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야, 넌 어떤 행복을 꿈꾸니? - 제3세계 친구들이 보내는 희망의 편지, 개정판 넌 네가 얼마나 행복한 아이인지 아니
이은서.김실 지음, 굿네이버스 기획 / 국민출판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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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큰 기대 없이 읽었다. 그래도 나름 좋은 면도 있겠지, 한두 편 정도 읽어보자 하는 마음으로 집어들었다. 그런데 정신 차려보니 어느새 글을 다 읽어버린게 아닌가. 완독을 결심한 것도 아니고, 가볍게 펼쳐들었을 뿐인데. 어린 소년소녀들의 신산(辛酸)삶이 내 마음 속으로 성큼 걸어들어와 내 속을 휘저어놓았다.

 

하루 종일 일해야 다음 날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19) 암울한 삶을 살아가는 열두 살 소년 이삭의 첫 이야기부터 눈길을 끌었다. “전깃불도 없는 캄캄한 방안이 꼭 내 미래를 보는 것 같았어.”(23) 내일을 꿈꾸기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 소년은, 그러나 한국에서의 지원으로 마을에 지어진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된다. 소년은 이제 꿈을 꾸기 시작한다. 자전거를 잘 고치는 그는 기술자가 되어 힘들게 사는 []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무언가를 만들어주고 싶어요. 이 두 손으로요.”(27) 그는 비록 학교가 끝나면 다시 밭에 나가 일을 해야 하지만,, 그럼에도 매일 학교에서 글을 배우고 수를 익히고 그림을 그리고 있다(30). 그 희망을 품게 되는 과정이 짧지만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여덟 살 된 어린 소년 엠마는 배가 불룩하다. “배의 근육이 자라지 않아서그만 장이 밖으로 튀어나온 탓이다(37). 하나 수술로 건강해진 그는 이제 누나를 등에 업어줘도 힘들지 않다. 이 어린 소년도 꿈을 품기 시작했다. 아직은 왔다갔다한다. 파일럿도 되어 비행기를 몰고고 싶기도 하고, 선생님도 멋져 보인다. 의사가 되어 누나를 낫게 해주고 싶은 마음도 있다. 소년은 일요일마다 누나를 업고 교회에 가서 기도한다. “우리 마을에 아픈 사람들이 없게 해주세요.”(44) 그의 기도가 이루어지도록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이 절로 일어난다.

 

위에 소개한 두 소년은 모두 아프리카의 심장’(대륙 한 가운데 있다고 해서)이라 불리는 차드에 산다. “전쟁을 하도 오래한 탓에 차드는 무척 가난한 나라다(35쪽). 그리고 이 가난의 질곡에서 허우적대다 희망을 품기 시작했다. 멀고먼 한국에서의 나눔이 그 소년들에게 희망의 씨앗을 뿌린 것이다. 교육과 의료 서비스가 제공되니, 더 나은 내일을 꿈꿀 수 있게 되었다.

 

선교사들이 제3세계에 가서 선생과 의사 역할을 겸한 이유를 알 것 같다. 복음(福音)이라면, 영을 살릴뿐더러 몸과 마음도 살려야지 않겠는가. 진리를 전하는 선교사가 지식을 베푸는 선생이자 건강을 돌보는 의사가 되지 않을 수 없던 이유일 게다. 그리고 제3세계의 소년소녀들이 몸과 마음을 회복하고 새로운 희망을 품으려면, 누군가는 도와야 한다.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야고보서 215-16)

 

직접 그들 곁에서 돌봐주는 굿네이버스와 같은 NGO도 필요하지만, 비록 몸로는 함께 못하나 지갑을 열어 후원하는 우리의 작은 나눔이 필요할 것이다. <친구야, 넌 어떤 행복을 꿈꾸니>는 두껍지도 않고, 글자도 크며, 사진도 많다. 어렵지 않게 금방 읽힌다. 하지만 내 마음에 끼친 인상은 짙고 뚜렷하다. 실로 묵직한 부담을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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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단 없는 기도 IVP 영성의 보화 2
로버트 벤슨 지음, 안정임 옮김 / IVP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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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내 이야기를 짧게 하자. 나는 주기도문을 종종 암송한다. 연달아 암송하기도 한다. 오래되지 않은 이야기다. 아마 1년도 채 되지 않았을 게다. 내 영적 지도자의 충고를 따른 결과다.

