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단 없는 기도 IVP 영성의 보화 2
로버트 벤슨 지음, 안정임 옮김 / IVP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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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내 이야기를 짧게 하자. 나는 주기도문을 종종 암송한다. 연달아 암송하기도 한다. 오래되지 않은 이야기다. 아마 1년도 채 되지 않았을 게다. 내 영적 지도자의 충고를 따른 결과다.

 

오래 전부터 외운, 그것도 매우 자연스레 외운 기도문이라 생각의 비중을 줄이고, 자연스레 흐름에 맡긴 채 기도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 경우에는 습관적으로 하는 경우도 있지만, 하나의 영적인 습관으로 만들고자 하는 중이다. 많은 기도가 우리의 머리와 마음에서 흘러나오지만, 주기도문은 우리가 그 안에 들어간다. 우리는 전통으로 들어가며, 전통 안에서 산다. 전통은 우리를 좀 더 나은 존재로 만들어준다. 그리고 주기도문은 위대한 기도의 전통을 대변한다. 

 

[중단 없는 기도]는 위대한 기도 전통 가운데 하나인 성무일도를 재기있게 소개하고, 강력하게 추천한다. 성무일도를 하나의 습관을 만들어가는 작가 자신과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가 흥미진진하다. 저자의 유쾌하고 유머러스한 소개(유머는 이 책의 도드라진 장점 가운데 하나이다) 가운데 메일 일정한 시간을 들여 일정한 형식으로 드려지는 기도의 방식이 현대적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위대한 기도 전통에 우리 자신을 내맡기는 방식 말이다. 

 

뜻하지 않게 재미있어 끝까지 술술 읽어냈지만, 그 메시지는 가볍지 않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명령에 순종하고자 기도를 습관화하는 방식을 고안했다. 이는 성무일도가 됐건, (러시아 정교회가 강조하는) 예수의 기도가 됐건, 아니면 주기도문이 됐건 마찬가지다. 특정한 방식의 기도를 정기적으로 꾸준히 드리건 수시로 빈번하게 드리건 상관 없다. 그저 각자가 선택하고 추구하는 특정한 기도 방식이 얼마나 몸에 깊숙이 새겨졌는가가 성패를 좌우한다. 그 점을 실로 매력적인 방식으로 들려주는 데에 이 책의 참된 가치가 있다. 

 

(비록 진부한 말이지만) 일독을 권한다. 재밌고, 유익하다. 우리으의 기도를 돌아보고, 나아가 우리의 영성을 돌아보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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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완역본, 양장) 기독교 명작 베스트 2
찰스 쉘던 지음, 손현선 옮김 / 선한청지기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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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는 내가 그리스도인이 되고 난 후 두 번째로 읽은 책이다. 내 기억이 맞다면 말이다. 갓 신앙의 여정에 들어선 나의 초기 독서는 위대한 영적 고전을 차근차근 읽는 것이었다. 크리스챤다이제스트 고전 시리즈로 읽었다(지금은 CH북스로 출판사 이름이 바뀌었다). 지금 생각해도 꽤나 대견했던 선택이다. 


읽은 소감은 물론 나쁘지 않았다. 아무 것도 모르던 초신자 시절에 이 소설책은 제법 흥미롭게 자극과 도전을 주었다. 솔직히 그 후로 얼마나 제대로 살아왔나 의문도 들고 부끄러운 마음이 많지만, 그래도 초심자의 열정에 붓는 기름과도 책이었다. 이 소섫의 제목이자, 본문에서 수도 없이 반복되는 이 질문은 나의 마음을 울렸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이후로 나는 신학을 공부했고, 좀 더 머리가 굵어졌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에 대한 비판적 이해에 대해서도 접하게 되었고, 기독교 윤리학의 넓고 깊은 세계 안에서 좀 더 겸손하게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고민해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학문은 외견상 단순한 것이 실은 얼마나 복잡한 것인지를 알게 해준다). 


요는 내가 기독교 윤리의 한 전통인 '그리스도를 본받음'(imitatio christi)이 보기보다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배웠다는 것이다. 물론 그 자체로는 옳은 말이다. 하지만 그 결과로 그리스도 모방에 대한 동력을 잃어버렸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자의식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그리스도를 본받아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은 사라졌다. 


