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주말에 돈 버는 성인소설을 쓴다 - 일본 포르노 작가의 투잡 글쓰기 수업
와카쓰키 히카루 지음, 조혜정 옮김 / 프로젝트A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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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글쓰기에 관심이 많다. 온갖 글쓰기 책을 사고, 읽는다. 어지간한 글쓰기 책이라면, 최소한 대충 뭐라고 하는지 알고자 떠들쳐 본다. 그러다 결국 이 책까지 보게 되었다.

 

표지의 제목이 세 줄인데, 각각이 눈길을 끈다:

나는 주말에 쓴다.
나는 돈버는 [글을] 쓴다.

나는 성인소설을 쓴다.

 

이 세 가지 명제를 하나로 모아 책 제목을 만들었다. 원제도 대충 그런 뜻인 것 같다: 日曜ポルノ作家のすすめ 일요일, 그러니까 휴일에만 포르노 소설을 쓰는 파트 타임 작가의 길로 들어서보라는 권면이다.

 

권면하는 이유는 들이는 노력에 비해 수입이 꽤 짭짤해서일 게다. 아니다 다를까 "시작하며" 부분의 첫 문장이 바로 그 점을 보여준다.

 

"이 책은 본업을 가짐과 동시에 일요일에 포르노 소설을 써서, 연 수입 100만앤[한화 약 1000만원]을 올리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4쪽)

 

1,000만원으로는 가족 건사는 고사하고 일인 가정의 생계조차 꾸리기 어렵다. 하지만 주말에만 작업해 1,000만원을 벌 수 있다면, "수익률이 매우 높은" 장르라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더욱이 진입장벽이 낮다.

 

"웹라이터나 제휴작가[성과급 작가]보다도 벌이가 좋고, 일반 문에작가보다도 쉽게 시작할 수 있습니다."(5쪽)

 

물론 자랑스러운(?) 직업, 그러니까 동네방네 떠들고 다닐 직업은 아니다. 저자 자신도 포르노 작가 생활 21년 동안 줄곧 가족이나 주변에 숨기고 있다.

 

그러나 지금껏 그 일은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포르노 소설을 쓴다는 건 정말 즐거운 일입니다."(9쪽) 책을 읽어보면 진심인 것 같다. 애정(?)이 느껴진다. 쓰는 재미와 버는 재미가 있으니 당연한 일이겠다.

 

저자의 애정과 열정이 빚어내는 여러 이야기는 자연스레 외부 인식과 상충한다. 적잖은 오해에 대한 해명이나 혹은 내부 사정에 대한 설명을 읽다보면 수시로 피식 웃게 된다. 

 

성인소설을 써서 대박내고자 정보를 기대하고 읽기보다 그 세계에 대한 박식하고 재치있는 입담을 기대하고 보는 편이 더 낫다고 본다. 읽는 재미는 확실하다.

 

그리고 번역서 제목을 참 잘 지었다. 제목 만으로 강력한 동기 부여가 된다. 나도 주말에 더 열심히 글 써야겠다. 물론(!) 성인소설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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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의 공감 연습 - 정약용, 《논어》로 공감을 말하다
엄국화 지음 / 국민출판사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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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은 사서 각각에 대해 주해서를 남겼다. 사서 중 첫 손에 꼽히는 <논어> 주해서를 <논어고금주>라 한다. <논어>에 대한 -다산 당대로 볼 때- 과거와 현재의 모든 해석을 망라하고, 여기에 자신의 해석을 가미한 것이라 분량이 방대하다. 자연히 일반 독자들이 섭렵하기에는 진입장벽이 높다. 


다산 연구자인 저자 엄국화 박사는 <다산의 공감 연습>을 통해 이 방대한 주해서의 핵심을 하나의 키워드로 정리했다. <논어고금주>의 문을 열기 위해 그가 집어든 열쇠는 공감이다. 미루어 생각한다라고 하는 다산의 추서(推恕) 개념을 그는 공감이라는 현대적 개념으로 번역하여 소개한다. 


또한 <다산의 공감 연습>은 <논어>의 주 부분을 골라 다산의 관점을 경유하여 현대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저자가 보기에 현대 사회는 혐오가 횡행하고 있다. 혐오는 이해와 공감의 결핍에서 발생하는 결과다. 그러니까 <논어>의 해석을 위한 열쇠가 공감이라면, 적용하기 위한 맥락은 혐오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주목한 것은 이러한 내용을 전개하는 방식이 명료하고 경쾌하다는 점이다. 전체적으로 살펴본 바로 아마 저자가 <논어>를 학생들에게 강의한 내용이 근간이 된 것처럼 보인다. 꼼꼼하고 섬세하게<논어>를 다루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의 언어는 날렵하고 경쾌하다. 


