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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지음 / 창비 / 2022년 9월
평점 :

감상
알록달록 아기자기한 느낌의 표지가 주는 귀여움과 작은 사이즈에 한 페이지당 고작 스무 줄로만 채워져 있는 도서는 시작을 죽음으로 열었으며, 제대로 알아보기 어려운 사투리들로 이야기를 하곤 했습니다. 이와 함께 등장한 한문이 아니었으면 이해하기 힘들었을 단어들이, 옛말들이 자주 등장했고, 이 때문에 독서의 과정은 무척 더디게 되었습니다.
몇 번씩 그들의 대사를 다시 읽어야만 했고, 요즘과 달리 길고 부차적인 말들로 서로의 언어들을 꾸며주었습니다. 오직 내용을 전개하는 화자만 표준어를 구사했을 뿐이었고, 대부분의 말들은 어렵게만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더 깊이 있는 내용들로 다가왔고, 상황을 빠르게 인지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더 확실하게, 사실적인 상상을 하게 했고, 어쩌면 더딘 시간은 그 상상에 빠져 그만큼 시간이 흘려버렸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표현들이 부질없거나 쓸데없다고 느껴지지 않았으며, 요즘은 보기 힘든, 어쩌면 전통적이고 과거부터 이어져 오던 소설의 참 형태를 유지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것을 뒷받침하듯 자꾸만 책장을 앞으로 넘기며 좋은 구절들이 많음을 느꼈습니다. 그만큼 이야기에 매료되기 충분했고, 어딘지 강하고 짙은 여운을 계속 남겼습니다.
이런 말들로 표현되는 전반적인 내용들은 사회주의에 대한 이야기를 했고 이데올로기적 대립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또한 여호와의 증인을 언급하면서 종교적인 부분들도 다루고 있기에 결코 쉬운 독서가 되지 않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사회주의에 대한 시선은 화자를 통해서 냉소적으로 담아냈습니다. 그 말들은 날카로운 칼 같았으나, 그것과는 별개로 벌어진 사건은 비극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마치 하나의 사실이나 진리 등을 가운데에 두고 옳고 그름으로 편이 갈려 대립하고 있는 듯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종교는 무척 호의적으로 묘사했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이단으로 분류되고 부정적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어쩌면 정말 이단이며 사회적으로 악영향을 끼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에 대한 진실은 시간이 판단할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들이 옳았는지, 정말 그른지 분명하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직접 그것을 판단할 수 있는 눈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저 어떤 종교에서 말하는 '그들은 나쁘다, 사이비다'라는 말만을 믿고 따라서는 안됩니다.
정확한 판단을 위해서 그들이 실제로 어떤지 알아보아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것도 없이 편견을 갖고 무조건적인 부정을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지만 해당 도서에서 너무 많은 언급과 묘사를 했기 때문에 찬양처럼 느껴졌고, 과도한 반복이 불편한 감정을 만들어내기까지 했습니다. 어쩌면 조금은 덜었어야 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이런 논쟁거리들을 앞세운 저자는 그렇다고 특정한 사상이나 종교를 지지하거나 따르라는 식의 언급은 하지 않습니다. 그저 그것을 가운데에 두고 서로가 옳다고 싸우는 모양새를 만들어 냈으며, 또한 그 자체를 배경으로 활용해 아버지라는 존재를 이해하고, 그의 모든 날을 알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냈습니다.
물론 초반에는 그것들을 무조건적인 부정의 요소로 다루었습니다. 특히 여러 표현들을 통해 사회주의자의 딸로 살았던 지난 세월을 이야기함으로써 받았던 피해들을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그뿐, 어느새 그런 것들은 모두 제쳐두고 그저 아버지를, 한 인간을 온전히 바라보게 했습니다.
