서 빨갱이짓 하다가 집안 말아먹은 양반이었다. 그러니까 아버지는 고씨 집안의 자랑인 동시에 고씨 집안 몰락의 원흉인 것이다. - P90

먼지에서 시작된 생명은 땅을 살찌우는 한줌의 거름으로 돌아가는 법, 이것이 유물론자 아버지의 올곧은 철학이었다. 쓸쓸한 철학이었다. - P98

그 시간 속에는 우리 아버지 손잡고 가슴 졸이며 수술을 기다리던 순간도 존재할 터였다. 그러니 아버지는 갔어도 어떤 순간의 아버지는 누군가의 시간 속에 각인되어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생생하게 살아날 것이다. 나의 시간 속에 존재할 숱한 순간의 아버지가 문득 그리워졌다. - P110

그때 잃은 아버지를 어쩌면 나는 지금까지도 되찾지 못한 게 아닐까? 아버지를 영원히 잃은 지금, 어쩐지 뭔가가 억울하기도 한 것 같았다. - P159

그런데 죽은 아버지가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살아서의 모든 순간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자신의 부고를 듣고는 헤쳐 모여를 하듯 모여들어 거대하고도 뚜렷한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아빠. 그 뚜렷한 존재를 나도 모르게 소리 내어 불렀다. - P181

"또 올라네."

여기 사람들은 자꾸만 또 온다고 한다. 한번만 와도 되는데. 한번으로는 끝내지지 않는 마음이겠지. 미움이든 우정이든 은혜든, 질기고 질긴 마음들이, 얽히고설켜 끊어지지 않는 그 마음들이, 나는 무겁고 무섭고, 그리고 부러웠다. - P197

사무치게,라는 표현은 내게는 과하다. 감옥에 갇힌 아버지야말로 긴긴밤마다 그런 시간들이 사무치게 그리웠으리라. 그 당연한 사실을 나는,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야 겨우 깨닫는 못난 딸인 것이다. - P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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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큐의 경제학 - 9판
그레고리 맨큐 지음, 김경환 & 김종석 옮김 / Cengage Learning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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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아무래도 전공 서적이라는 타이틀이 주는 무게감도 있고, 100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이 선사하는 압박감이 무척 큰 편입니다. 아마도 일반적인 서적들과 다르게 쉬운 독서 과정을 바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어쩌면 처음 이 도서를 선택했을 때의 분명한 목적의식을 잊지 않는 것이 필수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우려와는 다르게 다행히 일반적인 전공 서적과는, 일반적인 서적과는 조금 다른 느낌을 풍겼습니다. 먼저 페이지 수 설정에서부터 그랬습니다. 전체 페이지 수에 포함되지 않은 저자, 역자의 서문이 포함된 여러 내용은 따로 로마자로 표기하면서 본문과는 연관성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일종의 효율성적인 측면처럼 느껴졌습니다. 실제 읽지 않아도 무방한 부분이었고, 시작되지도 않은 본문에 당연히 함께 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 때문에 전체 페이지는 당연히 증가했지만, 처음부터 보여주는 이러한 모습이 도서에 대한 기대감을 더욱 증폭시켰습니다. 물론 그러한 부분들이 해당 도서가 쉽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원론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때로는 집중력이 심하게 흐트러지기도 했습니다.

내용들을 돌아보면 서론과 1장을 통해 전체적인 기본원리와 구성 등 토대가 되는 내용들을 소개합니다. 아직 구체적인 내용들이 시작되기 전이지만 다소 어려움이 있었고, 조금씩 틀을 갖추었습니다. 그러나 이 서론이 가장 중요도가 높게 느껴졌습니다.

매 장 '1장에서 소개한 경제학의 10대 기본 원리 중에...'라며 언급했고, 이 때문에 그 장을 매번 다시 보곤 했습니다. 아무래도 기본이라는 생각으로 제대로 인지시키고자 한 것 같습니다.

또한 전반적으로 계산식이 나오는 내용들과 결과에서 이야기하는, 혹은 직접적인 경제 분야에 대한 연관성이 약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문제를 풀어내며 이해도를 높인다기보다는, 이런 식이니까 일단 외우라고 하는 강압적인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또한 매끄러운 연결이 아닌 단절되는 부분도 존재했습니다.

물론 모든 부분이 그랬던 것은 아니었지만 이따금 느껴지는 이런 느낌은 다소 아쉬움으로 남았고, 정확한 이해를 위해 조금 더 많은 예시가 필요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됐습니다. 이는 비전공자 입장에서의 필요성일지도 모르지만, 다시 말하면 범용성의 부족처럼 느껴졌습니다.

거기다가 이러한 계산과 관련된 내용들은 실질적인 이론에만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무척 딱딱한 편입니다. 그것이 불친절함으로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특히나 문제를 내지만 답만 알려주거나 때로는 답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해설이나 답이 없기 때문에 다시 앞부분의 설명을 읽으며 반복하게 됐습니다.

이 때문에 오히려 이해도는 높아졌고, 스스로 답을 찾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졌습니다. 물론 몇 번을 봐도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부드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이런 전개들은 마지막에 이르러 찬성과 반대 입장을 보여주는 토론에 다다릅니다. 교차로 전개되는 내용들은 여러 논쟁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기도 했지만, 지금까지 공부했던 내용들에 대한 전반적인 요약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전까지 보아왔던 내용들을 다시 한번 되새기는 것이 수월하게 느껴졌습니다.

물론 제대로 이해했는가에 대해서는 도서를 읽는 이마다 차이가 있을 것이기 때문에 분명한 결괏값을 내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익숙함에 '익숙'해진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익숙함과는 별개로 본문이 끝난 뒤 등장하는 부록은 효용가치를 논하기에 무리가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통계자료였음에도 이미 본문을 다 읽은 상태에서 접하기 때문에 오히려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차라리 비교가 가능하게 그때그때 내용을 추가했다면 더 수월하지 않았을까 싶었습니다.

