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수연 소설집 <파트타임 여행자>에는 7개의 단편이 수록되어있다. 각각의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은 다음과 같다.
<설탕 공장이 있던 자리>
애나는 빛의 입자를 피워올리며 반짝이는 이스트강을 바라보고 있다.
(...)
애나는 찰리에게 커피 주문서를 내민다.
<조각들>
금요일 저녁 혼자 족발에 소주를 한 잔 하고 있을 때 벽에 붙여둔 종이의 한쪽 모서리가 떨어진 걸 발견했다.
(...)
출입문의 나사를 조일 때 손으로 전해지던 그 맞춤한 느낌이 되살아나는 것 같아 주먹을 쥐었다 폈다.
<파트타임 여행자>
사막의 평원은 풀도 땅도 연갈색으로 바짝 말라 있었다.
(...)
오늘은 부서진 것이 부서진 채로 조금씩 사라지고 있는 이 해안에 차를 세우고 밤새 파도 소리를 들어볼까 했다.
<춤을 춰도 될까요>
깜빡 잠이 드는 순간이면 정신이 외투처럼 몸에서 분리된다.
(...)
정목수가 엉거주춤 몸을 일으키려 애쓰는 사이 죽그릇을 든 은주는 이미 방으로 들어와 있다.
<프레살레>
이른 아침이었지만 공항은 번잡했다.
(...)
풀을 뜯는 한 무리의 양들이 초원에 내려앉은 구름처럼 몽글몽글해 보였다.
<빅터 아일랜드>
빅터 브리지를 건너 첫번째 출구로 빠져나오니 납작한 상자를 여러 개 엎어놓은 모양의 공단이 보였다.
(...)
피곤해서인지 규는 그것이 오로라의 빛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긴 하루였다.
<화분의 시간>
정희는 동쪽 바다가 보이는 호텔에서 혼자 나흘을 보냈다.
(...)
옷장 안에는 화려한 것을 좋아하던 엄마의 취향대로 울긋불긋한 옷이 빈틈없이 빼곡했다. 베란다를 가득 메운 꽃의 색과 다르지 않았다.
나는 단편을 읽을 때 첫 문장은 인상, 마지막 문장은 분위기(정서)를 결정한다고 생각한다. 첫 문장보다는 마지막 문장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마지막 문장이 전체적인 감정의 흐름을 납득할만하게 정리하고 있는가'로 마음 속에 남는지 아닌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중년(적어도 50대 중반 이상)이고 가족(특히 자녀)과의 사이가 좋지 않고 낯선 어딘가에 있다. 양로원이든 산속이든, 여행지든. 주된 공간에서 벗어난, 던져진, 낯선 공간에 주인공들은 놓여 있다. 마치 이민자의 처지가 이러하다는 듯.
반수연 작가는 "통영에서 태어나 캐나다로 이주"했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대체로 원하지 않는 이주였지만 작가가 과연 그러했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정착의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았으리라.) 작가의 말을 보면 "책으로 묶기 위해 지난 사 년 동안 쓴 소설들을 모아보니 길 위의 여행자 이야기가 유난히 많다. 어는 순간부터 이국의 이방인이라는 이름이 너무 서글퍼서 나를 여행자라고 생각하기로 한 것 같다."(272쪽)라고 소회를 밝히고 있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상황과 외모는 제각각이지만 아마도 작가의 분신들일 것이다. 소설들 전반에는 고립감, 억울함과 같은 감정들이 묻어있다. 도망치거나 내쳐진 외로운 존재, 주변으로부터의 부당한 공격들은 "어떤 적의의 세계"에 빠져있는 주인공은 고단하다. 원하는 것들을 이룰 수 있을 거라고 간 그곳에서 발견하는 것은 희망이 아닌 지독한 현실 뿐이다. 젊었을 때는 불안, 늙어서는 애환. 원하는 삶을 살지 못했다. 그래도 견디며 살아냈다. 하지만 그들에게 남은 건 부당한 평판 위에 서있다. 있을 곳을 찾지 못한 주변인의 서사는 작가 자신의 모습과 닮아있는지도...
(돌아갈 곳이 있는) 파트타임 여행자이기를 꿈꾸지만 이민자는 어쩌면 (있어야할 곳을 찾지 못한) 풀타임 여행자일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밑줄 그은 문장 하나를 소개한다.
"민은 아름답고 강한 혼자가 되고 싶었다는 걸 기억했다. 그에 이르지 못했다는 것도 알았다. 늙는다는 건 두려운 일이었고, 죽는다는 건 알 수 없는 일이었지만, 산다는 건 애가 타는 일이었다. 민은 그 길을 살아남아 여기에 이르렀다."(10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