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적 설교
서철원 / 총신대학교출판부 / 199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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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철원 교수에 대해 가끔씩 들었지만, 막상 책을 보니 느낌이 새롭다.

 

얇지만, 꽉 찬 책이다. 복음으로 꽉 차 있다. 시종 예수를 선포하고, 복음을 선포한다.

 

이 정도로 복음을 강고하게 외치디니 참으로 반갑고 기뻤다. 특별히 강조하는 것은 말씀의 선포이다.     

 

"복음이 선포되면 반드시 성령이 역사하사 선포를 들은 사람들이 믿음에 이르고, 그리스도인이 되며, 그리스도인으로 자라 완전에 이른다. [...] 말씀은 선포되면 말씀으로 역사하고 복음은 선포되므로 복음으로 역사한다. 선포없이 기록된 말씀대로는 말씀으로 역사하지 못하며, 구원사건 자체만으로는 구원이 되지 못한다. 말씀이 선포되고, 복음이 선포되어야 한다."(27)

 

근래 로이드존스를 새롭게 관심 갖고 책을 사모으고 읽어가기 지작한다. 이런 경위로 인해 복음 전파의 주요 수단으로서의 설교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다. 나는 그리스도인이다. 마땅히 복음을 강조해야 한다. 당연히 입을 열어 외쳐야 한다.

 

한데 서철원 교수가 이에 대해 더 깊고 뚜렷하게 영향을 주고 있다. 예수를, 오직 예수 만을 외치라고 말이다. 내 가슴이 뜨거워진다. 앞으로 그의 책을 좀 더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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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과 의약품 -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우리 몸속 질병과 의학의 역사 과학은 아름답다 2
콜린 살터 지음, 정희경 옮김 / 국민출판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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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이후 시대 교양인을 위한 필독서라는 제목 그대로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어떤 의미에서 21세기의 흑사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실로 우리의 실존과 상상력을 압도하고, 나아가 교육과 경제 등 문화전반을 재구성하고 있지 않나. 

"과학은 아름답다" 시리즈 2권으로 나온, 콜린 살터의 <질병과 의약품>은 문자 그대로 아름다운 책이다. 제작에 품이 들었을 듯한 장정과 편집이 눈길을 끄는 이 화보집은 광학 현미경과 전자 현미경의 섬세한 시야로 포착한 우리 몽 안의 모습이다. 1권이 인체의 신비를 다루었다면, 2권은 인체에 이상이 발생했을 때를 다룬다. 질병과 의약품의 대결이 벌어지는 전장으로서의 육체를 다룬다. 

서문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과학과 자연 사이에는 쫓고 쫓기는 게임이 끊임없이 벌어진다."(7쪽) 물론 자연은 질병을 말하고, 과학은 의약품을 말한다. 바이러스의 적응력과 과학의 발달이 서로 부딪힌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 몸을 두고 과학과 바이러스는 끝없는 싸움을 지속한다. 그렇기에 부제가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우리 몸속 질병과 의학의 역사"다.  


"과학이 백신이나 의약품을 통해 바이러스를 없애 버릴 방법을 찾는다면, 바이러스는 진화할 것이다. 그러면 또다시 과학은 새로운 백신은 발견할 것이고. 바이러스는 다시금 진화할 것이고, 이러한 과정은 계속해서 반복될 것이다."(7쪽)


바로 그러한 싸움의 일부가 이 화보집을 통해서 잘 드러난다. 그러다보니 저자는 건강염려증이 있는 분들에게는 부담스러울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만큼 생생하고, 역동적이다. (다만 대부분의 사진은 모양을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인공적으로 색을 덧입힌 것이다. 우리 인체가 그렇게나 다양하게 색을 지니고 있지는 않다고 한다)  

과학은, 특히 질병과 의약에 대한 지식은 우리 시대의 교양이다. 이렇게 사진과 설명을 보며 쉽고 간결하게 배울 수 있는 교양서적은 흔치 않다. 틈나는 대로 부분부분 펼쳐보는 것만으로도 지식이 쌓여갈 것이다. 일독할 가치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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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는 질리지 않는다 - 100명에서 1700명으로
김호성 지음 / 선한청지기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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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교회 성장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어느 목사가, 어느 교회에서 여전히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하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진리는 질리지 않는다>는 그 드문 사례 가운데 하나이다. 지난 16년간 당임목회하는 가운데 100명의 성도를 1,700명으로 확장시키는 성과를 거두었다. 충분히 주목할 만 한 사건이다.