물론 원작자가 넣은 내용들을 침해하지 않기 위해 한 선택일 수 있었겠지만 보는 대상자들이 차이가 있기 때문에 조금은 유도리를 발휘했으면 했습니다. 그래도 마지막에 있는 용어 설명과 찾아보기는 색인 역할을 톡톡히 해서 다시 보고 싶은 내용이나 부족한 부분들을 되짚어 볼 때 유용했습니다.

이처럼 전반적으로 딱딱하고 무거웠지만 그 안에서 효용성 있는 모습들을 많이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무거움은 쉽게 완화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런 부분들을 보완하기 위해 이론과 계산식만이 아닌 다른 요소들을 다양하게 추가했습니다.

생각보다 많이 등장하는 삽화는 풍자가 포함되어 있기도 했지만, 적절하게 배치되었습니다. 이러한 삽화를 보면 알 수 있듯, 유머러스함이 곳곳에 있었고, 예시를 사용할 때 흥미를 돋우는 것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이는 전체적인 흐름에 익숙해지는 데 효과가 좋았습니다.

중간중간 활용되는 예시에 따라 삽입되는 이미지는 천차만별로 달라졌으며, 익숙한 영화가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해당 영화의 명대사를 우스꽝스럽게 경제 용어와 혼합하기도 했으며, '이해를 돕기 위해, 뉴스 속의 경제학, 전문가들에게 묻는다'까지 함께 했습니다.

물론 이것들은 여러 장, 단점이 존재했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는 역사적 사실과 과거의 이야기를 비롯해 유명 영화나 흥미를 끄는 요소들을 집어넣었습니다. 이는 집중도를 유지하는 역할은 했지만 정작 이해를 제대로 돕게 했는지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 하나의 토막 코너처럼 느껴졌습니다.

'뉴스 속의 경제학'은 내용 자체에 대한 이해도 보다는 경제학이 우리에게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 깨닫게 되는 부분이었습니다. 어쩌면 다른 요소들보다 강력하게 해당 도서를 읽어야 하는 이유를 잘 보여준 것 같습니다. 뉴스나 신문 등에서 이야기하는 경제는 생각보다 많았고, 다소 딱딱했지만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마지막으로 '전문가들에게 묻는다'는 사실 크게 와닿지 못했습니다. 전반적인 이해도가 부족한데 그들의 의견을 듣는다고 달라질 수 없었습니다. 그들의 답변 자체가 별로 중요도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차라리 부족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는 다른 내용들을 넣었으면 어땠을까 싶었습니다.

물론 중요도가 높거나 정의를 포함한 부분에서는 따로 페이지 내에 요약했고, 일정 부분 정리까지 해가며 이해도를 높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챕터마다 등장하는 짧은 퀴즈가 나름의 복습을 도왔습니다.

이처럼 이런 여러 시도는 전체적인 압박감에 비하면 미미했지만 소소한 위로를 주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독서를 이어 나갈 자신감은 매우 자주, 계속해서 사라지곤 했습니다.

적극적으로 무거워지는 분위기를 환기하고자 했지만, 부족했습니다. 그럴 때는 이따금 마지막에 배치된 결과 부분을 먼저 읽은 뒤 거꾸로 구체적인 내용들을 찾아보곤 했습니다. 함께 포함된 내용 중 중요 개념은 페이지를 따로 표시했기 때문에 다시 살펴보기 쉬운 구성이었습니다.

구체적인 내용이 빠진 채 결과 부분에 요약되어 있어서 이해를 위해서는 꼭 상세 내용을 살펴보아야 했습니다. 결국 같은 분량을 봐야 하지만 이런 순서의 변화가 이따금 필요했습니다. 물론 바로 이어지는 복습 문제와 응용문제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답이 따로 나와 있지 않았기 때문에 앞서 공부했던 부분들을 짧게나마 돌아보는 효과만 있을 뿐 정확한 개념을 짚어나가기에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본문의 중간중간 나오는 연습문제만 보더라도 얼핏 이해한 것 같았지만, 비가 내리는 결과물이 이어졌기 때문에 완벽하게 개념을 잡고 공부하려는 접근이 필요해 보였습니다. 그 상태로 복습, 응용문제는 더 큰 산처럼 느껴질 뿐이었습니다.

물론 이 도서를 모두 읽는다고 해서 경제학자가 되는 것도, 전문성을 갖추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이 내용들을 모른다고 살아가는데 지장이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무엇인가를 알고 있는 것과 아닌 것은 분명한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그저 경제학 용어들을 훨씬 익숙하게 만들어줄 뿐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쉽게 다가갈 수 있게 할 것이며, 그런 익숙함이 유연성을 선사할 것입니다. 물론 내용들을 전부 이해한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어차피 욕심일지도 모르기 때문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느낌은 비전공자 입장에서 바라본 경제학 원론 서적의 느낌이기 때문에 더욱 힘들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또한 이 독서에 어떠한 의미가 있었는지 계속해서 스스로 되묻기도 했습니다. 최종적으로 경제학과 친해졌는가에 대한 질문에도 그렇다고 할 수 없을 만큼 이론들의 나열로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만약, 경제학의 기본개념과 이론을 봐야 한다면, 이 도서를 추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결국 끝을 냈고, 이전 전공 서적에서 느꼈던 딱딱함과 비교하면, 나름 부드럽고 유연성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필독서는 아니겠지만, 적절한 상황에서 이론을 이해하기엔 적합한 도서인 것 같습니다.


아쉬운 점

  • 말도 되지 않게 어마어마한 분량 때문에 시작부터 겁을 먹을 수 있습니다.