어쩌면 그 모습은 우리들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의 사실이나 진리 등을 가운데에 두고 아등바등 부대끼며, 때로는 싸우고, 또 때로는 웃으며 살고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진실이지만, 또 다른 이에게 거짓일 수 있으며, 누군가는 믿지만 또 다른 이는 믿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반대 급부의 생각을 가진 이들이 이 사회에서 언제나 뒤엉키고 있습니다.
그만큼 해당 도서는 특별히 특정 이데올로기나 종교를 강요하지도, 마냥 좋은 것이라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그 안에서 느끼고 겪었을 감정들과 여러 사건들을 담아냄으로써 아버지를 추억하고, 분명하게 그 존재를 느끼고 받아들이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어느 사이엔가 쉴 새 없이 눈물이 흘렀고, 온전하게 감정이입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들은 말미에 이르러 차분하게 정돈이 됐습니다. 그렇게 한 사람에 집중하게 했고, 그를 통해 우리를 되돌아볼 수 있게 했습니다. 그만큼 짙은 여운이 남아있었습니다.
분명 논쟁거리가 될 수 있는 이야기들이 있었지만, 어느 한쪽을 강요하지 않는 그들의 이야기는 그래서 더욱 냉정하게 바라볼 수 있었으며, 결국 불편할 수 있는 요소들이 전혀 불편하지 않게 다가왔습니다.
아쉬운 점
어려운 말들과 사투리들이 뒤섞여 내용을 쉽게 파악하기 어려웠습니다.
표준어를 구사하는 것은 화자 한 명뿐이며, 모두가 사투리를 쓰고 옛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한자로 이루어진 말들을 많이 쓰곤 합니다. 다행히 한자가 나오는 것 때문에 이해가 되기도 했고, 어느 정도 패턴에 익숙해져 자연스럽게 받아들 일 수 있었지만, 처음부터 나오는 이것들은 분명 독서에 방해가 되기 충분했습니다.
이데올로기적 논쟁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합니다.
물론 도서 자체는 그런 것들에 구애받지 않은 채, 배경으로만 사용하곤 했습니다. 정확히는 그것보다 사람에게 집중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배경은 계속해서 함께 했고, 누군가에는 그것만으로도 불편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하게 사람에 집중했음을 알고 끝까지 독서를 이어나가길 바랄 뿐입니다.
특정 종교에 대한 과도한 언급이 불편했습니다.
물론 그 종교를 맹목적으로 찬양하거나 지지하는 태도를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해당 종교를 권유하지도 않았지만, 생각보다 많이 언급되면서, 오히려 찬양하듯 보였고, 불편한 감정을 느끼게 됐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옳지 않다, 이단이다, 나쁘다는 판단을 한다면 직접적으로 알아보고 판단하기를 바랄 뿐입니다.
총 평
종교적, 이데올로기적 언급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지만, 결국 한 사람에 집중하며,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돌아보게 합니다. 어쩌면 그의 장례식은 이 세상을 축소해놓은 서로의 이념이 대립하는 장소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는 우리이며, 우리가 그, 그리고 모두이듯 결국 삶을 살아간 한 사람이며, 누군가의 아버지, 누군가의 남편이었습니다. 비록 그가 누군가는 지지하지 않는 이데올로기적 사상을 갖고 있다고 해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지만, 저자는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더욱 냉정하게 그들의 이야기를 바라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또한 그것들을 뒷받침하는, 흡인력 있고 매력적인 언어들은 조금은 떨어질지 모르는 가독성을 충분히 만회했습니다. 불편할 수 있는 요소들이 있지만 전혀 불편하지 않은 기분을 느끼게 됐습니다.
평점
★ 5개 만점
★★★★ (주제 9 구성 7 재미 8 재독성 8 표현력 9 가독성 7 평균 8)
부정적인 모습이건 긍정적인 모습이건 결국 한 사람, 한 남자, 한 아버지의 이야기.