저자의 언어와 다산의 관점을 통해 드러나는 공자와 그의 저자들의 모습이 팔딱팔딱 숨쉬는 것 같다. <논어>가 단지 낡은 책에 불과하지 않고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읽힐 가치가 있는 현대적인 고전으로 다가온다. 소장 학자인 저자가 앞으로 내놓을 작품들을 기대하게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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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살기로 성경 읽기 - 치열하게 말씀 앞에 선 280일간의 기록
김영표 지음 / 규장(규장문화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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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읽기가 참으로 중요하다는 사실을 부인할 기독교인은 많지 않다. 나 역시 성경 읽기의 즁요성이 더 강조되어야 한다고 믿기에 이 책에 대한 기대가 컸다. 하나 막상 읽고 나니 아쉬움이 많다. 


저자 김영표 목사님은 가정보다 사역을 우선했다(24쪽). 그렇다면 자기 문제에 대한 저자의 깨달음 이후 가정에 대한 우선순위 조정이 필요했을 것이다. 가정을 돌보지 않으면 불신자보다 악한 자라고 하지 않았던가. 

저자는 성경 읽기를 자신의 문제에 대한 해법으로 택했다. 안다. 그는 분명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방았으리라. 하나 그게 너무 쉽게 일반화되었다는 느낌이다. "갑자기?"라는 요즘 유행어를 써야 할 타이밍 같았다.


그리고 도대체 어떻게 읽으라는 건지도 애매하다. 그 방법을 소개하기는 하는데(180-185쪽) 실제로 적용될 만 한 내용은 40일간 신약 일독하라는 조언(184-185쪽) 정도인 것 같다.


또한 책 뒷표지에 소개된 여러 간증은 성경 읽기의 결과가 아니라 야베스 기도의 결과이다(160-161쪽). 나는 그 간증을 의심하지 않는다. 하나 이 책의 초점이 일관되지 않다는 지적을 면하기는 어렵다. 

이후 저자는 말씀에 이어 기도의 강조를, 또한 (이스라엘 여행을 통해) 예배의 강조를 추가한다. 그의 주장이 틀렸다고 지적하는 게 아니라 그의 초점이 모호하는다고 지적하는 것이다. 애초에 성경 읽기를 강조했다면, 거기에 좀 더 집중했어야 할 것이다.


내가 이 간증 책을 펼칠 때에 얻기를 기대한 것은 저자가 어떻게 성경을 읽어가고, 어떠한 유익을 얻는 지 소개받는 것이었다. 하나 성경 읽기에 대한 내용 자체가 작고, 특히 성경 읽기의 방법에 대해서는 거의 소개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부분은 저자의 순수한 믿음이다. 이는 책의 면면에 잘 드러나고 있다. 비록 논지가 일관되지 않다지만, 실은 이야말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잘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비록 품절된 책이지만, 구하는 데에 크게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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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인의 띄어쓰기.맞춤법 (최신 개정판) - 한국인이 가장 잘 틀리는 우리말 5500제
최종희 지음 / 국민출판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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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인터넷에 떠도는 맞춤법 괴담 하나를 보았다. 썸남이 "**에서 **까지 갑갑니?"라고 문자를 보냈다. 알고 보니 '가깝니'를 '갑갑니'라고 적은 것이다. 정말 '갑갑하다'고 밖에는 할 말이 없었다. 아마도 이 썸남은 주로 귀로만 한글을 배웠나보다. 그러니까 책을 통 읽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SNS야 문자매체라기보다는 구술매체, 더 정확히는 (월터 옹의 표현을 빌리자면) 전자 구술매체니까. 글이 아니라 말로 정신이 주조된다는 것은 (개인의 판단보다 집단의 흐름에 더 쉽게 휩쓸리고 나아가 쉽게 조종되는) 구시대적 인간형이라는 뜻이다. 맞춤법 정도 틀린 게 뭐가 문제냐는 인식은 위험하다.

얼마 전에 들은 이야기 하나 더. 어느 조직에서 중간 간부들이 조직원들에게 돌아가며 카카오톡으로 글을 보내는데, CEO께서 원고 검토하다 급기야 분노를 터뜨리셨다. 그래도 명색이 지도자들인데, 맞춤법 수준이 참담했던 거다. 해서 그 전까지는 교정만 봐주시던 어른이 이거 글 쓴 사람들 실명 공개하라고 했다는 거다. 그러자 넘버 투가 국문학과를 졸업하는 다른 관리자에게 부탁했다고 한다. 맞춤법을 A4 한 장으로 정리할 수 있나는 거다. 말이 되는 소리냐, 그게.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맞춤법 책 <달인의 띄어쓰기 맞춤법>은 768쪽이다. 그것도 거의 크라운판 사이즈다(173*235).