물론 교회의 성장은 하나님의 역사이다. 하나 하나님은 누군가를 통해서 역사하신다. 바로 그 도구로 쓰임받은 김호성 목사는 <진리는 질리지 않는다>에서 교회 성장의 근간이 되었던 진리를 나누고 있다. 인근에 신도시가 조성된 것도 아니고, 이런 부흥을 꿈꾼 것도 아니다."온전히 하나님이 하신 일이다."(7쪽)


하나님이 하셨다는 선언은 그 자체로 정당하지만, 설명으로는 불충분하다. 하나님이 역하사기 위해서는 진리의 매개가 필요하다. 진리를 믿고, 진리를 순종할 때에 하나님이 영으로 역사하신다. "진리의 말씀을 붙잡는 믿음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이 이렇게 하셨다. 그분의 진리의 말씀이 능력으로 임한 것이다."(7쪽)


<진리는 질리지 않는다>는 바로 그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핵심 매개가 된 진리에 대해 소개하는 책이다. 위에서 하나님이 영으로 역사하신다고 언급했다. 하나님은 다른 보헤사, 즉 성령님으로 임하사 우리 와 함께 하시고, 우리 안에 거하신다. "질그릇 같은 우리들 속에 보배 되시는 성령님이 계신다."(21쪽). 


저자는 이를 3동(동거, 동행, 동역)의 근간으로 본다. 성령님, 즉 영으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내주하심이 우리를 바르게 세워주는 것이리라. 따라서 우리가 (보배이신 성령님을 모시는) 질그릇임을 인정해야 한다. "스스로를 질그릇이 아니라 은그릇, 금그릇으로 착각하게 되면 성령님이 그 역할을 멈추신다."(21쪽)


"질그릇 안에 보배가 담긴 것이다. 이 진리를 믿으면 3동으 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큰 능력이 우리에게서 계속 나타난다."(21쪽) 여기서 질그릇의 함의를 기억해야 한다. "질그릇은 보잛것 없는 그릇이다. 질그릇은 쉽게 깨진다. 연약하다."(21쪽) 우리를 낮춰야 성령님이 임하신다. 이 점을 잘 이해해야 할할 것이다. 


진리는 질리지 않는다. 외려 "진리는 성도를 자유롭게 한다."(213쪽) 하나님과 함께 하는 3동의 삶(213쪽)은 곧 진리의 삶이다. 저자는 이 진리의 삶이 질리지 않으리라고 말한다. 오히려 자유와 더불어 "세상과 사탄과 악과 싸울 때"(213쪽) 승리를 보장한다. 질리기는커녕 역동적인 승리와 자유가 주어지지 않던가. 


<진리는 질리지 않는다>에서 소개된 진리에 대한 믿음이 튼튼하게 선다면, 즉 믿음의 삶을 성실하게 살아간다면, 곧 "날마다 성령님과 함께 사는것"이자,  "3동의 삶을 누리는 것"(215쪽)에 다름 아니게 된다. 본문에서 다루는 진리들을 잘 소화하시고, 이를 통해 개인적으로나, 교회적으로나 크게 성장하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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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인의 띄어쓰기.맞춤법 (4차 개정판) - 한국인이 가장 잘 틀리는 우리말 5500제
최종희 지음 / 국민출판사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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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인터넷에 떠도는 맞춤법 괴담 하나를 보았다.  썸남이 "**에서 **까지 갑갑니?"라고 문자를 보냈다. 알고 보니 '가깝니'를 '갑갑니'라고 적은 것이다. 정말 '갑갑하다'고 밖에는 할 말이 없었다. 아마도 이 썸남은 주로 귀로만 한글을 배웠나보다. 그러니까 책을 통 읽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SNS야 문자매체라기보다는 구술매체, 더 정확히는 (월터 옹의 표현을 빌리자면) 전자 구술매체니까. 글이 아니라 말로 정신이 주조된다는 것은 (개인의 판단보다 집단의 흐름에 더 쉽게 휩쓸리고 나아가 쉽게 조종되는) 구시대적 인간형이라는 뜻이다. 맞춤법 정도 틀린 게 뭐가 문제냐는 인식은 위험하다.