 

오래 전부터 외운, 그것도 매우 자연스레 외운 기도문이라 생각의 비중을 줄이고, 자연스레 흐름에 맡긴 채 기도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 경우에는 습관적으로 하는 경우도 있지만, 하나의 영적인 습관으로 만들고자 하는 중이다. 많은 기도가 우리의 머리와 마음에서 흘러나오지만, 주기도문은 우리가 그 안에 들어간다. 우리는 전통으로 들어가며, 전통 안에서 산다. 전통은 우리를 좀 더 나은 존재로 만들어준다. 그리고 주기도문은 위대한 기도의 전통을 대변한다. 

 

[중단 없는 기도]는 위대한 기도 전통 가운데 하나인 성무일도를 재기있게 소개하고, 강력하게 추천한다. 성무일도를 하나의 습관을 만들어가는 작가 자신과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가 흥미진진하다. 저자의 유쾌하고 유머러스한 소개(유머는 이 책의 도드라진 장점 가운데 하나이다) 가운데 메일 일정한 시간을 들여 일정한 형식으로 드려지는 기도의 방식이 현대적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위대한 기도 전통에 우리 자신을 내맡기는 방식 말이다. 

 

뜻하지 않게 재미있어 끝까지 술술 읽어냈지만, 그 메시지는 가볍지 않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명령에 순종하고자 기도를 습관화하는 방식을 고안했다. 이는 성무일도가 됐건, (러시아 정교회가 강조하는) 예수의 기도가 됐건, 아니면 주기도문이 됐건 마찬가지다. 특정한 방식의 기도를 정기적으로 꾸준히 드리건 수시로 빈번하게 드리건 상관 없다. 그저 각자가 선택하고 추구하는 특정한 기도 방식이 얼마나 몸에 깊숙이 새겨졌는가가 성패를 좌우한다. 그 점을 실로 매력적인 방식으로 들려주는 데에 이 책의 참된 가치가 있다. 

 

(비록 진부한 말이지만) 일독을 권한다. 재밌고, 유익하다. 우리으의 기도를 돌아보고, 나아가 우리의 영성을 돌아보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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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완역본, 양장) 기독교 명작 베스트 2
찰스 쉘던 지음, 손현선 옮김 / 선한청지기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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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는 내가 그리스도인이 되고 난 후 두 번째로 읽은 책이다. 내 기억이 맞다면 말이다. 갓 신앙의 여정에 들어선 나의 초기 독서는 위대한 영적 고전을 차근차근 읽는 것이었다. 크리스챤다이제스트 고전 시리즈로 읽었다(지금은 CH북스로 출판사 이름이 바뀌었다). 지금 생각해도 꽤나 대견했던 선택이다. 


읽은 소감은 물론 나쁘지 않았다. 아무 것도 모르던 초신자 시절에 이 소설책은 제법 흥미롭게 자극과 도전을 주었다. 솔직히 그 후로 얼마나 제대로 살아왔나 의문도 들고 부끄러운 마음이 많지만, 그래도 초심자의 열정에 붓는 기름과도 책이었다. 이 소섫의 제목이자, 본문에서 수도 없이 반복되는 이 질문은 나의 마음을 울렸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이후로 나는 신학을 공부했고, 좀 더 머리가 굵어졌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에 대한 비판적 이해에 대해서도 접하게 되었고, 기독교 윤리학의 넓고 깊은 세계 안에서 좀 더 겸손하게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고민해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학문은 외견상 단순한 것이 실은 얼마나 복잡한 것인지를 알게 해준다). 


요는 내가 기독교 윤리의 한 전통인 '그리스도를 본받음'(imitatio christi)이 보기보다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배웠다는 것이다. 물론 그 자체로는 옳은 말이다. 하지만 그 결과로 그리스도 모방에 대한 동력을 잃어버렸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자의식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그리스도를 본받아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은 사라졌다. 


이후 나의 삶을 돌아보면, 머리(생각)로는 분명한 신자이지만, 몸(삶)으로는 불신자에 다름 아니었다. 내 삶의 원리를 설명하고자 할 때, 예수님을 배제해도 별 차이가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요나 같던 나의 삶에 역경의 풍랑이 몰아쳤다. 자연스레 빈 손 들고 주님 앞에 나아가게 되었다. 그리고 나서 내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내 삶에 대한 반성의 결과로 단순하고(피상적), 기계적인(도식적) 그리스도 모방에 대한 거부가 지나쳐 그만 예수님의 삶과 죽음과 부활을 본받아 살고자 하는 의지 마저 내던져버렸었다는 자각에 이르렀다. 이는 성결의 기본이 아니던가. 그러던 차에 최근 다시 번역된 이 소설을 보게 되었고 이 단순한 질문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진리는 단순하다. 해석과 적용이 복잡하다 하더라도 그 단순한 본질을 간과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 살아왔다. 이제 내 자신을 돌아본다. 반성하고 또 반성한다. 그런 내 눈에 마침 찰스 쉘던의 소설이 들어왔다. 그 속의 등장인물의 신앙적 여정을 들여다본다. 소설을 다시 떠들쳐 보면서, 나의 삶도 같이 떠들쳐 보기 시작한다. 