이후 나의 삶을 돌아보면, 머리(생각)로는 분명한 신자이지만, 몸(삶)으로는 불신자에 다름 아니었다. 내 삶의 원리를 설명하고자 할 때, 예수님을 배제해도 별 차이가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요나 같던 나의 삶에 역경의 풍랑이 몰아쳤다. 자연스레 빈 손 들고 주님 앞에 나아가게 되었다. 그리고 나서 내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내 삶에 대한 반성의 결과로 단순하고(피상적), 기계적인(도식적) 그리스도 모방에 대한 거부가 지나쳐 그만 예수님의 삶과 죽음과 부활을 본받아 살고자 하는 의지 마저 내던져버렸었다는 자각에 이르렀다. 이는 성결의 기본이 아니던가. 그러던 차에 최근 다시 번역된 이 소설을 보게 되었고 이 단순한 질문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진리는 단순하다. 해석과 적용이 복잡하다 하더라도 그 단순한 본질을 간과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 살아왔다. 이제 내 자신을 돌아본다. 반성하고 또 반성한다. 그런 내 눈에 마침 찰스 쉘던의 소설이 들어왔다. 그 속의 등장인물의 신앙적 여정을 들여다본다. 소설을 다시 떠들쳐 보면서, 나의 삶도 같이 떠들쳐 보기 시작한다. 


이 소설을 읽는 것은 처음이 아니지만, 등장인물들이 붙잡은 질문을 진지하게 묻기 시작하는 것은 처음인 것만 같다. 어릴 적으로 순진한 열정은 어디로 다 가고 겨우 재만 남았나 싶다. 이 소설은 원래 주일 저녁 예배 설교로 들려졌다고 한다. 그 마음으로 소설에 귀를 기울인다. 이들의 치열한 일년간의 여정이 나의 마음에 뼈아프게 다가온다. 


마침 내가 집어든 선한청지기 판은 초판의 구성을 따랐다(기존 번역은 31장으로 쪼개놓은 것인 반면, 이번 번역은 초판의 12장으로 된 구성 그대로다). 해서 살펴보니 초판의 구성에 따르면, 각 장마다 하나의 이야기가 흘러간다. 가령 기존 판으로는 3-5장에서 <데일리 뉴스>라는 언론을 중심으로 서사가 진행되는데, 초판은 그게 한 챕터다. 


이미 말했듯이 기존에 소개된 판본은 모두 31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독자들의 편의를 고려한 선택으로 보인다. 하지만 초판 상의 한 장을 단 번에 읽는 것이 배움을 얻기에는 더 적절하다고 본다. 그러므로 앞으로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를 다시 읽고자 마음 먹은 분들에게도 나는 이 번역을 추천하겠다. 


하나의 장을 읽을 때마다 새로운 신앙적 모험담이 다시금 전개되며, 그 안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본문에서도 200여 번 반복하여 등장하는-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라는 질문을 중심으로 다양하게 변주되는 형식을(마치 예수님의 삶과 죽음과 부활을 네 개의 복음서로 구현하듯이 말이다) 통해 자연스럽게 독자(우리)를 그 질문 속으로 끌고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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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으로 끝내는 SF 그리기 - 외계 생명체, 로봇, 비행선과 미지의 세계까지
프렌티스 롤린스 지음, 김창규 옮김 / 시공아트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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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SF 불모지다. 소설은 특히 그러하고, 솔직히 만화도 많이 부족하다. 하지만 이제 시장이 달라지고 있다. 특히 웹툰 덕분에 상황이 훨씬 호전되고 있는 듯하다. 많은 이들이 장르문학, 특히 SF 작품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영화 <극한직업>에서 악역의 이름으로 테드 창이 등장한 것을 보고 많이 웃었다. 하드 SF 단편의 거장 이름이 이렇게 불쑥 등장한다는 것이 시사하는 바가 있지 않나. 이제 SF는 우리의 문화 중심으로 진입할 채비를 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은 멀다. 웹툰계가 포화 상태로 치닫고 있는 지금도 여전히 SF 쪽은 아쉬움이 많다. 그런 우리에게 <한 권으로 끝내는 SF 그리기>와 같은 드로잉 자료집은 매우 절실하다. 저자 프렌티스 롤린스는 주로 DC 진영에서 활동한 일러스트레이터다. 부제 그대로 외계 생명체, 로봇, 비행선과 미지의 세계까지다룬다. 이 자료집은 유토피아에서 디스토피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미래(또는 실제와 전혀 다른 과거)를 다룬다.”(9)

 