 

얼마 전에 들은 이야기 하나 더. 어느 조직에서 중간 간부들이 조직원들에게 돌아가며 카카오톡으로 글을 보내는데, CEO께서 원고 검토하다 급기야 분노를 터뜨리셨다. 그래도 명색이 지도자들인데, 맞춤법 수준이 참담했던 거다. 해서 그 전까지는 교정만 봐주시던 어른이 이거 글 쓴 사람들 실명 공개하라고 했다는 거다. 그러자 넘버 투가 국문학과를 졸업하는 다른 관리자에게 부탁했다고 한다. 맞춤법을 A4  한 장으로 정리할 수 있나는 거다. 말이 되는 소리냐, 그게.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맞춤법 책 <달인의 띄어쓰기 맞춤법>은 768쪽이다. 그것도 거의 크라운판 사이즈다(173*235).

 

간단히 말하자면, 맞춤법은 어렵다. 어려우니까 공부해야 한다. 지금도 수시로 국립국어원 사이트에 들어간다. 매번 헷갈린다. <달인의 띄어쓰기 맞춤법>을 앞에 가져다 놓은 이유다. 부제가 "한국인이 가장 잘 틀리는 우리말 5500제"다. 그러니까 통독용이 아니라 "곁에 두고 필요할 때마다 찾아보"라고 만든 책이다. 최소한 글을 만지는 사람에게는 이런 책이 필요했다. 모든 논의를 하나로 모아놓아 언제든 참고할 책이 필요했다는 소리다. 이 책의 유용성은 맞춤법 분야의 사전 혹은 상비약 정도로 생각하고 보면 분명해질 것이다.

 

마침 2020년 최신 (4차) 개정판으로 다시 나왔다. 글을 쓰거나, 글을 만지는 일을 하는 이라면 당연히 갖추어야 할 기본서다. 여기서 글을 쓰는 이는 전업 작가, 기자 등만 생각하기 쉬운데, 글을 통해서 진행되는 업무에 종사하는 모든 이들도 포함해야 할 것이다. 또한 사이드잡으로 글쓰기를 생각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요즘 브런치 등 여러 플랫폼을 통해서 글을 올리는 이들이 많다. 그들에게도 이런 자료집 한 권은 구비되어야 한다. 그냥 상비약이라고 생각하고 구비하시라. 한글은 결코 만만하지 않다. 반드시 이 책이 필요할 때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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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시간 VS 6시간 - 켈로그의 6시간 노동제 1930~1985
벤저민 클라인 허니컷 지음, 김승진 옮김 / 이후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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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노동 시간에 관심이 많다. 내 실존을 결정하는 중심 요소이기 때문이다. 켈로그의 노동시간 단축 실험(이라기보다는 인력 수급을 위한 결정)의 과정을 다룬 보고서다. 흥미진진하다. 1930년에 켈로그 사장 루이스 브라운은 노동 시간 단축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매우 개방적인 인물이었다. 

 

그 두 시간 단축이 삶의 질을 얼마나 바꿔놓는지를 보면, 경이로울 정도이다. 다른 무엇보다도 자기 실현에 시간을 쓰기 시작한다는 점이 눈에 들어온다. 심지어 비행기 조종을 배운 이도 있다. 이게 무려 90년 전의 이야기다. 지금 우리의 노동 환경은 1930년 당시의 켈로그보다 한참 뒤처져 있다.

 

요 근래 몇 년 동안 노동 시간 단축과 관련하여 숱한 논의가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별 실효도 거두지 못하는 데도 불구하고 야근 중독에 걸려서 회사가 허덕이는 모습을 보라. 실은 미국 켈로그에서도 퇴보하였다. 그렇다. 실패가 아니라 퇴보다. 노동자들은 더 많은 소득을 위해서 8시간 노동을 택했다.

 

8시간 노동과 6시간 노동은 패러다임이 다르다. 8시간 노동을 떠받치는 것은 소비주의 패러다임이다. 많은 노동은 많은 소득을 원해서다. 소득은 소비의 근간이다. 소비가 행복이다. 그래서 오래 일하고, 많이 번다. 6시간 노동을 떠받치는 것은 인간주의 패러다임이라고 해야 할까? 소득보다 관계를 우선하고, 소비보다 자유를 중시한다. 

 

<8시간 VS 6시간>은 각각의 노동 시간이 대변하는 패러다임을 계속 돌아보게 만든다. 자연스레 8시간(실은 그보다 더 심하지만) 노동시간 위에서 작동하는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만든다. 그만큼 유익하고, 실은 그 이전에 재미있는 책이다. 꼭 읽어보시라. 구할 수 없다면, 도서관에서 빌려서라도 보시길 바란다. 그럴 만 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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