감상자(鑑賞者)
https://blog.naver.com/persimmonbox/223198544128
그날 이후 아버지는 그에게 동생 대신이었다. 그러니 나는 동생이 살아 있었다면 용돈 쥐여주며 귀여워했을 조카였던 셈이다. 그 마음 쌩 깐 것이 늙어서야 마음에 걸렸다. 그래봤자 그때 그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나도 모르게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마음의 상처를 준 사람이 그만은 아닐 것이다. 인간이란 이렇게나 미욱하다. - P28
그런데도 두고두고 아버지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날, 아버지와 내가 무언가를, 사람 살이에 아주 중요할지도 모르는 무언가를 놓친 것 같다는 막연한 느낌 때문이었다. 그게 무엇인지 아직도 모르겠다. - P32
이가 하나도 없어 합죽이였던 할머니는 허리끈을 풀지도 못한 채 마루에 털썩 주저앉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고 합죽합죽 웃었다. - P36
그러게, 아버지의 사정은 아버지의 사정이고, 작은아버지의 사정은 작은아버지의 사정이지, 그러나 사람이란 누군가의 알 수 없는 사정을 들여다보려 애쓰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아버지는 그렇게 모르쇠로 딴 데만 보고 있으면 안 되는 것 아닌가, 뭐 그런 생각도 드는 것이었다. - P42
다만 하염없이 남은 인생을 견디고 있을, 만난 적 없는 아버지 친구의 하염없는 인생이 불쑥불쑥 내 삶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곤 했다. - P50
고요한 눈빛으로. 아버지의 죽음뿐이 아니라 곧 닥칠 자신의 죽음까지 덤덤하게 수긍한, 아니 죽음 저편의 공허를 이미 봐버린 눈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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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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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것이 오빠의 몸에서 빠져나가고 있는 듯했다. 나는 오빠가 밝은 햇빛 속으로 사라져가는 뒷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오빠는 자기 인생의 마지막 조문을 마치고 자신의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중이었다. - P85
한편으로 아버지는 입만 열면 옳은 말하는 잘나고 똑똑한 양반, 또 한편으로는 잘나서 빨갱이짓 하다가 집안 말아먹은 양반이었다. 그러니까 아버지는 고씨 집안의 자랑인 동시에 고씨 집안 몰락의 원흉인 것이다. - P90
먼지에서 시작된 생명은 땅을 살찌우는 한줌의 거름으로 돌아가는 법, 이것이 유물론자 아버지의 올곧은 철학이었다. 쓸쓸한 철학이었다. - P98
그 시간 속에는 우리 아버지 손잡고 가슴 졸이며 수술을 기다리던 순간도 존재할 터였다. 그러니 아버지는 갔어도 어떤 순간의 아버지는 누군가의 시간 속에 각인되어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생생하게 살아날 것이다. 나의 시간 속에 존재할 숱한 순간의 아버지가 문득 그리워졌다. - P110
그때 잃은 아버지를 어쩌면 나는 지금까지도 되찾지 못한 게 아닐까? 아버지를 영원히 잃은 지금, 어쩐지 뭔가가 억울하기도 한 것 같았다. - P159
그런데 죽은 아버지가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살아서의 모든 순간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자신의 부고를 듣고는 헤쳐 모여를 하듯 모여들어 거대하고도 뚜렷한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아빠. 그 뚜렷한 존재를 나도 모르게 소리 내어 불렀다. - P181
"또 올라네."
여기 사람들은 자꾸만 또 온다고 한다. 한번만 와도 되는데. 한번으로는 끝내지지 않는 마음이겠지. 미움이든 우정이든 은혜든, 질기고 질긴 마음들이, 얽히고설켜 끊어지지 않는 그 마음들이, 나는 무겁고 무섭고, 그리고 부러웠다. - P197
사무치게,라는 표현은 내게는 과하다. 감옥에 갇힌 아버지야말로 긴긴밤마다 그런 시간들이 사무치게 그리웠으리라. 그 당연한 사실을 나는,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야 겨우 깨닫는 못난 딸인 것이다. - P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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