이는 전공 서적이 주는 압박감도 있지만, 경제학이라는 다소 어려운 분야라는 특수성도 한몫합니다. 하지만 그런 분위기를 유머러스함으로 풀려는 시도가 곳곳에 보이고, 흐트러진 집중력을 보완하기 위해 넣은 요소들이 눈에 많이 들어옵니다. 그것들이 모두 효과가 있었는지는 무조건 긍정적인 답을 할 수는 없겠지만, 어느 정도는 분명 분위기를 환기하는 요소가 된 것 같습니다.

  • 이론서이기 때문에 실생활에 대한 접목을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 있습니다.

본문에서도 이해를 돕기 위한 단순화를 할 정도로, 경제학은 실생활과 접목하기에 어려움이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론들만 가지고선 특별하게 적용할 요소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낯설었던 경제학 용어들이 친숙하게 다가오고, 이 때문에 좀 더 자연스럽게 뉴스나 신문을 보기 수월해질 것 같습니다. 어쩌면 거기서 발생하는 유연함이 해당 도서의 진정한 가치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 국내 정세 위주가 아닌 미국을 기준으로 내용이 전개됩니다.

물론 본문이 끝나고 부록으로 국내의 통계 자료가 삽입되어 있긴 합니다. 하지만 모든 내용이 끝난 뒤라서 내용이 잘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차라리 원작자의 본문 내용을 다소 침해하더라도 함께 배치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 다소 불친절한 전개 때문에 이해도가 떨어질 수 있습니다.

챕터마다 나오는 연습문제는 정답만 나오고 특별한 해설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또한 결과 부분에 나오는 복습 문제와 응용문제는 정답이 나와 있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이 때문에 다시 한번 앞선 이론들을 살펴보고, 계속 고민하게 되면서 오히려 이해도가 높아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에 만족하지 못한다면, 또 다른 문제 해설책을 사야 한다고 필요성을 느낀다면 전혀 만족스럽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총 평

원론서가 주는 압박감, 분량이 주는 자연스러운 피로도를 조금 완화하는 여러 시도가 엿보이는, 전공서이지만 전공서답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는 해당 도서는 전체적으로 이론에 입각한 기본 개념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 나갑니다. 경제학을 공부한다고 전문가가 될 수 없지만, 나름의 익숙함을 통해 유연성을 습득할 수 있으며, 정답을 제시하지 않거나 해설을 따로 하지 않아 이해도를 더 높이기도 합니다. 물론 다시 한번 읽어볼 용기가 쉽게 날 수 없는 도서이지만, 전공서가 갖는 딱딱함은 훨씬 적기 때문에 딱 한 번 이론을 공부하고 싶다면 선뜻 추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평점

★ 5개 만점

★★★ (주제 7 구성 7 재미 5 재독성 4 표현력 7 가독성 7 평균 6.16)

전공서는 전공서지만, 만약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반드시 고를 전공서.


감상자(鑑賞者)


https://blog.naver.com/persimmonbox/223195561017

이 모형은 단순화되어 실체와는 많이 다르다. 그러나 실체와 다른 단순성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이 비현실적인 단순성 때문에 인체의 구조가 어떻게 생겼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 P24

그래프만으로 인과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완벽한 요령은 없다. 그러나 라이터가 암을 유발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누락변수)과 미니밴이 아기를 낳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뒤바뀐 인과관계)만 기억한다면 잘못된 경제적 주장을 전개하는 실수를 범하지는 않을 것이다. - P55

마지막으로 탄력적인 수요곡선과 비탄력적인 수요곡선을 기억하는 방법을 하나 소개한다. 그림 (a)와 같은 비탄력적인(Inelastic) 곡선은 영어의 I 자를 닮았다.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시험 볼 때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 P109

앵무새도 ‘수요와 공급‘이라고 말하는 법만 배우면 경제학자가 될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4, 5장을 통해 여러분은 이러한 농담이 일리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 P125

이런 현상을 외부효과(externalities)라고 한다. 외부효과가 존재할 경우 경제적 후생은 소비자가 느끼는 가치와 생산자의 비용 외에 다른 요소의 영향을 받는다. 소비자나 생산자는 소비량이나 생산량을 결정할 때 이러한 외부 효과를 고려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사회적 관점에서 시장균형은 비효율적일 수 있다. - P175

이런 의미에서 자유무역은 모든 사람을 이롭게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자유무역이 실제로 모든 사람에게 이로운가? 현실적으로 패자에 대한 보상은 흔히 일어나지 않는다. - P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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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2019 제43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김초엽 지음 / 허블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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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어딘지 알 수 없는 흐릿한 느낌의 하늘을 담은 표지의 그림은 여러 행성이나 태양처럼 보이는 구체들이 떠 있었습니다. 이는 영상화된 우주 배경의 영화들과 닮아 있었으며, 해당 도서가 전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전반적인 분위기인 SF 소설이라고 하지만 어딘지 친근한, 현재의 상황과 비슷하기에 어딘지 모호한 느낌을 적절하게 담아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때로는 몽환적으로 느껴지는 표지를 시작으로 이어질 내용들이 궁금하게 만들었고, 처음부터 누군가에게 쓰는 편지를 읽는듯한 방식으로 시작됐습니다. 지금보다 150년은 뒤의 세계로 우리가 살고 있는 곳과는 분리된 다른 장소를 보여주는 배경을 담고 있는, 편지라는 형태로 소개하는 듯한 초대장을 낭독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것은 저자가 보여주고픈 세상으로의 초대장처럼 느껴졌으며, 앞으로 펼쳐진 이야기들이 여러 감정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것을 넌지시 알리고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SF 세상으로의 초대가 아닌 감성적인 세상으로의 초대를 받았다는 것으로 인지했고, 묘한 기대감이 들었습니다.

물론 해당 도서가 소설집이기에 보여주는 시대적, 장소적 배경이 계속해서 바뀌어 혼란스럽기도 했습니다. 바깥에서 시작해 뚜렷하게 분리된 지구의 사회, 다시 외국을 거친 뒤 한국으로 돌아오기도 했습니다. 그 이야기들은 때로는 미래를, 또 다른 현재를, 더 나아가 우리들 틈에 섞여 있는 다른 지적 생명체들의 이야기를 담아냈습니다.

