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 횡단 특급
이영수(듀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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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없는 작가로 유명한 듀나의 단편소설집이다. 국내창작SF작가가 전무하다고해도 과언이 아닌 국내SF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며 나름대로의 인지도와 인기를 확보하고있는 작가로서 그 존재자체만으로도 국산SF에 목마른 팬들에게 반가운 단비와 같은 작가라고 할수있다. 이 책에는 모두 13편의 작품들이 실려있는데 독자들의 SF에 대한 소양에 따라서 각각의 작품을 대하는,그리고 이 책 전체를 대하는 느낌과 감흥이 천차만별일것으로 생각된다. SF소설이라는게 어느정도 작품을 많이 읽어봤고 장르의 관습적구조에 익숙해진 독자들에게는 쉽게 읽히는 재미있고 익숙한 작품일지라도 사전지식이 전혀없고 기존에 접해본적이 없는 독자들에게는 쉽게 이해할수없고 받아들일수없는 껄끄러움이 느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도 마찬가지로 별다른 준비없이도 재미를 느낄수있는 단편들도 있지만 준비물없이 읽었을때 작가의 의도와 작품의 진정한 재미를 만끽할수없는 단편들도 많기 때문에 SF소설을 처음으로 접해보는 독자들에게는 불친절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을것이다. 나역시도 이 책을 읽으면서 행간에 숨겨진 의미나 SF팬덤만이 알아차릴만한(마니아들만이 낄낄거리며 웃어제낄수있는) 작품속에 내포된 SF적요소들이 무엇일까에 신경쓰다보니 편한맘으로 마냥 재미있게 읽을수있었던 작품은 몇편 되지않았다. 게다가 듀나의 작품을 완전히 이해하고 100% 즐길수 있으려면 작품의 전반을 통해 나타나고있는 작가의 문화적취향과 박학다식함을 자랑하는 잡다한 배경지식과 다양한 취미들에 대해서 속속들이 알고있어야만 가능한 일이기에 그의 작품을 읽기는 더더욱 버거워진다.

단적인 예를 들면 듀나의 헐리웃하이틴로맨스물에 대한 애정이 바탕이 된 단편에서는 나는 전혀 아무런 재미도 감흥도 느낄수없었으며 책을 덮어버리고싶은 짜증감만을 느꼈을뿐이었다. 하이틴로맨스물에 대해 극도의 혐오감을 가지고있는 내게는 그 작품은 개인적인 취향에 너무나도 어긋나는 작품인데다가 극중에 인용되는 숱한 프로그램과 배우이름들을 도통 알아먹을수가 없으니 그야말로 짜증을 배가시키는 작품이 될수밖에 없었던것이다.

물론 SF와 듀나에 대한 사전대비와 공부를 포기하고 그냥 재미로 가볍게 읽을수도 있겠지만 내게는 아무래도 듀나의 SF소설들은 그렇게 부담없이 가볍게 읽히지만은 않는다. 앞으로 국내에 SF의 저변이 확대되고 팬층이 넓어지며 듀나와 같은 작가가 수십명이 활동하게 되는 날이 온다면 그때쯤에는 국내에서도 이런류의 국내창작SF단편집을 조금은 편하고 가볍게 읽을수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런 날이 오기전까지는 나같은 초짜SF입문자들은 듀나의 작품을 완전히 이해하기위해서라도 여전히 인터넷과 도서관과 서점을 돌아다니며 SF에 대한 지식을 얻으려는 노력을 해야만할것이다. 듀나의 다음작품에 다시 감상을 달게될때쯤에는 지금보다 SF에 대한 식견이 조금은 더 깊어져있길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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