이 소설을 읽는 것은 처음이 아니지만, 등장인물들이 붙잡은 질문을 진지하게 묻기 시작하는 것은 처음인 것만 같다. 어릴 적으로 순진한 열정은 어디로 다 가고 겨우 재만 남았나 싶다. 이 소설은 원래 주일 저녁 예배 설교로 들려졌다고 한다. 그 마음으로 소설에 귀를 기울인다. 이들의 치열한 일년간의 여정이 나의 마음에 뼈아프게 다가온다. 


마침 내가 집어든 선한청지기 판은 초판의 구성을 따랐다(기존 번역은 31장으로 쪼개놓은 것인 반면, 이번 번역은 초판의 12장으로 된 구성 그대로다). 해서 살펴보니 초판의 구성에 따르면, 각 장마다 하나의 이야기가 흘러간다. 가령 기존 판으로는 3-5장에서 <데일리 뉴스>라는 언론을 중심으로 서사가 진행되는데, 초판은 그게 한 챕터다. 


이미 말했듯이 기존에 소개된 판본은 모두 31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독자들의 편의를 고려한 선택으로 보인다. 하지만 초판 상의 한 장을 단 번에 읽는 것이 배움을 얻기에는 더 적절하다고 본다. 그러므로 앞으로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를 다시 읽고자 마음 먹은 분들에게도 나는 이 번역을 추천하겠다. 


하나의 장을 읽을 때마다 새로운 신앙적 모험담이 다시금 전개되며, 그 안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본문에서도 200여 번 반복하여 등장하는-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라는 질문을 중심으로 다양하게 변주되는 형식을(마치 예수님의 삶과 죽음과 부활을 네 개의 복음서로 구현하듯이 말이다) 통해 자연스럽게 독자(우리)를 그 질문 속으로 끌고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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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으로 끝내는 SF 그리기 - 외계 생명체, 로봇, 비행선과 미지의 세계까지
프렌티스 롤린스 지음, 김창규 옮김 / 시공아트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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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SF 불모지다. 소설은 특히 그러하고, 솔직히 만화도 많이 부족하다. 하지만 이제 시장이 달라지고 있다. 특히 웹툰 덕분에 상황이 훨씬 호전되고 있는 듯하다. 많은 이들이 장르문학, 특히 SF 작품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영화 <극한직업>에서 악역의 이름으로 테드 창이 등장한 것을 보고 많이 웃었다. 하드 SF 단편의 거장 이름이 이렇게 불쑥 등장한다는 것이 시사하는 바가 있지 않나. 이제 SF는 우리의 문화 중심으로 진입할 채비를 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은 멀다. 웹툰계가 포화 상태로 치닫고 있는 지금도 여전히 SF 쪽은 아쉬움이 많다. 그런 우리에게 <한 권으로 끝내는 SF 그리기>와 같은 드로잉 자료집은 매우 절실하다. 저자 프렌티스 롤린스는 주로 DC 진영에서 활동한 일러스트레이터다. 부제 그대로 외계 생명체, 로봇, 비행선과 미지의 세계까지다룬다. 이 자료집은 유토피아에서 디스토피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미래(또는 실제와 전혀 다른 과거)를 다룬다.”(9)

 

이 자료집의 가치는 어디에 있나? 기술이 아니라 의미를 전수한다는 데 그 진수가 있다. 인간, 외계인과 로봇, 지상 이동 수단과 비행 수단, 그리고 도시 풍경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소재를 다루면서 그 소재가 담지하는 의미를 자세하게 가르친다. 그 설명만 자세하게 읽어도 SF 서사를 진행함에 있어서 소재를 활용하는 역량이 현격하게 늘어날 것이다. 원리를 이해하면, 적용은 용이해지게 마련이다. 가령 외계인과 로봇은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괴물 같은 외계인과 로봇은 인간의 잠재의식 안에 있는 추하고 폭력적인 충동을 시각적으로 상징하는, 일종의 경고다. 반면에 아름다운 외계인과 로봇은 우리 모두의 내면에 존재하는 아직 개발되지 않은 잠재적 선과 완벽함을 시각적으로 상징하는, 이정표이자 지침이다. 그러나 좋은 SF 작품에서 이처럼 어딘가 이상한 인물을 등장시키는 진짜 목적은 우리가 그로부터 우리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보게 만드는 데 있다.”(77)