어쩌면 아예 다른 행성들의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런 복잡한 상황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풀어냈고, 흥미와 매력을 충분히 유발하도록 하는 표현들이 많았습니다. 특히 더 이상 운영되지 않는 정류장에서의 대화는 스스로에게 많은 생각을 던져주었습니다. 우리가 나아갈 방향과 가져야 했을 마음가짐 등을 떠올려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만약 그녀와 같은 입장일 때, 그의 말처럼 쉽게 포기하고 잊을 수 있을지의 물음에서 시작된 그 말들은 그녀가 원하는 것이 결국 가져본 적 없는 것에 대한 욕심일 수도 있고, 아직 고향이 되지 못한 그곳을 막연하게 동경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이런 흥미로운 전개에서 지속적으로 나오는 '이해'라는 개념은 다소 쉽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 영역인 것 같습니다. 그들이 살아온 시간, 환경, 문화, 경험, 시대, 그리고 각자가 가지고 있는 고유성까지 모두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저 유추할 뿐이며, 타인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흔히 말하는 타인에 대한 이해는 일부의 공감인 것 같습니다.

공감이란 타인의 감정을 아는 것이지 이해하는 것과는 다른 개념입니다. 사전적 의미로는 이해한다고 하지만 어쩐지 그 가운데 '유사한'이 빠져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정확한 표현은 공유하는 유사한 감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쨌든 저자는 그런 부분들을 다소 무시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자신만의 감정으로 내용을 전개해 나갔고, 우리들의 정서에 맞게 잘 풀어 나갔지만 자신만의 시선에 갇힌 듯 보였습니다. 그저 남을 이해하고 싶다는, 알고 싶다는 욕심이 만들어낸 결과물처럼 보였습니다.

물론 각 내용들은 서로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것이 아닌, 저마다의 다른 우주, 다른 지구, 다른 대륙, 다른 국가를 담아내고 다른 시간 속에 있습니다. 그래서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하는 듯 느껴질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몇몇 내용들은 서로 유사하고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기까지 합니다. 그 안에서 느껴지는 지속적인 '이해'는 각 내용들을 강제적으로 묶고 있는 듯 보이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각 이야기들은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사실들이나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 혹은 과거에 있었던 이야기들을 시간 관계없이 엮은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그 각자를 살아가는 어떤 존재가 분명 있습니다. 그들을 창조해낸 이가 있지만, 창조 뒤에는 자연스럽게 살아가게 바라보아야 합니다.

창조해낸 이가 절대자로 권력을 휘두르며, 그들을 내가 만들었기 때문에 상관없다고 한다면, 아무런 특별함을 갖추지 못한, 그저 생명력이 존재하지 않는 꼭두각시 인형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모든 내용들은 허구라는 틀에 갇혀 활력을 잃게 될 것입니다.

마치 그들을 타인처럼, 자신의 관점에서 파악하고 받아들이고, 거기서 새로운 시선을 만들어 내야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 않은 채 '이해할 수 있었다' 말해선 안됐습니다. 그래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 의도가 더욱더 불분명하게 느껴졌고, 후반에 이르러 완벽하지 못한 세상에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들을 '이해'하고 싶었던 욕심이 만들어낸 촌극으로 느껴졌습니다.

분명 매력적이고 뛰어난 문장이 있고, 여러 생각이 들게 만드는 어휘를 선택했고, 그것을 자신만의 문체에 담아냈습니다. 하지만 편협한 시야를 드러내고, 오만함이 느껴지기까지 하는 부분들은 아쉬움으로 남았습니다. 그것들을 표현할 때, '어느 정도'나 '약간' 등의 유연함을 보여주었다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아쉬운 점

  •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설정들이 많아서 새로움이 다소 떨어집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익숙한 정서에 맞게 잘 꾸려나가기는 했지만, 설정 자체는 크게 새롭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미래에 대한 상상보다는 감성적인 면에 초점을 맞춘 듯하며, 감정을 더 많이 담아낸 것 같습니다.

  • 지나치게 누군가를 '이해'했다고 말하는 시선이 다소 편협하게 느껴졌습니다.

타인을 온전히 알고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운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이해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들을 '어느 정도' 이해했다는 표현이 추가됐다면, 더 부드럽고 탄탄한 감정들이 올곧이 전달됐을 것 같습니다.


총 평

나쁘지 않은 시작을 통해 초대장을 날렸으나, 새롭지 못한 설정들이 연이어 등장했습니다. 하늘 아래 새로움을 찾기가 어렵다지만, 그것을 진즉에 포기하고 감성적인 면에 초점을 맞춘 듯 보였습니다. 그래서인지 공감을 넘어선 이해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듯 보였습니다. 타인을 온전히 아는 것에 대한 지나친 확신이 느껴졌으며, 그 편협함에 다소 사로잡힌 것 같았습니다. 어쩌면 조금은 혹은 어느 정도는 이해했다는 식의 유연함이 있었다면, 보여주고자 하는 배경과 감정적인 면들을 더 제대로 전달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물론 어떤 이야기는 스스로에게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드는 질문을 던지듯 만족스럽기도 했지만, 결국 그것을 뛰어넘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웠습니다.


평점

★ 5개 만점

★★★ (주제 4 구성 6 재미 7 재독성 5 표현력 7 가독성 7 평균 6)

다소 익숙한 배경을 감성적으로 풀어내려는 좋은 시도가 편협함에 갇혀버린 아쉬움.