이 자료집의 가치는 어디에 있나? 기술이 아니라 의미를 전수한다는 데 그 진수가 있다. 인간, 외계인과 로봇, 지상 이동 수단과 비행 수단, 그리고 도시 풍경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소재를 다루면서 그 소재가 담지하는 의미를 자세하게 가르친다. 그 설명만 자세하게 읽어도 SF 서사를 진행함에 있어서 소재를 활용하는 역량이 현격하게 늘어날 것이다. 원리를 이해하면, 적용은 용이해지게 마련이다. 가령 외계인과 로봇은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괴물 같은 외계인과 로봇은 인간의 잠재의식 안에 있는 추하고 폭력적인 충동을 시각적으로 상징하는, 일종의 경고다. 반면에 아름다운 외계인과 로봇은 우리 모두의 내면에 존재하는 아직 개발되지 않은 잠재적 선과 완벽함을 시각적으로 상징하는, 이정표이자 지침이다. 그러나 좋은 SF 작품에서 이처럼 어딘가 이상한 인물을 등장시키는 진짜 목적은 우리가 그로부터 우리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보게 만드는 데 있다.”(77)

 

단지 드로잉의 기초만 소개하고, 여러 작품들을 보여주고 설명하는 데에 치중하지 않는다. 근본적으로 생각이 중요하다는 것이 저자의 입장이다. 저자가 보여주는 모든 그림에는 연결되는 이야기가 있다.” 그렇기에 SF 작품 활동은 그저 단순히 멋진 그림을 그리는 행위가 아니다.” 애초에 SF의 목적이 이야기를 현실에 비추어 보도록 자극하려는”(이상 14) 데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SF 창조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생각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한 권으로 끝내는 SF 그리기>는 드로잉 자료집이다. 그렇기에 구체적인 작품 설명과 실제적인 기법 안내가 담겨있다. 특히 1장은 드로잉을 위한 기초를 닦는 데에 유용하다. 하지만 이 자료집을 제대로 숙독한다면, 무엇보다도 먼저 SF라는 장르와 그 소재에 대한 이해가 심화될 것이다(수학 실력을 늘리려면, 공식을 적용하기 전에 공식을 이해해야 하듯이). SF 세계의 훌륭한 창조자가 되려면, 이 책을 집어들고 공부하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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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더스 키퍼스 - 찾은 자가 갖는다 빌 호지스 3부작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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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호지스시리즈

 

우리가 모두 알다시피 스티븐 킹은 믿고 보는 작가이다. 공포, 스릴러, 판타지 등을 막론하고 전방위적으로 활약한다. 그런데 그가 추리소설을 쓴다면, 과연 읽을 만 할 것인가? 그가 이 분야로 쓴 작품이 없지 않던가. 하지만 그가 빌 호지스라는 새로운 인물을 창조해낸 순간 우리는 그가 곧바로 추리소설의 대가로 우뚝 서게 되는 모습을 보게 된다.

  

3부작으로 기획된 이 연작은 두 가지를 특징으로 한다. 첫째로 주인공이 초인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티비를 끼고 살며 총을 만지작거리면서 자살을 생각하는 60대의 퇴임 형사가 빌 호지스이다. 더욱이 그의 파트너들은 정서적으로 불완전한 여성 히키코모리 홀리와 명민하지만 미성년인 흑인 남학생 제롬이다(그래도 2권에서는 대학생이다).

 

하지만 이렇듯 취약하나 개성 강한 이들이 힘을 합쳐 사건을 해결한다는 데에 작품의 특징이 있다. 제롬은 호지스가 들려주는 이야기의 본질을 간파하고, 브래디의 사기 수법을 찾아낸다. 브래디를 제압하는 것은 홀리이다. 다시 말해서 이들 없이 사건을 해결될 수가 없었다. 전지전능한 퇴임형사에게 약간의 도움을 주는 것에 불과하지 않다는 뜻이다.

 

둘째로, 발 호지스 시리즈는 범인의 정체를 초반부터 드러낸다. 아예 그들의 이야기가, 그들의 내면과 삶을 촘촘하게 직조하여 만들어진 조밀한 서사가 소설의 한 축을 이룬다. 특히 브래디 하츠필드(1권의 악역)와 모리스 벨러미(2권의 악역)가 그들의 삶에서 일관되게 욕망을 투사할 수밖에 없던 대상(사람이든 물건이든)의 결말과 마주한 상황은 독자의 연민을 자아낸다.