간단히 말하자면, 맞춤법은 어렵다. 어려우니까 공부해야 한다. 지금도 수시로 국립국어원 사이트에 들어간다. 매번 헷갈린다. <달인의 띄어쓰기 맞춤법>을 앞에 가져다 놓은 이유다. 부제가 "한국인이 가장 잘 틀리는 우리말 5500제"다. 그러니까 통독용이 아니라 "곁에 두고 필요할 때마다 찾아보"라고 만든 책이다. 최소한 글을 만지는 사람에게는 이런 책이 필요했다. 모든 논의를 하나로 모아놓아 언제든 참고할 책이 필요했다는 소리다. 이 책의 유용성은 맞춤법 분야의 사전 혹은 상비약 정도로 생각하고 보면 분명해질 것이다.

마침 2021년 최신(5차) 개정판으로 다시 나왔다. 분량이 조금 줄었다. 그래도 752쪽. 베개로 써도 무방할 게다.
내 생각에 이 책은 글을 쓰거나, 글을 만지는 일을 하는 이라면 당연히 갖추어야 할 기본서다. 여기서 글을 쓰는 이는 전업 작가, 기자 등만 생각하기 쉬운데, 글을 통해서 진행되는 업무에 종사하는 모든 이들도 포함해야 할 것이다. 또한 사이드잡으로 글쓰기를 생각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요즘 브런치 등 여러 플랫폼을 통해서 글을 올리는 이들이 많다. 그들에게도 이런 자료집 한 권은 구비되어야 한다. 그냥 상비약이라고 생각하고 구비하시라. 한글은 결코 만만하지 않다. 이 책이 필요할 때가 수시로 찾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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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시인이 온다
월터 브루그만 지음, 김순현 옮김 / 성서유니온선교회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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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터 브루그만은 별다른 소개할 필요가 없는 세계적 구약학자이다. 그의 명성에 힘입어 그의 책을 소개하는 것은 매우 적절한 전략일 게다. 여기서는 비슷한 소개 행렬에 동참하기보다 차라리 브루그만의 특정한 문제의식에 주목하고자 한다.

 

알다시피 <마침내 시인이 온다>는 설교학 책이다. 설교 분야에서 명성이 높은 라이먼 비처 강좌 원고를 책으로 묶어 펴낸 것이다. 여기서 시인의 자리에 설교자를 얹어놓는다. 성경의 언어가 시인의 언어, 즉 예언자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은 그분을 따르는 데 있다. 그분을 따르고 싶다면 경청해야 한다. 성경에서 복종은 경청의 형태를 띤다. 복종하는 삶은 이스라엘처럼 하나님의 음성을 귀담아듣고, 그 음성에 주의를 기울이며, 그 음성에 응답하는 삶이다." (124쪽)

 

"폴 리쾨르가 알아챈 대로, 복종은 상상력을 따른다. 우리의 복종은 우리가 상상하는 세계 너머로 나아가는 모험을 하지 않는다. 변화된 복종(즉,좀더 신실하게 응답하는 경첨)을 수행하고 싶다면, 우리는 대안 상상, 곧 세상과 우리 자신을 다르게 상상할 것을 권유받아야 한다. 복종과 상상력의 연결은 불굴의 윤리는 시적이고 예술적인 담화에 달려 있음을 암시한다. 시적이고 예술적인 담화야말로 변화된 경청을 이끌어 내는 최상의 담화다."(129쪽)

 

두 인용문을 결합하면, 설교자가 곧 시인이 되어야 한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설교를 통해 교인을 변화시키고 싶다면 시인의 언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시인은 곧 예언자다. 모든 시인이 다 예언자는 아니지만, 모든 예언자는 다 시인이다. 예언은 현실 너머를 보여주는 다른 상상을 품고 있다.

 

따라서 설교자가 예언자의 언어, 즉 시인의 언어로 구성된 성경에 대해 시인의 언어로 설교한다면, 회중에게 다른 상상을 위한 공간이 제공된다. 이를 통해 회중의 새로운 경청, 즉 회중의 새로운 순종이 빚어질 것이다.

 

월터 브루그만은 <예언자적 상상력>로부터 줄곧 이어지는 자신의 오랜 문제의식을 여전히 붙잡고 있다. 그는 성경이 품고 있는 예언자의 언어가 우리 시대의 회중에게 그대로 들려주길 바란다. 성경을 예언자의 음성으로 듣게 하는 것이 그의 연구가 지향하는 방향이다. 나는 그의 한결 같음을 높이 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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