감상자(鑑賞者)


https://blog.naver.com/persimmonbox/223193093379

그때 나는 알았어.
우리는 그곳에서 괴로울 거야.
하지만 그보다 많이 행복할 거야. - P54

하지만 희진은 이해하고 싶었다.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믿고 싶었다. 루이의 연속성을, 분절되지 않은 루이의 존재를. - P91

행성 연작은 사람들에게 특정한 종류의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류드밀라의 행성을 볼 때 사람들은 무언가 놓고 온 것, 아주 오래되고 아득한 것, 떠나온 것을 떠올렸다.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그리워하는지 모르면서도 눈물을 흘렸다. - P104

"언제든지 떠날 수 있다고 했지."
"바꿔 말하면, 언제가 되어도 떠날 기약이 없다는 말이죠." - P172

하지만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조차 없다면, 같은 우주라는 개념이 대체 의미가 있나? - P181

우리가 아무리 우주를 개척하고 인류의 외연을 확장하더라도, 그곳에 매번, 그렇게 남겨지는 사람들이 생겨난다면······. 우리는 점점 더 우주에 존재하는 외로움의 총합을 늘려갈 뿐인 게 아닌가. - P181

"나는 내가 가야 할 곳을 정확히 알고 있어." - P182

나는 순간 보현을 위로할 수 있는 어떤 언어도 나에게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무언가 중요한 것이 가슴속에서 빠져나가버린 듯 싸늘했고, 나는 그게 생각이나 관념이 아닌 실재하는 감각임을 알았다.
그제야 어설프게 그녀를 이해할 수 있었다. - P218

"이제······."
단 한마디를 전하고 싶어서 그녀를 만나러 왔다.
"엄마를 이해해요." - P271

재경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그래, 굳이 거기까지 가서 볼 필요는 없다니까. 재경의 말이 맞았다. 솔직히 목숨을 걸고 올 만큼 대단한 광경은 아니었다. - P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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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 온 더 트레인
폴라 호킨스 지음, 이영아 옮김 / 북폴리오 / 2015년 8월
평점 :
절판


감상

어딘가를 빠르게 지나갈 때나 빠르게 움직이는 물체 위에서 외부의 공간을 바라보거나 사진을 찍을 때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겉표지는 사진을 좋아하거나 자주 접했던 이들에게는 다소 친숙하고 관심을 끌 수 있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과거와 다르게 요즘은 누구나 휴대폰을 이용해 사진을 찍을 수 있기 때문에 가장 일상적인 풍경이 될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기차 위의 여자는 우리와 같은 기차를 탄 승객이며, 또 어쩌면 우리들 자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저 그 시선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의 차이만을 나타내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처음 시선을 보여준 레이첼은 도서의 전체적인 흐름을 통해 현재를 이야기했습니다. 마치 그녀 혼자 열차 위에 있는 듯 보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를 포함한 총 세 명의 인물을 중심으로 내용이 전개됐으며, 각기 다른 시간 속에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이야기는 조금씩 하나의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저 다른 위치에서 열차를 탔을 뿐, 다른 시간에 탔을 뿐이었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시선은 레이첼이었고, 시작과 끝 모든 부분에 관여하는 만큼 그녀만 진실일 것 같다는 착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하지만 그녀를 좋은 시선으로 바라보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결함이 많이 느껴졌으며, 어딘지 퍽퍽하고 마른 모래처럼 푸석했고 냉소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정확히는 냉소적이라기보다는 의도적이고 과하게 감정을 감추고 있는듯했습니다.

또 억지로 자신의 상처 입음을 숨기고, 온갖 상상력으로 누군가를 창조해 내는 모습을 보이면서, 때로는 바보 같아 보이기도 했지만, 어떤 면에서는 창의적이기도 했습니다. 허구지만 허구가 아닌 허구의 전혀 다름일지 모르는 그들을 통해 행복한 자신을 꿈꿨으며, 정말 완벽한 꿈일지 알 수 없는 의문만 남기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녀에게 완벽해 보였던 커플의 이야기는 끝까지 완벽으로 남아야 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과거를 송두리째 부정한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단지 그들 사이에 원치 않는, 불청객이 끼어들었을 뿐이라며, 그 불청객을 찾는 것에 적극적으로 임합니다.

자신의 그런 행동이 어떤 부정적 영향을 끼칠지는 고려하지 않은 채, 그저 눈앞에 있는 목적지를 향해 맹목적으로 달리는 듯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는 한없이 이기적인 모습으로 느껴져 혐오감까지 들 정도였습니다.

물론 이런 모습은 다른 두 명의 인물에게도 똑같이 느껴졌습니다. 한 명은 자신밖에 모르는 모습을 계속 보여주면서, 자신을 위해 남을 깎아내리고 상처 입히는 걸 아무렇지도 않게 행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쉽게 과장을 했고, 그 뒤의 일은 '나'의 일이 아니라는 듯 행동했습니다.

또 다른 인물은 자신의 행복이라는 이름 하에 불륜을 저지르면서, 자신 때문에 상처 입을 배우자를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고, 그런 행동을 하게 만든 것에 책임을 물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스스로에게 솔직하지 못했습니다. 분명 더 의심할 수 있는 인물이 있었음에도 외면했고, 자신의 모습이 상처를 줄 것이라는 것을 알았으면서도 오히려 더 의도적으로 상처 주기 위해 내뱉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본인이 상처 입을 수도 있다는 것은 철저히 외면할 뿐이었습니다.

그들에게 다가올 진실은 당연히 잔인하고 고통스럽습니다. 그래서 피하고 싶고, 외면하고 싶지만 끊임없이 모습을 드러내며 결국 눈앞까지 다가옵니다. 그렇게 진실이라는 이름의 태풍은 우리의 피부를 직접적으로 때릴 것입니다. 어쩌면 그녀들에게 필요한 것은 진실을 파헤치는 과정보다, 그 고통이 조금이라도 완화되거나, 충분히 이겨낼 수 있는 힘을 갖추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분투했고, 발버둥 쳤으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성장하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을 동정하거나, 위로하거나, 편을 들어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기엔 너무도 혐오스러운 모습을 보였고, 결과적으로도 온전히 성장하고 독립적이면서 이상적인 존재가 되었는지에 대해서도 쉬이 답을 내릴 수 없었습니다.

