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모든 새벽의 앞
마미야 가이 지음, 최고은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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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모든 새벽의 앞>은 SF 소설이다. 더이상살 수 없게 되어버린 지구를 사람들이 떠나나기 직전을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의 이름은 밝혀지지 않는다. 그의 이름이 호출되는 곳에는 언제나 "( )"로 대체된다. 내가 유추했을 때는 주인공과 떠나기 직전의 주민의 대화가 데이터로 남았으나 어떤 이유로 그 부분만 망실되어 버린 게 아닌가 싶다. 아니면 의도적으로 지웠거나... 호의로, 혹은 동정으로... 대화는 남았으나 누구(특정할 수 있는 개체)의 이야기인지는 남지 않았으므로 누구나의 이야기가 될 수도, 누구의 이야기도 아닐 수도 있게 되어버린...

"네. ( ) 씨의 뇌 속 메모리에서 기억을 추출해서 필요한 부분을 조정한 다음 새로운 뇌에 반영하고, 새로운 몸과 함께 ( ) 씨에게 제공하는 방법입니다. 이를테면 아라타 씨가 히마리 씨와 결혼해 ( ) 씨와는 어디까지나 이모와 조카로서 좋은 관계를 이어갔다는 식으로요. 원하신다면 어머니의 죽음도, 아버지의 학대도, 형제들과의 불화도 적절하게 조정하겠습니다. 가족의 기억을 모두 소거하고 싶다면 전혀 다른 기억을 생성할 수도 있고요. 어떠한 방향으로도 모순이나 혼란이 발생하지 않도록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여 조정할 테니 안심하셔도 됩니다."(130쪽)

고통스러운 기억을 지우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주인공이 주저하자 주민은 '조정'을 제안한다. 주인공은 기능 정지가 머지 않은 구형 융합로봇이며 자신과 관계된 모든 사람들이 죽고 난 후 누군가와 대화하기위해 사람을 찾아 나섰고 대화 끝에 주민이 이렇게 말한 것이다. 기억은 이미 우리의 머릿 속에서 왜곡되고, 소거되고, 새롭게 생성되는 등의 조정을 거치지만 그것은 의도대로 되지 않는다. 하지만 미래에는 그런 기술이 있다고 했을 때, 그것은 "좋은 일일까?"

"누군가에게 진실된 사랑을 받고 싶은 이 마음은 왜 사라지지 않을까요?"(표4)라고 가졌던 의문은 "직접 확인해보고 싶어요, 누군가에게 사랑받는 것보다 멋진 일이 있다는 것을 분명 어딘가에서 발견할 수 있을 거라고요."(146쪽)는 결론에 이르르며 그동안 부정된 자기와의 화해를 시도한다. 역자는 후기에서 이렇게 적는다.

"자신과 타자를 향한 이중적인 갈망은 결말에 이르러 하나로 수렴된다. '나'는 괴로운 기억을 소거하는 걸 거부하고 멸망해 가는 지구에 남아 살아가는 길을 선택한다. 죽고 싶었던 사람에게 '살기'를 선택하는 존재가 된 것이다. 가족과도, 신인류와도 불화하며 '쓸모없는'존재로 여겨졌던 '나'는, 마침내 '나' 자신으로서 행복해지고 싶다는 소망을 품는다. 언제가 만날 친구를 꿈꾸지만, 그보다 먼저 자기 자신과 친구가 되고 싶다고. 이는 효율과 합리성, 능력주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계에서 배제된 이들이 그럼에도 자신과 마주해 나가겠다는 선언이다. 폭력과 소외의 연쇄 속에서도 나를, 타인과의 연결을 포기하지 않는 이 쓸모없고 불완전한 존재를 통해, 작품은 진정한 인간적 가치란 무엇인지를 묻는다. AI가 모든 효율을 대신하는 시대 '쓸모없음'이 새로운 조건이 된 우리는 어떻게 '나'로 살아갈 수 있을까? 그리고 그 길 위에서 만나는 연결의 가능성은 어떤 의미일까? 동시대의 절실한 물음과 공명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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