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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
히노 에이타로 지음, 이소담 옮김, 양경수 그림 / 오우아 / 2016년 5월
평점 :
품절
우리 시대 청년들의 현실 처지는 회사가 키우는 가축(社畜)이다. 오너는 (저임과 과로가 보람 가운데 교차하는) 열정페이로 청년을 부려먹고, 멘토는 상처받은 청년을 달래서 다시 노예 주인에게 돌려보낸다. 이런 상황 속에서 조금씩 자신의 권리에 대한 인식이 싹트고 있다.
히노 에이타로의 <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는 그러한 맥락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 제목부터가 폐부를 찌르지 않나. 원제 자체도 이와 다를 바가 없다: “あ、「やりがい」とかいらないんで、とりあえず殘業代ください。” (잔업대가 곧 야근수당이다.)
장과 절의 제목이 가슴에 절절하게 와닿는다. “오늘은 볼일이 있어서 정시에 퇴근하겠습니다” 1부의 표제이다. 그 안의 한 절은 이런 제목을 달고 있다. “칼퇴‘는 전설에만 존재할 뿐……” 일본 서적을 번역한 것이건만 우리에게도 한 치의 오차 없이 그대로 와닿는다.
2015년 2월에 걸스데이의 멤버 혜리가 맑스돌로 등극했다. 그녀가 모델로 등장한 (구인, 구직 사이트인) 알바몬의 법정 최저시급을 강조하는 공익성 광고에 PC방 업자들의 단체(한국인터넷콘텐츠서비스협동조합)가 공개사과 요구공문을 냈던 해프닝을 두고 하는 말이다.
““야근수당을 다 줬다가는 회사가 망한다”라며 대놓고 얼굴에 철판을 까는 경영자도 있다.
법을 지킨다고 회사가 망한다면 그런 회사는 망하면 된다. 법을 어기면서까지 회사를 연명시킨다고 해서 이 사회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31쪽)
그래, 일본이나 한국이나 도긴개긴인 모양이다. 그렇다. 이런 회사는 망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회사도 못 들어가서 버둥대는 청춘들이 있다. 그렇기에 블랙기업(곤노 하루키의 2013년작 저서의 제목으로 널리 알려진 표현)의 입사 제의를 덥석 물고 후회하게 되는 것이다.
블랙기업(black企業)은 저임(低賃)에 과로로 고용하는 악덕기업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보람을 주고 임금을 줄이는 현실도 나쁘지만, 말단 계약직의 월급으로 오너 수준의 헌신을 요구하는 것은 더 나쁘다. 그러한 헌신의 요구에 응하다가 죽음에 이르기도 한다. 이는 개죽음이다.
“과로사나 과로자살은 한마디로 회사에 의한 ‘살인’이다. [……] 그런데 노동자의 과로사나 과로자살을 유발한 회사는 그리 대단한 벌을 받지 않는다.” (35쪽)
바로 우리의 현실이다. 이런 비루한 처지가 중노년층을 비껴가는 것은 아니다. 청년층에 상대적으로 더 무거운 짐이 놓였다는 것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지만(원래 블랙기업은 청년 고용자를 착취하는 악덕기업을 가리킨다), 헬게이트 자체는 모든 세대에게 활짝 열렸다.
특히 감정노동으로 시달리는 서비스 업계 종사자들이 그러하다. 이들이 상대하는 “손님은 절대 신이 아니다.”(47쪽) 또한 남들 다 하는 대로 정해진 레일을 따라 살아야 한다. 그 “레일을 벗어나면 갑자기 인생이 ‘하드 모드’로 바뀐다.”(50쪽)
노동에 종사하는 모든 이를 옭아매는 이데올로기가 있다. 바로 “‘일을 위해 사는 것이야말로 사람의 행복’이라는 사고방식”(56쪽)을 가리킨다. 어쩌면 한국이나 일본이나 매한가지인지 모르겠다. 이러한 사고방식이 주입되면 결국 사축이 만들어진다.