사실 그들만 혐오스러운 것은 아니었고, 해당 도서에서 그렇지 않은 사람을 찾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모두가 어딘지 혐오스러운 모습을 보였고, 이기적이었습니다. 그저 조금 더 심하거나, 덜한 정도로만 보였습니다. 가장 이성적인 모습을 보이는 듯한 정신과의 선생님조차 자신의 욕망을 이따금 조절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으며, 경찰들은 색안경 끼고 행동했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이 모든 것들이 크게 상관없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녀들뿐 아니라 우리들도 언제나 일정 부부 외면하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따금 타인을 위해서 행동하지만 대부분은 자신을 위해서,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쪽으로 몸을 움직입니다. 결국 그들은 우리 자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저 우리가, 아니 내가 톰이 아니기를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아쉬운 점

  • 자극적인 요소들이 연속적으로 등장하곤 합니다.

이는 호기심을 자극하고 책의 재미를 끌어올리는 요소가 될 수도 있지만, 너무 빈번하고 당연하게 여겨지는 불륜이 너무도 쉽게 표현됨으로써 문화의 차이인지 생각의 차이인지 혼동을 느끼게 됩니다. 그렇다고 그 과정과 그들의 행동을 모두 세부적으로 묘사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들을 담아내는 것으로 다소 역함을 느끼게 만들기도 합니다. 이런 역함은 전체 등장인물들까지 확장함으로써 하나의 분위기로 만들어 내지만, 이 때문에 도서를 덮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일관적이지 않고, 뒤죽박죽 엉켜있는 듯한 시간의 흐름이 도서가 다소 복잡하게 느껴지게 합니다.

물론 각 인물들이 겪는 시간이 다르고,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적절한 선택으로 보이지만, 한쪽으로만 흐르는 시간의 전개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복잡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어쩌면 일반적인 이야기 흐름 속에서 이따금 등장하는 회상 정도의 표현이 적절하다고 믿을 수도 있지만, 분명 서로가 느끼는 시간은 다르기 때문에 이와 같은 표현 방식이 오히려 정확한지도 모르겠습니다.

  • 역한 모습을 지속적으로 보여주는 모든 인물들 때문에 도서의 내용 자체가 역함만 남을 수 있습니다.

어느 인물 하나 빼놓지 않고 이기적이고 자기 자신만을 위주로 모든 것을 바라보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기본적인 인간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표현한 듯 느껴집니다. 이는 실제 우리들의 모습일 수도 있지만, 도서를 통해 환상을 꿈꾸거나, 평소 '나는 다르다'라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거부감이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대부분 남보다는 나를 위해 행동하며, 아주 가끔 타인을 위해 움직이는 존재입니다. 그러한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독서에 문제가 없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심한 저항으로 다가올 것 같습니다.

  • 결코 그 누구도 해피 엔딩을 맞이하지 못합니다.

누군가는 죽음을 겪고, 누군가는 비밀을 끌어안은 채 살아가게 됩니다. 분명 문제는 해결되었지만, 그 누구도 제대로 성장하지 않은 듯 보이며, 어느 하나 온전하게 이익을 얻거나 행복을 쟁취하지 못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면서, 비관적인 시선을 많이 갖춘 저자의 생각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기본적으로 이기적인 우리들의 모습을 대변하지만, 어느 누구도 행복해지지 못했다는 사실이 안타깝고, 부정하고 싶어 거부감이 들 수도 있습니다.


총 평

열차 위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어느 사이엔가 다른 인물들의 시선과 시간으로 펼쳐지며, 이곳저곳에 이야기를 뿌립니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결국 '선로의 끝'을 향해 있으며, 하나의 결말로 모든 이들의 목소리가 집중됩니다. 결국 그것들은 하나로 합쳐지며, 진실이라는 이름의 현실에 다다릅니다. 그곳에서 또다시 각자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지만, 그 누구도 행복해지지 않는, 결코 성장하지 않은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현실보다 더 현실성이 느껴졌습니다. 그들의 모습은 어쩌면 당연히 외면할 수밖에 없으며, 우리가 왜 현실을 외면하려 하는지를 말하는 듯했습니다. 어쩌면 그들 자신이 결국 우리들의 일부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려는 것 같았습니다.


평점

★ 5개 만점

★★★☆ (주제 7 구성 6 재미 7 재독성 6 표현력 8 가독성 8 평균 7)

선로의 끝에 다다른 열차에서 각기 다른 곳으로 다시 나아가는 인물들의 불행한 결말이 현실처럼 씁쓸함으로 다가온다.


감상자(鑑賞者)

나는 모퉁이에 멈춰 서서 굴다리 안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그 차갑고 습한 냄새를 맡을 때마다 항상 등골이 오싹해진다. 밑에 뭐가 있나 보려고 바위를 뒤집었다가 이끼와 벌레와 흙을 본 것처럼. - P45

뭔가가 보일 듯하다가, 어떤 말이 들릴 듯하다가 또다시 저만치 달아나버린다. 도무지 잡히지가 않는다. 잡힐 듯하다가도 마지막 순간 내 손이 닿지 않는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춘다. - P70

그는 나를 답답해하기 시작했다. 왜 가져보지도 못한 것을 그리워하고, 그것 때문에 슬퍼하는지, 그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나 혼자만 불행한 것 같았다. - P118

내 안의 착한 천사들이 이번에도 술에게, 그리고 술에 취하면 나타나는 인격에게 지고 말았다. 주정뱅이 레이첼은 뒷일을 생각하지 않고, 과도하게 마음이 넓어지고 태평해지거나 아니면 미움에 빠져버린다. - P155

알아내야 한다. 기억이 되살아날지도 모른다. 무슨 까닭인지, 내가 중요한 뭔가를 잊고 있다는 확신이 든다. 어쩌면 나 자신을 속이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내가 쓸모없는 인간이 아니라는 걸 나 자신에게 증명해 보이려는 욕심. - P216

