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일기
황정은 지음 / 창비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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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딱히 상식의 편도 아니었는데, 이 사회 상식의 수 준이 무너져가는 걸 지켜보는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103쪽)

<작은 일기>는 2024년 12월 3일, 윤석열의 계엄 발표부터 2025년 4월 4일 탄핵 선고일까지 작가가 경험한 사건과 감정들을 기록한 일기 형식의 에세이이다. 대한민국을 마음대로 하고 싶었던 윤석열이 가장 쉬운 방법으로 택한 '계엄'때문에 발생한 불안과 혼란, 분노와 박탈감 같은 것들은 많은 국민들에게 '내란성 위염'을 선사했다. 힘들지만 살아낼 수 있었던 일상이 망가질 수 있고, 그것이 회복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위기감을 전국민이 공감했고, 일상을 지키기 위해 행동했던 지난 날. 윤석렬이 탄핵된지 이제 4개월이 넘게 지났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아직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성난 표정으로 돌아보는 앞사람의 얼굴을 보았다. 평화롭게 하자고 거듭 소리 지르는 그에게 소리 지르지 말라고 외치다가 뒤쪽을 향한 말로 들릴까 싶어 입을 다물었다. 왜 그런 말투로 평화를 요구할까. 수많은 시민을 담은 이 자리가 왜 저 정도 입장과 말을 담지 못할까."(12쪽)

"페미당당 심미섭 활동가가 페미니즘과 성소수자를 주제로 발언하는 동안엔 사람들 호응이 거의 없었다. (...) 내게 망고를 나눠준 여성이 혀를 찼다. 여기서 저런 얘기를 왜 하느냐고 중얼거리더니 점점 목소리를 높였다. 어느 순간 참지 못하고 그의 무릎에 손을 올렸다. 그러지 마시라고, 여기 다양한 사람이 모여 있고 무슨 얘기든 할 수 있는 자리라고 말했다. 주변이 조용해 이 정도 말을 하는데 용기가 필요했다. 용기씩이나 필요할 일인가. 겁인지 분노인지 심장이 너무 뛰어서 외롭고 서러웠다. 내 자리가 아닌 곳에 않았다는 감각, 그보다는 김보리와 내가 위험해질 수도 있다는 두려움."(20쪽)

나 역시 광장에서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노동자의 이야기, 성적 소수자의 이야기, 페미니즘에 대한 이야기, 세월호 이야기, 이태원 이야기... 광장에 있는 동안에도 사건은 계속 발생했다. 무안공항 비행기 추락 사고, 싱크홀 사망 사고, 산불 피해 등등. 다수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그래서 사라지는 수많은 소수들이 계속해서 생겨나고 있었다. 다수들은 소수들의 발언으로 다수가 원하는 중심 주제가 흐트러질까 두려웠고 그래서 그들의 발언을 불편해했다. 소수들은 다수들에게 '우리도 있다'고 연대를 요청했다. 소외는 서럽다.

전과는 다르게 이번 광장의 주역으로 떠오른 젊은 여성층의 조명 한 편에는 묵묵하게 자리를 지킨 중장년 여성들이 '우리도 있는데...'라고 쓸쓸하게 읖조린 부분을 보며 우리는 우리 안에서도 계속된 소외를 만드는구나 싶었다. 그러면서도 모두를 이야기하지 못한다면 아무도 말하지 않아야 하는가, 라는 생각이 들어 머리가 복잡해졌다.

"초반 몇 차례 집회에서 일어난 문제를 되짚고 개선하려는 노력도 분명 있는 것 같다. 광장에 앉아 타인의 말을 듣는 사람들 태도에 변화가 있다. 부당과 불편과 불쾌를 말하는 용기를 내준 누군가가 있었을 것이다. 내 마음의 불편이 맥락 있는 불편이며 모두의 고민이어야 한다고 말 꺼낸 사람들이 있어 이뤄낸 변화."(36쪽)

사회의 인정은, 입법으로 공인된다. 법은 다수를 대상으로 만들어지며, 선고 역시 이전의 심판의 궤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렇게 해왔고, 그렇게 굴러왔다는 그 단단한 무책임의 영역은 외침을 무음으로 만들어버린다. 우리는 우리의 인지범위 바깥에 있는 것은 생각하지 않고 '내 앞에 있는 것 먼저, 내 주변에 있는 것은 그 다음'으로 관리한다. 일상은 특별하게 되짚지 않아도 향유되고 영위된다. 윤석열의 오판은 어쩌면 계엄이 그렇게 다수에게 영향을 끼치지는 않을 거라는 나이브한 생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추운 밤을 그 자리에서 보낸 사람들도 놀랍고, 그들 에게 난방 버스며 음식이며, 바람 넘는 고개에서 버티는 데 도움이 되는 물품들을 즉시 보낸 사람들도 놀랍다. 그건 나 라에서 받은 것이 없어도 위기가 닥치면 들불같이 일어난 다는 어느 민족의 성격 같은 것이라기보다는 남의 곤경과 고립을 모르는 척 내버려두거나 차마 두고 갈 수는 없는 마음들 아닐까. 남의 고통을 돌아보고, 서로 돌볼 줄 아는 마음들."(58쪽)

일상의 언어가, 추운 날씨에 서로 모여 나눈 온기가 내란성 위염에 시달리던 우리를 보듬었다. 우리는 일상으로의 복귀를 방해하는 무수히 많은 오염된 것들을 목도했고 말(언어)까지 오염시키려는 그들의 행태에 몸서리쳤다. 다양성이라는 말 뒤에 숨어 폭력은 저항의 다른 모습이라고 말하는 뻔뻔한 자들의 감수성을 보며 과연 우리가 같은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인지 의심했다. 악은 우리에게도 있다. 하지만 누구나 악을 표출하지 않는다. 발화하려는 악을 누르거나 발화한 악을 통제하면서 살아간다. 누구에게나 있다며 자신이 정당하다는 듯 말하는 것은 악에 자신이 굴복했다는 고백이나 다름없다.

"지난 두달은 아름답고 좋은 것 들도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지만 그보다 내 게는 오염의 시간이었다. 뭐가 오염되었느냐면. 매일 갱신되는 새로운 사건과 경악과 한계가 없는 것 같은 질 낮음으로, 어제의 경악이 오늘의 경악으로 무던 해지는 일이 반복되어서, 그런 식으로 세상을 향한 감귤이 오염."(106쪽)

삶은 한 번이기 때문에 가급적 이 번 삶에서 좋은 것들을 누리고 마치고 싶다. 그럴 때면 나는 5.18 때 한 청년이 남긴 말을 곱씹아본다.

"우리는 오늘 패배하지만, 내일의 역사는 우리를 승리자로 만들 것이다."

윤상원 열사(1950~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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