마르크스의 사위인 파울 라파르그가 설파한 게으를 수 있는 자유가 절실하다. 그러나 우리 시대의 자본주의 정신은 노예=노동자가 될 수 있는 자유를 주창하고 있다. 요새는 취업이야말로 기업의 사회적 봉사라는 헛소리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고 있지 않나.
히노 에이타로는 심정적으로 탈(脫)사축을 지지한다. “이 책의 목적은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이 회사의 독자적인 가치관, 이른바 ‘사축’적 가치관에서 탈출해 ‘당연한’것들을 인식하게 하는 것이다.”(169쪽) 그럼에도 결론으로 내놓는 것은 다소 소극적인 입장이다.
“일에서 보람을 바라는 사람도, 보람을 바라지 않는 사람도, 상대의 가치관을 비난하지 않고 일할 수 있다면 이 사회의 직장도 조금은 편해지지 않을까? ‘다양한 가치관을 인정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널리 퍼지기를 바라며 이 책을 끝마치려 한다.” (170쪽)
물론 개인적으로 말하자면, 이러한 입장이 저자로서는 타당하고 균형잡힌 결론이다. 솔직히 내가 책을 써도 결론은 이렇게 처리할 것 같다. 그럼에도 끝까지 호쾌하게 밀고 나가기를 기대하는 마음도 있었다. 논리적으로는 수긍하나, 심정적으로는 아쉬움이 남는달까.
저자의 정의에 따르면, 사축은 “회사와 자신을 분리해서 생각하지 못하는 회사원”(61쪽)이다. 그러니까 사축이 된다는 것은 회사라는 이름의 우상을 숭배하는 것이다. 우상을 숭배하는 만큼 그 우상에게 자유를 빼앗기게 마련이다. 사축도 그러하다. 회사의 노예가 곧 사축이다.
그러나 애초에 <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의 전개 자체가 제법 차분하다. “중요한 것은 세상의 평가기준이 아니라 나의 평가기준이다.”(166쪽) 이러한 문장만 본다면, 경박하고 도발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실제 거기에 이르는 과정은 옹골지다.
여기에 책에 수록된 양경수 작가의 그림과 대사가 양념처럼 더해진다. 이 부분이 워낙 찰지게 웃기는 지라 책의 성격을 오해하기 십상이다. 개인적으로는 여사원이 개에게 ‘보람’이라는 두 글자가 적혀 있는 종이쪽지를 건네주는 장면(81쪽)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러니까 <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는 차분한 글과 웃기는 그림의 콜라보레이션이다. 글과 그림 각각의 결과 호흡이 다소 상이하다. 이의 공존이 외려 이 책을 돋보이게 만들었다(단지 글이 그림에 좀 가려진 감이 없지 않다). 청년 독자들의 일독을 권한다.
"야근수당을 다 줬다가는 회사가 망한다"라며 대놓고 얼굴에 철판을 까는 경영자도 있다. 법을 지킨다고 회사가 망한다면 그런 회사는 망하면 된다. 법을 어기면서까지 회사를 연명시킨다고 해서 이 사회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31쪽)
과로사나 과로자살은 한마디로 회사에 의한 ‘살인’이다. [……] 그런데 노동자의 과로사나 과로자살을 유발한 회사는 그리 대단한 벌을 받지 않는다. (35쪽)
이 책의 목적은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이 회사의 독자적인 가치관, 이른바 ‘사축’적 가치관에서 탈출해 ‘당연한’것들을 인식하게 하는 것이다.(169쪽)
일에서 보람을 바라는 사람도, 보람을 바라지 않는 사람도, 상대의 가치관을 비난하지 않고 일할 수 있다면 이 사회의 직장도 조금은 편해지지 않을까? ‘다양한 가치관을 인정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널리 퍼지기를 바라며 이 책을 끝마치려 한다. (1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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