하지만 그럴 리가 없다. 그의 충격과 고통은 거짓이 아니다. 이렇게 연기를 잘하는 사람은 있을 수 없다. - P293

경찰이 그 여자를 어떻게 처리할지 모르겠다. 접근하지 말라고 경고하는 정도로 끝낼까? 어쨌든 금지 명령 같은 걸 알아보기 시작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톰을 위해서라도 거기까지는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 P339

내게 이런 얘기를 하는 그녀가 밉다. 그녀의 얘기를 믿는 것 같은 나 자신도 밉다. 난 어쩌면 톰이 거짓말쟁이라는 걸 처음부터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예전엔 그의 거짓말이 내게 편리했을 뿐이다. - P392

그가 꼼수를 쓰고 있는 거다. 그는 늘 이런 식이다. 모든 게 내 잘못인 것처럼 느끼게 만들고, 나를 쓸모없는 인간으로 느끼게 만드는데 등한 사람이다. - P443

헤어지기 직전에 그녀가 내 팔을 잡았다. 그러고는 "잘 지내요."라고 말했는데, 그 말이 왠지 경고처럼 들렸다. 나는 그의 목을 찌를 수밖에 없었고, 애나는 그를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서로 입을 맞추어 말한 우리는 그 진술에 영원히 얽매어버린 공범자들이다. - P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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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번째 내가 죽던 날
로렌 올리버 지음, 김지원 옮김 / 북폴리오 / 2017년 5월
평점 :
절판


감상

내용도 모르고, 읽어야 할 필요성이나 이유 등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시작한 도서였지만, 강렬한 표지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정말 강렬한 그 눈이 계속해서 붙잡는 듯한 느낌이 들었으며, 계속 그 눈을 봐야 한다고, 봐 달라고 하는 것 같았습니다. 본문과 어떠한 연관이 있는지, 그 표지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의문을 품은 채 첫 장을 펴게 됐습니다.

그 어떤 중대한, 무게감 있는 이야기도 없이, 끊임없이 수다 떨듯 내용들이 이어졌습니다. 시답잖은 이야기로 보이는 내용들이 나열됐고,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어느 순간 온전하게 책에 집중하고 있었으며, 알 수 없는 흡인력을 느끼게 됐습니다.

어쩌면 죽음이, 삶의 종착지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라는 듯 덤덤하게, 아무렇지 않은 듯 녹여내는 문체들이 자연스럽게 책에 몰입하도록 만들었습니다. 물론 꼭 가까운 것이 아니라고 해도 우리 주위에는 언제나, 늘 죽음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지금도 어딘가에선 누군가 죽고 있을 것이며, 우리도 언젠가 죽을 것입니다. 그렇게 죽음은 늘 우리와 함께 합니다. 그저 망각할 뿐이며, 그녀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그저 죽음이 항상 함께하는 그 하루에, 그녀가 온전히 갇혀있다는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그렇다고 그 감옥에서 무기력하게 석방의 시간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끊임없이 그 안에서 변화를 꾀했고, 그 때문에 늘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됐습니다. 무엇인가 감춰진 비밀이 있는 것 같았고, 조금씩 정체를 드러냈습니다.

어쩌면 그녀는 그저 과하게 어떤 일들을 받아들이고, 그 과대망상이 반복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착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자신의 죽음에 대한 외면이 만들어낸 환상이거나, 그때의 죄책감이 보여주는 자신의 본모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계속해서 하루는 반복됐으며, 늘 죽음이 함께하는 그녀의 하루는 여섯 번째 반복에 이르러 지금까지와는 다른 분위기를 보였습니다. 밝고 경쾌했으며, 그녀의 표현처럼 모든 것을 바꿀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까지 느껴졌습니다. 그렇지만 불쑥 들어오는 한 남자의 폭력성과 비아냥대는 여자들의 역겨운 목소리가 그것이 결코 쉽지 않음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그녀가 모든 굴레를 벗어난다거나, 행복한 결말을 원할 수는 없었습니다. 독서가 진행되고, 뒷부분에 이르렀을 때 그녀의 존재나 가치는 역함이 함께 했기 때문입니다. 아주 사소하고 조금의, 일부분만을 보고 정의로워지겠다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또 어떤 비밀이 있을지, 자신이 어떠한 존재인지 그저 외면하고 순진한 척 행동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녀는 지금까지 많은 시간 동안 패거리들과 함께 저질러온 잘못을 고작 하루에 용서받을 수 있다는 듯 행동했습니다. 그보다 더 긴 시간 동안 고통받았던, 일곱 번의 하루 중 여섯 번을 죽었던 그 존재에 대한 반성을 고작 죽음으로 한방에 해결한다는 논리를 피력했습니다.

그렇게 누군가를 살렸지만 다시 자신의 죽음으로 끝맺으면서 나름 성공적인 모습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결국 처음과 거의 같은 상태처럼 보였고, 되돌아가는 모습처럼 느껴져서 절대로 해피엔딩에 다다를 수 없을 것 같았고, 무책임한 행동으로만 보였습니다. 오히려 그녀는 절대로 정의를 말할 수 없음을, 절대로 좋은 사람이 될 수 없다는 사실만 확고하게 만든 것 같았습니다.

그녀의 이기적인, 순진한 척하는 죽음이라는 선택 때문에 또다시 누군가는 슬퍼하고 그리움이나 죄책감 때문에 고통받는 이가 만들어질 것입니다. 결국 그녀는 완벽한 해결을 만들어 낼 수 없었으며, 그런 존재가 아니었기에 어딘가에서 또다시 다른 죽음을 가까이한 상태로 또 하루를 반복하고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영원히 그 안에 갇힌 상태로 또 다른 시도를 하고, 벗어날 수 있으리라는 헛된 희망을 갖고 있지만, 또다시 절망하며, 끊임없이 고통받고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반복되는 시간이라는 지옥 안에서 그녀는 존재할 것입니다.

