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적극적으로 죽음을 모색해야 할 때가 있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만인들이여!
여기를 보라. 삶에 대한 연연보다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죽을 것인가를 고민하던 장부의 삶이
여기에 있지 아니한가! 아아...! 엄동진, 주진역!
장렬한 죽음이여!
삶을 가르치는 가장 뛰어난 스승이여..!
(중략)
▶ 장부곡의 유래
내가 쓰러질 때 나를 위해 슬퍼할 자는 나 하나뿐이다.
진화론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만일 삶이 적자생존의 경쟁이라면 힘이 최고의 덕이고, 약한 것은 유일한 결점이 아닌가?
살아남아 승리하는 것이 선이고 굴복하는 것이 악이다 삶의 전투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선량함이 아니라 힘.
겸손함이 아니라 긍지. 이타심이 아니라 확고부동한 지성이며, 평등과 민주주의는 도태와 생존 본질에 어긋나며 대중이 아니라 천재가 진화의 목표이다.
정의가 아니라 권력이 모든 불화와 모든 운명의 심판자가 아닌가?
도덕은 강한 자의 발목을 붙들어 매는 약한 자의 족쇄인 것이다.
..그는 그렇게 말했다..
늙은이...
대부분의 도덕률이 약한자의 선택이 아니라 강한 장의 부여에 의한다는 말은 왜 하지 않은 것인가? 바라보아줄 내가 없는 태양의 의미는 왜 말하지 않는가?
어쨋든 진화론이 시사하는 바는 내 구미에도 맞는군
▶ 대도오의 독백
그런 것이 아닐까?
무엇이 습관이 된다는 것.
그에 따는 아픔과 어려움을 겪은 다음 그것이 생활이 되어
몸에 배었을 때 하나의 습관이 생겨지는 것 말야.
살다보면 살아지는 것이라.....
그냥 막 살면 된다는 소리라기 보다
삶의 아픔과 체험을 통해 그것이 습관처럼 몸에 녹아 들었을 때 그때 가서 알게 된다는 그런 소리 같은데...
<반효> 영감.. 뭔 헛소리야!
그냥 냅다 살면 되는 거지!
▶ 노대의 가르침
여긴 어디냐?
나의 마음입니다.
나는 누구냐?
나입니다.
막대기가 보이느냐?
예.
사과가 열리게 할 수 있겠느냐?
...못합니다.
어째서 못하는가?
-저 막대기는 죽은 지 이미 오래 되었으며 또한 사과나무가 아닙니다.
사과는 어디서 나는가?
-사과나무에서 납니다.
사과나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사과에서 왔습니다.
그 나무에 본래부터 사과가 있었는다?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사과나무에서 열린 사과는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흙과 물과 태양빛과 공기가 그 나무를 통해서 사과로 왔습니다.
그렇다면 사과나무은 무엇인가?
-주어진 환경을 사과로 만들어내는 순서를 간직한 규칙입니다.
그런가? 흙과 물과 빛과 공기 또한 한 가지 근본의 다른 순서랄 수 있다.
만약 그 순서를 조율할 수 있다면 죽은 막대기가 아니라 허공 중에서 사과를 만들어 있지 않겠는가?
물과 불이 다르지 않고 나무와 돌이 다르지 않은데 그것을 다르다고 하는 것을 분별이라 한다.
분별은 어디서 오는가?
마음에서 온다.
이제 이 모든 것들이 하나에 다르지 않다고 한다면 모든 분별이 사라지고 오직 하나만이 남지 않는가?
하나만 있는 것은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느린 것이 없는데 빠른 것은 있겠는가?
짧은 것이 없는데 긴 것이 있겠는가?
악이 없는데 선이 있겠는가?
전체를 하나로 보고 그 하나에서 무와 통했을 땐 내가 세상이며 내가 우주인 것이다.
나는 여기 있으며 동시에 저기에 있다.
마음이 일어나면 세상의 온갖 분별이 생기나니 하나와 통하진 못한다.
마음이 가라앉고 세상과 내가 통하면 잡다한 분별이 사라지고 전체에 내가 있으니 내고 곧 우주이다.
세상의 모든 변화는 순서에 있으며 이제 그 순서를 내 안에서 보라.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신과 통하는 창이며 나의 마음은 신이 앉을 자리이라.
내 속에서 신을 만날 것이니 나로 인해 세상이 있어지리라.
...사과를 열리게 하라...!!
▶ 대도오의 독백
"개지랄 반효라고 들어봤어~~?"
"우리마을에선 반효가 떴다하면 분위기가 엄숙해져~!"
"조장에게 복수할 생각은 그만둬!"
"왜냐하면.. 조장이 맘에 들어~!"
"반효 마음에 들면 반효가 지킨다!!"
▶ 개지랄 반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