 

단지 드로잉의 기초만 소개하고, 여러 작품들을 보여주고 설명하는 데에 치중하지 않는다. 근본적으로 생각이 중요하다는 것이 저자의 입장이다. 저자가 보여주는 모든 그림에는 연결되는 이야기가 있다.” 그렇기에 SF 작품 활동은 그저 단순히 멋진 그림을 그리는 행위가 아니다.” 애초에 SF의 목적이 이야기를 현실에 비추어 보도록 자극하려는”(이상 14) 데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SF 창조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생각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한 권으로 끝내는 SF 그리기>는 드로잉 자료집이다. 그렇기에 구체적인 작품 설명과 실제적인 기법 안내가 담겨있다. 특히 1장은 드로잉을 위한 기초를 닦는 데에 유용하다. 하지만 이 자료집을 제대로 숙독한다면, 무엇보다도 먼저 SF라는 장르와 그 소재에 대한 이해가 심화될 것이다(수학 실력을 늘리려면, 공식을 적용하기 전에 공식을 이해해야 하듯이). SF 세계의 훌륭한 창조자가 되려면, 이 책을 집어들고 공부하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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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더스 키퍼스 - 찾은 자가 갖는다 빌 호지스 3부작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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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호지스시리즈

 

우리가 모두 알다시피 스티븐 킹은 믿고 보는 작가이다. 공포, 스릴러, 판타지 등을 막론하고 전방위적으로 활약한다. 그런데 그가 추리소설을 쓴다면, 과연 읽을 만 할 것인가? 그가 이 분야로 쓴 작품이 없지 않던가. 하지만 그가 빌 호지스라는 새로운 인물을 창조해낸 순간 우리는 그가 곧바로 추리소설의 대가로 우뚝 서게 되는 모습을 보게 된다.

  

3부작으로 기획된 이 연작은 두 가지를 특징으로 한다. 첫째로 주인공이 초인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티비를 끼고 살며 총을 만지작거리면서 자살을 생각하는 60대의 퇴임 형사가 빌 호지스이다. 더욱이 그의 파트너들은 정서적으로 불완전한 여성 히키코모리 홀리와 명민하지만 미성년인 흑인 남학생 제롬이다(그래도 2권에서는 대학생이다).

 

하지만 이렇듯 취약하나 개성 강한 이들이 힘을 합쳐 사건을 해결한다는 데에 작품의 특징이 있다. 제롬은 호지스가 들려주는 이야기의 본질을 간파하고, 브래디의 사기 수법을 찾아낸다. 브래디를 제압하는 것은 홀리이다. 다시 말해서 이들 없이 사건을 해결될 수가 없었다. 전지전능한 퇴임형사에게 약간의 도움을 주는 것에 불과하지 않다는 뜻이다.

 

둘째로, 발 호지스 시리즈는 범인의 정체를 초반부터 드러낸다. 아예 그들의 이야기가, 그들의 내면과 삶을 촘촘하게 직조하여 만들어진 조밀한 서사가 소설의 한 축을 이룬다. 특히 브래디 하츠필드(1권의 악역)와 모리스 벨러미(2권의 악역)가 그들의 삶에서 일관되게 욕망을 투사할 수밖에 없던 대상(사람이든 물건이든)의 결말과 마주한 상황은 독자의 연민을 자아낸다.

 

반전 없는 추리소설을 스티븐 킹이 거침없이 이끌어갈 수 있는 동력이 바로 이런 강력한 서사에 있다. 설득력 있는 캐릭터의 구축이 서사를 튼실하게 만들어주고, 결과적으로 독자를 흡인력 있게 끌어당긴다. 이런 진부하게 들리는 설명은 스티븐 킹의 작품에 대한 실례와도 같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사실이 그런 것을.

  

작가와 캐릭터

2권까지 읽은 지금 빌 호지스 시리즈는 일종의 성장담으로 읽힌다. 빌 호지스는 운동을 하고 살을 빼며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며 자기의 한계를 자각한다. 그렇게 인간적인 탐정 하나가 탄생하는 것이다. 홀리는 이제 자기만의 방을 나와서 사람들과 마주하기 시작한다(이들 둘을 묶어주는 것은 빌 호지스가 마음을 주었던 여인이자 홀리의 사촌인 제이니의 죽음이다)

 

빌 호지스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반전을 찾을 수가 없다그 대신에 인간 내면에 공존하는 빛과 그림자의 세밀한 묘사를 통해서 구축된 입체적인 캐릭터가 강력하게 이끌어가는 서사에 올라타는 것으로 충분하다주인공과 악역의 모습들 속에서 우리는 울고 웃게 된다어느새 그들 곁에서 같이 뛰고 있는 우리를 발견하게 된다.