 

반전 없는 추리소설을 스티븐 킹이 거침없이 이끌어갈 수 있는 동력이 바로 이런 강력한 서사에 있다. 설득력 있는 캐릭터의 구축이 서사를 튼실하게 만들어주고, 결과적으로 독자를 흡인력 있게 끌어당긴다. 이런 진부하게 들리는 설명은 스티븐 킹의 작품에 대한 실례와도 같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사실이 그런 것을.

  

작가와 캐릭터

2권까지 읽은 지금 빌 호지스 시리즈는 일종의 성장담으로 읽힌다. 빌 호지스는 운동을 하고 살을 빼며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며 자기의 한계를 자각한다. 그렇게 인간적인 탐정 하나가 탄생하는 것이다. 홀리는 이제 자기만의 방을 나와서 사람들과 마주하기 시작한다(이들 둘을 묶어주는 것은 빌 호지스가 마음을 주었던 여인이자 홀리의 사촌인 제이니의 죽음이다)

 

빌 호지스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반전을 찾을 수가 없다그 대신에 인간 내면에 공존하는 빛과 그림자의 세밀한 묘사를 통해서 구축된 입체적인 캐릭터가 강력하게 이끌어가는 서사에 올라타는 것으로 충분하다주인공과 악역의 모습들 속에서 우리는 울고 웃게 된다어느새 그들 곁에서 같이 뛰고 있는 우리를 발견하게 된다.

 

무엇보다 2권의 캐릭터가 보여주는 것은 작가와 팬의 내면이다. 악역인 모리스나 그의 타깃인 피트 소버스 모두 작가 존 로스스타인과 그가 창조한 주인공 지미 골드에게 매료되었다. 하나 미공개된 두 권을 마저 읽고 지미의 총체적 인물상을 파악하게 된 피트와 달리 이미 공개된 3권까지만 읽고 주인공의 변절에 실망한 모리스는 전혀 다른 길에 서게 된다.

 

모리스가 러너’ 3부작(그 자체로는 미완성인 <러너>, <러너, 전쟁에 나서다>, <러너, 속도를 늦추다>이고, 후에 <러너, 서부로 떠나다>, <러너, 깃발을 들다>가 이어진다)의 미로 속에서 길을 잃고 가로막힌 지점을 영문학자인 모리스의 어머니 애니타 밸러미는 간파하고, 자신의 작가상을 들려준다(아마도 스티븐 킹 자신의 것으로 보이는 이 견해에 나 또한 동의한다).

 

훌륭한 소설가는 등장인물들을 선도하지 않아. 그냥 따라가지. 훌륭한 소설가는 사건을 만들어내지 않아. 벌어지는 사건을 주시하다가 목격한 그대로 기록하지. 훌륭한 소설가는 자기가 신이 아니라 비서라는 걸 알아.”(186)

 

캐릭터가 제대로 구축되면, 내러티브의 전개는 작가의 몫이 아니라 캐릭터의 몫이 된다. 빌 호지스 시리즈가 그 좋은 사례일 것이다. 그러나 지미가 계속 성장해가는 과정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리스(“성인이 된 이후의 지미[]는 싫은 거지?”, 186)는 결국 자신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어른이 되길 거부”(188)한다.

 

Tolle lege

 

그럼에도 우리는 독서에 대한 모리스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책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을, 살면서 가장 짜릿했던 순간으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단순히 책을 읽는 수준을 넘어 책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대책 없이 푹 빠져 버린 순간을 말이다.”(180) 그렇다. 독서는 사랑이고, 독서가는 사랑꾼이다.

 

로스스타인의 또 다른 애독자 피트는 어떠한가? “피트가 아는 한 시리즈의 마지막 두 권을 읽은 사람은 전 세계를 통틀어 그 한 명뿐이었는데 그로 인해 그의 인생이 달라졌다.”(129) 물론 이제 갓 열여덟 살이 된 그는 뒷부분에서 이렇게 정정한다. “그의 작품으로 인해 제 감성이 달라졌다고 하는 게 맞겠어요.”(552) 피트는 분명 훌륭한 평론가의 길을 갈 것이다!

 

피트와 모리스가 러너 시리즈를 탐독했듯이 <파인더스 키퍼스>, 아니 빌 호지스시리즈는 추리소설의 애독자나 스티븐 킹의 팬이나 매한가지로 탐독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아직 <미스터 메르세데스>를 읽지 않았다면, 곧바로 <파인더스 키퍼스>에 뛰어드는 것을 만류하고 싶다. 은퇴 형사 빌 호지스가 탐정으로 거듭나게 된 계기가 된 전작을 먼저 읽으시길 바란다.