그러다 반복 중에서 어느 하루는 그녀가 진정으로 개과천선하면서 또 다른 결말을 만들어 낼지도 모르겠지만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 보입니다. 단지 그때는 지금보다 더, 하루를 표현하는 그녀의 목소리와 문장들이 더욱 진해져 있을 것이며, 짙어져가는 하루의 상세함은 또다시 같지만 다른 하루를 탁월하게 묘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같지만 다른 모든 인물들을, 그들의 이야기를 더욱 상세하게 담아낼 것입니다.

그래서 표지에서 보여주었던 눈은, 그녀의 눈이 아닌 반복하고 있는 그녀를 바라보는 독자들의 눈이며, 그녀에게 그런 무서운 형벌을 내린 특별한 존재의 시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도서는 여러 의문들을 던져놓고, 그것에 대해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은 채, 마무리를 내버렸고, 어쩌면 더 이상의 반복이 불가피함을 피력하는 듯 보였습니다.


아쉬운 점

  • 폭력을 행하는 누군가의 행동들이 다소 과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잘못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요소이지만, 어느 순간 역함을 느낄 정도로 세세하게 묘사됐고, 폭력적이고 강압적인 태도를 가진 이들을 많이 등장시킴으로써 결코 단순한 판타지가 아님을 지속적으로 어필합니다. 이 모든 요소들이 도서의 전체 분위기를 살리는 데는 탁월하지만 불편함을 느끼게 될 수도 있습니다.

  • 끊임없이 수다 떨듯 전개되는 이야기 때문에 초반 집중에 방해가 될 수 있습니다.

너무나도 일상적인 이야기, 별것 없이 시작되는 하루가 반복이라는 특별함을 갖추기 전까지는 그저 수다스러운 재잘거림처럼 느껴지곤 합니다. 하지만 순식간에 몰입하게 되고, 이러한 일상이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다는 사실을 더욱 강하게 보여줌으로써 처음의 분위기는 더 이상 유지되지 않으며, 점점 더 그녀의 이야기에 집중할 수밖에 없게 만듭니다.

  • 열린 결말이라고 보이는 마무리 없는 마무리가 당혹스러울 수 있습니다.

그녀의 이야기가 어떻게 마무리되는지, 어떠한 결론에 도달했는지 보여주지 않은 채, 만족스러워하는 듯한 상태로 도서가 마무리됩니다. 하지만 이는 그녀가 진정으로 성숙해졌다거나, 용서받았다는 것에 대한 저자의 의견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 더 이상 이야기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표현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비록 마무리는 없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적절한 마무리로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총 평

시시콜콜하고 수다스럽게 시작된 이야기들은 어느 사이엔가 특별함을 갖추고, 반복에 집중하게 됩니다. 또한 같지만 묘하게 다른 하루의 표현들과 점점 선명하게 표현되는 이후의 하루들에 더욱 궁금증이 생기며, 그 안에서 보이지 않았던 이야기들이 수면 위로 드러나자, 그녀에 대한 평가나 시선들이 순식간에 역함으로 역전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스스로 성장했다고 하지만, 자신의 죽음으로 모두 대갚는다는 식의 엉터리 논리는 결국 전혀 성장하지 않았음을, 결코 용서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더욱 굳세게 만드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마무리하지 않은 마무리가 더욱 진하게 느껴졌으며, 그녀는 또다시 반복이라는 굴레의 지옥에서 또 다른 시도를 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평점

★ 5개 만점

★★★☆ (주제 6 구성 8 재미 7 재독성 6 표현력 8 가독성 7 평균 7)

마무리하지 않음으로써 결코 용서받을 수 없다는, 또다시 반복이라는 지옥에 갇혔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마무리.


감상자(鑑賞者)

대부분은 오늘 밤이 내일 밤으로 변하고 한주가 그다음 주로 뭉쳐지고 한 달이 다른 달과 뒤섞인다. 그리고 늦건 빠르건 우리 모두 죽는다. - P61

자.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너도 알겠지. - P135

그가 단풍나무를 언급하자마자 기억이 물 표면을 뚫고 밖으로 튀어나오듯이 솟구쳐 올랐다. - P149

나하고 안 맞는 일이라. 그 말이 무슨 뜻인지조차 모르겠다. 그런 걸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고. 나는 평생 해 왔던 일들을 하나하나 떠올려 보려고 했지만, 내가 어떤 사람인지 말해 줄 만한 뚜렷한 일이라곤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 P251

아마도 이게 비결인 것 같다. 변하지 않고 예전과 똑같기를 바란다면, 그저 고개를 들고 위를 올려다보면 된다. - P298

하지만 너무 늦었다. 나는 미끄러지고 있었다. 내가 사라지고, 그가 사라지고, 시간이 휘어지고, 그렇게 밤이 되어 꽃잎을 오므리는 꽃처럼 되돌아간다. - P357

게다가 오늘은 내 새로운 시작의 첫날이다. 지금부터 나는 잘못을 바로잡을 것이다. 다른 사람이, 더 좋은 사람이 될 것이다. 사람들이 그냥 기억하는 게 아니라 뚜렷하게 기억할 만한 사람이 될 것이다. - P386

이제 모든 게 이해가 갔다. 린지의 분노, 줄리엣 사이크스를 막아 달라는 듯 항상 손가락으로 십자가를 그리던 행동. 린지는 줄리엣을 미워하지 않았다. 두려워했던 거다. 린지의 가장 오래되고, 아마도 가장 끔찍한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 줄리엣 사이크스.
그리고 이제는 모든 것이, 가능성과 무작위성 모두가 어리석게만 느껴졌다. - P410

나는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
"태워다 준 거랑 또 다른 모든 것들 때문에."
어둠 속에서도 그의 눈이 고양이처럼 반짝이는 게 보였다. - P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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