 

무엇보다 2권의 캐릭터가 보여주는 것은 작가와 팬의 내면이다. 악역인 모리스나 그의 타깃인 피트 소버스 모두 작가 존 로스스타인과 그가 창조한 주인공 지미 골드에게 매료되었다. 하나 미공개된 두 권을 마저 읽고 지미의 총체적 인물상을 파악하게 된 피트와 달리 이미 공개된 3권까지만 읽고 주인공의 변절에 실망한 모리스는 전혀 다른 길에 서게 된다.

 

모리스가 러너’ 3부작(그 자체로는 미완성인 <러너>, <러너, 전쟁에 나서다>, <러너, 속도를 늦추다>이고, 후에 <러너, 서부로 떠나다>, <러너, 깃발을 들다>가 이어진다)의 미로 속에서 길을 잃고 가로막힌 지점을 영문학자인 모리스의 어머니 애니타 밸러미는 간파하고, 자신의 작가상을 들려준다(아마도 스티븐 킹 자신의 것으로 보이는 이 견해에 나 또한 동의한다).

 

훌륭한 소설가는 등장인물들을 선도하지 않아. 그냥 따라가지. 훌륭한 소설가는 사건을 만들어내지 않아. 벌어지는 사건을 주시하다가 목격한 그대로 기록하지. 훌륭한 소설가는 자기가 신이 아니라 비서라는 걸 알아.”(186)

 

캐릭터가 제대로 구축되면, 내러티브의 전개는 작가의 몫이 아니라 캐릭터의 몫이 된다. 빌 호지스 시리즈가 그 좋은 사례일 것이다. 그러나 지미가 계속 성장해가는 과정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리스(“성인이 된 이후의 지미[]는 싫은 거지?”, 186)는 결국 자신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어른이 되길 거부”(188)한다.

 

Tolle lege

 

그럼에도 우리는 독서에 대한 모리스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책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을, 살면서 가장 짜릿했던 순간으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단순히 책을 읽는 수준을 넘어 책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대책 없이 푹 빠져 버린 순간을 말이다.”(180) 그렇다. 독서는 사랑이고, 독서가는 사랑꾼이다.

 

로스스타인의 또 다른 애독자 피트는 어떠한가? “피트가 아는 한 시리즈의 마지막 두 권을 읽은 사람은 전 세계를 통틀어 그 한 명뿐이었는데 그로 인해 그의 인생이 달라졌다.”(129) 물론 이제 갓 열여덟 살이 된 그는 뒷부분에서 이렇게 정정한다. “그의 작품으로 인해 제 감성이 달라졌다고 하는 게 맞겠어요.”(552) 피트는 분명 훌륭한 평론가의 길을 갈 것이다!

 

피트와 모리스가 러너 시리즈를 탐독했듯이 <파인더스 키퍼스>, 아니 빌 호지스시리즈는 추리소설의 애독자나 스티븐 킹의 팬이나 매한가지로 탐독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아직 <미스터 메르세데스>를 읽지 않았다면, 곧바로 <파인더스 키퍼스>에 뛰어드는 것을 만류하고 싶다. 은퇴 형사 빌 호지스가 탐정으로 거듭나게 된 계기가 된 전작을 먼저 읽으시길 바란다.

 

이미 <미스터 메르세데스>을 읽었다면, 지금 이 서평을 보실 때가 아니다. 어서 빨리 <파인더스 키퍼스>를 집어드시길. Tolle lege(집어들어 읽어라).



"피트가 아는 한 시리즈의 마지막 두 권을 읽은 사람은 전 세계를 통틀어 그 한 명뿐이었는데 그로 인해 그의 인생이 달라졌다."(129쪽)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책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을, 살면서 가장 짜릿했던 순간으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단순히 책을 읽는 수준을 넘어 책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대책 없이 푹 빠져 버린 순간을 말이다."(180쪽)

"훌륭한 소설가는 등장인물들을 선도하지 않아. 그냥 따라가지. 훌륭한 소설가는 사건을 만들어내지 않아. 벌어지는 사건을 주시하다가 목격한 그대로 기록하지. 훌륭한 소설가는 자기가 신이 아니라 비서라는 걸 알아."(1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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