 

이미 <미스터 메르세데스>을 읽었다면, 지금 이 서평을 보실 때가 아니다. 어서 빨리 <파인더스 키퍼스>를 집어드시길. Tolle lege(집어들어 읽어라).



"피트가 아는 한 시리즈의 마지막 두 권을 읽은 사람은 전 세계를 통틀어 그 한 명뿐이었는데 그로 인해 그의 인생이 달라졌다."(129쪽)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책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을, 살면서 가장 짜릿했던 순간으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단순히 책을 읽는 수준을 넘어 책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대책 없이 푹 빠져 버린 순간을 말이다."(180쪽)

"훌륭한 소설가는 등장인물들을 선도하지 않아. 그냥 따라가지. 훌륭한 소설가는 사건을 만들어내지 않아. 벌어지는 사건을 주시하다가 목격한 그대로 기록하지. 훌륭한 소설가는 자기가 신이 아니라 비서라는 걸 알아."(1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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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
히노 에이타로 지음, 이소담 옮김, 양경수 그림 / 오우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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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 청년들의 현실 처지는 회사가 키우는 가축(社畜)이다. 오너는 (저임과 과로가 보람 가운데 교차하는) 열정페이로 청년을 부려먹고, 멘토는 상처받은 청년을 달래서 다시 노예 주인에게 돌려보낸다. 이런 상황 속에서 조금씩 자신의 권리에 대한 인식이 싹트고 있다.

 

히노 에이타로의 <,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는 그러한 맥락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 제목부터가 폐부를 찌르지 않나. 원제 자체도 이와 다를 바가 없다: “、「やりがいとかいらないんでとりあえず殘業代ください” (잔업대가 곧 야근수당이다.)

 

장과 절의 제목이 가슴에 절절하게 와닿는다. “오늘은 볼일이 있어서 정시에 퇴근하겠습니다” 1부의 표제이다. 그 안의 한 절은 이런 제목을 달고 있다. “칼퇴는 전설에만 존재할 뿐……일본 서적을 번역한 것이건만 우리에게도 한 치의 오차 없이 그대로 와닿는다.

 

20152월에 걸스데이의 멤버 혜리가 맑스돌로 등극했다. 그녀가 모델로 등장한 (구인, 구직 사이트인) 알바몬의 법정 최저시급을 강조하는 공익성 광고에 PC방 업자들의 단체(한국인터넷콘텐츠서비스협동조합)가 공개사과 요구공문을 냈던 해프닝을 두고 하는 말이다.

 

““야근수당을 다 줬다가는 회사가 망한다라며 대놓고 얼굴에 철판을 까는 경영자도 있다.

법을 지킨다고 회사가 망한다면 그런 회사는 망하면 된다. 법을 어기면서까지 회사를 연명시킨다고 해서 이 사회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31)

 

그래, 일본이나 한국이나 도긴개긴인 모양이다. 그렇다. 이런 회사는 망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회사도 못 들어가서 버둥대는 청춘들이 있다. 그렇기에 블랙기업(곤노 하루키의 2013년작 저서의 제목으로 널리 알려진 표현)의 입사 제의를 덥석 물고 후회하게 되는 것이다.

 

블랙기업(black企業)은 저임(低賃)에 과로로 고용하는 악덕기업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보람을 주고 임금을 줄이는 현실도 나쁘지만, 말단 계약직의 월급으로 오너 수준의 헌신을 요구하는 것은 더 나쁘다. 그러한 헌신의 요구에 응하다가 죽음에 이르기도 한다. 이는 개죽음이다.

 

과로사나 과로자살은 한마디로 회사에 의한 살인이다. [……] 그런데 노동자의 과로사나 과로자살을 유발한 회사는 그리 대단한 벌을 받지 않는다.” (35)

 

바로 우리의 현실이다. 이런 비루한 처지가 중노년층을 비껴가는 것은 아니다. 청년층에 상대적으로 더 무거운 짐이 놓였다는 것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지만(원래 블랙기업은 청년 고용자를 착취하는 악덕기업을 가리킨다), 헬게이트 자체는 모든 세대에게 활짝 열렸다.

 

특히 감정노동으로 시달리는 서비스 업계 종사자들이 그러하다. 이들이 상대하는 손님은 절대 신이 아니다.”(47) 또한 남들 다 하는 대로 정해진 레일을 따라 살아야 한다. 레일을 벗어나면 갑자기 인생이 하드 모드로 바뀐다.”(50)

 

노동에 종사하는 모든 이를 옭아매는 이데올로기가 있다. 바로 “‘일을 위해 사는 것이야말로 사람의 행복이라는 사고방식”(56)을 가리킨다. 어쩌면 한국이나 일본이나 매한가지인지 모르겠다. 이러한 사고방식이 주입되면 결국 사축이 만들어진다.

 

마르크스의 사위인 파울 라파르그가 설파한 게으를 수 있는 자유가 절실하다. 그러나 우리 시대의 자본주의 정신은 노예=노동자가 될 수 있는 자유를 주창하고 있다. 요새는 취업이야말로 기업의 사회적 봉사라는 헛소리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고 있지 않나.

 

히노 에이타로는 심정적으로 탈()사축을 지지한다. “이 책의 목적은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이 회사의 독자적인 가치관, 이른바 사축적 가치관에서 탈출해 당연한것들을 인식하게 하는 것이다.”(169) 그럼에도 결론으로 내놓는 것은 다소 소극적인 입장이다.

 

일에서 보람을 바라는 사람도, 보람을 바라지 않는 사람도, 상대의 가치관을 비난하지 않고 일할 수 있다면 이 사회의 직장도 조금은 편해지지 않을까? ‘다양한 가치관을 인정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널리 퍼지기를 바라며 이 책을 끝마치려 한다.” (170)

 

물론 개인적으로 말하자면, 이러한 입장이 저자로서는 타당하고 균형잡힌 결론이다. 솔직히 내가 책을 써도 결론은 이렇게 처리할 것 같다. 그럼에도 끝까지 호쾌하게 밀고 나가기를 기대하는 마음도 있었다. 논리적으로는 수긍하나, 심정적으로는 아쉬움이 남는달까.

 

저자의 정의에 따르면, 사축은 회사와 자신을 분리해서 생각하지 못하는 회사원”(61)이다. 그러니까 사축이 된다는 것은 회사라는 이름의 우상을 숭배하는 것이다. 우상을 숭배하는 만큼 그 우상에게 자유를 빼앗기게 마련이다. 사축도 그러하다. 회사의 노예가 곧 사축이다.

 

그러나 애초에 <,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의 전개 자체가 제법 차분하다. “중요한 것은 세상의 평가기준이 아니라 나의 평가기준이다.”(166) 이러한 문장만 본다면, 경박하고 도발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실제 거기에 이르는 과정은 옹골지다.

 

여기에 책에 수록된 양경수 작가의 그림과 대사가 양념처럼 더해진다. 이 부분이 워낙 찰지게 웃기는 지라 책의 성격을 오해하기 십상이다. 개인적으로는 여사원이 개에게 보람이라는 두 글자가 적혀 있는 종이쪽지를 건네주는 장면(81)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러니까 <,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는 차분한 글과 웃기는 그림의 콜라보레이션이다. 글과 그림 각각의 결과 호흡이 다소 상이하다. 이의 공존이 외려 이 책을 돋보이게 만들었다(단지 글이 그림에 좀 가려진 감이 없지 않다). 청년 독자들의 일독을 권한다


"야근수당을 다 줬다가는 회사가 망한다"라며 대놓고 얼굴에 철판을 까는 경영자도 있다.
법을 지킨다고 회사가 망한다면 그런 회사는 망하면 된다. 법을 어기면서까지 회사를 연명시킨다고 해서 이 사회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31쪽)

과로사나 과로자살은 한마디로 회사에 의한 ‘살인’이다. [……] 그런데 노동자의 과로사나 과로자살을 유발한 회사는 그리 대단한 벌을 받지 않는다. (35쪽)

이 책의 목적은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이 회사의 독자적인 가치관, 이른바 ‘사축’적 가치관에서 탈출해 ‘당연한’것들을 인식하게 하는 것이다.(169쪽)

일에서 보람을 바라는 사람도, 보람을 바라지 않는 사람도, 상대의 가치관을 비난하지 않고 일할 수 있다면 이 사회의 직장도 조금은 편해지지 않을까? ‘다양한 가치관을 인정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널리 퍼지기를 바라며 이 책을 끝마치려 한다. (1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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